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용인 백암면 반계선생 묘소에서 시제가 행해졌습니다. 이때 읽은 축문입니다.
축 문
세월은 흘러 다시 선생님의 시제날을 맞이하여 종중 후손들과 백암면 반계숭모회 회원들이 참석하여 제사를 올립니다. 오늘은 개천절이기도 합니다.
개천절은 중국 역사와 같은 시기에 건국된 단군조선의 개국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357년 전에 전지전능한 하늘님의 선택으로 그 아들을 지상에서 내려보낼 좋은 곳을 물색하다가 한반도가 택해졌다고 합니다. 단군왕검은 모든 인간에게 이롭게 정치를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표방했습니다. 이는 일연 국사가 쓴 "삼국유사"와 동안거사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남북한으로 갈리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남쪽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기치 아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국민이 자유를 향유하여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북쪽은 공산주의와 김일성 일가의 3대세습제로 그들이 표방하고 있는 인민국가와는 거리가 먼 인권의 유린이 자행되고 인민의 입과 귀가 닫혀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생지옥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현재 저출산문제, 미중의 패권싸움에 민족의 통일의 전망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으로부터 403년 전에 태어나셔 57세에 부안에서 세상을 뜨셨습니다. 3개월 후 선생님의 유언에 따라 이곳 선고의 묘소 아래로 이장되었습니다. 선고는 당쟁의 피해로 없는 죄에 얽매여 선생님이 두 살 때에 사형을 당하여 이곳에 묻혔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일생동안 얼마나 컸을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살았던 시기는 7년간의 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으로 인하여 국력이 허약하기 그지없고, 백성의 생활은 무거운 세금과 군역에 시달려 참으로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관직의 진출을 포기하고 부강한 국가 건설과 생활이 안정된 국민의 통치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16세 때에 다녀왔던 부안 농장에 내려가 오직 나라와 백성의 생활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 연구에 밤낮으로 전념했습니다. 장장 22년 간에 걸친 저술이 바로 "반계수록"입니다. 선생님의 학문은 당시 법제의 모순과 불합리한 통치제도, 그리고 관료들의 잘못된 인습을 개혁하여 부강하고 국민의 생활이 안정된 국가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선생의 현실에 대한 학문 연구는 실학이란 새로운 학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선생을 실학의 비조(鼻祖)라고 칭함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전국의 지리서인 "동국여지지"를 직접 편찬하신 외에는 당시 양반관료들이 즐기던 음풍영월의 시를 짓지 않아 문집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대단한 결심에서 나온 실천적 행동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부모 선조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사당에 올라가 아침 인사를 드리고 밤 늦게까지 연구에 정진하셨습니다. 이는 실학은 학문적으로 연구할 뿐만 아니라 실학적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부안 군민이 선생님을 그처럼 존경하여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선생님의 농민 중심의 정신은 이곳 백암면 주민들이 정신적 사표로 삼아 10년 전에 반계숭모회를 조직하여 선생님의 묘소를 수호 관리하고 이 지역발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묘소 앞에는 죽산부사 유언지가 의연금을 내어 한문으로 세운 비석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누구도 이 비석 글을 읽을 수 없습니다. 매년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한 한글 비석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는 급히 세워야 할 과제입니다. 이는 후손인 문화유씨 종친회와 용인시청은 물론 전국의 반계학 연구자, 그리고 용인시민의 이름으로 세워 유명한 역사적 기념물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매년 시제를 준비하는 데 힘쓰시는 장손 유창현 교장 선생의 효성스러운 정성을 치하드리면서 이런 과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2025. 10월 3일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반계사상연구소 소장 정구복 올림
첫댓글 교수님의 시제 축문을 통해 훌륭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게 됩니다.
반계사상을 연구하시는 교수님의 깊은 학문에 경의를 표합니다.
국가체제 개혁론집으로 알려진 《반계수록》에서 '隨錄'이란 문구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니 '겸손'의 뜻도 숨어 있었습니다.
"수록은 책을 읽다가 수시로 베껴 둔 것이라는 뜻이나
이는 저자의 겸사이고 체계가 정연한 저술"이라고 하는군요.
교수님 덕분에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새롭게 공부를 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승원 님 댓글 감사합니다. 마침 잊혀져 가고 있는 개천절에 대한 장황한 서술이 미안했습니다만 유형원이 저술한 "동국여지지"에 단군왕검의 신시 기록이나옵니다. 그리고 수록이라 함에 대해 정확한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그는 책을 읽다가 자기 이론에 관련된 기사를 놓지지 않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반계수록"에는 자기의 주장과 그 주장에 근거가 되는 전적의 기록을 '고설(攷說)로 절반 이상을 채웠습니다. 짚어주셨듯이 저자의 겸손의 뜻도 있지요. 그의 개혁안은 26권 중 13권이 논리정연하고 일관된 체계로 써진 저술입니다. 관심을 가지시고 읽어주신데 대하여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