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두부 유래에 대해 크게 2가지 설이 있습니다.
1) 1328년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은 호주(濠州. 지금의 안휘성 봉양현 安徽省凤阳县)의 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344년에 큰 가뭄이 들어 주원장의 부모와 형제는 꿂주림으로 선후 세상을 떠났고 먹고살기위해 주원장은 출가를 하였지만 사찰에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출가한지 50일만에 사찰을 떠나 유랑을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휘주(徽州)에서 유랑생활을 하든 주원장은 어느날 누군가가 버린 곰팡이가 피어있고 악취가 심하게 나는 두부를 주웠고 심하게 변질되었지만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기름에 꾸워 먹었고 그 맛이 마음에 깊이 세겨질 정도로 너무 좋았습니다. 훗날 주원장은 군에서 수장이 되었고 10만대군을 이끌고 휘주를 거져가는중에 옛 생각이 나서 군사들에게 취두부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고 그때 부터 취두부의 명성이 널리 전해졌다고 합니다.
2) 청나라 때 안휘(安徽)에 왕치화(王致和)라는 사람이 있었고 1669년에 과거시험을 보러 다시 북경으로 올라왔지만 또 합격하지 못하였습니다. 재차 낙방한 왕치화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북경의 '안휘회관(安徽会馆)'에 머물며 다음 시험을 준비하였고 생계를 위해서 고향에서 배운 두부장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든 어느 여름날의 밤 팔다 남은 두부를 버리기 아까운 왕치화는 남은 두부를 단지에 담아 소금물에 절여두었고 초가을에 되서야 깜빡 잊고 있는 절인 두부가 생각나서 두껑을 열어보니 이미 악취와 함께 두부가 파랗게 부패되어있었습니다. 여전히 버리기가 아까워한 왕치화는 악취가 심하게 난 두부를 먹었고 특이한 맛이 너무 좋아서 처우더우푸라는 간판을 내걸고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맛 좋고 가격도 저렴하여 소득이 낮은 사람께는 좋은 밥반찬되어 그의 가게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소문도 자자하였습니다. 청나라 말년에 황제의 식단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처우더우푸라는 이름이 우아하지않아 푸른색 두부의 네모 반듯한 특징으로 청방(青方 푸른색의 네모)이라는 이름도 붙이게 되었습니다.
처우더우푸는 처우더우푸간(臭豆腐干. 길거리에 파는 처우더우푸 튀김 )과 처우더우푸루(臭豆腐乳. 상점에 파는 처우더우푸 제품) 두 종류로 나눕니다. 처우더우푸루는 두부를 직접 발효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져 발효 처우더우푸에 속하고 처우더우푸간은 두부를 발효시킨 간수(卤水)에 담그는 방법으로 만들어져서 비발효 처우더우푸에 속합니다. 비발효 처우더우푸는 대부분 집접 먹을수 없고 튀김 등 조리후에야 식용이 가능하지만 발효 처우더우푸는 두부를 몇달동안 자연발효로 만든 음식이어서 직접 식용이 가능합니다.
향은 고약하나 맛은 고소하다는 특징으로 중국의 다양한 길거리 음식중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하나가 처우더우푸 입니다. 처우더우푸에는 김치에도 함유하고있는 식물성유산균과 안기산, 담백질 그리고 치매에 좋다는 비타민B12가 함유되어 있지만 콩 제품이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유해성분도 있을수 있어 적당히 먹는 것이 좋겠고 특별히 길거리에서 파는 처우더우푸 튀김은 제조방법과 기름의 품질, 위생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워 가급적 적게 먹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