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국 유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긴 부흥운동을 하며 대진국의 후국들을 건립하며 요에 저항한다.
1.후발해국.
927년 건국되어 (건국자는 누구인지 기록이 남아잇지 않아 알수 없다)
995년(거란 6대 황제 성종 야율융서 13년)을 전후해 멸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이다. 일설에는 후발해국의 멸망 시기가 995년이 아닌 1115년 금 태조 아골타의 공격으로 멸망했다고도 한다.
발해 전설에 의하면 발해의 마지막 네 황녀와 대진국 유장들에 의해 건설된 국가라고도 한다.
2.정안국.
928년 열만화에 의해 건국되어 1004년 7월 거란 6대 황제 성종(재위:983-1032) 야율융서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존속한 나라이다.
송나라와 고려에 국서를 보내며 거란을 견제하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햇으며, 국가 초기에는 열씨(열만화)가 정권을 잡았으나 이후 오씨(오현명)에게로 정권이 넘어간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1018년 정안국 유민 골수가 족인을 거느리고 고려로 망명한 기록이 보여 주목된다.
3.동단국.
926년 대진국이 멸망한뒤 대진국 땅을 다스리기 위해 그 곳에 세워진 국가.이 당시 수도는 천복성(옜 홀한성-상경용천부-).
하지만 928년 요양으로 강제 천사되었고 설상가상으로 930년에는 동단국 황제 인황왕 야율배가 동생이자 거란 황제 태종 야율덕광의 압력으로 강제퇴위된후, 후당에 망명함. 934년 야율배, 후당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함.
이 사건의 여파로 동단국은 정안국,후발해국 등과 손잡고 대거란 투쟁을 벌이게 된 것으로 추정됨.
995년 전후로 멸망한 것으로 추정됨.
4. 오사성 발해국
발해의 귀족 출신 오소도가 934년 건설한 국가.
995년 멸망한 것으로 역시 추정된다.
요사에는 오사성 발해국의 멸망과 관련된 사료가 보여 주목된다.
그런데 이 국가들을 살펴보면 뭔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대진국의 후국들이라 할수 있는 동단국(926-995?),정안국(928-1004),후발해국(927-995? 혹은 927년-1115년),오사성 발해국(934년?-995년?) 4국의 존속기간이 70년-80년 내외로 비교적 오래 존속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대진국 후국들이 오래 존속할수 있엇던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대진국 유민들의 끈질긴 부흥운동을 들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여기에 적어 봅니다.
(1) 대진국 멸망 뒤, 장령부는 7개월 가까이 성을 지키며 거란에 맞대응합니다. 하지만 926년 7월 거란은 강묵기와 소아고지 등을 투입 장령부 토벌을 한 뒤 이를 이어 회발성과 서경압록부까지 공격하며 대진국 유민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합니다. 이 때 3000명 가량의 대진국 유민이 회발성에서 거란군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2) 정리부,남해부,안원부 등에서도 대거란 투쟁이 몇 차례 일어납니다.
하지만 모두 거란에 진압되었고 안원부에서는 이를 주도한 대진국 부흥군 장수 2명이 거란에 의해 처형됩니다.
(3) 대진국의 마지막 황제-대인선-의 동생이 홀한성을 공격하는 등
대진국 부흥운동은 대진국 황족들에게도 꾸준히 이어집니다.
(4) 대진국의 마지막 태자 대광현의 부흥운동과 전설 형태로만 전하지만 대진국 황녀 4사람과 대진국 장수들의 부흥 운동.
대광현은 927년을 전후해 고려로 망명합니다.
둘째,거란 내부의 사정입니다.
우선 거란 황계표를 살펴봅니다.()은 재위기간입니다.
1대 태조 야율아보기(907-926)
2대 태종 야율덕광(926-947):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둘째 아들.
3대 세종 야율원(947-951):동단국 인황왕 야율배의 아들.
4대 목종 야율경(951-968):거란 태종 야율덕광의 둘째 아들.
5대 경종 야율현(968-983):거란 목종 야율경의 동생?
6대 성종 야율융서(983-1032):거란 세종 야율원의 아들.
7대 흥종 야율종진(1032-1057)
8대 도종 야율홍기(1057-1100)
9대 천조제 야율연희(1100-1125)
일단 이 글에서 거란 6대 황제 성종대까지의 대진국 부흥운동을 상황을 다룰 예정입니다.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대진국 정벌전 도중 부여성 전투에서 전사한뒤,거란 황제는 야율덕광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로 그는 942년 만부교 사건 뒤 고려를 정벌하려 하지만 947년 살호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며 고려 정벌은 좌절됩니다.
하지만 947년 야율덕광이 살호원에서 병사?(거란 세종 야율올욕 측의 타살 가능성도 높음)한 뒤 거란의 황위 계승 전쟁에서 야율이호(거란 태종 야율덕광의 동생)을 누르고 승리한 야율올욕(야율원)이 거란 세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 역시 고려 정벌을 꿈꾸게 되지만 역시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측근 인물에게 피살되고 거란 목종 야율경(측근 인물에게 역시 피살)과 거란 야율현이 잇달아 즉위하지만 이들 두 군주 역시 중원 진출 문제로 인해 대진국의 후국들에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자 거란 성종 야율융서가 즉위한 뒤,상황은 달라집니다.
거란의 중흥을 이룩한 군주이기도 한 그는 그의 재위 기간에 정안국,동단국,후발해국,오사성 발해국 그리고 흥요국(2편에서 재언급)을 멸망시킨 군주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엉뚱한 샛길로 갔습니다.
거란 황계표를 분석하면 태종 야율덕광,세종 야율원,목종 야율경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등 거란내부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대진국 후국의
오랜 존속기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대진국 후국의 강력한 국력도 적지 않는 영향을 주었다고 할 것입니다.
대진국 후국들은 거란과 고려 그리고 송의 미묘한 역학 관계를 역이용하거나 이용하는 등, 외교력에서도 무시못할 역량을 보여줍니다.
대진국 후국의 존재는 고려에게도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거란이 섣불리 고려를 공략못한 것은 고려의 국력과 더불어 대진국 후국의 등장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편에 계속)
===========================================
글에서 일부 오타와 문맥상 오류가 보입니다. 이것은 2편에서 완전 수정할 예정이며,지적 바랍니다.
첫댓글 글의 출처가 더 궁금하다는 다음부터는 어느책에 나와 있는 내용인지도 알려주세요 -ㅁ-;
책의 출처는 발해고와 요사,거란국지 등 몇몇 사서들과 발해 관련 도서 등에서 참고한 부분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발해사 및 북방민족사 등에 관심이 마놓다 보니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연구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이라 여러분의 지적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