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9일(목) 새벽 6시10분 버스로 전주를 출발하여 약속장소인 서울 효창공원역 5번 출구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5분 전이었다.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가을비치고는 많이 내리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바람도 심하게 분다기에 몇번이나 망설인 끝에 과감하게 출발을 하였다. 그것은 비가 오후부터 그치겠다는 예보도
그러했고, 또 서울 도보순례를 주관하는 비오 회장과의 약속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도보순례에 꼭 참석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전날(18일) 대학병원
정밀검사(CT. MRI. 핵의학)에서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고 그 기쁨을 도보순례로 표현하고자 함이었다. 이번 검사결과는 장기수로 복역하다가 특별
사면을 받은 그런 심정에다 비교한달까 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씨인데도 멀리 춘천에서도 수원에서도 참가한 분이 있었다. 여덟명의 단촐한 순례단이었지만 오늘의 순례가 나에게는 또다를 의미의 기쁜 순례가
되리라 믿으며 당고개성지로 향했다.
용산 당고개(堂峴)는 1839년(헌종 5년, 기해박해) 12월 27일~28일(음) 이틀간 10명의 교우들이 순교했던 곳이다. 당시 설을 앞두고 대목장에 방해받지 않으려는
상인들의 요청으로, 서소문 밖에서 한강 가로 나아간 이곳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27일에는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홍병주 베드로, 권진이 아가타, 이경이 아가타,
손소벽 막달레나, 이인덕 마리아,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 마리아 7명이, 다음날에는 홍영주 바오로, 최영이 바르바라, 이문우 요한 3명이 순교하였다.
한편, 증언에 따르면 1846년 9월 16일(헌종 12년, 병오박해) 최초의 조선인 사제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로 향한 참수 길에 잠시 쉬어 갔던 곳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0명의 순교자 중 9명을 1984년 5월 6일에 시성하였다. 어린 자식들 때문에 한 때 마음이 약해져 배교했던 이성례는, 뒤늦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2014년 8월 16일 시복되었다.
1986년 순교 기념비가 세워져 성지로 조성되었으나, 2008년 아파트 건립 공사로 기념비는 철거되었고, 주변이 정리된 2011년, 신계 역사 공원 내에 ‘찔레꽃 아픔과
매화꽃 향기 가득 찬 어머니 성지’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 효창공원역 5번 출구 앞에서 오늘 참가자들을 확인하고 있는 이수상 비오 회장
▼ 성지 주변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때 이 부근을 매입하여 역사공원으로 조성하였다.
▼ 한옥건물은 성물판매 및 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