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종류의 글을 태어나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한국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처음에 이런 사실을 접했을때
저도 충격과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한국인은 가라데를
배워와서 약간 변형시켜 전통무술인 마냥 해외에 선전하고
다녀서 올림픽 정식종목까지 만들고 가라데의 아류라는
것이 부끄러워 그것을 감추기에 급급하며 추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실체입니다. 이 글을 최대한 많은 사이트에
퍼트려 주십시오.
저같이 이런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테러와 응징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진실은 감춘다고
잊으려 노력한다고 집단망상에 빠진다고 외국인들까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외국인들은 태권도가 Korean karade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우물안 개구리로 그런 외국인들의
주장이 다 잘못 되었다고 자료검토도 해보지 않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한국인은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목:[태권도] 유래와 내려차기의 탄생경위. 관련자료:없음 [1035]
보낸이:이윤석 (여름토끼) 1998-11-13 00:22 조회:358
범기철: 이런 것을 말하면 한국 사범들 중에 격노할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진실을 말하지요. 태권도는 카라테를 모체로 태어
났습니다.
제(1950년생)가 중학생이었던 때는 아직 태권도라고 불리지 않았고,
공수나 당수라는 이름으로, 카라테와 같은 내용의 수련을 했습니다.
그 후, 각 유파를 통합하고, 룰을 통일해 시합을 행하게 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태권도인이 카라테를 모르고 태껸도 모른다고 한다
면 그건 시치미를 떼는 거지요.
범기철: 제가 중학교 때(1963년) 이미 기본발차기에 뒤돌려차기가 들어가 있었
습니다. 이 당시 카라테에는 없었던 것으로, 한국 전통무술의 기술일지
고 모릅니다.
뒤돌려차기나 후리기, 내려차기등은 태권도 시합 중에 생겨난 기술입
니다. 내려차기는 1972년 하석광이라는 선수가 최초로 시합에서 사용해
우승했지요.
이재헌: 제가 중학교(1973년경)때는, 돌려차기도 발 앞축으로 맞추지 않으면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p.s:이제헌씨는 현 일본상임사범이라는군요. W.T.F인지 I.T.F인지는 모르겠습
니다. 범기철씨도 이제헌씨와 아마 같은 소속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위 글은 일본잡지에 나온 태권도부분 중에서 뽑은 것입니다. 서점에서 연
습장 펴놓고 서서 그자리에서 읽으며 번역해 적어 온 것이라 짤막합니다
만 뒤돌려차기나 내려차기등의 유래나 시작시기에 대해 나온 부분이 가치
가 있다 싶어 올립니다.
제 목:[태권도] 태권도계통표입니다만... 관련자료:없음
보낸이:이윤석(여름토끼) 1998-09-24 01:13 조회:45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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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옆으로 길게 늘어지는 표라서...
출력해 ---- 선 부분을 잘라 같은 알파벳끼리 이으면...
하나의 긴 표가 되도록 그렸습니다.
그냥 굵직한 사항만 담았습니다. 세세한건 안담았습니다.
참고자료는 각종 서적이나 자료를 모은거고 제가 꾸며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당수도, 공수도는 모두 똑같이 카라테라고 읽습니다.
한자표기가 다를 뿐, 우리는 한자가 달라져 발음도 달라지지만,
일본의 경우는 공수도든 당수도든 카라테입니다. 아, 카라테가
아니라 '카라테도오'군요. 道는 도오 로 읽습니다.
이 표를 보시면 왜 태권도가 권법,공수도,당수도,화수도등으로
불리었는가에 대해 이해가 가실꺼고...
(사실 태권도로 통합되기 전까지는 태권도가 아니었으니 태권도가
그렇게 불렸다고 말하기에는 문제가 있군요.)
왜 태권도가 카라테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이 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껍니다.
p.s:한가지 궁금한게...수박도회가...본부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르겠고,
또 황기님이 둘 다 총괄을 하시겠지만, 미국무덕관당수도연맹이랑 수
박도회를 뭉뚱그려도 될지, 아니면 구분해 한분이 다스리는 두개의
별도조직으로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는 분은 좀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p.s2:확인해보니 칼럼수가 어긋나 표가 좀 깨졌는데 보시는 분들이
보실때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수도관,송도관은 일본의 도장이고, 담퇴랑 태극권은 만주에서입니다.
중국권법..이라고 되있는 것은 무슨 권법인지가 불명입니다.
그역시 만주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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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태권도] 1065번에 대한 저의 견해... 관련자료:없음 [813]
보낸이:이윤석 (yurmtoki) 1998-02-25 21:33 조회:190
*강민우님의 의문에 대해서 아는 대로 하나씩 문맥을 끊어
얘기하겠습니다. 꼬투리 잡으려는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이야
기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라테, 카라테, 가라데, 거기에 도를 붙였던 안붙였던
모두 같은 의미이니 카라테로 통일해서 적겠습니다.
시작합니다.
1.태권도가 가라대에서 파생된거라고요?
?그렇습니다. 태권도는 기친 후나고시가 연 송도관류 카라테에
서 파생되었습니다.
2.가라데는 어디서 파생된거죠?
?카라테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때문에 다른 기원을 갖는
무술들이 많습니다. 중국 남파소림권(중국 남부의 복건성에
있었다는 소림사에서 유래된 권법이라고 하는 무술. 홍가권,
영춘권등)에서 유래되었다는 소림류(소령류도 있는데 소령은
소림의 표기잘못에서 온 것임. 비디오중에 무림성투사라는
홍콩영화가 그 기원을 다룬 내용임), 백학권에서 유래된 것등
중국남부에 있는 권법들과 흡사한 것들도 있습니다. 또 그러
한 것에서 다시 파생되거나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무술이라고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카라테는 어느 한 특정 무술의 이름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류우큐우-지금의 오키나와-에서 하던 무술이 일본에 전해지
면서 그런 맨손무술을 총칭하는 의미로 부른 것입니다. 원래
는 唐手, 혹은 唐手術이라고 불렀습니다만, 그것을 오키나와
人 기친 후나고시가 (일본)본토에 전하면서 空手로 재명명
했습니다. 발음은 서로 같습니다. 표기만 다릅니다. 카라테에
서 **류, **관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별개의 무술이었습니다.
본시 류우큐우에서는 무술을 手라고 불렀고, 그 무술이 행해
지는 지역(首里手, 泊手, 那覇手, 本部御殿手)를 따서 **手라
불렀습니다. 또, 사람의 이름을 붙여 **派(이또스派, 히가온나
派, 마쯔시게요시派, 아라가키派, 마쯔무라派등)로도 불렀습니
다. 쉽게말해 무술, 권법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습
니다. (간간히 수박이라는 것이 특정 무술이름이 아니라 무
술, 권법이라는 의미였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
이라고 봅니다. 저도 그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
다.) 류우큐우는 200년 전쯤에 일본의 번(당시 일본은 미국처
럼 여러 나라들이 모여 하나의 연방국가를 이뤘다고 보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중 하나인 사쯔마에게 정복당해 그 관할
지로 들어가 자치지역처럼 되었고, 메이지유신 후에는 다이
묘에 의한 자치권을 갖던 번을 없애고 중앙정부에 의해 통치
되는 폐번치현정책에 의해 일본의 한 현(우리나라의 도에 해
당)으로 고,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의 관리하에 있다가
1960년대에 반환되었는데 이 때 일본의 야당등과 오키나와인
들이 독립을 시도했으나 일본의 집권당이었던 자민당의 날치
기통과로 일본의 현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태권도는 그 오키나와人 기친 후나고시가 일본에 건너가 연
송도관류라는 무술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3.태견은 또 모죠? 태권도와 이름만 비슷한 전혀 다른 무술?
?태껸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단군이 세운 조선과 헷갈려서...)
후기에 존재했던 것이 확인된, 발로 싸워 상대를 제압하는
놀이의 이름입니다.
태껸이란 이름의 몸짓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것이 어
떤 모습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옛부터 전해져오
는 싸움기술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거기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측할 뿐입니다. 태껸이 태껸이란 이름의 무술로서
도 존재했는지 여부도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추측할 뿐입니
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어떤식으로 보던 틀리다고 할 수
는 없습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태껸이라는 발로 싸우는 놀이
가 떡 나타난건지, 전해져오던 싸움기술 중 발기술을 위주로
놀이를 만들어 태껸이라 이름붙인건지, 태껸이라는 싸움기술
이 놀이가 되어버린 것이 조선 후기의 태껸인지, 아무도 모
릅니다. 어쩌면 지금의 태권도 겨루기처럼, 어떤 무술이 있었
는데 그 연습용으로 하던 것이 먼 훗날에 원래의 무술은 소
실되고 연습용만 남아 놀이처럼 된 것일지도 모르죠. 한 몇
백년 뒤에는 태권도가 그리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태껸과 태권도가 이름이 비슷한 것은, 바로 그 효과를
이용하기 위해 최홍희씨가 일부러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입니
다.
4.제 생각에는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파생되었다느니, 코리언
가라데니 하는 것들은 지금 태권도의 위상이 높아지는데 대
한 일본인들의 시기와 불안으로인해 퍼뜨려진 악담이라고 생
각합니다.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인데 질투나면 그럴
수 있지요. 현재 일본에서 공식적인 태권도에 대한 입장은
'태껸이라는 조선의 전통무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적고 있습
니다. 다만, 간간히 옆에다 "카라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고 적는 이도 있고, 노골적으로 카라테의 아류라고 하는 이
도 있습니다. 몰론,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저처럼 카라테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민우님처럼 전통무술에서
온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각기 태권도를 분석하는
것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지금은 기
원, 그 발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니 발전과정이나 요즘의
이야기는 하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그건 태권도의 기원이 아
닌 발전에 대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후손도 많습니다. 그 시작이 멀게는 한이나 당이나 몽고의
침입 때같이 한도끝도 없고, 가깝게는 임진왜란이나 정유재
란이나 일제시대때도 분명 그들이나 그들의 후손은 상당히
이땅에 남았습니다. 그러면 후손들, 오늘날 한국인 중의 하나
인 그들이 한국인인가요? 아닌가요? 당연히 한국인이죠. 같
은 겨래(민족)입니까? 아닙니까? 조금 자신은 없지만 같은
겨래로 봐야죠?(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반박해주세요) 그
들도 축구 한일전에서 우리가 이기면 같이 기쁘고, 지면 같
이 화나고, 일본이 독도다 종군위안부다 망언하면 똑같이 열
받는 우리 겨래입니다. 그러나 그거랑 그 조상이 외국인, 혹
은 이민족이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까?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5.물론 태권도가 형식화 되고 정형화된 현대 무술로 자리잡
는데 에는 가라데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현대화되고 정형화 될수록 카라테에
서 벗어났습니다. 옛날 태권도와 요즘의 스포츠화된 태권도
를 놓고 카라테랑 비교하면 요즘 것이 오히려 더 왜색을 벗
었습니다.
6.그러나 이미 우리 민족에게는 오랜 역사동안 격투기 형식
의 무술들이 전해져 내려왔고...태권도 역시 이러한 우리 민
족의 무술을 기본으로 집대성된 고유 무술이라고 봅니다. 다
만 형식화 되고 정형화 되는 과정에서 이미 형식화되어 있는
가라데의 모습을 참고로 하였을 수는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민족에게 전해져 온 무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권도의 시작되는 거의 무관합니다. 태권도는 전통무술이
발전하면서 외국무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외국무술
이 정착하면서 고유화 된 것입니다. 정 반대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레이시-쥬우짓쯔(柔術)나 짓쿤도(截拳道)가
브라질 고유의 전통무술이라던가, 미국의 고유 전통무술이었
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음식으로 예를 들어보죠.
햄버거는 미국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김치버거는 우리나
라 외에는 세계 어디에 가도 없습니다(다시 건너간 거 빼고).
그럼 김치버거는 한국 전통음식일까요?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할껍니다. 재료만 약간 변했을 뿐 햄버거의 구성원리를 그대
로 답습하기 때문입니다.
자장면, 짜장면이라고도 하죠. 한국에 살던 중국인이 중국
쟈쟈멘의 소스인 된장에 캬라멜을 넣어 변화시킨 것입니다.
우리 어디 가도 우리가 먹는 자장면은 없죠(역시 역수출된거
빼고). 그럼 전통요리냐...아니죠. 아직은 소스에 캬라멜이 추
가된 외에 자질구래한 첨가밖에는 차이가 없죠. 그래서 한식
집에선 안팔고 중식집에서만 팔죠.
물론, 비빔냉면같이, 고추가 들어온 것은 조선 후기죠? 근데
비빔냉면은 고추장에 비비죠? 그럼 그 전에는 뭐에 비볐을까
요? 된장? 사실 냉면이야 찬 국수를 먹는거고, 그에 첨가되
는 것에 따라 어떤 냉면이냐가 구분되는거 아닙니까? 찬 육
수가 들어가면 물냉면, 고추장이면 비빔냉면. 아마 비빔냉면
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전통식 냉면으로 안봤겠죠. 근데 고
추장은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덕에, 그리고 오래된 덕에 아무
도 전통요리라는 것에 이견을 안답니다. 그래서 전통에는 시
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긴 시간이나 연속은 필
요치 않다고 한 정의도 있지만, 그건 예외를 염두한 것이라
고 봐야지 그것을 원칙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태껸이나 씨름이 전통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것은 원류를 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독특하면서도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
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술들이 전통시비에 걸리는 이유도, 조
선 후기부터 계속 해온거라면 아무도 이견을 안했을껍니다.
그것이 단절되고, 광복 이후에 다시 책보고 재현하기 때문에,
설립자가 살아있을 정도로 아직 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역시 한 100~200년 정도 더 가면 아무도 이견을 안달겠죠.
태권도가 전통시비에 휘말리는 이유도 아직 전통으로 인정
받기에 너무 그 역사가 짧고 독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연세가 50대 이상인 가족 어른께 여쭈어 보십시
오. 당수나 카라테를 기억하는 분이 대부분, 태권도는 요즘에
나 그렇게 부른다고 하실껍니다. 혹은 소설, 지리산을 읽어보
세요. 광복 직후, "당수를 좀 했습니다." 하니까 "아, 가라데
말이군요."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작가인 이병주씨가 그시대
를 산 사람입니다. 그 당수가 태권도로 변했습니다. 그러니
말 다한겁니다.
7.과연 한국에는 무술이 없었으나 가라데를 모방해서 태권도
라는 무술을 5000년 역사만에 처음으로 만들었읍니까?
?전통무술은 원래 있었고, 그 와중에 (송도관류)카라테라는
외국무술이 떡 하고 들어와 정착한 것이 태권도입니다.
8.나는 그런 말도 않되는 소리에 동감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도복이 조금 비슷하고, 동작이 조금 비슷한게 있다고 해서
싸잡아 가라데에서 파생된 태권도라는 말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조금 비슷한게 아니고 같습니다. 도복은 66년~72년 사이에
유단자만 상의의 띠 아래 자락과 하의 세로 봉합선에 검은
테를 두르는 것을 한 것 외에 80년대까지도 카라테 도복과
같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70년대 말~80년대 초) 친척형에게
얻었던 태권도복도 카라테 도복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동작도 거의 같습니다. 다른건 기본발차기를 조합한 복잡한
응용 발차기가 많다는 것과, 내려차기가 개발되었다는 것입
니다(사실 내려차기는 아킬레스건이나 무릎관절을 다칠 위험
이 많아서 꼭 좋은 기술이라고만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샌드백에 하면 관절을, 사람에게 하면 방어당해 아킬레스건
을 다칠 우려가 있습니다. 바로 저 역시 샌드백에 하다가 무
릎관절에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태권도가 생긴지 10년이 지난 66년에 발간된 책도
기본은 카라테랑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72년의 책도 마찬가
집니다. 심지어는 요즘 것도 기본편은 같습니다.
그래서 태권도는 원류일수록 카라테랑 가깝고, 현대화되고
정형화된 시합태권도일수록 카라테랑 다른 독특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9.한국 고유의 무술은 없었으며, 1900년대 처음으로 코리언
가라데라는 무술이 한반도에서 만들어 졌다는 소리와 진배
없으며...
?여기선 코리언 가라데보다 태권도라고 하는게 더 좋겠구요,
제가 하는 이야기는 카라테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공수 당
수 등의 이름으로 정착했고 1955년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규
합한 것입니다. 태권도도 하나의 무술이 발전한게 아니라 송
도관류에서 온 가라테가 청도관, 무덕관, 송무관, 연무관, 오
도관등으로 각각 이땅에 정착했고 그것이 태권도협회라는 하
나의 깃발로 모인 것입니다.
10.우리의 고유 무술인 태껸등의 존재 자채를 스스로 부정하
는 꼴입니다.
?태껸은 태껸이고 태권도는 태권이지요. 태권도가 카라테에서
왔다고 해서 태껸의 위상이 손상될 일은 전혀 없습니다. 오
히려 태껸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태껸에게 태
권도랑 같은 뿌리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모욕일 것입니다.
이견이 있는 분은 반박해주세요. 단, 이성적으로...지금은 태
권도의 기원에 대한 문제니 그것만 논합시다.
참고서적 : 태권도지침(국제태권도연맹 1966년판)
태권도교서(국제태권도연맹 1972년판)
표준태권도교본(세계태권도연맹 1989년판)
공수도백과(서림문화사)
호신술공수도교본(서림문화사)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그 외 자질구래한 자료들.
제 목:[태권도] 1068번을 일고... 관련자료:없음
보낸이:강민우(avisitor) 1998-02-25 23:58 조회:16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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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님께서 제 문장 하나하나에 토를 다시며 참 열심히 답변을 해 주셨더군요
저는 그런것 까지 원하진 않았는데...
이윤석님의 말씀은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나도 틀린말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윤석님 말씀대로 분명히 태권도는 가라데를 연마한 사람이 가라데의 지대한 영
향속에서 시작한 무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라데에서 파생된 것이니 가라데의 아류니 하는 말은
그들 입장에서 정당화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그당시 태권도가 만들어질 당시 시대 상황이 일제시대 직후이고...
우리 고유문화는 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숨어있는 상태이거나
이미 자취를 감추어서 찾기 힘든 상태였을 겁니다.
따라서 그 상황에서 우리 고유의 무술을 당장 이어나가기란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그당시 이미 정형화된 무술로 자리잡고 있는 가라데의 영향
아래 그것을 모델로 해서 태권도가 시작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무술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정신만은 남아 있었죠...
그러한 의지가 없었다면 일본의 유도나 검도처럼 그냥 가라데라고 하지
모하러 태권도라 했겠습니까?
단지 그 상황에서는 우리 고유의 무술에 대한 지식이나 그것을 수련하는
사람의 수가 극히 일부에지나지 않았으므로 가라데의 모방?으로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그 가라데의 모방상태의 태권도를 태권도라고 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때에는 아직 말만 태권도지 가라데라고 말해야 옳을 겁니다.
오늘날에 와서 우리의 전통무예인 태껸등의 영향으로 발차기등의 기술들을
위주로한 현대 태권도를 진짜 태권도라고 할 수가 있겠죠...
이윤석님이 말씀하신 가라데에서 파생한 태권도는 그냥 가라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미 태권도는 많은 연구의 결과 우리 고유의 태껸의 장점등을 많이 살려서
오히려 절도있게 발전한 태견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작은 비록 가라데에서 시작했지만, 그 가라데의 냄세는 이미 모두 씻어 버리고
이제는 오히려 우리 전통의 태견등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은 처음과는 너무 다른
우리 전통무술 태권도가 되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아이가 처음에는 쿵후가 더 좋아 하면서 쿵후를 시작하다가
그걸 때려치우고 검도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물론 태권도의 시작은 가라데의 그늘아래서 시작했지만...
이미 가라데와는 너무나 다른 태권도를 가지고 가라데에서 파생한 무술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 없게만 느껴 집니다.
그것은 형식만 보고 그 내용은 간과한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 주장에 아직도 태권도는 가라데와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다라고
반박하실지 모르나...그거야 당연히 모든 무술은 비슷하기에 기본적인 어느정도
는 비슷하겠지요...
그러나 가라데는 오히려 무에타이와 흡사하고...
역시 태권도는 태견과 흡사합니다.
겨루기를 한번 비교해 봅시다.
태권도의 경우 품세의 경우 매우 절도 있고 딱딱해 보이지만
가장 많은 발전을 해온 겨루기를 한번 보십시오...
어디가 가라데 입니까?
오히려 그 현란한 발동작과 유현성이나 부드러운 곡선동작등은
태견과 흡사합니다.
다시 제 이야기들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제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권도의 시작은 가라데에서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당시 역사 배경때문에 우리
무술
은 자취를 찾기 힘들었으며 일본무술인 가라데를 연마한 사람에 의해서 태권도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발전시켜 오면서 가라데와는 전혀 다른 우리
전통
무술들을 되살리면서 오히려 현제의 태권도는 처음 가라데로 시작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우리 전통무술의 맥을 있는 태권도로 변화 되었다.
그러한 태권도를 가라데의 아류니 모니 하는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들의
시기어린 질투로 밖에 않보인다.
아직도 태권도는 발전하고 있다. 좀더 우리 고유 무술등을 연구 하여 계승 접목시켜
야겠으며...그와 더불어 더욱 강하고 무도로서의 태권도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우리 후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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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태권도]근대 발전사...택견과의 관계 관련자료:없음 [702]
보낸이:조명준 (ZOMS ) 1997-11-09 15:56 조회:259
음.....태권도의 발생이랄까?...
제가 태권도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자료가 좀 있어서 정리해 올립니다.
1945년에 일제가 물러가자 대한 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동지회가
재편성되었고 일제가 남겨놓고 간 유도, 검도, 공수도의 보급도 활발해
졌습니다. 그중에서 1920년대 오끼나와에서 일본 본토로 건너간
오끼나와 공수도가 서울, 개성 등지에 사설 도장이 생기며 전국에
퍼졌습니다.
1945년 초 이원국이 당수도 청무관을 개설하고 같은해 10월경 황기의
당수도 무덕관이 개설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전상섭이 공수도 연무관을
1948년에는 노병직이 개성에 당수도 공무관을 열었습니다.
또 당시 한국인중에서 공수도 최고단자의 하나였던 윤병인은 처음에는
연무관(전상섭)에서 지도하다가 1947년부터 서울 YMCA및 성균관대-엇 울
학굡니다~~헤~~-에서 권법이라는 명칭으로 지도하였고 후에 창무관을
세웠습니다.이상의 5개 관이 중심이 되어 6.25동란 이후 오도관, 한무관,
강무관, 정도관, 강덕원, 수무관, 창헌관, 문무관, 청양관, 국무관,
홍무관, 정무관, 무학관, 탐라관...등 40여개의 도장이 연이어 세워졌습
니다. 이 외에더 이상의 40여개 관에서 지도받은 이들이 전국 각지에
지관들을 세웠습니다.
1955년 4월 1일 명칭제정위원회가 그때까지 당수, 공수, 권법, 화수, 가
라데라고도 불리던 명칭을 태권도로 제정하였습니다.
1960년에 각파가 통합되어 태권도협회가 결성되었는데 무덕관의 황기는
따로이 사단법인 대한수박도회를 결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태권도란 명칭이 태수도로 바뀌기도 하고 명칭이 고정되기까지 근 10여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수련체계와 기술용어 역시도 상당히 변화가 많았습니다
군대에서의 수련체계이던 천지. 단군. 도산. 원효....등 소위 창헌류(창헌은
최홍희의 아호)가 사회 도장에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태권도는 1905년 오끼나와의 이도슈(系州安桓)가 중국권법
의 제남형을 분해하여 개작한 평안형을 기본으로 하는 수련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창헌류의 사회도장 진출 현상은 최홍회를 견제하는
세력에 자극을 주어 1968년 대한태권도협회는 품세 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팔괘 1장-8장 기본으로 하고 고려, 금강....등 모두 17개의 형식을 만들어
산하의 전 도장에 보급하였습니다. (당시의 태권도계는 대한태권도협회와
창헌류의 국제태권도연맹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음.)
창헌류에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협회제정형은 협회의 조직력에 의하여 전
소속도장에 보급되는 것은 가능했으나 급조되어 용어와 기본기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1972년 태권도가 초, 중, 고교 교과과정에 들어가자 대한태권도협회 기술
심의회에서 새로이 태극 1장-8장을 교과서 편수자료로 내 놓았습니다. 이때
창헌류 국제태권도연맹은 캐나다로 본부를 옮기고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반한 활동을 하면서 북한의 지원을 받았답니다. (지금 북한 군부대의 격술은
창헌류 태권도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합니다 - 물론 개인적 의견여요)
이정도만 정리하면 그 이후의 일들은 대강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또 일부에서 택견이 태권도의 원형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건
아닙니다. 태권도와 택견은 직접적 연관성이 없습니다. 위와 같이 태권도를
만든 사람들을 보면 택견을 익혔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이 익힌것은
대개 공수도나 중국 권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택견의 대부인 송덕기 옹도
그렇습니다. 1971년 송덕기 옹이 태권도지에 소개되기 전까지는 그 어른은
태권도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택견을 약간 배웠는데요....태권도의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수련체계
를 살펴보아도 택견적인 요소는 없는듯 보입니다. 이건 비단 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택견의 2대 산맥중 하나이셨던 신한승 선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음...아는 것도 얼마 없으면서 늘어논 것 같아 쫌 그렇습니다.
제 목:[태권도] 태권도 역사. 관련자료:없음 [566]
보낸이:이윤석 (yurmtoki) 1997-08-06 20:27 조회:316
다음은, 제가 지난 1학기 태권도수업의 기말고사 리포트로 낸, "태권도의
역사,기술
, 품새"에 대한 부분중에 역사부분의 일부를 뽑은 것입니다. 지금보니 부실한 점이
꽤 눈에 보이는데...그래도 그럭저럭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국기원
교본과
다른 내용의 역사를 썼는데도 F를 안주고 A를 주신 교수님께 무지하게 감사드리고-
귀찮아서 안읽어보셨는지도 모르지만-참고문헌은 고 최영의씨의 공수도 교범과,
한국
무술 미대륙 정복하다의 신문연재내용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한국무술
미대륙 정복하다를 갖고계신 분은 연락 좀 주십시오.빌려주시면 제본하고 돌려드리
겠습니다. 물론, 답례도 하지요. 식사라던가, 술이라던가, 아니면 다른
무술자료로라
도...가라테 역사 부분은...더 연구할 부분이 많지만, 그건 태권도 역사가 아닌
카라
테 역사니까 무시하고 대강 썼습니다.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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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跆拳道의 歷史
1.카라테의 전래
跆拳道의 역사를 말하는데 부수적으로 먼저 설명되어야 하는 무술이 있다.
카라테라
는, 空手 혹은 唐手로 불리는 무술이다. 카라테는 현재의 오키나와지역의 전통무술
로, 그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이설이 존재하지만 보통 중국 남파권법이 전래되
변화된 것으로 여기어진다. 본시 오키나와는 중국대륙과 대만섬에 상당히 가까이
위
치해 있으며 인종적으로도 중국인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는 점,그리고 19세기까지
독립국으로서 중국과 조공무역을 하고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교류가 이루어졌고,
무술도 전해졌다고 생각된다. 그 실례로 공상군이라는 이름의 중국 武官이 전했다는
형이 지금도 공상군이라는 이름으로 전수되고 있다.이 카라테는 1920년대에 '기친
후나고시'라는 오키나와인이 일본의 본토에 건너가 카라테 시범을 보임으로서
본격적
으로 바깥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나고시는 '송도관'이라는 도장을 세우고, 唐
手라고 표기했던 카라테를 空手로 바꾸어 일본인들에게 가르쳤다. 일본의 본토에 전
해진 카라테는 대학 서클이나, 군사학교 등에서 전투용 무술로 지도되었다.
1930년대
에는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한국인들이 대학 카라테부에서 카라테를 수련하였다.
이들
은 귀국 후 도장을 세워 카라테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원국이 1945년 6월에 세운
청도관이 그 최초이다.이 후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해방이 되자 6대 문파를
이루면서 발전을 하게 된다. 이 6대 문파는 청도관, 무덕관, 지도관, 창무관,
송무관
, 오도관으로,후에 오도관의 최홍희 주도하에 태권도로 통합되게 된다.
< 6대 문파 설립자들의 수련계통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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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파명 | 관장명 | 수련장과 수련무술 |
+--------+-------------+--------------------------------------------------+
| 청도관 | 초대 이원국 | 일본의 중앙대학교 가라테부에서 가라테를 배움 |
+--------+-------------+--------------------------------------------------+
| 무덕관 | 초대 황 기 | 만주에서 중국인, 양국진에게 양가태극권을 배움 |
+--------+-------------+--------------------------------------------------+
| | 초대 전장섭 | 일본의 동양척식대학교 가라테부에서 가라테를 배움 |
| 지도관 +-------------+--------------------------------------------------+
| | 2대 윤쾌병 | 일본의 일본대학교 가라테부에서 가라테를 배움 |
+--------+-------------+--------------------------------------------------+
| | | 만주에서 '주안파'라는 중국권법을 배움 |
| 창무관 | 초대 윤병인 +--------------------------------------------------+
| | | 일본의 일본대학교 가라테부에서 가라테를 배움 |
+--------+-------------+--------------------------------------------------+
| 송무관 | 초대 노병직 | 일본의 일본대학교 가라테부에서 가라테를 배움 |
+--------+-------------+--------------------------------------------------+
| 오도관 | 초대 최홍희 | 일본의 중앙대학교 가라테부에서 가라테를 배움 |
+--------+-------------+--------------------------------------------------+
2.跆拳道의 誕生.
1954년 5월, 속초에서 제1군단 창설기념식이 열렸다. 거기에서 오도관 1기, 2기생
50여명이 카라테 시범을 보였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보고 카라테를 태껸으로
오인하였
다. 이를 계기로 최홍희는 옥편을 찾은 끝에 태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그 다
음, 54년 12월 19일 제 1차 명칭위원회를 시작으로 2차에 이르는 회의를 통해 계속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을 요청했으나 계속 태껸을 쓰라는 지시만 이 내려온다. 결국
, 55년 4월 11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태권도'라는 휘호를 내림으로서 태권도라는 이
름이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3.跆拳道로의 統合.
한국전쟁 중 피난지에서 민간도장들을 주축으로 대한공수도협회로 규합이
된다.후에
59년, 군의 도장인 오도관을 가입시키면서 최홍희의 입김에 의해
대한태권도협회로
이름이 바뀐다. 1961년, 5·16 이후 최홍희가 정치적 힘을 잃고 해외에 나가있는
사
이 혁명정부의 무도통합령에 의해 모든 관은 대한태수도협회로 통합을 시도한다. 그
후 다시 최홍희가 귀국해 대한태수도협회의 회장이 되자 다시 대한태권도협회로 이
름이 바뀌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민간도장들의 반발이 상당히 많았으며 마찰과
대립이
벌어졌고, 한국전쟁 중 질종된 전장섭, 윤병인을 제외하고 청도관의 초대관장 이원
국, 2대관장인 손덕성, 무덕관의 초대관장 황기, 창무관의 2대관장 이남석,
송무관의
초대관장 노병직 등 대부분의 관의 원로들은 대한민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나게
된
다.
4.최홍희의 망명과 跆拳道의 分列.
최홍희는 태권도라는 이름을 만들고 협회통합에 주력하는 등 상당한 위세를 떨쳤으
나 통합과정에서 민간도장들과 마찰을 빚었고, 5·16 이후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를
여전히 육사후배로 대하다가 결국 정치적 생명이 끝나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하게 된
다. 최홍희는 망명이후 자신이 대한민국에 있을 때 창설했던
국제태권도연맹(ITF)조
직확산에 주력하였고 1974년 몬트리올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대회를 열었다. 한 편,
대한민국에서는 1971년 정치가이자 IOC위원인 김운용이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으로 취
임하면서 국기원을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을 만듬으로서
태권도
는 ITF와 WTF의 양대 구도로 분열되게 되었다.
5.북한에의 跆拳道전파.
캐나다에 있던 최홍희는 1980년 북한 부주석 김일의 초청으로 아들 최중화와
15명
의 시범단을 이끌고 북한에 가서 시범을 보였다. 그 후 북한은 사범파견을 요청했고
매년 1명씩의 사범이 보내졌다. 북한에서는 태권도 붐이 일어났고 수천명의
사범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최홍희는 이로인해 친북활동을 하는 배신자가 되었고 그를
따르던 측근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