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경찰조사를 받고 돌아왔다.
이렇게 한줄을 써 가면서 스스로에게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소송폭탄을 맞으며 걸어온 지난 3년. 이젠 경찰서에서 나를 알아본다. ' 교회개혁 카페 하시면서 너무 자주 오는거 아니에요?'
듣보잡 목사의 경악할 비리를 폭로한 기사를 옮겼다는 죄목(?)으로 불려나가 이미 명예훼손으로 낙인찍을 심산인듯 왜 이런 기사를 옮겼냐고 추궁하는 조사관에게 언성을 높였다.
"이 사람이 적어도 목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돌아다니는 한 이런 의혹을 받고 있다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정보는 공유되야지요. 제가 운영하는 카페가 가진 목적과 기능이 다름 아닌 교회개혁 아닙니까. 암튼 제가 글을 옮긴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사실에 입각한 공개된 정보를 공유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건전한 판단을 하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다 목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말을 하다가 열이 확 치받는다. 정말 이런 거지같은 인간들에게 마구 목사 타이틀을 붙여준 것들 죄다 쓸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10톤 트럭이 내 앞에 거대한 양의 쓰레기를 산처럼 쏟아놓고 가면 나는 그 앞에서 20킬로짜리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한 묶음씩 사다 이건 음식물, 이건 재활용, 이건 쓰레기..하고 일일이 분리수거까지 해가며 뻘짓하는 기분이다. 쏟아지는 쓰레기 앞에서 그래도 난 법을 지켜야만 한다.
꿀꿀한 기분으로 돌아오는데 최근 몇달간 접속조차 없는 카페지기까지 고소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분, 벌써 몇번째인가. 나처럼 단기간에 집중포화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연중행사처럼 찾아드는 소송에, 이단이니 마녀니 하는 공격과 음해까지 그 양반도 지칠대로 지쳐 거의 일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우리처럼 무명의 네티즌이 당하는 소송은 쉽게 묻히고 이슈도 되지 못한다. 굵직한 화제의 사건도 아니고 그야말로 짜잘하다. 그런데 이 짜잘한 돌에 연타로 맞고 보니 이젠 '닥치고 아멘' 이나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된다.
그래도 한국 정치는 일상으로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삶의 질과 틀을 변화시킬 가장 흥겨운 문화요, 축제요, 놀음이요, 말거리가 되고 있다. 가카는 그럴 분이 아니라며 거침없이 웃어대는 왁자한 웃음 속에서 정치는 엘리트의 책상을 내려와 우리네 밥상위로 올라왔다. 질펀하고 낭자하게 쏟아내는 그들의 예리하고도 육덕진 말과 폭소 덕에 혈류가 좋아지고 밥맛이 돋는다. 아니 누군가는 이렇게 대중의 눈과 귀와 입 노릇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교회 문화는 무슨 말을 하는가에 더하여 어떻게 말하는가가 훨씬 중요해진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 보다는 얼마나 '교회 인큐베이터 출신답게 말하는지' 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가령 내가 플레비언 팀들과 나꼼수나 망치부인 스타일의 방송을 한다치자. 명예훼손 융단폭격은 차치하고, 아마 일반 기독인들의 돌팔매에 먼저 사망신고를 내야 할지 모른다. 기독교회의 문화와 최소한의 경건 및 품위를 손상시키면서까지 누가 너에게 대중의 눈과 귀와 입 노릇을 하라 했느냐고 비난당할 것이다. 사실 나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일 터. 그런 방송에서 으하하, 푸하하 해대며 발을 구르고 웃다가 어느 애통한 장면에서 오 주여~ 를 찾기도 영 애매하지 않은가.
제 아무리 급하고 더러워도 교회개혁은 품위를 갖추어 기독인의 경건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철저한 분리수거를 통해 해나가야 한다. 종량제 봉투값 후원도 너무 기대해서는 안된다. 교회개혁 하면서 돈 밝히는 건 아닌지 쌍심지 켜고 보는 인간들이 후원자들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나에게 이 일을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요, 하려거든 머리위로 쓰레기가 비처럼 쏟아지는 순간에도 결코 종량제와 분리수거의 법칙을 어겨서는 아니 되며, 기독인다운 품위와 경건한 미덕을 바탕으로 모범적인 교회개혁의 장을 열어가야 할 것이요, 그럼에도 이 세상의 상식과 제도와 소통력보다 못한 교회의 야만스러운 행태에 홧병이 나 또 사고치기 직전의 순간이 오거들랑 화들짝 놀라 컴을 끄고 설거지 통에 손을 처넣고 그릇이 깨부서져라 접시를 닦을 망정 결코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입술을 깨무는 순간에도 내 생각은 한가지다. 정치냐 종교냐의 차이는 중요치 않다. 권력화되고 사이비화된,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잃고 돌연변이가 되어버린 크고 작은 모든 리바이어던에 대항하는 방법은 눈과 귀와 입을 열어 맘껏 ' 떠드는 것' 이라고. 도올이 치를 떨며 말했듯 단군 이래 이런 유형의 군주는 없었다는 가카의 치세 하에서도 딴지의 종신총수는 그러지 않던가. 쫄지마 씨바. 떠들어도 돼!
그렇다. 그게 출발점이어야 하는 거다. 쫄지 말아야 하고, 쫄아붙은 나를 위해 욕설 한방 날리면서 확인사살 해줘야 하는 거다. 떠들어도 된다고. 그래야 한다고. 그것이 먼저 우리의 굳은 혀를 풀리게 하고 머리에 피가 돌게 하고 땀에 젖은 행동을 만들어내는 변혁의 맹아이자 총화가 된다고.
이미 쫄아붙어 국물도 안 남을 것 같은 짜잘한 무명의 교회개혁인은 분리수거 해놓은 머리통위로 무심하게 쏟아붓는 쓰레기 오물더미를 비처럼 맞으며 소리치고 있다. 입으로 들어가게는 하지 말란 말야 씨바!
거친 표현, 양해를 구하며.
플레비언교회개혁연대- 주의검을보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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