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우 시 모음 열 다섯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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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김명우
가녀린 흐느낌
누군가 울고 있다 소리 죽여 가며
많이 보고 싶었나보다
끝끝내 참지 못하고
속울음으로 내리는구나.
파르르 파르르
상처가 너무 깊어 보이나보다
풀잎마저 저토록 떨고 있으니
햇살 사모한 그리움이 아픔이어서
잊으려고 시작한 사랑
더 깊은 상처만 내었구나
가끔씩 행인들이 오가는 조그만 가게에서
엇갈린 현실 닳아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조용히 앉아있을
영혼으로 맺어진 사랑하는 이에게
네 아픔을 말해보렴
혹여 햇살 같은 웃음 한웅큼 집어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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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Cyber)
김명우
클릭 클릭
최신버젼의 그리움이 다운로드 되고
샹송 같은 부드러움이 흘러나온다.
오랫동안 숨겨둔 꿈 하나가
모니터에 띄워진다.
실명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착각이 현실로 지속되고
속살의 향기 나부끼는 머릿결
눈부신 character, 내면의 완성
얼굴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에덴의 정원엔 오직
눈부신 희열 달콤한 사랑
열병의 시작
본능이 융해되고 해체되는 현실
지쳐있는 몸뚱아리에 천사의 날개를 달고
은밀한 가슴앓이 에메럴드빛 젖어든다
오랫동안 지속된 끈질긴 사랑은
이제 스스로의 에덴에서 열병을 앓는다
고칠수도 없는 치료할 수도 없는
어쩌면 살아온 세월동안 묻어두었던 본능
이름도 얼굴도 잊고
내면을 숨긴 채 살아온 불치의 현실
실명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아
얼굴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아
어차피 가면으로 살아가는 시간
껍질 같은 세월에 가면이 벗겨지면
영혼 깊숙이 빛나는
내밀한 사랑만이 남을 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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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김명우
4월의 햇살아래
거리의 웃음들이 하얗게 피어난다.
여자들의 패션 속에
실낱같은 봄이 물든다.
하얀 여자들이 걸어간다.
눈부심만 남기고
하얗게 사라진다.
공단로의 익숙한 슬픔들이
하늘을 덮어간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일상의 찌꺼기에
일회용 면도기를 들이댄다.
움츠린 삶이 잘려나간다
벌써부터 바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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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김명우
참으로 긴 하루였습니다.
사랑이라 하여도 너무 큰 아픔이었습니다.
꽃이 피지 않는 당신의 길에도
이토록 모진 상처가 있었습니까.
나는 차라리 사랑을 몰랐어야 했습니다.
공단로의 불빛이 희미해지면
그토록 모질게 쫓아다니던 일상마저
움츠린 채 꽃망울 피울 겁니다.
풀잎 끝에 오롯이 매달린 눈물 같은 이슬
마침내 짙은 어둠 걷어내고
화사한 꽃잎새벽이 밝아 오겠지요.
그렇게 새벽이 오면
나는 눈을 뜨고
상처를 꿰메어 낼 것입니다
허물어진 삶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일으켜 세우며
4월의 태양아래
붉은 망울 터트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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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김명우
타오를 듯 타오를 듯 몸부림쳐보지만
결국 제키보다 더 자라지 못하고
송이송이 떨림으로 맺혔네.
가난한 연인의 눈동자가 머물고
화사한 봄 움돋는 춘정
햇살 아니더라도 달아오른다.
더 이상 자랄 수는 없는 걸까.
이글거리는 5월의 뜨거움
가슴속에 지필 순 없는 걸까
가슴 아파하지 않아도
이토록 흐르는 시간인데
빛바랜 백목련 툭 떨어져도
그저 그리우면 그 뿐인데
더 이상 아픈 추억 남기기 전에
가슴속에 묻어 버리면 그만인데
파묻지도 태우지도 못하고
더 이상 자라지도 못한 채
5월의 난간에 맺혔네.
분홍빛 떨림으로 맺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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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김명우
가슴앓이로 병들어 가다가
지워지지 않는 사랑
기필코 만들어 내는 설레임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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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
김명우
눈부심만은 아니었어.
듬성듬성 떠 있는 부레사이로
쉼 없이 밀려오는 삶의 조각들
마디 굵은 뱃사람들의 영혼도 끼어 있었던 거야.
소금기 묻은 자판기속으로
300원 동전이 떨어지면
그리움이 토해내는 커피한잔
겨울바람에 에린 귀 한손으로 감싸 안고
물결처럼 마신다.
배가 도착하면 한잔커피 훌훌 털어 넣고
머문 자리 흔적조차 없이 떠나오면 그만인데
이 공허한 바다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가.
가끔씩 끼룩거리는 물새를 벗이라 여기고
그렇게 몇 생이고 기다리겠지
오늘도 속살에서 베어 낸 상처 하나 던져버리고
기워진 눈부심만 떼어내어 너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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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김명우
그냥 지나 칠 수도 있었는데
잠시
일상을 놓아 버린 게 잘못 이었어
지독한 열꽃
아침이면 움츠리던 새벽
목숨만큼이나 질긴 밤을
놓아 버린 게 잘못 이었어
맨살로 부대끼던 치열한 열기를
넝쿨로만 견디기엔 힘이 들었겠지
하지만 눈물 같은 하늘을 바라보아선 안 되는 거였어
그 싱그런 잎사귀로 태양을 가리는 게 아니었어
햇살에 타들어가는 가슴을
꼬-옥 안고 있어야 했었어
이제 눈을 뜨고
잎이 지는 것을 견뎌내야 해
초록빛 위로 번져오는
붉은 슬픔을 견뎌내야 해
그리움이 물들기 시작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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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김명우
서진주로 들어가 단성을 지나면
한라에서 시작되어 빨치산까지
도려낸 젖가슴을 부여잡고 달려온
조선의 恨
중산리자락만큼이나 긴
진홍빛 역사들이 가슴에 맺힌다.
피아골의 핏빛단풍이 물들려면
아직도 멀기만 한데
중산리 산기슭 파헤쳐진 상처는
또 어떤 함성인가.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굴을 파서 발전소를 세우고.
노동의 핏빛으로 세워지는 역사의 아픔을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나보다.
묻을 곳이 없었나보다.
노고단의 雲海는 변함없이 떠 있고
세석의 철쭉은 여전히 붉은데
부끄럼도 잊은 채 드러낸
네 음부에 눈 둘 곳이 없구나.
토끼며 노루며 갈 곳 없는 짐승들
아이들의 꿈속으로 사라지면
봄이 되어 오가는 길손들은 이제 누가 맞을꼬.
단성으로 들어서서 지리산을 찾으면
이제는 들을 수 없다.
하늘 맞닿은 곳
중산리 자락에 묻혀 있는
반란의 꿈 사무치는 함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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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김명우
그립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 여름이다
눈부심으로 맞아야 하는 너를
이렇게 축축한 숨결로 부르는 것이 부끄럽구나
어쩌면 너도 그렇게 천천히 오려하는지도 모르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메꾸어 이렇듯 큰 상념의 호수를 만들었을까
네 손가락 제일 짧은 엄지 걸고
매일매일 널 그리워 하지만 언제나 네게는 푸념일 뿐
그래도 바람이 서늘한 것이 변함없는 사랑
여름이 오기 전에 이마에 땀 훔치는 것은
절실함에 대한 유일한 나의 표현
지독한 기다림을 놓아버린 네 사랑이
오히려 이토록 큰 수평선을 그엇구나
물결위로 구르는 파도를 만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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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김명우
비가 내리면 습관처럼 떨고 있는
편의점 한 모퉁이에 우두커니 세워진 자판기
떨거덕 떨거덕 동전이 떨어지면
진한 눈물 울컥 울컥 쏟아낸다
전봇대 아래로 캄캄한 아픔들이 떠다니고
중년의 남자
밤이 젖어가는 줄도 모른 채
두툼한 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하얀 종이컵에
뚝뚝 떨어지는 아픔을 응시하고 있다.
한참동안 눈물 같은 그리움이
머리에서 얼굴을 타고
입술을 스쳐 밤으로 스며들면
허물어지는 슬픔.
컵 안에 꽃잎이 물들고 있다
사랑이 퍼지고 있었다.
진한 커피향이 목젖을 파고들고
남자는 단숨에 들이켜 버린다
중년을 마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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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김명우
목숨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사랑한번 못하여
시퍼런 칼날 들이대고
목숨줄 끊어 버릴 원수조차도 없다
정오의 태양이 살갗을 파고들어
가슴속 시커멓게 타들어가도
잘룩한 허리
하얀 속살 드러내는 밤을 기다리며
축 늘어진 불알
침 한번 꿀꺽
밤마다 흔들리는 네온사인 가랭이 사이로
어눌한 몰골로 헤집고 나온 야간 노동자
하도 불쌍해
예수는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데
저 끝에 햇살 한 조각 조그맣게 생기면
떼 지어 몰려가는 피서객
지평선 맞닿은 곳에서부터 시커멓게 뒤 덮는다
담벼락에 말라비틀어진 장미
얼룩진 음부의 부끄럼조차 잊고서
구부정한 등짝에 벗겨진 허물
칼날에 꽂히고 뼈마디를 부수며
아침에 반짝일 은빛 노래되어
내 아이 뛰어 놀 수 있게
밤새도록 퍼붓는 하늘의 비수.
일 할 수 있는 행복이라고
땀 흘리는 세상 아름다운 사회라고
틈만 나면 까발려도
굽신거리는 노동자의 관절
씨-펄
비가 올려나
폭풍전야
신촌로가 밤을 켜면
노동의 지친 호흡
삼동교 다리위에 걸어놓고
우울한 하루치 계산을 마친 작업복을 걸친 채
잃어버린 사랑을 쫓아가다
길을 잃는다.
유영하는 노동
쉴 곳마저 추억 속으로 던져버리고
네온에 취해 밤을 벗긴다.
별빛들은 안개에 젖어 빛을 잃고
축축한 호흡마저
이제 곧 폭우에 짤 릴 지도 모를 일
“비정규직 차별철폐”
“대량해고 원직복직”
절뚝절뚝 빌딩사이로
전단 뿌리듯 내뱉어보지만
이내 빗물에 찢겨져버린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목숨을 내어준 예수의 사랑에
지친 하루를 걸어두고
비릿한 노동
당당한 오만으로
십자가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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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소녀2
김명우
파도가 숨쉬는 바다.
애잔한 그리움안고 달려온 세월
생명을 만난다 사랑을 만난다
연육교에 안개가 봄으로 깔리면
가슴속으로 짠 내음이 퍼져온다
어릴적 동화가 꽃으로 피어오른다
갈매기 한 마리
바다 위를 선회하면
지친 삶 잠시 연육교에 걸쳐두고
고향집으로 간다.
시들지 않는 어머니의 기도 곱게 접어 둔
눈부신 수줍음 부끄러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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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
김명우
가끔씩 불어오는 가을 내음
눈물 같은 세월이 가슴에 스며들면
온몸에 그리움이 물들기 시작하고
여름의 끝을 떨치고 너에게로 가는 길에
너무도 간절했던 꽃잎
울컥 솟구치는 사랑
바람이 타들어오고
수줍은 듯 피어 오른
코스모스 한결같이 고옵다.
잎들조차 빨갛게 익어 가면
높은 하늘에 걸려있는
시린 햇살 한점 떼 내어
우표대신 붙이고
눈부신 그리움 너에게로 보낸다
가을을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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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우 프로필
1963년 경북 김천 출생
창원 기능대학 전자과 졸업
창원시 도계동 362-6 성수빌라 402호
현 낮은시 동인
E-mail : ilove1966@hanmail.net
첫댓글 고운 시모음 감사합니다
늘 수고가 많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