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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 트로페4 - 생 트로페에서 오래된 골목을 걸어서 예쁜 부띠크 숍들을 보다!
5월 21일 툴롱 Toulon 에서 버스를 타고 생트로페 St. Tropez 에 도착해 마스트가 숲을
이룬 요트 를 보고는 산 정상에 올라 생 트로페 요새박물관 을 보면서 예전에
이슬람 해적 들이 이 도시를 점령해 해적기지를 만든 일과 그후 프랑스 영토가
되고 19세기 들어 화가등 예술인 들이 모여들면서 휴양 도시 가 된 사연을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생 트로페 요새 를 나와 아래쪽에 펼쳐진 푸른 바다 를 한참 내려다 보고는
돌아서서 성문을 빠져 나와서 보니 저 아래 마을이 손에 잡힐듯이 가까이
내려다 보이기로 걸어 가기로 하는데.... 도로가 아닌 계단 을 따라
내려오니 금방 시가지에 이르니 경사가 진 골목에서 아기자기한 숍 들을 구경합니다.
시가지는 좁은 골목들이 미로 처럼 이어지는데.... 생트로페 St. Tropez 는 오래된 성벽
아래 항만과 고급 레스토랑에 호화 요트가 볼만하고 가브리엘 코코 샤넬 과
이사도라 던컨 이 찾아온 이래 디자이너들이 옷을 선보이기 전에 테스트 를 하는
도시로 패션의 거리 명품숍에 세계에서 온 연예인과 관광객을 구경하는 재미가 큽니다.
어느 예쁜 숍을 보다가 문득 가브리엘 코코 샤넬 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패션은
단순한 옷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은 바람에 깃들어 공기중에 존재 한다.
사람들은 그것(패션)을 느끼고 들이마신다. 그것은 하늘에도, 길거리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곳 에 존재한다. 그것은 생각, 격식, 사건 에서 비롯 된다.”
또 현대 무용의 어머니 이사도라 던컨 이 한 말입니다. “대지의 움직임, 풀과 나무
의 움직임, 동물의 움직임, 바람과 물결의 움직임 을 배워야 한다.
그런 뒤에 아이들의 움직임을 배워야 한다. 그러고 나면 모든
삼라만상의 움직임이 조화있는 표현 속에서 작용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좁은 골목을 걸어 이 가게 저 가게 예쁘고 개성적인 숍 을 구경하는데 나도 청바지 를
입고 있지만 거리에서 청바지를 입은 많은 관광객들을 보노라니.... 문득 패션
디자이너 인 간호섭 홍익대 미술대 교수 가 쓴 “Less 의 시대” 란 글이 떠오릅니다.
“‘Less(리스)’ 는 문법적으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무엇이 적은… ’또는‘…이 없는’
의 의미를 갖습니다. 단순히 다이어트를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칼로리가 적은
저지방식도 떠올리지 마십시오. 요즘 시대에 뭐가 적다고 하면 체중이나 지방을
일순위로 꼽으니 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아름다워지기 ’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름다워지기’ 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화제였습니다. 때로 동서양 문화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면서 아름다움을 발전시켰고 때로 구세대와 신세대 간에
아름다움을 전수했으며 때로는 남녀 간 성적 매력을 발산해 아름다움 을 추구했습니다. ”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공식이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동서양의 구분
도 국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Borderless’의 시대 라고 할 수 있죠.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몇 달, 몇 년의 시간 동안 점진적인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전 세계 어느 곳도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시대 가 되었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던 획일화된 문화 도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를 거쳐 더 다양하고 더 광범위 하게 발전했습니다. 패션 브랜드 들
은 더욱 거대해졌고 더욱 빨리 유행을 전파 시키게 되었죠. 유니클로
같은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의 탄생 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죠.”
“이젠 더 이상 나이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 는 ‘Ageless’ 의 시대이기도 하죠. 어떤
삶을 사는가에 따라 나이가 결정 된다고 할 수 있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모를 유지 하기 위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모든 것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화장품산업의 호황 도 당연한 결과이지만 패션산업에 있어 스타일이 점점 더 캐주얼
해지고 있는 것 또한 이 시대의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남녀의 구분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Genderless’ 의 시대죠. 큰 변화는 색의 다양성 입니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이라는 이분법은 화장실 표지판 에만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
“검정 이 더 이상 장례식장에서만 보는 죽음의 색이 아니라 시크하고 매력적 인
색이 되었고 , 정장이 아닌 캐주얼 의상 에서는 더욱 화려하고 다양한
색이 대세입니다. 재킷 이 더 이상 남성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눈에 띄게
패셔너블해진 스니커즈 또한 남녀가 즐겨 착용하는 아이템으로 등극했습니다.”
“위의 세 가지 ‘less’ 의 특징을 모두 함축한 패션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청바지 입니다. ‘인디고 블루’ 라는 동양 염료가 서양에서 발명된 청바지를
물들였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청바지를 홀대하지 않습니다. 남녀의 차별도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자 계층의 작업복 이 지금은 럭셔리 브랜드 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
이며 디자인 하고 가장 많은 매출을 기대하는 아이템 이 되었으니 이 또한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의 구분이 없어진 또 다른 ‘Less 의 시대’ 를 연 셈이 됐죠.”
“앞으로 더 많은 구분이 없어지는 시대 가 오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걱정은 덜어
내십시오. 더 많은 ‘아름다움’ 을 얻는 ‘More 의 시대’ 이기도 하니까요. ”
내리막 골목길에는 부띠크숍 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런저런 부띠끄 숍들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동아일보 김선미 기자가 쓴 “‘발맹 × H&M' 쇼핑 고해성사”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나: 돈 카밀로 신부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느님 외에 다른 신 을 섬겼습니다.
신부 : 아니 저런, 누굴 섬겼단 말이오.“
“나: 지름신 입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참지 못하고‘지른다’ 는 이방신 입니다.
신부 : 지름신 을 어떻게 영접했다는 거요.
나: ‘H&M’ 과 ‘발맹’ 의 컬래버레이션(협업) 옷 을 샀습니다.
신부: 한국에서 엿새간 구매 노숙 행렬 이 이어졌다던데, 노숙을 했단 말이오.“
“나: 5일 오전 8시 부터 세시간 만에 거의 다 팔렸다기에, 노숙 행렬이 휩쓸고 간
흔적을 보려고 오후 7시 명동 매장 에 갔더니 일부 과감한 디자인의 옷 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가슴이 V자로 깊게 파인 초록 반짝이 미니 원피스를 입어
봤는데, 의외로 어울렸어요. 잠깐 망설이다가 심호흡 한번 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신부 : 그런데 무슨 죄 를 지었다는 거요.
나: 흔들리기 시작한 건 이날 밤부터 였어요. 입어본 셀카 사진 을 페이스북 에
올렸더니 ‘멋지다’, ‘살 수 있다면 사라’ 는 친구들의 댓글이 달렸거든요.“
“나 : 페이스북이 덕담의 공간인 줄 알면서도 한정판에 약해지는 행동경제학 인간 이 바로
저였어요. 다음 날 서울 강남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진짜 ‘발맹’ 매장 부터 가
봤습니다. 바이커 진바지는 150만원대, 재킷은 600만원대. 명품 취재를 좀 했다는
저도 진짜 발맹을 입어보는건 부담 스럽더군요. 명품 매장의 분위기는 늘 위압적 이니까요.”
“신부 : 발맹 오리지널 을 샀다는 건가요.
나: 아이고, 아니에요. 명품관에서 가까운 H&M 압구정점 으로 갔더니 뜻밖에도
전날 구매자 들이 환불한 옷 이 여럿 있었어요. 탈의실로 가져가
마음 편히 입어본 후 턱시도 스타일의 긴 조끼 (13만 9000원) 를 샀습니다.“
“신부: 발맹이 나 젊었을 때엔 이렇게 명품 소리를 못 들었던 것 같은데….
나: 발맹이 ‘뜬’ 건 몇 년 안 됐어요. 무분별하게 라이선스를 팔아
2003년 파산신청 까지 했던 ‘피에르 발맹’ 에 투자가 들어오면서
브랜드 이름을 ‘발맹’ 으로 바꾸고 새 수석 디자이너 를 영입 했어요.“
“나: 2009년 어깨에 달걀을 넣은 듯 봉긋한 뽕이 든 재킷 과 날씬한
바이커 진 을 내놓아 ‘발맹 대박’을 쳤죠. 2011년 부터는
20대의 올리비에 루스탱 이 디자인을 맡아 잘나가고 있어요.
신부 : H&M 과 발맹은 왜 손을 잡았죠.“
“나: H&M 은 명품 이미지를 얻고, 명품은 새로운 고객 을 확보하죠. 세계 의류시장
1위 H&M (지난해 매출 23조 원)은 똑똑해요. 요즘 젊은 세대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에서 소비를 놀이로 여기는데, 그 입소문 효과 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신부 : 한국도 섬유 강국 아니오.“
“나 : 과거 섬유는 행세를 했지만 솔직히 패션은…. 서구 미디어가 유행을 만들어
확산하는 시스템에서 우린 독자적 기획력이 부족해 브랜드를 키우지 못했죠.
대기업들도 해외 브랜드 수입 판매 에 열을 올렸고. 웃돈을 얹어 되팔려는
H&M 노숙 행렬 은 한심하게 볼게 아니라 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했던 장면이에요.”
“신부 : 당신이 샀다는 조끼는 좀 비싼 것 같은데….
나: 제 근검절약 의지를 꺾을만큼 ‘발맹’ 디자인이 근사하고 가성비 가 높았어요.
신부: 소비의 효용은 개인마다 다 다른데, 무슨 잣대로 단죄하겠소. 과한
지출을 하면 메우느라 고통 을 겪지요. 그것이 죄라면 죄고 벌이라면 벌 인 것을.“
(기자의 실제 쇼핑 경험담을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책 속 돈 카밀로 신부와의 가상 고해성사 로 구성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모퉁이를 돌아가니 여긴 오래된 모자이크 가 보이는데 바다를 달리는
전차에 올라탄 삼지창 을 든 저 사내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이 틀림 없습니다.
오래된 모자이크 바다의 신 포세이돈 을 보고는 다시 그 옆에 시계탑을 겸한 종탑이 우뚝
솟은 저 건물은 바로 생 트로페 성당 Eglise Paroissiale Notre-Dame 인가 본데....
이 교회는 18세기에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되었으니 건물로
꼭대기 8각형 시계탑 이 상징인데 다른 말로는
성모 승천 노트르담 (Notre-Dame de l’Assomption) 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자그만 아담 사이즈의 노트르담 교회 를 보노라니 참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앉아 쉬다 보니 문득 D일보 이진 논설위원이
‘횡설수설’ 칼럼에 쓴 “선불(先佛) 노벨 평화상”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러일전쟁을 중재 한 공로로 1906년 노벨 평화상
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제국주의자’ 로 불릴 만큼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스페인과 전쟁할 때는 민병대를 조직해 싸울 정도로 전투에
앞장섰고 ‘먼로주의’ 를 내세워 유럽 열강이 남미에는 얼씬도 못 하게 막았다. ”
““올바른 외교정책은 부드럽게 말하며 큰 막대기를 드는 것” 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루스벨트가 상을 받기 1년 전 독립한 신생국
노르웨이가 막강한 우방국 이 필요해 의도적으로 그를 골랐다는 말도 있다.“
“ 앨버트 루툴리 아프리카민족회의 의장(1960년), 안드레이 사하로프 소련 반체제 인사
(1975년), 아웅산 수지 미얀마 외교장관(1991년) 도 인권에 대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을 탔다. 하지만 인권과 평화는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수 있는 개념이다.”
“ 나치 독일의 양심수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 가 193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히틀러는 모든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 불가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화풀이 했다.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가 198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을 때는 중국이 반발했다”
“한국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DJ)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제정 100주년인
2000년에 상을 받았다. 그해 남북정상회담과 6· 15공동선언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역대 정부는 DJ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막기위해 ‘산림정책’
'조선사업’ 같은 이름의 공작을 벌였다고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회고록에서 밝혔다.
이 전 원장도 1995년 DJ를 위해 노벨 평화상 사전 정지작업 에 나섰다.
이런 큰 상은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만으로는 안되는 모양이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 이다. 52년간 계속되는
콜롬비아 내전을 종식시킬 평화협정안 을 이끌어낸 공로가 인정됐다. 국민투표에서
한차례 부결된 평화협정을 완수 하라는 의미로 주는 선불(先拂) 노벨상 이다.
2009년 취임한지 1년도 안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안긴 노벨 평화상 보다 나은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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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사진들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지중해안의 아름다운 휴양 도시
생 트로페 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