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핸드폰을 사용하는 일이 부쩍 늘어난 요즘.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생채기도 많이 생겼고, 가끔씩 LCD화면이 불안정 할 때가 있다.
다음 달이면 구입한지 딱2년을 채우는 시점이니 뭐 그정도 문제는 있을법하지만 처음 샀을 때의 그 삐까번쩍함(나름대로 골드와 실버의 투톤매치라는 상당히 럭쥬어리어스한 디자인이다.)과 처음 대하는 칼라화면의 쌈빡함을 떠올리자니 어딘가 모르게 안쓰럽기까지하다.
물활론을 끌어다 붙일 생각은 아니지만, 2년이란 시간동안 그 어떤 존재보다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그 핸드폰이고 보면 정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뭐 그건 오래쓴 물건에 희한하리만큼 애정을 느끼는 내 성향탓이기도 할 테지만
- 거기에 책이나 CD, 카세트 테입에 이르면 누굴 주면 줬지 절대 버리질 못한다. 덕분에 별 희한한 잡지들 까지 집안에 넘쳐나지만... 물론 어찌어찌하여 없어져도 잘 눈치채지 못하다가 몇 년쯤 지나서 '그 때 그 책은?', '그 테이프는?'하고 떠올리지만 찾아보다 없으면 또 잊어버리고만다.-
특히나 핸드폰이라든가 오디오기기라든가 하는 전자제품은 그 기능 때문인지 혹은 그 미지의 작동원리 때문인지 아니면 둘다인지 어딘가 '준인격체'로서 받아들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책장어딘가에 잘 찾아보면 '공학사'라고 잘도씌어있는 학위증이 있을테지만 내 전자계산기가 어째서 나도 잘 못하는 미적분을 간단히 해내는지 그 원리를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TV속에 작은 사람들이 살고있다고 믿는 유아기적 발상과 어디쯤엔가 연결 되어있을 그런 감성같은게 남아있는 걸까?
어쨌든 다시 핸드폰으로 돌아와서, 뭐 내가 준인격으로 느낀다고 해서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핸드폰에게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치명적인 기능상 결함으로 더이상 사용이 불가능 해지기전에는 다른 녀석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충성도 만빵. 카메라에 Mp3에 몇 백음 동시발음 스피커가 달린 삐까번쩍한 신형 핸드폰이 하나도 안부럽다는 점에서 자부심 또한 만빵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어서 몇 주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신모델의 홍수속에서 핸드폰의 라이프 사이클은 점점 짧아져만 가고있다.
200만화소짜리 카메라가 내장된 핸드폰 주인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어? 요새 300만화소짜리 나왔던데?'라고 한다.
최신형이라고 샀더니 얼마안있어 그 위 사양이 나온 것이다.
속쓰린 심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먼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어떠한 필요에 의해 핸드폰에 디지털 카메라가 붙어있어야 되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면 안된다는 게 아니라 그 발상 자체가 나로서는 좀 뜬금없다 싶은 부분이다. 이건 핸드폰에 mp3플레이어가 결합되는 거랑은 좀 다른 이야기이다. 따로 분리되어있던 휴대용 전자기기들이 핸드폰을 중심으로 결합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음.. 차라리 면도기나 전기 충격기가 장착되는 쪽이 더 자연스런 전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엔.
그래, 뭐 생각해 보면 워크맨이 출시되기전에 걸어다니며 음악을 들을 필요가 어딨냐고 했을 것이며 핸드폰 역시 굳이 그렇게 전화를 길바닥에서 해야만 하느냐..라는 물음이 있었을 테고, 디카역시 그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일게다. 단지 디카는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되어 핸드폰에 이식되었을 뿐이고...
흠..이렇게 생각을 전개해 보면 흔히 말하는 발명의 과정이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 것이 아니라 발명이 필요를 낳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핸드폰에 카메라 안 달아놨으면 그렇게 죽자사자 이거저거 찍어대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핸드폰에 면도기나 전기 충격기를 달아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수염의 스타일이 시대의 화두가 되거나 서부 개척시대의 총잡이들 처럼 전기 충격기잡이들의 결투가 성행하지는 않았을까?)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버렸지만... 어쨌든 핸드폰은, 아니 현존하는 기계들은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있다.
인간의 진화같은건 상대도 안되는 속도다. 이러니 터미네이터의 세계관이 설정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끔은 이 기계들이 더이상 발전할 필요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때도 있다 지금이대로도 아니 훨씬 더 예전의 성능만으로도 충분히 편리하게 살았다고 생각되는데 별 필요도 없는 기능과 성능의 발전, 혹은 진화가 자본과 기술에 의해 강요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진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진화가 독점된 자본과 기술과 지식을 가진 자들에의해 전혀 민주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강요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화의 속도속에서 많은 기계들이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버려지고 있는 것 같다.
내 첫 핸드폰이 갑자기 생각났다.
제대하고도 1년가까이 지나서 5만원주고 샀던 - 그 당시는 보조금 제도가 있던 시절이라 왠만한건 가입비만 내고 살 수 있었다.- 펄화이트의 작고 가느다란 플립형 sanyo 핸드폰. 통화대기 16박17일(맞나?)을 자랑하던, 당시 017전속 전지현의 CF가 인상적인 모델이었다.시중에 드문 기종이라 그런지 희한한 기능도 많았다. 음란 전화 퇴치용 '방어'기능을 비롯하여 잘 쓰지는 않지만 특이한 기능을 가진 별도의 키가 4개나 있었다. (세상에나 '음란전화 방어기능'이란말이다! 발신자 번호표시가 되는 요즘에는 그닥 쓸모가 없어보이지만 일찌감치 발신자 표시가 지원되던 일본에서 만든 모델임을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그건 그렇고 이런 기능이나 사이즈, 디자인을 생각해보면 여성을 타겟으로 개발된 모델이었을것 같기도 하다.)
물이 들어가면서 서서히 치매증상을 보이다 운명한 것이 재작년 이맘때. 지금의 모토롤라를 보상판매로 사면서 충전기랑 싹 빼았겨버렸다.
그냥 둘 수 있었다면 충전기에 꽂아서 장식장에라도 올려놨을 텐데..
어떤 사물에 특정한 개념, 혹은 이미지가 정착되면 그 이후에는 그 사물이 그 개념과 이미지를 대체하기도 한다.
복학 후부터 4학년 말까지라는 그 다이나믹했던 시간을 함께 했던 그 핸드폰이 갑자기 생각이 난건, 누군가의 질문 덕분에 갑자기 그 시절을 생각해냈기 때문일게다.
첫댓글 우리 회장님 휴대폰도 업그래이드 됐는데... 라이트도 있고...그휴대폰 이름이..."끝나"래..대빵좋아서^^
성준아!! 앞으로 글을 이렇게 길게 쓰면 아마 너를 죽이러갈지도 모르거덩! 그리고 내 휴대폰이 네가 부럽지 않다고 주절거린 건데 함 볼래?^^
진모선배님~!! 희망(안진모) 아직도??? ㅡㅡ. ㅋㅋㅋ^^*
아휴 눈아프다 아무튼 잘 보았다 ㅎㅎ 노환인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