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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 반응
조 정 래
형태로선 자못 가슴 설레는 외출이었다. 월급쟁이가 토요일 오후면 으레 느끼는 그런 비굴한 해방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럼 속칭 가정의 날에 아내와 외출을 하기에? 그건 더구나 아니었다. 가정의 날. 어떤 시러배 아들놈이 만들어낸 말인지 모른다. 이 땅 남편이며 아버지들을 몽땅 방탕아가 아니면 가정경원증 환자로 취급해 버린 문구. 실히 몇백만 원은 낭비했을 곳곳마다 흩어진 가정의 날 푯말을 대할 때마다 뒤틀려오르던 메스꺼움이었다.
따지고 보니 결혼을 한 지도 5년. 오늘이 결혼 3주년 기념일인 것이다. 그동안 아내에게 원피스는 고사하고 스웨터 한 벌 사주지 못했다. 여자라면 다 입는, 그리고 편하고 따뜻하다는 홈 웨어라는 약간은 망측하게 생긴 옷을 해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외식을 한다거나 정서 생활을 위해 영화 감상 따위를 해본 기억마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복잡하고 바빠서 소변보고 그것 한번 내려다볼 여유가 없어 문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투덜대는 족속들의 호사스런 비명과는 형태는 너무 인연이 멀었다. 언제나 소변을 보고 그것이 피곤을 느낄 지경으로 흔들 만큼 시간은 남았고, 휴일이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서도 해를 서쪽으로 떠밀어야 했다. 형태에겐 그 마력적인 돈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결혼 6년 동안 장에 갇힌 새새끼가 되는 숙명을 생활로 익혀야했다. 아내는 용케도 그 갑갑증을 참아냈고 오히려 그런 무한정한 평면의 생활을 익숙하게 소화시켜 나가주었던 것이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고 나서, 필경 아내가 뚱뚱보가 아니면 말라깽이가 되리라고 예측했었다. 매일 세 끼 밥을 먹고 무신경하게 집에 처박혀 있으면 뚱뚱보가 될 것이고, 그 지루와 권태를 못 견뎌 신경질을 부리다가 급기야 발작을 하기 시작하면 말라깽이가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뚱뚱보가 되었을 때 시각의 피곤은 말할 것도 없고 밤이면 닥쳐올 그 공포를·……, 그 철렁거리는 뱃가죽 앞에서·……. 형태는 그만 침을 꿀꺽 삼켰다. 말라깽이가 되어 사흘거리 몸살을 치르고 그러다가·……, 아니 뼈마디 앙상한 여체에서 풍기는 비린내 구역질을 참아내려면……. 형태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아내는 그 어느 것도 되지 않고 형태가 사랑하는 몸무게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아내는 갇힌 장 안에서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생활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좁은 장은 언제나 호화롭진 않았지만 말끔했고, 풍부하진 않았지만 오밀조밀 했던 것이다. 그건 형태를 사랑하는 아내의 싱싱한 호흡이었고 결혼하게 된 것을 눈물로 기뻐하던 아내의 바람이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리하여 아내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돈 없는 일요일이 아내에게 죄로 미안하고 그렇기에 아내가 만든 도넛이나 만두가 그리도 맛이 좋았던 것이리라.
쥐꼬리가 아니라 쥐수염만 한 월급을 받으며 말단 사원 자리에서 견디다 보니 세월이 갔고, 그 세월은 우습게도 사람 가치를 높여주었다. 지난해부터 담뱃값 정도가 포켓에서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감각 없이 커피잔에 입술을 축였다. 그러다 보니 혓바닥은 간사하게도 커피잔에 아부를 하기 시작했고 목구멍은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뒤늦게 바람기를 풍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변소 가는 시간만큼 정확하게 혓바닥과 목구멍은 동의를 표해 왔고, 그에 이의 없이 다방 흔들이문을 밀치다 보니 속허벅지까지 드러낸 미니스커트의 레지 엉덩이를 철썩 갈겨도 무방한 단골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골목을 접어들어 구멍가게를 지나치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발길을 끌어잡았다. 돌아섰다. 틀림없는 아내였다.
“글쎄 이게 10원 어치냔 말예요, 이게.”
“아 10원 어친 팔지도 않는 건데 주는 대로 받아갈 것이지 뭐 그리 말이 많소.”
“뭐 라구요? 10원은 돈이 아니요, 돈이.”
아내는 악착스레 덤비고 있었다.
형태는 그만 돌아설까 하다가 가게로 다가갔다.
“여보!”
“…… 아니, 당신…….”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얼굴에는 필요 이상의 무안한 빛이 덮였다. 흡사 무슨 잘못을 저지르다가 들킨 사람 같았다.
아내는 재빨리 가게를 나서더니 앞서 걷기 시작했다. 형태도 걸음을 서둘러 아내와 발길을 같이했다.
“무슨 일이야?”
아내는 숙인 고개를 두어 번 저을 뿐 말이 없었다. 아내가 두 팔을 꼭 붙여 받쳐들고 가는 조그만 플라스틱 그릇. 거기 가장자리에 콩나물 대가리 하나가 바람 좀 쏘이겠다는 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아 그랬었구나! 순간, 커다란 멍울이 가슴을 치받쳐오르고 콧날이 시큰해졌다. 아내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완연히 겨울인데, 조석으론 추워.”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는 왜 하는 거야.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형태는 막상 다른 할말이 없었던 것이다. 눈앞에서는 수십 개의 찻잔이 부딪쳐 깨어지고 있었다.
저녁상에 오른 한 움큼의 콩나물. 거기에는 억센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 가시는 입 안과 목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그 아픔을 참아내며 형태는 미안하오, 미안해, 소리 없는 말을 무수히 뇌었다.
다음날부터 형태는 금욕의 인내를 키우느라 적잖이 애를 먹어야 했다. 예의 그 시간이 되면 혓바닥은 빈 입맛을 다시고 목구멍은 헛김을 들이마셨다. 코끝에는 그 감미로운 커피 향이 바람결처럼 언뜻 스치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큼큼 코를 벌름거려 보면 그 달차근한 커피 향 대신 콧속에는 사무실의 메마른 냄새만 가득 찼다. 담배를 태워물었다. 그러나 소주 안주에는 오징어지, 땅콩이나 비스킷이 당할 수 없는 것. 급기야 가슴이 갑갑해 오고 속이 메스껍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박형, 가십시다.”
“어디 말입니까?”
“허어 또 저러시네. 술값 아껴 3년 만에 황소 한 마리 샀더니 그날 밤에 호랑이가 물어가더래요.”
형태는 그만 가슴이 찔끔해진다. 저 친구가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때 정색을 하지 않으면 어쩌리.
“거 무슨 망발이오. 심장이 나빠 남들처럼 마시지 못해 한인 사람 앞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이군요.”
“글쎄 박형, 심장에 커피만 나쁘고 담배는 치료젠가요?
더 나쁜 담배는 이리 피워대면서. 자, 갑시다.”
아차, 형태는 담배를 비벼끄며 얼버무렸다.
“우선 끊기 쉬운 것부터 끊어얄 것 아니오.”
“하여튼 박형은 장수하리다. 자, 그럼 우린 한잔하러 갑시다.”
패거리가 나가버리자 언뜻 또 코끝을 스치는 그 향기로운 커피 내음. 형태는 신경질적으로 담배에 성냥을 득 그어댔다. 담배 연기를 아무리 깊이 들이마셔도 가슴의 갑갑증은 풀리지 않았다. 겨드랑이 가려운가 하면 등줄기가 스멀거리고 손끝 발끝이 아릿아릿하기도 했다. 이건 발광 직전에 다 다른 것이 아니면 병에 걸려도 몹쓸 병에 걸린 것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시간적으로나 횟수로나 이렇게 심한 중독이 될 이유가 하등 없었다. 하루에 한잔씩을 거르지 않고 마시기 시작한 것이 약 3개월 정도, 그것도 이윤이 계산된 다방 커피를 마시고 이 지경이 되다니. 그러나 똑같은 삼학대왕표 초특급 정종이요 오히려 얼큰한 찌개는 더 푸짐해도 역시 술맛은 술집에서라야 격에 어울리는 식이었다.
금욕의 인내를 며칠째 계속한 어느 날 형태는 남들이 다방으로 가는 시간에 몇 집을 건너서 자리 잡은 은행의 흔들이 문을 밀쳤다. 그리하여 생전 처음으로 손수 일금 1만 원정의 적금 제1회분을 불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후 꼬박 1년, 열두 달 동안 같은 날짜에 불입금을 치르고 l3개월째에 만 원과 보너스라는 이름의 이자까지 받은 것이 나흘 전 일이었다.
그날, 여자 행원이 내미는 5백 원권 만 원을 받아든 형태는 돌아서다가 주춤했다. 15개월짜리 1년 동안 은근과 끈기에 넘치던 노력 의 대가치고는 손아귀에 잡히는 지폐의 부피에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다소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형태는 다시 돌아섰던 것이다.
“여보세요. 이거 백 원짜리로 바꿔주시오.”
“·……”
여자 행원은 돈은 받지 않고 빤히 건너다보고만 있었다.
“백 원짜리로 바꿔달란 말이오.”
“왜요? 위조 지폐도 아닌데.”
돈을 낚아채듯 받아 돌아서며 쏟아놓은 여행원의 말이었다. 그녀가 돌아서는 짧은 순간 형태의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이마와 온 얼굴에서 기름지게 썩고 있는 여드름과 4시 반을 넘어서고 있는 벽시계였다. 피곤하실 거라, 하루 종일. 암 피곤코말고. 미스 여드름의 불친절에 형태는 부담 없는 관대를 베풀고 있었다.
“여깄어요.”
잠시 후에 돌아온 미스 여드름은 역시 신경질적으로 돈뭉치를 던지듯 했다. 형태는 돈 뭉치를 그러잡았다. 손아귀에 꽈악 차오는, 더없는 부드러운 촉감. 언제 어느 때나 어떤 돈이건 손아귀에 가득 잡힌 촉감이 뿌듯하고 부드럽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돈을 만든 종이는 분명 모조지인데도 갱지는 말할 것도 없고 습자지를 몰아잡았을 때보다 더 부드러운 감촉을 지닌 까닭은 무엇일까.
형태는 돈 뭉치를 속주머니에 넣고 단추까지 채웠다. 그리고 돌아서며 미스 여드름을 홈쳐보았다. 흡사 무슨 종기처럼 여드름이 풍성하게 썩고 있는 얼굴에 4시 반의 짜증과 신경질이 매일 돈을 만지는 여자의 시건방과 함께 는적 이고 있었다. 가시는 장미에 제격이지 호박꽃에도 가시가 필요하던? 넌 천상 곰보한테나 시집을 갈 팔자다. 그래야 그 여드름 은신처가 마련될 게 아니냐. 형태는 백 원권 만 원 뭉치가 심장이 뛸 때마다 만드는 느긋한 압력에 취해 은행문을 나서며 이렇게 신명이 났다.
오늘 어느 토요일보다 서둘러 집에 돌아온 형태는 방에 뛰어들자마자 책꽂이 뒤를 더듬었다. 만 원 뭉치는 거기에 안녕하시고 있었다. 돈 뭉치를 들고 돌아서며 엉거주춤 서있는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우악스레 입술을 덮었다. 어느 때 없이 길고 뜨거운 입맞춤이었다.
“여보 이거, 결혼 5주년 선물야.”
어리둥절해 있는 아내의 가슴에 돈 뭉치를 안겼다.
아내는 돈을 안고 선 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그게 만 원이니까 당신 갖고 싶은 걸 사.”
“·…… 보너스가 나왔어요?”
아내의 목소리는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냐, 내가 적금을 들었어. 오늘을 위해 적금을 들었어.”
“당신이 무슨 돈으로··…….”
아내의 눈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말야, 어쩌다 생기는 커피값을 모았어.”
“여보오·…….”
아내의 목소리에는 금세 물기가 올랐다. 그리고 죄 없는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울긴, 바보같이.”
형태의 손이 어깨에 닿자 아내는 쓰러지듯 안겨 왔다.
“난 몰라요, 난 몰라요.”
흐느낌 같은 아내의 음성은 그의 가슴속을 후벼들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낮의 소나기마냥.
아내는 못내 송구스런 몸짓으로 솟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는 표정이 되어 그 돈을 저금하겠다고 우겼고, 끝내 형태가 이마에 화를 올렸을 때 행복해 못 견디겠다는 미소를 짓고는 미장원을 향해 토끼새끼처럼 뛰어간 것이다.
낯을 씻고 들어온 형태는 화장대 위에 빨간 카네이션 세 송이가 맥주컵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이 한겨울에 어디서 카네이션을……, 맥주컵에다…… 먹먹해 오는 가슴 저 밑에서 싱싱한 내음이 샘솟고 있었다. 정작 보링은 자동차에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커피를 안 마신 일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새삼스레 느껴져오고, 여드름 행원은 어쩔 수 없이 곰보딱지 사내에게 시집을 가야한다는 엉뚱한 생각이 잇달아 떠오르고, 그래서 혁헉대며
형태는 부리나케 얼굴을 닦고 나서 로션까지 듬뿍 짜내 맥질을 하다 말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맞바라보며 또 크게 웃어 젖혔다.
큰길로 나오자 형태는 기세 좋게 팔을 들었다. 그때 아내가 그의 옷깃을 잡아 흔들었다.
“여보오.”
아내의 턱은 지나가는 버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요런 바보, 오늘은 글쎄 이러지 말래두.”
택시가 멎었다. 형태는 구멍가게에서 싸우던 아내의 모습을 떼치기라도 하듯 아내를 택시 속으로 떠밀다시피 하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살면 얼마나 사는 인생이라고, 안 그래 여보?”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아내는 말이 없었다. 형태는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약간 거칠어지긴 했지만 지난 날의 온기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저녁 먹기가 일러 빵집엘 들렀다. 영하의 바깥 날씨는 아랑곳없이 실내는 보일러 장치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여보, 우리도 아이스크림 먹을까?”
“아이스크림요? 겨울에 무슨·…….”
“아이스크림은 정작 겨울에 먹는거래.”
“괜히 비싸기만 하고·……, 빵이나 한 개씩 먹도록 하죠 뭐.”
“또 값을 따진다. 빵 말구 뭐 먹고 싶은 거 있잖아.”
아내는 굳이 빵이 좋다고 했고 형태는 우격다짐으로 단팥죽을 시켰다. 아내는 무척 달게 단팥죽을 먹었다.
빵집을 나서기 전에 형태가 회사에서 미리 알아온 영화 프로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아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애정물을 고른 것이다.
영화관 앞에서 아내는 크게 놀랐다. 관람료가 어쩌면 저리도 비싸냐는 것이었다. 영화가 제아무리 좋더라도 어디 6백 원의 가치가 있겠느냐고 했다. 텔레비전으로도 얼마든지 재미를 볼 수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 큰돈을 버리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내의 정색을 한 태도는 제법 완강했고, 빵집에서와 같은 우격다짐으로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5년 동안 관람료는 두 배로 뛰어올라 있었고, 2년 전에 친구를 통해서 마련한 텔레비전은 비록 중고였을망정 아내의 유일한 오락물로써 더할 수 없는 만족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가격을 에누리한 데다가 6개월 월부로 돈을 지불한 것은 순전히 친구의 희생적인 호의에서였고, 그 돈도 지불이 힘겨워 헉헉 대면서 그래도 아내가 즐거워하는 양을 보노라면 그저 마음이 흐뭇했던 것이다.
“여보, 이대로 가다간 내 눈에 곰팡이가 슬 거야. 거 시원한 천연색 화면 한번 보게 해줘.”
아내는 형태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당신 정말이세요?”
역시 정색한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니까. 이거 봐, 눈 가장자리가 이상하잖아?”
형태는 아내에게 얼굴을 디밀었다. 아내는 그만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피, 거짓말쟁이. 안약은 한 병에 2백 원이면 돼요. 알겠어요.”
아내는 곱게 눈을 흘기고 매표구로 갔다.
“아, 지독한 또순이.”
아내의 등에다 대고 토해낸 형태의 말이었다. 그러나 가슴에선 날씨와는 반대로 훈훈한 바람이 일고 있었다.
“산다는 게 그렇게 허망해 버리면 살았달 게 없잖아.”
영화관을 나오면서 중얼거리듯 한 아내의 말이었다. 그런 아내의 눈시울은 불그레하게 젖어 있었다.
연애 결혼을 한 젊은 부부가 가난과 싸우며 허덕이다가 어느 만큼 생활이 잡히게 되자 여자가 불치의 병을 얻어 죽어버리는 줄거리였다. 어쩌면 너무 평범하고 유치하기까지 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감독의 능란한 솜씨로 영화가 실감있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진부한 평은 그만두더라도 아내는 결혼 후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활을 그 속에서 더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여주인공의 죽음은, 〈무기여 잘 있거라〉를 본 다음 헤밍웨이를 둘도 없는 잔인한 냉혈 동물로 일축해 버린 아내의 나약한 감상주의 속에서 동정과 연민의 정을 듬뿍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여보, 시장하지? 선물 사기 전에 저녁부터 먹기로 하지. 그 영화배운 지금 또다른 영화에 출연 중이니 염려 그만 하구.”
형태는 아내의 팔을 감으며 지어낸 목소리로 쾌활하게 말했다.
“몰라요, 그런 나무토막 같은 소리.”
아내는 눈을 흘기며 가만히 웃었다. 콩나물 10원 어치로 시비를 벌이는 아내에게 카네이션을 꽂게 하는 이런 감상이 있다는 이중성은 형태를 무척 기쁘게 해주는 활력이기도 했다. 저녁으로는 로스구이를 5인분이나 먹었다. 그래서 밥은 한 그릇을 둘이서 딱 반씩 나눠 먹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맥주를 마셨다. 첫 잔을 마시기 전에 건배하며 형태는, 백년해로하고 부디 마음 변치 마시라 했고 아내는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서너 잔의 맥주를 마신 아내의 눈자위는 추할 수 없는 젊은 색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해묵은 아내에게서 어느 기회든 시들지 않은 색감이나 발랄한 피의 호흡을 느꼈을 때 행복하지 않은 사내가 있을까. 그건 지루한 장마 끝에 푸른 하늘을 보는 순간 솟구치는 청신함이며 싱그러운 생명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식당을 나왔을 때는 이른 겨울의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여보, 나 취한다, 어떡해.”
아내는 비틀하며 그에게 몸을 기대왔다. 아내의 허리에 팔을 감는 형태에게 존칭이 없어진 아내의 말투는 더없이 정겹게 들려왔다.
“자, 지금부터 결혼 3주년 기념일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선물사기야. 뭘로 할까. 여보, 당신 맘대로 정해. 옷도 좋고 화장품도 좋고, 아참, 당신 털구두가 없구나. 털구두도 좋고 반지도 좋아. 아냐, 아냐, 반지만은 취소. 다이아 반지는 값이 얼만데·……. 가만있자, 당신 원피스가 없지? 그걸 한 벌 하는 게 어때? 됐어, 가자.”
“가만있어 봐요. 원피스는·……, 원피스는·……, 저어 그건 당장 필요 없는걸요.”
“뭐는 당장 필요한가? 이런 때 해두고 때에 따라 입는 거지.”
“글쎄 원피스는 저어··……, 유행도 바뀌고··…… 어쨌든 원피스는 싫어요.”
“망설이지 말래니까. 유행이 바뀌면 또 해줄 테니까.”
아내는 양장점으로 들어서면서도 표정이 밝지 못했다.
형태는 양장점을 나서며 쓴 입맛을 다셨다. 아내가 망설이던 이유가 자신에게 미안해서 그런 줄만 알았던 것이 어처구니없는 오해였다. 아내는 확실한 여자였고, 그리고 더없이 착한 아내였다. 겨울용 원피스는 자그마치 2만 원이 있어야 했다. 아내는 영화 관람료가 두 배로 뛴 것은 모르고 있었지만 원피스값은 알고 있는 여자였고, 남은 돈으로 원피스를 맞추기엔 어림도 없는 터라 아예 양장점엘 가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자신이 우겼을 때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끌리듯 양장점 엘 들어간 것이 아닌가.
“여보, 나 원피스를 맞추고 나면 언제나 사기당한 기분예요. 손바닥만 한 천을 몸에 감고 그만한 돈을 내기는 억울하거 든요.”
아내의 이 말만 아니었어도 형태는 남편으로서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명랑한 목소리가 더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보, 나 예쁜 스웨터 하나 사줘요. 스웨터가 얼마나 입고 싶었다구.”
아내는 그의 팔에 매달리듯 하며 응석조였다. 입고 싶긴, 스웨터는 살 수 있으니까 괜히 그러는 거지. 이 영리한 강아지야. 약간 느껴지던 술기운이 말끔히 가신 지는 이미 오래였다.
“그래, 아주 예쁜 걸로 하나 사자.”
“고마워요. 여보, 우리 노래불러요.”
“노래?”
“거 있잖아요. 옛날에 부르던 거.”
“그렇지, 〈즐거운 나의 집 〉 말이지?”
외투 주머니 속에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콧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결혼 1년이 되던 날 아내는 통닭을 삶아 기념했고, 두 번째에는 요리책을 보고 익혔다는 전골 냄비를 푸지게 차렸던 것이다.
노래가 끝났을 즈음 다다른 곳이 연쇄 상가였다.
가운데를 복도로 하고 양옆으로 빈틈없이 들어선 상점마다에 또 빈틈없이 찬 물건.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을 철저하게 실행하는 한국의 모습이 거기에도 있었다.
모든 여자가 광채 찬란한 보석과 색깔 고운 옷감 앞에서 그렇듯 아내의 쇼윈도를 살피는 눈도 야릇한 빛을 담고 있었다. 형태는 아내의 한 발짝 뒤를 따라가며 담배만 빨아댔다. 아내는 백 미터가 훨씬 넘을지도 모르는 복도를 다 걸어가서는 돌아섰다. 그때 형태와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생긋 웃어 보였다. 형태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제1차 예비 관람이 끝난 것이리라. 아내는 다시 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번엔 처음보다 사뭇 느린 걸음이었다. 제2단계 정밀 관람이 시작된 것이다. 아내는 어느 상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기도 했고, 어떤 쇼윈도 앞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가 하면, 어느 때는 검지손가락 끝을 입에 물고 구두 뒤축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기도 했다. 형태는 그런 아내의 한 발짝 뒤에서 배달 자손다운 끈기로 남편의 체통을 지키고 있고는 했다. 아내는 어느 상점에도 들어가지 않고 정문에 이르렀다 되돌아서며 생각났다는 듯 빠르게 말했다.
“당신 지루하시죠? 미안해요.”
“아아니, 괜찮아.”
형태도 빠르게 대꾸하며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내는 복도 중간쯤에서 한 상점의 문을 밀쳤다.
아내는 스웨터를 이것저것 매만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친절과 민첩이 지나친 듯싶은 여점원은 이건 스마트하죠, 아 그건 심플하네요, 저건 노블해서 어울려요, 다양한 언어 구사가 거침없었다. 형태는 담배만 뻐끔대며 입맛이 떫었다. 허, 영어 한번 잘한다. 영문학과 수석 졸업생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잘못 풀려 고작 점원 노릇일까. 거참 아깝다. 형태는 쩝쩝 입맛을 다셨다.
“이거 얼마죠?”
아내의 목소리였다. 형태는 얼른 아내 쪽으로 돌아섰다.
아내가 들고 있는 스웨터는 오렌지빛 바탕에 자디잔 꽃이 수놓아진 것이었다. 그 꽃은 가슴팍에서 빨간색으로 시작되어 차츰 아래로 내려갈수록 바탕색과 같아지고 있었다.
“아, 그걸로 하시게요? 참 그 데자인 특수하죠? 이건 진짜 잘 어울려요. 손님 물건이에요.”
점원은 아내에게서 스웨터를 빼앗아 아내의 턱밑에 갖다대고 호들갑을 떨었다.
“값이 얼마예요?”
아내의 미간은 약간 찌푸려진 듯했다.
“긋쎄 얼마나 멋있수 긋쎄. 이 데자인이 얼마나 특수한데. 손님은 얼굴이 희니까 이 데자인이 얼마나 잘 어울려 긋쎄.”
형태는 넋없이 점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값이 얼마냐는 말을 못 듣진 않았을 텐데……, 가만있자, 데자인이냐 디자인이냐. 형태는 자꾸 아리송해지고 있었다.
“이거 값이 얼마냐구요.”
“아이참 손님두 성급하셔라. 근데 긋쎄, 이게 손님두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게 아냐. 미이제야, 미이제.”
‘미이제’에다 힘을 넣어 말할 때 점원의 양쪽 입 꼬리는 아래로 처지면서 아랫입술이 앞으로 쑥 나왔다간 제자리로 돌아갔다. 형태는 꽁초를 뒤꿈치로 잉끄리며 언성을 높였다.
“여보시오, 얼마냐고 값을 묻잖소. 아메리카제고 양키제고·…….
“어머 깜짝이야. 원 성미도 급하시네.”
점원은 팔까지 훌쩍 들어 무척 놀라는 시늉을 해보이더니 이내 웃음이 넘치는 얼굴로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이게 긋쎄 미이제라서 값이……, 아니…….”
아내는 이미 돌아서서 문을 밀치고 나가는 중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언성을 높인 이유가 가격을 빨리 대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흥정이나 해보고 가얄 게 아녜요.”
급한 목소리와 함께 슬리퍼 끄는 소리가 쫓아오는가 했더니,
“쌍, 뭐 저런 것들이 다 있어.”
이런 앙칼진 목소리가 뒷덜미를 후려쳤다.
“빌어먹을…….”
형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중얼거렸고,
“여보, 미안해요.”
아내는 힘없이 빙긋 웃었고,
“당신이 무슨 잘못인가.”
형태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두 번째 상점에서 아내가 골라든 스웨터는 보랏빛이었다. 양쪽 칼라 끝에서 계속 짜내려간 옷고름 같은 게 눈을 끌었다. 그걸 매면 목과 가슴 사이에 나비 모양의 커다란 리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형태는 아내에게 썩 어울릴 수 있는 옷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서른두셋이 되어 보이는 여인은 손님의 주머니 사정이나 신분을 식별해서 물건값을 조절하는 전형적인 장사의 눈초리를 굴리고 있었지만 역겨울 지경으로 호들갑을 떨거나 과잉 친절은 베풀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것이 더 숙련된 장사의 솜씨 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맘에 드세요? 색깔은 어울리는군요.”
“이게 너무 크지 않을까 몰라요.”
아내는 리본이 될 것을 만지작거렸다.
“딴것은 몰라도 겨울 스웨터니까 큰 게 오히려 조화가 잘될 거예요.”
“얼만데요?”
“글쎄, 순모(純毛)라서 값이 좀 비싸요. 실이 미제거든요.”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섰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여인은 아내의 코트 자락을 잡았다.
“아니 왜 그러세요, 갑자기. 뭐가 맘에 안 드세요? 그럼 다른 걸로 골라보도록 해요.”
“아, 죄송합니다. 담에 다시 들르죠.”
형태의 무뚝뚝한 말이었다.
“원 별꼴이야.”
여인의 작별 인사였다.
“화났어요?”
아내의 물음이었고,
“더럽군.”
형태의 답변이었다.
한국전쟁은 형태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일어났다. 유엔군의 인천 상륙에 따라 피난에서 고향 ㅁ시로 돌아온 것은 10월 말이었다. 집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고모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밤낮 시국 이야기에 정신을 팔고 있었고, 형태는 다른 조무래기들과 부서진 탱크 속에 기어들어 화약을 꺼내다가 불을 붙이는 재미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11월 초순 어느 날 저녁이었다. 어머니가 변소를 간다고 나간 얼마 후였다.
“사람 살려어어!”
비명이 찢어졌다. 전신에 소름이 쪽 끼치는 싸늘한 비명이었다. 아버지와 고모부가 벌떡 일어섰고, 문을 박차고 들어선 건 낭자머리를 풀어헤친 어머니였다. 파랗게 질린 어머니는 방 가운데 서 있는 누나의 손목을 거머잡고 뒷문으
로 내달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도망가, 깜둥이가 쫓아와!”
이 말에 고모도 튕기듯 일어나서 순식간에 뒷문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방으로 뛰어든 건 키가 천장에 닿는 무지막지하게 생긴 군인 셋이었다. 둘은 깜둥이였고 하나는 흰둥이였다. 그들은 모두 군화를 신은 채였다. 깜둥이 하나가 눈을 부라리며 아버지에게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노, 노’를 연발했다. 그러자 권총을 쑥 빼들어 아버지 가슴을 겨누었다. 그러면서 또 뭐라고 소릴 질렀다. 아버지는 손바닥을 모아잡고 싹싹 빌며 연상 ‘노, 노’만을 연발했다. 그사이 나머지 두 명은 군홧발로 저벅저벅 걸어다니며 벽장문을 열어젖히고, 뒷문으로 나가 플래시를 비추는가 하면, 부엌으로 뛰어내리다가 그릇을 들바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큰소리로 주고받았다. 한참을 설치고 다니던 두 명이 ‘쉐엣, 쉐엣’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섰다.
“갓뎀, 썬 오브 비취.”
깜둥이는 이런 소리를 지르며 군홧발로 아버지의 배를 걷어찼다. 아버지는 휘청하더니 사정없이 방바닥에 곤두박이고 말았다. 그때까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던 형태와 형, 그리고 고모 아들 셋은 죽을 힘을 다해 울기 시작했다.
“갓뎀, 썬 오브 비취.”
이런 소리를 남기고 셋은 차례로 방을 나갔다. 그런데 마지막 녀석이 뭔가 조그만 것을 방 가운데 던졌다. 모두는 질겁을 해서 머리를 감싸안고 방바닥에 엎드렸다. 한참이 지나도 폭탄 터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형태는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아버지는 곤두박인 그대로 모로 쓰러져 있었고, 고모부는 그때까지 방구석에 머리를 처박은 채 엉덩이를 높이 치켜세운 흉측한 꼴을 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정신 차려.”
형태는 아버지를 흔들었다. 입을 헤 벌리고 눈에 흰 창뿐인 아버지는 꼼짝도 안 했다. 형태는 그만 앙 울음을 터뜨렸다. 형이 따라 울고 그때서야 고모부는 “응? 뭐냐 뭐냐” 하며 다가들었다.
“이 녀석들아, 울지 말고 빨리 물 떠와, 냉수. 아버지 죽어.”
냉수를 끼얹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해서 아버지는 정신을 차렸다.
“여보, 여보.”
아버지는 팔로 허공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형님, 정신 차리세요. 다 무사할 겁니다.”
고모부는 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켰다. 배를 움켜잡은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뿌드득 이빨까지 가는 것이었다.
“몹쓸 놈들, 몹쓸 놈들·…….”
벽에 기대앉아 한숨에 섞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방이나 좀 닦게. 저기 저건 뭔가.”
흙 묻은 군화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힌 방바닥, 거기 중앙에는 손가락 두 개를 합해놓은 것만 한 직육면체의 물건이 버짓이 누워 있었다. 고모부는 기듯 해서 다가갔다.
“껌이군요, 껌. 이걸 가지고 괜히·…….”
“껌은 웬 껌이야.”
“그놈들이 던지고 가잖았습니까.”
“허어, 예의치고는 참 잘 배운 예의다. 그러게 철없이 왜들 싸워. 남의 집 불 꺼주는데 오죽하려고.”
아버지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온 것은 마루 밑에 숨었던 고모가 고모부의 부축을 받아가며 낑낑대고 나온 다음에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머니는 누나와 함께 장독대를 타고 판자 울을 넘어 뒷집으로 피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소변을 마치고 대문 옆을 지나치는데 인기척이 났다. 누가 찾아왔나 싶어 대문 가까이 가니 덥석 머리칼을 몰아잡는 커다란 손이 있었다. 질겁을 하고 보니 장대 같은 시커먼 놈이 히히 웃고 있었다. 순간 죽어라고 몸을 낚아채며 소릴 질렀다. 눈에서 불이 번쩍 했다. 잡힌 머리칼이 듬뿍 빠진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뒷집 안마당이었다.
그날 밤부터 아버지와 고모부는 꼬박 밤을 새우고 잠을 낮에 잤다.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고모는 옷을 입은 체로 모두 한 방에서 자야 했다. 형태는 잠을 자다가도 소스라치게 놀라 깨기를 자주 했다. 시커먼 얼굴에서 무섭게 빛나던
그 눈, 뒤집어까진 그 두껍고 징그럽던 입술과 커다랗던 입, 그 속에서 유난히 희게 빛나던 이빨, 그날의 그 깜둥이에게 목을 졸리거나, 숨이 잠기도록 쫓기다가 덜컥 덜미를 잡히는 순간 형태는 소스라쳐 잠을 깬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아래는 훔뻑 젖어 있게 마련이었다. 오줌을 싼 것이었다.
해가 바뀌고, 연 이틀이나 계속해 내리던 눈이 멎은 피난길에서 아버지, 누나, 형은 비행기 폭격에 맞아 죽고 말았다. 눈에 번지던 새빨간 피가 검붉게 얼어붙을 때까지 어머니는 몸부림치며 울었고, 형태는 싸늘한 아버지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노, 노’를 연발하다 곤두박이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피난지의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미군 부대주변을 맴돌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미군을 보면 깜둥이고 흰둥이고를 가리지 않고 ‘할로, 할로’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누구는 껌을 얻어 질겅질겅 씹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깡통을 얻어서 신바람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형태는 미군 부대 가까이 가본 일도 없고, 누구처럼 지나가는 미군을 할로라고 거침없이 불러보지도 못했으며, 어느 아이처럼 외삼촌에게 매달리듯 그리도 스스럼없이 매달리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쩌다 길에서라도 미군과 마주치면 형태는 혼비백산 도망을 갔다. 간혹 누가 껌을 반쪽 주기라도 하면 형태는 두 손을 주머니에 꾹 찔러넣고 사정없이 고개를 저었다.
“임마, 씹어봐. 맛이 최고야, 쫄깃쫄깃한 게.”
“싫어, 난 횟배 땜에 껌을 씹으면 비위가 상해.”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부반장인 형태는 교육 시찰단이 시찰오는 날 자연 과목의 나팔꽃 관찰 기록을 설명하게 되어 있었다. 나팔꽃을 심은 화분을 교탁 위에 올려놓고 칠판 앞에 괘도를 마련한 다음 그 괘도를 넘겨가며 나팔꽃의 싹이 나와서부터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매일 방과후 늦도록 1주일 이상 연습을 해서 눈을 감고도 척척 막히는 데가 없게 되었다. 시찰단이 오는 날 형태는 옷도 깨끗이 빨아입고 머리도 깎았다. 셋째 시간 시작 종이 울리고 형태는 교단으로 올라가서 나팔꽃 관찰 기록을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5분쯤 지났을까. 교장 선생님을 앞세우고 시찰단이 교실로 들어섰다. 모두 여섯 명 이었다. 그런데……, 형태의 눈길이 한곳에 머물더니 그렇게 또렷또렷하던 목소리가 떨리고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형태의 눈이 박힌 곳에는 몸집 이 비대한 대머리의 코 큰 사람이 서 있었다. 형태의 눈앞에는 그날 밤의 시커먼 얼굴에서 무섭게 빛나던 눈과 뒤집어까진 두껍고 징그럽던 입술과 희게 빛나던 이빨과 저벅거리던 구둣발 소리와 플래시의 어지럽던 불빛과 어머니의 비명 소리와 아버지의 ‘노, 노’소리와, 그런 것들이 뒤범벅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형태는 입술을 깨물어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대머리가 섰던 자리에 그날 밤의 깜둥이가 서서 소리를 질렀다.
“갓뎀, 썬 오브 비취!”
형태는 책상들이 한쪽으로 휩쓸린다고 느꼈다. 그리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 눈을 떠보니 숙직실이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형태가 쓰러지기 직전에 그 대머리는
“저애가 어디 아픈 것 아니오? 왜 무리한 일을 시키는 거요” 했다는 것이었다.
형태는 학기가 바뀌어도, 그리고 6학년 초에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갈 때까지도 그때 왜 그랬는지를 끝내 말씀드리지 못하고 말았다.
형태가 중학교 1학년이던 해에 아이젠 뭔가 하는 대통령이 보냈다는 통조림이 집집마다 배급된 일이 있었다. 통조림을 까먹다 말고 불현듯 그것이 그날 밤 방 가운데 떨어졌던 껌처럼 여겨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의 지시에 따
라 변소 똥 속에 처박혀야 했던 껌처럼 통조림의 신세가 기구해지지는 않았지만 형태는 더 이상 입에 대지 않았다.
형태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어린 때와 똑같은 꿈에 시달렸고, 몹시 피곤한 때는 오줌까지 싸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결혼을 해서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날 밤에도 목을 졸려 버둥거리다가 잠을 깼다.
“여보, 왜 그리 소릴 지르세요?”
아내가 놀란 눈으로 앉아 있었다.
“어? 응, 꿈을 꾼 모양이군.”
형태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아차 했다. 팬티가 축축하지 않은가.
“어쩜 애기 같이 꿈을 꾸면서 소릴 지르세요. 자, 안아드릴 게요.”
피할 겨를도 없이 아내가 달려들었다.
“어머, 당신…….”
아내가 튕기듯 일어나고, 형태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아내는 좋아 죽겠다는 듯 배를 움켜잡고 이불 위를 때굴때굴 구르며 숨이 간드러지고 있었다.
“참, 당신은·…….”
형태는 어물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내는 한참 만에 가까스로 웃음을 잡았다. 그리고 외면을 하고 있는 형태에게 달려들어 굳이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더니 눈이 마주치자 또 킥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술이 취해 전봇대에 대고 실례한 거죠, 그렇죠?”
“그게 아냐. 실은·…….”
“괜찮아요, 변명 안 해두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두 가끔 그랬다잖아요.”
아내는 눈물까지 글썽 여가며 웃음을 걷잡지 못했다.
“오줌싸개 도련니임 어서 옷 갈아입으시구요오, 날이 밝으면 옆집으로 소금 얻으러 가세요오.”
아내는 팬티를 내놓으며 정말 엄마 같은 목소리를 흉내냈다. 아내는 간혹 남편을 대하는데 어머니의 입장에 놓이는 때가 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아내의 심정이 그럴는지도 모른다고 형태는 생각했다.
그날 밤 아내는 시종 침울한 표정으로 힘들게 말을 이어가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고 나서 자신의 웃음이 얼마나 주책스러웠던 것인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외국 제품이면 무엇이든 싫어하던 생활 속에서의 남편을 애국자인 척한다고 약간은 위선적으로, 약간은 촌스럽게, 약간은 젊은 혈기로 취급했던 경솔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식성까지 남편의 것으로 변하고 있는 터에 남편의 생각을 부정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생각대로 따르다 보니 철처한 국산품 애호가가 되었고 결론적으론 고독한 애국자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세 번째 상점에서 고른 스웨터도 보랏빛이었다. 먼저 것보다 약간 밝은 색인데 모양이 특이했다. 목이 소매가 아닌가 착각할 지경으로 긴 스웨터였다. 밝은 보랏빛 스웨터의 가운데, 가슴 부분은 반 뼘 넓이의 흰색 바탕이었다. 그건
다행히 양쪽 팔까지는 번져가지 않고 있었다. 만약 양쪽 팔에까지 흰 바탕이 연결되었더라면 지나치게 행동적으로 보여 여자다움이 깨지거나 자칫 운동 선수 유니폼으로 격하될 위험을 다행히 모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흰 부분에 파랑·빨강·초록 등의 색으로 남녀가 수놓아진 것이었다. 밝은 보랏빛 바탕에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선명한 흰색, 그 위에 선 원색의 남녀가 어쩌면 그렇게 상쾌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형태는 그 스웨터를 아내에게 입혀 주고 싶었다.
“이거 입어봐도 돼요?”
아내는 값을 묻는 게 아니었다.
“그러믄요, 손님, 어서 입어보셔요.”
역시 영문과 출신인 듯싶은 점원은 어지러운 손짓까지 겸하고 있었다. 아마 부전공은 발레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 번이나 접어서 아내의 희고 긴 목에 맞은 스웨터의 긴목은 아내의 흰 얼굴과 시원한 조화를 이루었고, 가슴 부분의 원색 무늬는 아내를 한결 싱싱하게 돋아올리고 있었다.
“여보, 이거 어때요?”
“응, 아주 근사해.”
형태는 새삼스레 아내가 예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다. 언제나 아이들과 살림살이에 찌들려 부인은 머리 한번 제대로 빗는 일 없이 꾀죄죄했다. 밖에서 보는 여자들은 모두 깨끗하고 멋이 있는데·……. 견디다 못해 사내는 부인을 친정으로 가라고 호령했다. 부인은 울다가 분을 바르고 머리를 빗고 시집올 때 해온 치마저고리를 입고 보퉁이를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부인은 딴판이었다. 밖에서 보아온 눈길을 끌던 여자들 못지않
았다. 남편은 부인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근데 스웨터가 목이 너무 길고 번잡스럽지 않아요?”
스웨터를 벗고 난 아내는 홍정 전에 물건의 흠점부터 꼬집는 제법 세련된 솜씨까지 보이고 있었다.
“아이구 참 무슨 말씀이세요, 손님. 긴 목이 을마나 매력적이에요. 이런 독특한 데자인은 맞춰도 이렇게 빠지긴 힘들어요. 보라와 흰색의 앙상블이 을마나 멋들어져요. 그리고 이런 옷을 아무나 입는 줄 알아요? 손님처럼 목이 기일고 살결이 흰 사람들이나 임자지. 서양 아가씨들한테나 어울리는 거예요.”
점원은 여전히 팔을 분주하게 내저으며 빠르게 쏟아놓고 있었다.
“얼만데요?”
아내의 물음에 뒤이어,
“다른 말 필요 없이 값만 대시오, 값만.”
형태의 왠지 불안한 듯한 음성이었다.
“왜요, 값도 중요하지만 물건의 가치가 더 문제죠. 얼마나 받으면 될까·……, 파장이고 또 딱 어울리는 주인을 만났으니 싸게 드리지 뭐. 근데 이게 실은 시중에 판매 금지된 보세 가공품이거든요. 그래서 글쎄·…….”
아내는 상점을 나서면서 짜증을 부렸다.
“쓸 만한 건 하나같이 저꼴이야.”
“자알들 논다.”
형태의 허탈에 빠진 목소리였다.
아내가 형태의 팔을 붙들었다.
“여보 미안해요. 나 스웨터 사는 것 그만두겠어요.”
“그만두다니, 딴 곳은 없나 왜?”
“다 그 꼴이 그 꼴일걸요 뭐. 오늘이 어떤 날이라고 스웨터 하나 살래다가 괜히 기분만 잡치겠어요.”
둘은 연쇄 상가를 나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여보, 이 돈 내 맘대로 해도 괜찮댔죠?”
아내의 물음에 형태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럼, 누구 땜에 모은 건데.” :
얼마를 걸어서 백화점에 이르렀다. 아내는 여자 옷가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남자용만 취급하는 양품부가 거의 전부였다. 아내는 어느 가게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넥타이를 골라들더니 형태의 목에 대
고 이리저리 살폈다.
“넥타이는 뭘 하려고 사.”
“·……”
“선생님한테 어울리는군요.”
비로소 점원이 입을 열었다. 점원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형태에게 오히려 생 경하게 들렸다.
“그렇죠?”
형태의 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은 아내는 점원에게 밝은 얼굴을 주며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싸주세요.”
아내는 정찰 가격대로 돈을 지불했다. 형태는 아내의 너무 기민한 동작에 그저 어리벙벙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아내는 화장품상에서 루즈를 골랐다.
“두바리는 필요 없으신가요? 예쁜색이 많은데요.”
아내는 점원의 속삭이듯 하는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연신 루즈를 매만지는 빠른 손과는 반대로 입술에는 비웃음이 엷게 드러나더니 사라졌다.
아내는 여러 개의 루즈를 손등에 조금씩 문지르곤 하더니 그중 하나를 골랐다. 아내가 그러는 동안 점원은 새침한 얼굴로 한눈을 팔고 있었다. 점원의 그 새침한 표정의 무관심을 가장한 얼굴에서 형태는 언뜻 여드름 행원을 생각했다.
여드름 행원에게 많은 돈을 만지는 가소로운 오만이 있었다면, 이 점원은 국산 화장품을 쓰는 여자를 무조건 무시할 수 있는 얄미운 경멸을 지니고 있었다.
아내는 돈을 던지듯 했고, 점원은 그걸 거칠게 쓸어잡았다. 거기에는 여자 그들만이 특유하게 지니는 같은 질량의 무시와 같은 농도의 경멸과 같은 무게의 거만이 교차하고 있었다.
형태는 백화점 문을 밀치고 나가는 아내를 붙들어세웠다.
“여긴 정찰제고 물건도 많으니 스웨털 다시 골라보지 그래.”
아내는 인도로 나설 때까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여보, 나 남은 돈으로 스웨터 대신 금반질 사고 싶어요.
두 돈짜리는 너끈히 살 수 있을 거예요.”
아내가 불쑥 내놓는 말이었다.
“그건 또 왜.”
“끼고 싶으니까 그러죠.”
“요런 얌체, 그건 안 돼.”
형태는 아내의 심중을 빤히 알고 있었다.
“그런 법이 어딨어요, 시시하게. 맘대루 하라고 해놓구선. 그럼 도루 가져가세요.”
아내는 핸드백을 열려고 했다.
“알았어, 알았어. 당신 맘대로 해.”
형태는 팔까지 내저었다.
지하도로 들어섰다. 겨울 지하도는 썰렁한 냉기가 가득 차 바깥보다 더 추위를 품고 있는 듯싶었다.
지하도 계단을 거의 다 올라서다가 형태는 멈칫했다.
“여보, 당신 핸드백이 열렸잖아?”
“예?”
아내는 황급히 핸드백을 추켜올렸다.
그리고 아내의 손은 더 이상 빠를 수 없이 핸드백 속으로 들어갔다.
“여보, 쓰리예요!”
예전에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아내의 그 원시적인 목소리. 그 짧은 음성은 뭉텅이진 절규였다.
“뭐, 뭐라고?”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형태는 어처구니없게도 그 감미로운 커피 내음이 코끝에 스치는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쓰리예요, 쓰릴 당했다니까요.”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열린 핸드백을 추켜든 채였다. 그러다가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 그런 아내를 멍하니 바라보고 섰던 형태의 입에서는 이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허참, 기막힌 보복이구먼.”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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