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일본이 감기에 걸리고 한국은 폐렴을 앓는다는 말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경제적 언급입니다. 그만큼 경제 초강대국 미국과 강대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아닐 것입니다. 한국도 나름 어느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고 타국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힘도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런 구도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요. 경제 초강대국이자 기축통화의 나라인 미국의 움직임은 한국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미국과 일본의 경제관련자들이 감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미국의 지난달 1월 소비자 물가지수때문입니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난해 6월 이후 3%대 초중반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미국 노동부는 주거비가 전달보다 0.6% 올랐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로 미국 경제관련자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하락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 물가상승에 무슨 호들갑이냐 할 수 있지만 소비자 물가지수 0.6% 상승으로 정권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고물가에 시달리는 한국에서는 조금 이해가 안될 수도 있지만요.
미국의 경제 호전을 주된 업적이라고 내세우려던 미국 정부는 상당히 실망한 모습이지만 발표결과에 의연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주거비 상승률이 둔화됐지만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되는 데까지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라면서 자신들은 전반적인 물가 동향과 경제 흐름을 주목하지 월별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2.9%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2%대로 진입하는 데 실패한 것에 실망하는 분위기가 읽혀진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소비자 물가지수가 의미하는 것은 강합니다. 바로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때문입니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더욱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뉴욕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소비자 물가지수로 인해 그동안 유지해온 긴축 기조가 마감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과 올해 단행될 것으로 보였던 금리 인하와 관련해 전략 수립에 차질이 생겼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실망감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나스닥은 2% 정도 하락했고 S&P500 지수도 다시 5천선 아래로 밀려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금리 추세와 관련해 아마도 5월까지는 금리 동결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예상치를 넘어서자 일본도 화들짝 놀랐습니다. 미국의 금리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 확실시 되자 일본의 엔화 가치가 다시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엔화 가치는 1달러에 150엔을 돌파한 뒤 한때 150.88엔까지 다달했는데 이는 지난해 11월에 고점을 기록한 뒤 석 달만의 일입니다. 이번 엔화 움직임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엔화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바로 1달러에 150엔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노선이 돌파된 것이죠. 엔화 가치가 주요 10개 통화가운데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엔화의 약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움직임이 벌써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로 인해 금리 동결 추세가 더 오래 지속될 것이 확실시 되자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가 급상승한 데다 금리 변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강해진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엔화 가치하락이 일본 수출기업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일본으로 들어오는 관광객들도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일본 외환당국도 깊은 호흡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시장에 긴급 개입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측은 이런 저런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일본과 별 차이가 없을 듯 합니다. 미국 금리와의 차이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니까요. 한국 금융당국은 가계 부채와 부동산 등을 감안해 금리를 낮추기도 그렇고,그렇다고 미국의 금리를 감안해 금리를 높이지도 못하는 상황 아닙니까. 또한 일본의 엔화 가치하락으로 일본 수출에 호재로 작용하면 그것은 한국에게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비롯해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가격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일본으로 떠나는 한국 관광객들이 급증하는데 그런 흐름에 더욱 기름을 붓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여행 수지에 대단한 악영향을 입는 것이지요. 고물가 등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관광객은 급감하는데 일본 등지로 떠나는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면 당연히 여행 수지에 악영향을 주게 되겠죠. 앞서도 말했지만 미국이 기침을 하면 일본이 감기에 걸리고 한국은 폐렴을 앓는 것이 단지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2024년 2월 1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