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날에
강윤후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들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 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打電하는 것 같기에
-『다시 쓸쓸한 날에』 / 강윤후 / 문학과지성사
1962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91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옴 현재 대전 중경공업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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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사는 일이 참 쓸쓸해지는 날이면 어딘가 묵은 안부라도 전하고 싶어지지요. 한 때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다는 일, 그리고 남이 된다는 일이란 지극히 슬픈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겠지요.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문신 하나를 새겨놓는 일이겠지요. 그 마른 상처를 가리기 위하여 다짐처럼 술을 마시고, 허풍을 늘어놓아도 가슴에 휑~하니 부는 바람은 정녕 숨길 수가 없는 일이겠지요.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을 모으다가“ 불현듯 목이 메이도록 그리운 날, 마음 속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아 바람편에 안부를 타전해보지만, 문득 그리운 그대여. 잘 계시는지... (양현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