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06071683621
[고전 속 제시문 100선] (3) 소크라테스의 대화록 (上)
안녕하세요? 생글 독자 여러분.오늘은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행적과 사상을 기록한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 소크라테스(Socrates,BC 469~BC 399)
철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한 인물.키케로는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사람이 소크라테스"라고 말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지혜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철학도 소크라테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이 국가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매우 위험한 제도라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반대파에 의해 고소당했고 결국 사형당했다.
플라톤 등 그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대중이 아닌 지혜로운 전문가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고 어떤 제자는 실제로 민주정을 뒤엎는 쿠데타를 시도하기도 했다.
1. '대화'의 구성
플라톤이 집필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은 소크라테스가 가르쳤던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을 대화체로 기록하고 있다.
25가지 대화편이 있으며 그 중 '소크라테스의 변명''향연''파이돈''크리톤',그리고 '프로타고라스'가 유명하다.
2. 소크라테스의 진리 추구 방법론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진리 추구는 어떠한 절대 진리나 가치를 상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대 논거를 극복하려는 회의주의적인 자세에서 시작된다.
즉 모든 사물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특히 자신의 신념,자신의 독단,자신의 공리를 의심할 줄 아는 태도가 철학을 하는 자세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문답식 산파술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데,이는 확정 가능성을 거부하고 반증 가능성을 열어놓는 칼 포퍼의 반증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일단 옳다고 보고 그것으로부터 추론되는 논리를 계속 세워가다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이 도출되는 방식의 논리를 소크라테스는 구사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논리로 상대방의 오류를 입증하는 그런 논법인데 이를 바로 산파술이라고 한다.
"당신의 말대로 하자면 이렇게 되겠지.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또 이렇게 되겠지.그러면 다음에는 또 이렇게 되지 않겠는가.
맞지.그러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오겠지.자,봐라.처음 당신이 주장하던 것과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는가"라고 끌고 가는 논법이 바로 산파술이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주제든지 소크라테스가 먼저 특정한 결론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스스로 강조했듯이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먼저 무언가를 주장할 까닭도 없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와 논쟁했던 상대방은 지뢰(논리적 허점)를 밟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했어야 했을 것이다.
헉! 무서운 소크라테스.
3. 소크라테스의 핵심 사상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탐구의 대상이 우주와 자연 등 외적 세계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사상은 '도덕'과 '국가'에 집중된다.
도덕은 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혜롭지 못해서 발생하는 각종 오류와 불완전한 통찰은 죄악의 원인이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충동을 억제하고 오류를 살펴 도덕적 완성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지혜가 통치의 기준이 된다.
국가가 평화와 질서,그리고 선한 의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정부나 통치자가 합리적이고 명료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런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감정에 휩쓸리는 대중이 단순히 표결 수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국가의 의사결정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된다.
4. 원문읽기
【혹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당신은 이곳을 떠나서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갈 수 없겠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침묵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신에 대한 불복종이 되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이렇게 말하여도 여러분은 농담으로 받아 넘기고 나의 말을 믿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덕과 그 밖에 다른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과 남을 살피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선이요,이런 생활만이 인간에게 가장 보람 있는 것이라고 말하여도,여러분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믿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사형 판결을 받았던 재판정에서의 최후 진술이다.
당시의 재판은 1000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최고 재판소(디카스테리온)에서 배심원단의 투표에 의해 이뤄졌다.
소크라테스는 긴 재판 과정을 거쳐 결국 표결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사형을 요구한 표결 수가 35표 더 많았다.
배심원은 아테네의 전 시민을 포함하는 명부에서 알파벳 순서로 뽑혀 구성되는데 이보다 더 민주적인 제도는 없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크라테스는 바로 이 점을 들어 그리스 민주정치가 위선적이며 무능하고 이보다 더 어리석은 제도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 바로 그 때문에 분노한 배심원들은 그를 사형시키기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 과정들에 대한 기록이 '변명'이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여러분은 나에게 유죄 판결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결과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쌍방의 투표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차이가 이렇게 적을 줄 몰랐습니다.
분명 훨씬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35표만 반대로 갔더라면 나는 무죄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아마 여러분은 고약한 사람들에 의하여 현명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비난도 받을 것입니다.
아마 (사건을 심리하는) 시간이 짧았던 탓일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변명'은 요즘의 표현대로 하자면 '최후 진술'이 더 적합할 것 같다.
70세에 이른 이 노 철학자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그리스 민중들에게 때로는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실제 웅변 시간이 3~4시간은 족히 될 만한 분량으로 마지막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이 진술에서 그는 자신을 고발한 멜레투스 등 민주파들과 치열한 논리 대결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주장과 증거를 대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형선고를 받고 지금 이 자리를 떠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거역하고 내게 유죄를 판결했습니다.
나는 이 판결에 복종해야 하겠지만 여러분도 복종하십시오.나는 이미 충분히 늙었고 죽음에 임박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예언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죽은 후에 곧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활에 대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겠지만 결과는 오히려 전혀 다를 것입니다.
생활에 대한 간섭은 더욱 많아질 것이고 괴로움도 받게 될 것입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하여,여러분은 살기 위하여.그러나 우리 앞의 어느 쪽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신 외에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 소크라테스는 분명 요즘 말로 하면 내란 선동죄 혹은 국기 문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플라톤이 기록한 대화편에는 의외로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많지 않다.
아마 저자인 플라톤이 자신의 '국가론' 등에 스승의 생각을 모두 담았다고 생각했거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해 스승의 정치 관련 발언을 되도록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원문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생활에 대한 간섭은 더욱 많아질 것이고 괴로움도 받게 될 것"이라고 쓰고 있지만 누구에 의해 왜 그럴 것인지는 생략되어 있다.
그리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가 결과적으로는 민중들에게 오히려 손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역시 논리적 혹은 구체적 서술은 생략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플라톤으로 직접 가볼 수밖에 없다.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06071939661
소크라테스의 대화록(下)
오늘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록 두 번째 시간입니다.
먼저 전편에 다루었던 소크라테스의 핵심 사상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철학자들처럼 외적 세계(자연과 우주)를 탐구하지 않고 인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핵심사상은 회의(懷疑)를 통해 명료한 통찰력을 갖추게 되는 인간의 지혜(智慧)가 도덕적 가치와 국가 통치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한 민중들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는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제도라고 비판하였고 이러한 사상적 맥락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관념론 유물론 무정부주의 등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어서 가히 오늘날 모든 철학과 사상의 원류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소크라테스의 죽음 장면입니다.
'크리톤은 나보다 먼저 울음을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폴로도로스는 벌써부터 울고 있었지만, 이때는 점점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의 가슴을 메어지게 하였습니다.
오직 소크라테스만이 혼자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하였습니다.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나.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군. 내가 여인네들을 돌려보낸 것은 이런 꼴을 보기 싫어서였네. 사람은 마땅히 조용히 죽어야 하는 줄 알고 있네. 그러므로 조용하고 침착하게 행동하게." 우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눈물을 삼켰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리저리 거닐다가 한참 후에 다리가 무겁다고 하면서 반듯이 드러누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자리에 눕자 사형집행인은 자주 소크라테스의 손과 발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발을 꾹 누르면서 감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감각이 없다고 대답하자 그는 우리에게 "독이 심장에까지 퍼지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반신이 거의 다 식었을 때에 소크라테스는 얼굴을 가렸던 이불을 제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 주게." - 파이돈
* 아스클레피오스 - 의약의 신으로서 병이 나으면 감사하는 뜻에서 이 신에게 닭을 바치는 습관이 있었다.
▶해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과 매우 비슷하다.
죽음을 받아들인 자세나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요지의 말들이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어찌 보면 소크라테스의 죽음 역시 예수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의도한 그런 결과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배심원(민중)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오만한 태도로 치열한 논리대결을 벌였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기 신념과 대립되었던 민주주의가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 줌으로써 도덕적인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죄 판결은 철학적 치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제자들은 그에게 해외 망명을 권유했지만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정화란 바로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수습하고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될 수 있는 대로 혼자서 살 수 있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니겠나? 즉 영혼이 육체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나?" "사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해방되는 것이 아니겠나?" "그렇습니다." "오직 진실한 철학자들만이 영혼을 이처럼 육체에서 해방시키려고 하네.철학자들의 소망은 오직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어 해방되는 것이 아니겠나?" "분명히 그렇습니다," "내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될 수 있는 대로 죽기를 원하던 사람이 막상 죽음에 당면하자, 죽음에서 놓여나려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렇습니다." "심미아스, 진실한 철인은 언제나 죽음에 다가가며 어느 누구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일세. 우리가 언제나 육체와 싸우며 영혼과 함께 순수해지기를 소망했다면, 이 소원이 성취되었을 경우에 만일 우리가 거기에 도착하여 이 세상에서 바라던 것, 즉 지혜를 얻게 될 희망이 있고 동시에 우리의 원수와 함께 있지 않을 곳으로 떠나려고 하는 데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벌벌 떨며 싫어한다면 이와 같은 모순이 또 어디 있겠나?" - 파이돈
▶해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고 정화되며 해방되는 계기라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육체는 '사멸하고 가변적인 것'이고 영혼은 '불멸하고 불변하는 것'이다.
현세에서는 영혼이 육체와 결합되어 있기에 완전한 자유가 불가능하다.
영혼의 완전한 자유는 육체라는 장애물을 벗어던지는 '죽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영육 이원론적인 해석은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영혼과 육체가 과연 다른 것인가?
1) 영혼은 없고 물질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기계론이나
2) 감정과 경험이라는 육체의 기능을 중시하는 경험론 또는 포스트모던 사상은
몸이 철학 사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진리를 얻기 위해 준비하고 해탈을 위해 정진하는 불가의 스님처럼 경건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여, 대중이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정의와 부정에 관한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해야 할 게 아닌가? 그 사람이 비록 한 사람뿐이라도 말일세. 다시 말하면, 진리 자체가 말하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일세. 그러므로 자네가 애초에 말한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과 악한 것에 관하여, 대중들의 의견을 좇아야 한다는 자네의 견해는 옳지 않은 것이 아니겠나? - 크리톤
▶해설: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해외 탈출을 권유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제소되고 사형판결을 받은 것은 자신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한탄한다.
크리톤의 그러한 감정에 소크라테스는 일침을 가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진리 자체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전문가가 판단할 몫인데, 감정적인 대중의 의견에 휩쓸리는 친구의 모습이 어리석게 보였던 것이다.
크리톤의 어리석음은 민주주의가 어리석은 제도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정의를 가르는 기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는 대중들이 결정권자가 되어 선동적인 웅변가의 감언에 속아 스스로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왜곡된 정치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또 엄정한 논리를 거쳐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곧 '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갖가지 아름다운 것에서 시작되고,최초의 미를 향해 보다 높이 올라가는 것, 즉 사다리의 층계를 올라가듯이 하나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두 개의 아름다운 육체로,두 개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모든 아름다운 육체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아름다운 육체에서 아름다운 활동으로, 아름다운 활동에서 아름다운 학문으로, 다시 여러 가지 학문에서 바로 그 미 자체의 인식에 도달하여 결국 미의 본체를 파악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생이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미 자체를 볼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이야말로 살아갈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향연
여기서 우리는 철학 그 자체를 만나게 된다.
모든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의 이행, 개념으로의 여행이 바로 철학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구체성에 포함된 추상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고도의 개념 활동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미'나 '덕' 역시 그런 인식의 차원을 높여가면서 비로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가르치고 있다.
마치 인간 사상의 계층질서를 생물의 목과 속, 종을 구분하듯이 점차 고차원의 추상적 인식으로 끌고 가는 것이 철학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구체적인 사안에 얽매이지 않는 고차원적인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이 같은 가르침은 플라톤에 이르러 모든 현실의 구체성이 배제된 순수한 이데아론으로 연결되게 된다.
현실은 이데아의 왜곡된 일부분일 뿐이며 이데아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가치라는 사상이 소크라테스 사후에 드디어 막을 올리게 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후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념론의 지침이 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