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인데도 국민 단합을 방해한 것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한국인이 된 지 3년이 넘었다. 새로운 모국인 한국이 예전 모국인 터키보다 여러 면으로 낫다고 생각하고, 아쉬운 마음 없이 자랑스럽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 살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수준은 한국이 웬만한 나라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터키가 한국보다 나은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올림픽 분위기이다.
터키의 올림픽 성적은 한국만큼 좋지는 않다. 일부 특화된 종목 말고는 거의 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누가 한 종목에서 결선에만 올라가면 이슬람 수니파나 시아파, 내륙 지역이나 해양 지역, 튀르크족이나 쿠르드족 할 것 없이 모두 한 몸으로 단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치권도 그렇다. 상대측이 연설할 때마다 서로 욕설하던 정치 지도자들은 터키 선수가 올림픽 경기 결선에 올라가면 같이 시청하고, 같이 즐기고, 같이 울고 웃고, 같이 행복해한다. 올림픽은 터키처럼 지역, 인종, 정치적 갈등이 심한 나라들에서도 갈라졌던 사회 구성원들을 가까워지게 하고, 한 국민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만든다.
사실은 나라가 하나로 되는 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리한 곳이 한국이다. 우선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이다. 터키나 인도네시아처럼 다민족 국가도 아니고, 미국이나 영국처럼 이민자가 많은 나라도 아니다. 최근 지역 간 내전이 벌어진 일도 없다. 지역 간 내전을 겪은 스페인에는 아직 갈등이 심각하다. 독일에서도 동·서독 출신 간 갈등이 아직 남아 있다. 종교적으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국교가 없고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종교 세력 간 큰 갈등이 없다. 종교적인 정체성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하부에 있는 것 같다. 국민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한국인’이라는 큰 울타리 아래 통일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면에서 하나여야 할 한국이 올림픽 시기에 한 몸이었는가? 안타깝게도 이 질문의 답변을 “그렇다”로 하지 못하겠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 문제부터 터졌다. 개막식을 앞두고 일본 언론에서 나온 기사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되던 양국 접촉이 공개됐다. 물론 일본 언론에 나온 내용이 100% 진실은 아니었다. 그런데 논란이 빚어지면서 문 대통령이 개막식에 개인적으로 참석하고 싶어도 참석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그러던 와중에 일각에서 “이웃 잔치 참석은 예의다”라는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까지 곁들여지면서 국내 분열로 이어졌다.
그 다음 문제는 안산 선수와 관련된 대목이다. 안 선수의 머리 스타일을 두고 불거진 이해할 수 없는 논란이 화제가 됐다. 일부 과격한 이들은 안 선수가 국가대표인 것을 문제 삼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비정상이 비정상을 만들듯 “많은 사람들이 대한양궁협회에 전화해서 안산 선수의 메달을 박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가짜뉴스까지 나왔고, 해외 언론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해외 언론에선 한국 남성들이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 때문에 메달을 박탈하라고 대한양궁협회에 전화했다는 가짜뉴스까지 올라왔다. 대한양궁협회 측이 그런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고 했지만, 이미 국제무대에서 망신당한 뒤였다.
올림픽이 마무리될 때 공항에서 열린 배구팀 환영식 행사도 더 큰 이슈로 번졌다. 우리 같은 시청자들은 주인공과 마찬가지인 김연경 선수로부터 올림픽이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열심히 하는지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자가 돈 이야기부터 하는 것을 보고 김연경 선수만큼 우리도 놀랐다. 거기서 돈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직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갑자기 돈 얘기가 나오면서 사회가 하나로 될 수 있는 분위기도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감사 발언 요청은 이런 움직임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이 북한도 아닌데, 굳이 국가원수에게 국가대표팀이 감사를 전하도록 대화를 끌고 가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다양한 의견이나 큰 이념 차이가 있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한 몸이 되었던 한국의 예전 모습을 지금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도록 정치권이나 여론 주도층이 이런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다뤄주길 바랄 뿐이다.
알파고 시나씨 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