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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긍휼과 사랑이 확인될 마지막의 임박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난바 되고, 그분의 모든 길이 옹호 받으실 날이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닥쳐올 것이다. 그 때에 공의와 긍휼과 사랑이, 그분 보좌의 속성일 것이다. 땅 위의 싸움이 마쳐지고 성도모두가 본향으로 모일 때, 우리의 첫째주제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일 것이다. 두 번째 주제는 은혜와 구속의 노래인, ‘어린양’의 노래일 것이다.
이 노래는 더욱 크고, 더욱 고상하고, 더욱 웅장한 가락이 되어 하늘궁전에 메아리치고, 다시 메아리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는 노래로 불려 지는데, 그분의 다양한 시대들을 연결시킨다.
이는 이제 모든 것이 율법시대, 선지자시대, 복음시대 사이에 아무런 휘장[칸막이]도 없이 보여 지기 때문이다. 땅 위의 교회역사와 하늘의 구속함을 받은 교회는 모두가, ‘갈바리’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 되신 그리스도와 만유 속에 계신 그리스도- 이것이 만만천사와 구속함을 받은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에 의해, 온 하늘에 울려 퍼질 찬송의 주제요 노래이다. 모든 존재가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여기에 연합할 것이다. 이것은 새 노래인데, 이는 이전에는 하늘에서 결코 불러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TM 433.1)
타 교단의 목사들이 진정으로 우리의 기별로 돌아섰다면,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진 도구가 될 수 있음— 우리 백성들이 너무 편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므로, 보다 지성적이며 훌륭한 교육을 받은 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많은 영혼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너무나 자주 전도사업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인상을 불신자들에게 주고 있으며, 이런 소극적인 사업의 결과로 어떤 이들은 저희 자신도 모르게, 신앙적 열성을 나타내 보이는 곁길로 나가게 된다. 지혜로운 전도방법의 결핍으로, 많은 사람들을 잃고 있다.
이 사업의 특징과 권위를, 살리는 방향으로 모든 노력이 행해져야 한다. 다른 교회의 목사들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접촉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혜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신자들은, 저들에 대한 관심을 등한히 하고 있는가? 이런 사람들은 저들에게 위탁된 재능에 비례하여, 하나님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가 좀 더 깊이 연구하지 않고 좀 더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진실로 회개한 자들이 이런 영혼들을 얻기 위하여 지혜와 재능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누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있는 세련된 도구가 될 것인가?(PaM 92.4)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거룩한 부부에게 요구하셨던 바로 그것, 곧 하나님의 요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오늘날에도 요구하신다. 그분의 율법은’ 모든 세대를 통해서 동일하다. ‘구약시대’에 제시된 의의 위대한 표준은, ‘신약시대’에서 낮춰지지 않는다. 복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것이다.(FW 52.1)
이제 우리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 전파자들은 “안식일”에 관한 빛을 소개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큰 영광으로 재림하실 날이 임박한 것을,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하여야 한다.
세상에 경고하여야 할 마지막 기별은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중히 여기시는 율법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분명하게 소개하여 아무도 그것을 듣고,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여야 할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노라고, 핑계하는 범법자가 없도록 할 것이다.(GW 148.3)
이제 복음은 도처에서 반대를 받는다. 지금처럼 악한 무리들의 세력이, 강한 때는 아직까지 없었다. 이제 악의 영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대항하기 위해서, 인간들과 힘을 합하고 있다. 그리하여 성경보다 사람의 유전과 거짓 이야기를, 하나님의 계시보다 이론과 과학을, 성령의 지도보다 인간의 재간을, 성령의 가르침보다 형식과 의식을, 경건의 본질적인 능력보다 더욱 귀하게 여긴다.
여러 가지 서글픈 죄악들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큰 거리가 생겼다. 불신의 조류는 신속히 번져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한 목소리]으로, “이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을 우리는 반대한다”고 외친다. 이 때에 하나님의 목자들은 나팔 소리처럼 소리를 높여, 백성들의 죄악을 고하여야 한다. 통속적인 평범한 설교는, 영속적인 감화를 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하고 예리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까닭에, 사람들은 마음에 자극을 받지 못한다.(GW 149.1)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은 그 사업과 그 부르심의 신성함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임명하심을 받은 전도자로서, 실로 책임이 매우 중대한 지위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서 활동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를 격려하며 순종치 않는 자를 경고하여야 한다. 세속적인 수단은, 목자들에게 아무 쓸 데가 없다.
결코 예수님께서 명하신 길에서 이탈하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하며,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목사는 지상의 모든 권세 있는 자보다 더욱 위대하신 분이 명하신 말씀을 말할 것이요, 결코 자기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들이 전하는 기별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GW 150.2)
성령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가장 유력한 교사이므로, 성령의 임하심과 그분의 도우심이 없이는 말씀으로 전할지라도 아무 효력이 없다. 진리가 성령과 함께 마음 가운데 들어올 때에, 비로소 양심을 깨우치고 생애를 변화시킨다.
목사가 성경의 계명과 약속들을 익히 알고 하나님의 말씀의 편지를, 전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씨가 하늘의 이슬을 받아, 싹이 트지 않는다면 그의 씨 뿌린 수고는 헛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아무리 우세한 입장에 있고,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빛의 통로가 될 수 없다.
‘신약성경’중에서 한 편이라도 기록되기 전에, 또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아직 한 번이라도 복음의 설교를 하기 전에, 성령은 기도하고 있는 제자들 위에 내리셨다. 그리하여 그 후에 그 원수들은,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행5:28) 한다고 증언하였다.(GW 284.2)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주를 높일 수 있게 하시고, 또 복음서 기자들의 붓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과, 그분의 행사를 기록하여 세상에 전하게 하셨다. 오늘날에도 같은 성령이 항상 일하고 계시며, 세상 사람들에게 ‘갈바리’ 십자가의 크신 희생을 주목케 하시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이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의 약속들을 믿게 하려고 애쓰고 계신다.(GW 286.2)
우리는 사람들이 진리를 버리고 가장 거짓된 오류를 받아들여, 그것을 믿고 있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빛을 전할 책임을, 목자와 신자들에게 지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심히 진리의 보화를 모아, 복음사업에 사용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면 그 보화가 도덕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에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이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 성령이 도우시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될 때에는 믿음으로 무한한 능력을 붙들게 되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받게 된다. 구세주께서는 오류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기별을 보내신다.
성령이 하시는 사업은 무한히 크다. 이 성령으로부터 힘과 능력이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임하는 것이다. (GW 289.3) “바른 교훈”은 성경의 진리, 곧 경건한 신앙심을 조장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굳게 하여 주는 진리를 말한다.
그것은 그 교훈을 받는 자에게는 물론 그것을 가르치는, 의의 종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된 곳마다 어떤 일을 맡았든지 간에 각 일꾼들이, 주의 사자로서 그의 책임을 신실히 행하였는지 혹은, 신실히 행하지 못하였는지가 나타나는 까닭이다.(GW 311.2) 오늘날, 우리도 이 원칙을 굳게 고수해야 한다.
복음교회의 창시자들과 그 후 수세기에 걸쳐 있었던 하나님의 증인들이, 높이 든 진리와 종교자유의 깃발은 이 마지막 싸움에 있어서, 우리들의 손에 위임되었다. 이 큰 선물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의 지식으로, 축복하신 자들에게 놓여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우리는 인간의 정부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구로 인정하고, 법의 한도 내에서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요구가 하나님의 요구와 상충될 때에는, 우리는 반드시 사람에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또, 인간의 모든 법률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 인정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는 말을 “교회가 이렇게 말했다” 또는 “국가가 이렇게 말했다”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면류관이 세상군주의 왕관보다 높임을 받아야 한다.(GW 389.2)
주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정치적 문제를 잊어버리게 되기를 원하신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이 웅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명시된, 순수한 복음의 원칙들에 대해서 통일이 되도록 요구하신다. 우리는 정당들에 대해서, 안전한 찬성투표를 던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에게 투표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정치적 계획에도, 안심하고 참여할 수 없다. 우리는 저들의 권력으로 종교자유를 억압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일요일을 “안식일”로 강제로 지키게 하는 가혹한 조치를 취하게 할, 그러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일할 수는 없다. 주일의 첫날은, 존귀한 날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 안식일이므로, 주의 가족 된 사람들이 이 날을 존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여, 주의 “안식일”을 짓밟고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사람들이, 집권하도록 투표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이같이 하면, 그들도 집권하고 있는 자들이 저지르는 죄에, 동참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GW 391.2)
‘이사야’가 그의 예언 중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사10:20-22참조)고 말한 것은, 이런 사람들에게 대한 것이다. ‘바울’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으로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롬2:11)않으신다고 ‘바울’이 말하였다. 사도는 ‘유대인’들에게는 물론,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롬1:14)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타 민족에 비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점에 대해서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롬3:2)은 까닭이었다. ‘바울’은 선언하기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고 하였다.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동등하게 유효한 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것이었다.(GW 397.3)
마지막 복음의 선포에 있어서 지금까지 돌아보지 아니하였던, 계급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한 사업을 해야 하는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이 세상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를 원하신다.
여호와의 영원한 목적을 설명할 때에 ‘구약’과 ‘신약성경’을, 잘 융합해서 설명하면 이것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새 창조(영혼의 부활)의 아침과 같이 새로움을 줄 것이다. 그들이 복음서의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의 여러 책장에 묘사된 것을 보고, ‘신약성경’이 얼마나 분명히 ‘구약성경’을 설명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때에, 그들의 잠자던 기능들이 일깨움을 받고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세주로 인정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영접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하는 ‘성경말씀’이 성취될 것이다.(GW 398.2) 어떤 부락이나 도시에서 사람들이 진리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그냥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곳에 하나의 표식과 하나님의 “안식일”의 기념관으로서 또 도덕적 암흑 세계의 빛으로서, 예배하는 집이 세워질 때까지 철저히 일해야 한다. 이런 기념관들은, 진리의 증거로서 여러 지역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기치가 세상 각처에 세워질 때까지, 복음의 사자들이 모든 나라와 방언과 민족에게 나가도록 은혜로써 준비해 놓으셨다.(GW 430.3)
‘성경말씀’에 있는 진리는 높은 자와 낮은 자, 또는 부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이르며, 그 진리를 받는 자들은 우리와 하나님의 동역 자가 되며, 강한 군대가 일어나 연합하여 일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사업이다. 우리의 어떤 장막회의 활동 가운데서도, 이 일을 등한히 여기지 말 것이다.
그것은 모든 복음 사업의 일부이다. 우리는 아주 비천한 낮은 백성들을 위해서만 우리의 모든 역량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각 곳에서 진리의 깃발을 높이 세우며, 부한 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데에 우리와 같이 연합한, 신자들의 무리를 일으키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하면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따라서 빈곤한 자들과 비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데 도울, 조력자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GW 436.1)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이 당하게 될 이러한 어려움들을 미리 아시고, 그들의 사업이 도전을 받지 않도록 그들을 목회 사업에 공적으로 구별하라고, 계시로 교회에 지시하셨다. 그들의 안수 식은 복음의 기쁜 기별을 ‘이방인’에게 전하도록‘ 그들에게 명한 하나님의 엄명에 대한 공식적 승인이었다.(GW 441.3)
’바울‘과 ’바나바‘를 성령께서 일정한 분야의 봉사에 구별하심에 관련된 상황은, 주께서 그분의 조직된 교회에서 임명된 대리자들을 통하여, 일하심을 분명히 보여 준다. 여러 해 전 구세주께서 친히 ’바울‘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을, 처음으로 그 자신에게 나타내셨을 때에, 그는 그 후 즉시 ’다메섹‘에 있는 새로 조직된 교회의 교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 곳에 있는 교회는 개종한 이 ‘바리새인’의 경험에 관하여, 오랫동안 알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때에 주어진 거룩한 사명이 더욱 충분히 수행되어야 하는 때에, 성령께서는 다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하신 그릇임을 증거 하기 위하여, 교회에 ‘바울’과 그의 동역자를 안수하는 일을 맡기셨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13:2)하셨다.(GW 443.1) 죄인 하나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목사는 온갖 지혜를 동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한 영혼의 가치는 매우 크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는 많은 가능성들이 있고, 이미 부여된 영적 이득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활력을 얻을 때 소유하게 될 능력과, 또 복음에 나타난 소망으로 인하여, 얻어질 불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다른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떠나셨거든, 우리가 그보다 일을 덜 하고서 어찌 명분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같이 일하기를 등한히 하고, 그가 희생하신 것처럼 희생하기를 게을리 한다면, 이것이 곧 거룩한 신임에 대한 배반이 아니겠는가.(GW 465.2)
세상에 경고하여야 할 마지막 기별은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중히 여기시는 율법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분명하게 소개하여 아무도 그것을 듣고,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여야 할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노라고, 핑계하는 범법자가 없도록 할 것이다.(GW 148.3)
마치 시초에 조그마한 시내가 바다로 향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넓어지고 깊어짐같이, 그 적은 연보의 감화는 그것이 여러 세대로 흘러 들어감에 따라, 더욱 넓고 깊어졌다. 그 가난한 과부가 보여 준 희생의 모본은, 각 나라와 각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작용하였다.
하나님의 창고에는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로부터 예물이 들어왔다. 그것은 선교사업을 지속하게 하였으며 병원을 설립하고, 주린 자를 먹이며 불쌍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많은 무리가, 그 여자의 무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았다.
그러한 태도로 바치는 모든 예물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진지한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은 전능하신 분의 목적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 선한 결과를 측량할 자가 없다.(GW 467.1)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모든 교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수확물이 익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교회에게 약속하신 능력을 받아 사용할 준비가 될 것이다.
매일 아침 복음의 사신들이 주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 대한 헌신의 서약을 새롭게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부흥하게 하고 성화하게 하는 능력과 함께, 그분의 성령의 임재를 허락하실 것이다.
그들은 매일의 의무를 위하여 나아갈 때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역사가, 그들로 “하나님의 동역자”(고전 3:9)가 될 수 있게 한다는 확신을 가진다.(GW 511.2) 우리의 본업인 복음 전도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펴고 세상에 임할 일에 대하여, 남녀들에게 경고하는 복음사업이 하나님의 종들의 시간을, 더욱 더 많이 차지해야 할 것이다.(Ev 17.2)
지금까지 굳게 닫고 복음을 거절하던 나라들이 이제는 문호를 개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임금들과 통치자들이 오랫동안 닫고 있던 문을 열고,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사자들이 들어오기를 환영하고 있다. 이제 그 수확은 실로 막대한 것이다. 지금 행하는 잘 계획된 노력의 결과는, 내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Ev 22.1)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大使) —하나님의 목회자들은 그리스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불붙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을 깨우쳐야 한다. 그대의 열심 있는 권면과 경고로 세상 사람들의 양심을 찌르며, 그대의 열렬한 기도로 그들의 마음을 녹이며 그들을 회개시켜, 구주께로 나오게 하라.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대사이다.(Ev 22.2) 가장 고상한 소명(召命:사역자로 부르심) —복음을 전하는 목회사업을, 과소평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업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사업을 마치 열등한 일에 속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할 정도로 운영하여서는 안 된다.
목회사업은 결코 열등한 사업이 아니다. 목회사업을 과소평가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과소평가 하는 자들이다. 모든 사업 가운데서 가장 고상한 사업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목회사업이며, 복음 사역자가 하는 일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많이 받은 사업이 없다는, 사실을 청년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Ev 23.1)
때때로 우리는 큰 도시에 우리의 기별을 전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이 교훈을 따르는데 우리 자신이 얼마나 느리게 반응하고 있는가! 한 번은 주님께서 높은 단 위에서, 팔을 펴고 서 계신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몸을 돌려 사방을 가리키시면서, “이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알지 못함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졸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큰 사업을 성취해야 하므로 일꾼들을 요구하고 계신다. 구원받게 될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여 교회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대로와 소로에 있는 남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Ev 32.4)
일할 수 있는 때에 일하라 —나의 형제들이여, 일할 수 있을 때에 도시로 들어가라. 이미 복음이 전파된 여러 도시 안에는, 아직껏 진리의 기별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많은 영혼들이 있다. 기별을 들은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믿음 안에서 죽었다.
만일 기회만 주어진다면 구원의 기별을 듣고 받아들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사업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Ev 33.2)
나의 형제여, 주님께서는 그대를 위하여 나에게 한 가지 기별을 주셨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는 매우 엄숙하고 신성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모든 집회마다 천사들이 참석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집회들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훈 가운데 나타내신 것과 같은, 그러한 엄숙성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증거 할 때마다 모든 집회에서 올바른 모본을 세워야 한다.(Ev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