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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삶 큐티)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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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안에서 기뻐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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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할 수 있는 교회가 있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계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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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것 없는 내 자신을 볼 때마다.
그냥 그렇게
기뻐할 수 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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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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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 곳에 오셔서 영광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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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간 어머님의 장례식은
------- 저에겐 꽃길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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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족이 원해서 선택한 기독교장
모두에게 의미있는 시간들로. . .
집안 유일한 기독교인이자 목사로서 예식들을 집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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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모든 기일이나 명절은 추도예식으로 함에
모두가 동의했고
어머님을 감사함으로
평안히 보내 드리는 축제의 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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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집안이 함께
그리스도의 크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될
그날을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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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 준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 내가 목회를 잘 못하는 것은
우리 엄마 때문이다. ♥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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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학대학원 2학년 때,
강릉 시내에서 작은가게(열쇠수리점)를 하시던 아버님께서
직업병인 폐병을 얻어 원주 기독교병원에서 수술중에 갑자기 사망하셨습니다.
집에서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사망이라.
유교적인 풍습에 시신을 집안으로 운구하지 못하고
원주 병원에서 장례를 치룬 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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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예수 믿는 막내아들인 나는,
그것은 미신이고, 당연히 아버님은 사시던 집에서 장례를 치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앰블런스를 타고 아버님의 시신은 강릉 집으로 운구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신앙이었던 유교의 풍습을 따라,
그렇게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부모님을 신앙으로 인도하지 못한 불효 자식이기에,
아버님의 일주기도 집안의 전통에따라,
유교적 제사를 드릴려고, 아버님 영전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어머님이 나를 불러
"목사가 될 놈이 왜. 아버지 영전에 제사를 하냐"고 꾸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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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를 그리스도께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님을 내가 담임하는 교회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기일이거나, 성묘 갈 때마다, 나 혼자 어정쩡하게 서서
그렇게 제사 의식을 지냅니다.
제일 어렵다고 여겨지는 막내 아들을 향해 어머님은 오늘도 묻습니다.
"요즈음, 교회 손님들 많이 오냐?"고 하며,
전원교회 성장을 위해 누구 보다 염려하시는 분이 어머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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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교단 총회장 목사님은 지옥에가도,
우리 엄마 만큼은 천국에 갈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엄마 앞에만 서면,
나는 내가 속해있는 기독교가
왜 그렇게 작아만 보여 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써 놓았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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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가족들이 먼저 기독교장으로 하자고 합니다.
요양원 입소 전 약 3년동안 전원교회 출석교인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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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 / 강릉동인병원 장례식장 1호실
■ 발인 / 8월3일(토) 아침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