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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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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슬이는 학교로 가는 내내 입을 삐죽거렸다. 며칠째 다미는 슬이를 아는 체도 안 한다. 다미는 원래 슬이랑 단짝이었다. 그런데 3일 전부터 다미는 슬이를 보고 찬바람이 쌩 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유도 없이 괜히….”
다미가 왜 그러는지 이유나 알면 좀 나을 것 같았다. 쌀쌀한 다미 얼굴이 어른거려 슬이는 학교에 가기도 싫었다.
학교를 몇 걸음 앞두고 슬이 발길에 무언가 차였다. 파란 테가 반짝반짝 빛나는, 모양도 아주 세련된 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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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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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흘렸나?”
슬이는 안경을 도로 놓으려다가 슬쩍 얼굴에 써 보았다. 크기도 잘 맞았고, 어지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안경으로 보이는 세상이 이상했다. 멀쩡한 사람들의 가슴 부분에 축구공만한 까만 구멍이 보이고, 그 가운데로 또 다른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사람들의 마음 같았다.
“이렇게 좋은 걸 누가 흘렸지?”슬이는 슬쩍 안경에 욕심이 났다. 이것만 있으면 갑자기 멀어진 다미의 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실에 들어서니 모두들 수업 준비에 바빠, 슬이가 안경을 쓰고 나타난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슬이는 얼른 다미의 마음을 보고 싶었지만, 저만큼 앞에 앉아 있는 다미는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슬이는 책을 펴다가 담임 선생님의 마음이 궁금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슬이네 담임 선생님은 학교에서도 엄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다.
- “어라?”
선생님은 마음 속에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쓰다듬고 안아 주고 있었다.
“뭐야? 누가 떠들었어?”
선생님이 슬이에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모두 슬이를 돌아보았다. 그 덕에 슬이는 앞자리에 앉은 다미의 마음도 볼 수 있었다. 다미는 마음 속에서 울고 있었다. 마음 속의 다미 옆에 선생님께 칭찬 받는 슬이도 보였다. 며칠 전 다미가 답하지 못한 문제에 슬이가 손을 들어 대답했을 때의 일이었다. 이제야 슬이는 다미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본다는 것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 같아 찜찜했지만, 다미가 토라진 이유를 알고 나니 속은 시원했다.“박슬! 뭐야?”
선생님의 호통에 슬이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어도, 슬이는 다미의 마음이 자꾸 걸려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렇게 냉큼 손을 들지 말걸.’
단짝이라면서 다미의 자존심을 뭉갠 것이 슬이는 못내 미안했다.
“2와 3분의 2 곱하기 3과 2분의 1은?”
“저요!”
선생님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슬이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슬이 나와서 써 봐라.”
많이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슬이는 계산에서 틀렸다.
“식은 맞았는데, 계산이 틀렸네. 다른 사람?”
슬이는 얼른 다미를 추천했다.
“다미가 잘해요. 다미 시켜 주세요.”
“그래라, 그럼.”
다미는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칠판에 문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