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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19장 18-19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 11-영광으로 임하신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은 때로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확연하게 보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압도됩니다. 그리고 이전과 다르게 거룩하고 성결된 삶을 살면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영광으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하셨으며 또 임하시길 원하시는 지, 그리고 그를 위해 여러분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지금 교회는 영광의 하나님이 임하시길 간절히 구하며 또한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너의 후손이 400년이 지난 후에 그 땅에서 돌아오게 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이때 아브라함은 아직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스마엘조차 태어나지 않았던 때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약 85세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에 머물렀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떠나게 된 것 역시 하란을 떠나라는 명령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한지 10년이 지났어도 아직 자식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재나 저재나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자식을 주실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영광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는 데 몇 년이나 몇 십년이 아니라 무려 400년 동안 그 이방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그 이방의 사람들은 400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이방이 누구인지 가르쳐주지는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이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에 그 이방이 누구를 말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400년이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고통과 억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셔서 구원해내신 것을 다 본 상태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광야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두가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통과 억압을 받는 것으로 계시를 끝내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실 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4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여기서 “그들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나라”는 애굽을 가리키고 계십니다. 오늘날의 이집트를 말합니다. 그 애굽이 강한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아서 섬긴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섬긴 것입니다. 거부하면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품삭도 넉넉하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들을 겨우 먹여살릴 만큼 아주 조금씩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이 지구상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악입니다. 강한 힘을 가진 악인들은 항상 약한 자들의 것을 뻬앗고 약한 자들을 노예로 삼습니다. 착취하고 강탈하는 것이 강한 힘을 가진 악인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애굽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그런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앞으로 태어나게 될 자녀와 손자와 후손들에게 전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 중요합니까? 그것이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극복할 강한 정신적인 힘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들은 말씀이 근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소중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들은 바가 없는데 어찌 전해줄 것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400년 동안 70명이 들어가 노예 생활을 하면서 장정의 숫자만 해도 무려 60만명이 넘는 인원으로 불어난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키우시는 방법은 애굽의 노예가 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나라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노예가 되면 노예가 낳는 아이들은 주인의 소유가 됩니다. 그러니까 종들이 아이를 낳으면 낳을수록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자식이 많이 태어나면 태어 낳을수록 주인은 좋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에 애굽은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자신들이 부려먹을 노예들이 많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국력의 상징이었고 이익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아지니까 국가적인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일 다른 민족이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 나라에 붙어서 애굽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국가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바로 그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서 생기는 악입니다. 바로와 애굽은 이스라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그것도 작은 시간동안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요셉이 죽은 이후부터 그런 박해가 일어난 것입니다. 심지어 태어나는 아이들은 다 죽이라고 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빠른 번성은 그들의 마음에 부담이 되었고,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육하고 번성하며 애굽 땅에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런 일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을 말씀하셨고, 또 이방 나라에 들어가 고통을 겪지만 400년이 지난 후에는 거기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삭에게 전해졌고, 이삭은 야곱에게 이야기했고, 야곱 역시 요셉에게 이야기했고, 요셉은 자신의 자녀들과 형과 동생의 자녀들과 그들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400년 동안 민족성이 말살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이 더욱 뚜렷해졌고 하나님의 약속을 가다리면서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은 죽어 조상들이 간 곳으로 가겠지만 후손들은 애굽으로 들어갔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이방땅에서 나오는 기간인 400년을 사대로 잡으셨습니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들에게 계속해서 약속의 말씀이 전해지는 가운데 손자 때에 아브라함이 지금 살고 있는 이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사 대만에 돌아오는 때로 맞추신 것은 가나안에 살고 있는 아모리족속의 죄악이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치에 미치지 못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가 이르면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커지고, 무거워지며, 그 뿌리가 깊어질 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약속을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면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호렙산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여주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애굽을 향해 어떤 무기도 없이 하나님이 가지고 가라고 하신 지팡이만 들고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대언하는 모세의 말대로 애굽에는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10가지나 되는 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그 재앙은 애굽사람들이 섬기는 신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사람들이 신이라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헛된지를 보이심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교육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애굽에 대한 심판을 거기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왕이 의지하는 애굽군대를 멸하심으로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육로가 아닌 홍해바다로 이끄셨습니다. 그것을 안 바로는 군대를 모아 추격을 했고 그 결과 그들 모두는 홍해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구원받아서 하나님이 만나자고 하신 시내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 시내산에 강림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법과 예배할 성막이 필요하다고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법은 종교법과 사회법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예배 공동체이면서 세상 속에 빛과 소금으로 세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과 지켜야 할 많은 법들을 만드셨고 이동이 가능한 성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렇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시겠다고 모세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9장 10-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산에 올라와 있는 모세에게 산 아래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할 일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산 위에 임하실 것이니 백성들에게 정결케 하며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하나님은 “내가 셋째 날에 너희에게 임할 것이니까 셋째 날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기다리라고 하십니까?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성결케 함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성결케 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성결케 하라고 하십니까? 옷을 빨고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만 해서는 안됩니다. 몸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옷을 빨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몸도 깨끗하게 해야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것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몸을 단정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옷을 빨게 하라는 명령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나올 때 일터에서 일하다가 곧장 교회로 오는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집에서 내내 있다가 오면서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예배하러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신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다 목욕하고 새 옷을 입거나 빤 옷을 입고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나병이 걸린 상태로 왔으니까요? 그들은 사람으로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 받으러 왔기 때문에 있는 모습 그대로 왔습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있는 그대로 영접하셨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경우는 다릅니다, 마음도 없이 옷만 깨끗하게 입는 다고 해서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 서기관들, 율법사들은 항상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회칠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겉만 깨끗하게 하면서 마음은 더러운 사람의 예배를 받지는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나오면서 전혀 다른 옷들과 구별되지 않은 옷을 입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자세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귀한 사람을 만나러 간다고 합시다. 지금 입은 그 옷으로 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거나, 아니면 자녀를 결혼시키기 위해 상견례를 한다거나, 자녀가 결혼하는 날에 입는 옷을 아무렇게나 입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대한 예의 바르게 옷을 입고 결혼식장으로 갈 것입니다.
저는 염색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예정이가 결혼하는 데 머리를 깍고, 그리고 감고만 가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온 가족들이 염색도 해야 한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결혼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켜야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오는 축하객들 역시 온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예의를 지키면서 참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염색을 했습니다. 옷도 새로 맞춘 양복을 입고 갔습니다. 특별히 다른 날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이 날도 다른 날과는 다릅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러 올 때는 이 삼일 전부터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외적인 것을 명령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집에서 제일 깨끗하고 다른 옷들보다 더 나은 옷을 입고 오셨을 것입니다. 저도 역시 예배 때마다 입는 양복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시내산에 임하시는 일은 자신의 영광의 일부를 보이시는 날로서 특별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예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중요시 여기시는 만남을 여러분들이 가볍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하고 드려야 합니다. 굳이 드리라고 하지 않아도 성숙한 신앙인은 드립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여러분들 가운데 어린 신앙인을 위해서 말씀드리자면 몸과 마음을 깨끗이라고 드리되 예물을 구별해서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마음만으로는 안됩니다. 몸과 마음과 예물이 함께 드리면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사흘 후에 방문할 것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미리 옷을 빨고 마음으로 준비하여 성결하게 한 후에 기다리라고 이야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성결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의 성결은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다’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구별하고 분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적인 의미에서의 성결은 “세속적 가치와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한 삶을 추구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성결한 상태를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살았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들을 만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들다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러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백성들이 이 세상의 민족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8장 19절을 보면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도를 지키는 백성,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할 백성들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인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이루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을 행하며 계명을 지킬 때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하여서도 역시 세상 만국에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들에게 임하셔서 여러분들을 새사람으로 만들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계명을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없이 여러분들의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여러분들의 몸을 성전 삼고 머무르셔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너희에게 임할 테니 이 산 아래에 경계를 세워서 아무도 그 경계를 넘어 이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라. 만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이되 그에게 손을 대지 말고 돌을 던져서 죽이거나 화살로 쏘아서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넘어선 사람을 왜 죽이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경계를 넘어서는 그 순간부터 이미 그는 거룩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졌고 그 거룩한 몸을 만지는 사람도 역시 거룩한 제물로 드려져서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물을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다만 거룩해진 레위사람들만이 만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위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거룩하게 세워졌지만 시내산의 경게를 넘어선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여리고에서 거룩하게 드려진 여리고의 제물들에 손을 냈다가 죽은 아간처럼 말입니다.
모세는 산을 내려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모든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틀 동안 백성들을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사흘이 되던 날 하늘에게 큰 나팔소리가 나면서 엄청난 구름이 시내산 위로 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애굽과 이방에서 보았던 우상들과는 확연히 다른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19장 18-19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역시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는 타지 않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시내산이 불과 연기로 가득 차 있는 데도 산은 타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불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호위하는 소리와 나팔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 온 산이 크게 진동하고 있었고 그 연기는 옹기 가마 연기 같이 타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큰 소리가 온 산을 덮었는데도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임하실 때 보이신 불과 연기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할 때 내렸던 불과 연기입니다.
이는 창세기 19장 28절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그것을 본 룻이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스라앨 백성들 역시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모세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오니 당신이 홀로 산에 올라 하나님을 뵙고 그 들은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소서”하고 부탁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모세는 하나님께 홀로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말씀을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시내산 위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낼 교회를 세우신 것이며, 또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성도로 여러분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 성도의 삶은 거룩하고 성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이 경건해지며 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예배 때 자신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눈이 열리기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이요, 살아계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새계명을 행하면서 선하고 거룩하며 성결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빛이 되어 여러분의 주변과 온 세상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이 제석교회의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고 또 여러분들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