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서 추천받은 음식을 시켜놓고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행복 중 하나 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가끔 그 행복이 두려움으로 바뀔 때도 있다.
의료장비 신입 영업사원 시절, 신입이 출장을 가면 고참 선배들이 전국 각 지역의 유명한 맛집 명부를 건네주는 전통이 있었다.
나도 그 혜택을 보았고, 출장지에 도착해서 소개된 맛집 중 '삼계탕' 전문집을 찾아들어 '반계탕'을 시켰다.
내가 자란 고향 대구에는 두 가지 유명한 음식이 있다.
하나는 '따로국밥'이고, 또 하나는 '납작 철판만두'다.
아시다시피 따로국밥은 국 따로 밥 따로에 깍두기 몇 조각이 따라 나오는 것이고, 납작 철판만두는 속에 당면만 조금 넣은 말 그대로 넓적납작한 만두를 가마솥뚜껑 같은 철판 위에 펄펄 끓는 식용유로 익혀주는 것을 파 쫑쫑 썰어 넣은 진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말이 유명 음식이지 특별할 것이 전혀 없고, 성미 까탈스러운 타지방 사람이 처음 이 두 가지 음식을 접한다면 먹는 거로 사람 깔본다고 대판 욕을 해댈 수도 있다.
난 그런 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라면이 손님 접대용 음식에서 가족용 음식으로 바뀌던 그 시절, 따로국밥이나 납작 철판만두 같은 음식들은 잘 사 먹지도 못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떡라면과 짜장면에 단무지 몇 조각이면 멋진 외식이라 생각하고 그 이상의 것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아... 대학생이 되고 가끔 서클회식 때 범어동에서 회를 먹기도 했는데, 오징어를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는 것이 고급 회 음식이라고 알고 살았다.
서울로 취직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야 내가 알던 회는 회가 아니고, 광어니 도다리니 방어니.. 낯선 생선 이름들로 된 진짜 회들이 있다는 걸 알았고, 감자탕에 감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광주 금남로에 있던 삼계탕 전문집은 전문집답게 값이 천 원 정도 더 비쌌는데, 선배들이 추천한 음식이니 입맛 다시며 나오기를 기다렸다.
저녁 식사 때라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혼자 덩그마니 상 하나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미안한 일이구나 깨달을 즈음, 종업원이 이단 선반카트를 밀며 다가왔다. 카트엔 온갖 반찬들을 담은 접시들이 가득했다.
'난 반계탕 시켰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나 빼곤 새 음식이 나올 빈상 차지한 손님들은 없고... 그 틈에 카트가 내 상 옆에 멈췄다.
'이건 뭔가가 잘못 됐다..' 직감이 들었고,
'시키지도 않은 음식들 가져 나와 이렇게 바가지를 씌울 수도 있나?' 의심도 들었다.
'빠듯한 출장비.. 돌아갈 차비 모자라는 거 아냐?'
걱정이 슬슬 공포로 변하기 시작할 때,
"난 반계탕 시켰는데 주문이 잘못된 것 같네요."
큰 소리로 종업원에게 말했다. 억울함을 담아서..
"아, 반계탕은 금방 뒤따라 나와요~"
종업원의 대답은 더욱 나를 공포로 몰아갔다.
반계탕이 나오기도 전에 나온 반찬들이 이 정도라고??
반계탕 값을 분명히 보고 주문했는데, 메뉴판에 반찬 부분이 따로 있는데 내가 못 봤을 수도??
나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종업원의 손놀림은 재발랐고, 말릴 틈도 없이 상에는 반찬 접시들로 가득 찼다. 몇몇 접시는 이층이 되기도 했다.
비상금으로 챙겨둔 돈까지 계산해 보니 어지간히 바가지를 써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먹고 죽은 귀신 때깔 어쩌고 하는 말을 떠올리며 허리끈 코부터 풀어 주었다.
이건 뭐, 산해진미가 따로 없고 임금님 수라상이 이 보다 더 나았을까 싶었다.
해산물에 갯벌 음식에 육류며 산에서 나는 나물 반찬까지...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 대부분인데 맛들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반찬 맛보기가 한창일 때 반계탕이 나왔다.
뚝배기에 담긴 김 폴폴 나는 반계탕...
그래, 내가 시킨 음식은 바로 이건데 왜??
다시 한번 억울했지만 워낙 음식과 반찬들이 맛이 좋으니 할 수 없지... 배나 꽉꽉 채워가자~
그때까지 살며 비록 속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식당 주인의 딸이 아무리 박색이라 하더라도 장가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걱정과 공포와 좌절과 희열의 감정 범벅은 계산대 앞에 서서 더 큰 놀람으로 바뀌었다.
값을 묻고 주섬주섬 비상금까지 챙기고 있는데 값이 그냥 반계탕 그 값이라 한다.
"정말 그 값이요? 그렇게 받고도 남아요?"
실례되는 줄도 모르고 놀란 눈으로 물었고, 계산대에 앉으신 분은 내 사투리로 내 놀람이 짐작이 되시는지 그저 사람 좋게 웃으셨다.
식당을 나오며 처음 든 생각이,
'하~~ 노다지다!'
그 식당만 그런가 싶었더니 다른 식당들도 거의 비슷했고, 광주뿐만이 아니라 나주며 목포, 순천과 전주 이리 군산... 호남지역 전역의 식당들이 대부분 다 그러했었다.
내 출장은 거의 혼자 가는 출장이라 호남 쪽 출장길에 식당에 들라치면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서, 혼자 독상 받아도 되는 지를 묻고 반찬 다 못 먹으니 반 넘게 줄여도 괜찮다고 먼저 말씀드리곤 했었다.
차를 몰고 다니면서부터는 기사식당을 주로 이용하였는데... ㅎㅎ 그곳도 대동소이했었다.
노다지... 이 노다지는 현재도 진행형이라 언제 고국 방문 기회가 생긴다면 꼭 들러 금을 캘 작정이다.
그런데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그곳이 노다지란 것을 모르신다.
얕은 내 속이 훤히 보이기는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첫댓글
동감입니다.
여행시 길을 제일 잘 가르쳐
주는 곳도 전라도이더군요.
밥 인심도 그럴테지요.
전부이다 할 정도로 생업이
농업이다보니 느긋한 성품이
된 거란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읽ㅆ습니다.
곳곳에 익이의 인간미가 보여요.
왜 문화예술 인사들이 많이 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ㅎ
전라도 음식이 맛있는 것은
전국이 아는 일입니다.
지방에서는 대부분 반찬 수도 많지만,
먹는 것에 대해서는 인심이 후하거던요.
마음자리님은
노다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반찬이 생각 외에 많으니
노다지 인심입니다.
솔직담백하신 분,
마음자리님에게는요.^^
ㅎㅎ 맞습니다.
노다지가 곳곳에 있어
어지간한 행운은 노다지 축에
끼이지도 못합니다. ㅎㅎ
오래전 대구에서 직장 생활하며
따로국밥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추억이 없는 인생은 삭막하겠지요.
외국에 나가 살면 젊은날의
추억이 얼마나 그리울까요..
님의 추억어린 지난 얘기 재미있게
읽으며 나의 그때를 기억해 봅니다.
안동 간고등어와 구운 오징어가 어릴 적 제가 알던 최고의 반찬과 간식거리였습니다. ㅎ
노다지 별거 아닙니다.
흡족하게 맛있게 먹으니
노다지 맞습니다.
여유로운 영하의 초겨울 날씨
햇살은 밝은 빛으로
떠오릅니다.
오늘도 소소한 노다지
만나시기를 바래보네요.
네. 조윤정님. ㅎ
노다지가 주변 곳곳에 널려 있어요.
여긴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안개가 짙었습니다.
미국 아침 안개도로 풍경입니다.
가을이 아프게 떠나가나 봅니다.
서울 에서도
어디에서도
보리밥 정식
쌈밥집
노다지 많치요 ㅎㅎㅎ
연안부두 해물집,
대구 서문시장
납작만두, 호떡
칼재비....ㅎㅎㅎ
기사식당 맛있죠!!!
일본가니
쬐깐한 밥공기에
소.식.반찬들...
그때서야
한국식당 손님
반찬 남은거 어쩌나???
생각 나드라구요 ㅋㅋ
먹는문화 푸짐한
대한민국 좋아요!! ㅎㅎ
남는거 있으실까요??
식재료가 무지 올랐어요...
수샨님도 추억 음식 많으시군요.
ㅎㅎ 제가 다시 찾을 때까지
값은 올랐더라도 푸짐함이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도 음식은 반찬가지수 부터
맛으로도 최고이지요.
노다지가 많습니다.
한국 오시면 남도 여행과 더불어
음식 실컷 즐기세요.
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처가집을 가도 그런 밥상은 못 받아
보았습니다. ㅎㅎ
저도 대학생이 되어 첫 전라도 여행에서 들린
전북 장수 근처의 한 기사식당에서
정말 상다리 휘어지게 나오는 반찬을 보고 깜짝 놀라고
싼 가격에 또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다 전남 지역가니 또 엄청난 음식과 반찬들 ㅎㅎㅎ
음식 인심은 전라도 인정 ㅎㅎ
저와 같은 경험을 하셔서 공감이
잘 되시나 봅니다.
그 격한 놀람이 바로 노다지 발견
아니겠습니까. ㅎ
호남 음식은 인심이 좋습디다
가격 대비 훌륭한 음식들을 맛볼수 있어서 좋습디다
과거에도 그랬구 최근에도 그렇습디다
타지역도 본받아야 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음식 인심 제일 후한 곳이지요.
출장 계획이 잡히면 입맛부터 다셔지는. ㅎㅎ
정말 전라도 음식은 푸짐하고 맛깔 납니다.
정말 그렇게 내줘도 남는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요즘은 반찬수가 많이 줄었겠죠?
그렇지요?
저는 지금까지도 궁금합니다.
정말 그렇게 주고도 남는 것이 있는지..
ㅎ 덕분에 내년 봄에 방문할 곳이 늘어났습니다
아직도 이전과 같은 그런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을지 모르겠네요
요즘은 서울에도 그런 집 많겠지만
아무래도 그곳으로 가서 사투리도
들으며 정스럽게 드시면 더 맛나겠지요.
일정에 꼭 포함 시키세요~ ㅎ
글을 막 열었는데
딸네식구들 온다는 전화를 받아서
점심 해먹이려면 서둘러야 할듯요.
글은 나중에 다시 볼게요.
ㅎㅎ
제라님 일상 다 보여주십니다.
ㅋㅋㅋㅋㅋ
글보면서 엄청 웃습니다.
그런 음식들을 먹고 자란 덕분에
요리에 재능이 좀 있으니 말입니다.
작은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외지에서 곰탕을 시켰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곰들이나 곰탕먹겠다고 ㅋ
이제야 점심상 물리고
주방정리가 끝났네요.
점심때 능이백숙 해서 딸네가족과
맛있게 먹었거든요.
숙부님의 말씀 백분 공감됩니다.
능이로도 백숙을 하는군요.
아~ 노다지... ㅎㅎ
배가 마구 고파옵니다.
전남 무안군
일로 장터에 가면
25첩 반찬에
9.000원하는
백반 정식
추천합니다.
님께서
고국 오시면
가난한 살림살이로
살아가는 보슬비이지만
만사 제쳐 놓고
일로 팩반정식
독천 낙지요리
강진 황칠갈낙탕
영암 기찬 장어구이
대접토록 하겠습니다.
그리움이 현실이 되어
노다지를 다시 찾는 날..
일로장터의 백반정식..
꼭 사주세요.
먹는 모습 보시고 행복 느끼실 수
있도록 정말 맛있게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로에 있는 도너츠집이 생각납니다.
중학교 다닐때
고소한 기름냄새만 3년간 맡고 다녔지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도너츠~
남편 말마따나
쌀이라도 퍼다주고 먹어볼걸.
지금까지도 그 맛이
가장 궁금하고 못 먹어봐서 한?이 된 도너츠 ㅋㅋ
@제라 일로나
진도나
목포나
남원에서나
도너츠
파는 곳이면
달려갈테니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면
집에있는
쌀. 보리쌀, 찹쌀
몽땅 팔아서
도너츠 실컷 드실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ㅎㅎㅎ
얼마나 맛있었을까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도네요
맛있는 음식처럼
맛깔스러운 글
잘 보고 갑니다
하나라도 맛 안 보고 지나치면
죄 될 것 같아 다 맛을 보는데
하나하나가 그렇게 다 맛있더군요.
삶의지혜님도 한번 드셔보세요.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구봉형이 제 노다지에 더욱 빛을 더해 주시네요.
사실 입에 익어 그런지 지금도 삶은 오징어 자주 먹는데, 납짝 만두는 여기선 맛 볼 수가 없네요.
'마음자리'닉에서 왠지
글쟁이 포스가 느껴지는게..
역시 읽는 재미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네요
전라도 음식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으뜸이지요
마음자리님 글에 자극받아
노.다.지 캐러 남도 여행이
급~땡기는군요 ㅎ
전라도 음식은 대한민국 으뜸을
넘어 세계으뜸일 겁니다.
일반인이 먹는 세계 유명 음식들 중에 남도 음식처럼 산해진미가 다 차려지는 음식은 없잖아요.
땡길 때 얼른 가셔서 노다지 많이 캐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