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0일
본문 : 단6:19-24
제목 :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진실로 사랑하신 다니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입니다. BC605년, 여호야김 3년에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가 멸망하면서 10~12세 정도의 어린아이였던 다니엘은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귀족의 신분으로 잘 살다가 전쟁에서 패한 후 승전국의 신하가 되기 위해 낯선 외국 땅에 강제로 끌려갔던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초강대국이었지만, 100년도 채 못 되어 메대에게 허망하게 정복당했습니다. 이런 격동의 시대에서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같은 그분의 자녀들을 항상 귀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은혜입니까? 이런 은혜가 저와 우리 영명교회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대의 어린 귀족인 다니엘은 바벨론에서도 남다른 믿음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그분께 순종하는 것을 목숨을 걸고 지켜낸 다니엘, 그는 파란만장한 영화 같은 인생을 믿음으로 살아낸 신앙의 선구자이자 선지자였습니다. 시대의 격동 속에서 국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했으며, 항상 국가의 큰 일꾼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그분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싫었던 정치인들은 온갖 치졸한 방법으로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려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늘 한결같이 그분의 사람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힘으로 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을 그들보다 더 큰 힘으로 정복한 메대와 바사의 황제 다리오 왕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니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진심으로 아꼈습니다. 그런 평범하지 않은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정치인들의 당혹스러움은 미움으로 변했고, 이는 곧 살인을 계획할 만큼의 분노로 증폭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분명 '오래전 패망한 보잘것없는 나라의 노예가 우리와 겸상하고 우리의 나라를 다스리다니, 왕께서는 정말 제정신이신가?'라는 생각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다니엘 제거 작전'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는 말이 명언처럼 들립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잡기 위해 그를 관찰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종인 믿음의 사람 다니엘은 걸릴 것 하나 없는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자 악한 정치인들은 다리오 왕에게 아첨하여 신하의 본분을 강요하는 악법을 만들었고, 그것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다니엘은 결국 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위법 행위를 왕에게 전달하며 다니엘을 처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즉 30일 동안 왕이 아닌 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것을 금한 법을 어기고 매일 골방에 들어가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3번 기도했던 다니엘을 왕에게 고발함으로써 사자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형벌을 받게 했던 것입니다.
다리오 왕은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의지했던 다니엘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는 왕인 자신과 충신인 다니엘에게 이런 일들을 꾸민 악한 신하들을 용서할 수 없음에 분노했습니다. 단6: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순간의 판단 착오로 새로운 악법을 만들어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하며, 신뢰했던 총리 다니엘을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왕의 심장을 꿰뚫는 대못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왕의 조서는 왕 자신도 어길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80세가 넘은 노인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왕과 다니엘은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라고 명령한 왕은 눈물을 머금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다니엘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단6:16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비록 믿음의 고백은 아니지만 왕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됩니다. 이 고백에 우리의 이름을 넣어 불러보면 왕의 안타까운 마지막 인사가 우리의 영혼에 녹아 들어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16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스승과 제자로,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봅시다. "다리오 왕이 수연이에게 이르되 수연아! 수연이가 항상 섬기는 수연이의 하나님이 수연이를 구원하실 거야." 왕의 마음이 와닿지 않습니까? 이렇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만나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사람은 철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다리오 왕은 하나님을 언급하며 다니엘을 위로했습니다. 왕에게는 믿음이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자기의 입술에 담았던 '하나님'께 다니엘을 맡기고 자리를 떴습니다. 사나운 사자들이 다니엘을 고통 없이 죽여주기를, 고통과 두려움이 안개처럼 왔다가 사라지기를, 그리고 다니엘의 영혼이 그가 믿는 하나님 곁으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면서 왕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왕의 눈치를 보면서도 다니엘을 처형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마음속에서 오아시스처럼 샘솟았습니다. 그 감정들을 왕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도의 표정을 애써 지으며 처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단 6: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그리고 18절에는 다리오 왕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미련이 남았을까요? 혹시나 하는 희망을 놓지 못해서였을까요? 사랑하는 가족이 아닌데도 이렇게 가슴 아파할 수 있을까요? 그 모습에서 우리는 다니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왕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튿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왕은 '다니엘이 죽어있을' 사자 굴로 미친 사람처럼 뛰어갔습니다(19절). 굴에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굴 앞에서 그는 비통한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단6:20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왕의 마지막 인사와 똑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소 다니엘의 신앙이 얼마나 견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네가 항상 섬기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삶은 곧 예배자의 삶이라는 방증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지자의 사명을 품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귀하신 뜻을 밝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믿음의 본을 보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네 하나님이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는 물음에는 '너의 신이 살아있어 제발 너를 살려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 동굴 안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단6: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은 순교의 자리에서 멀쩡하게 살아있었습니다. 왕보다 더 만수무강이 필요했던 다니엘은 자신을 사랑하고 걱정했던 왕을 향해 예를 갖추고 충성을 표했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왕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어젯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지키시고 인도하셨는지 간증하며 생명의 주인이신 지존자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참으로 신앙인의 위엄과 품격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은 너무나 기뻤습니다(23절). 마치 탕자를 되찾은 아버지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너무나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꺼내 올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밤새 수척해진 늙은 종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의 눈에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섞인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단6:23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내가 믿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내가 믿고 따르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다윗도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다니엘을 지켜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무서운 폭풍 같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죄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자기의 죄 값을 톡톡히 치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단6: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사자들을 마치 반려견처럼 진정시키시고 입을 봉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없었기에 그들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자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담당하는 천사들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돈입니까? 건강입니까? 자녀입니까? 물론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25~28절은 은혜가 대단히 넘치는 구절입니다. 신앙이 없던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사자 굴 사건을 체험한 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섬기며, 그분의 일하심을 두려워할 것을 백성들에게 독려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알고 승리와 패배, 생명과 죽음, 환호와 절망, 긴 밤에 흐느끼는 아픔까지 다 아시는 우리 하나님 앞에서 다리오 왕의 고백을 우리의 온전한 신앙 고백으로 크게 외쳐봅시다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그리고 대답 또한 다니엘의 고백으로 함께 선포합시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날마다 선포되고 선포된 말씀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되어 주님께는 영광, 교회에는 큰 기쁨으로 충만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