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일부터 3일까지 무박 2일 동안 도훈이네, 영재네, 진우네, 세화네 그리고 우리가족은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역, 묵호항, 옥계면,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환선동굴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초점은 친구네 가족과 함께 놀고 강원도 강릉, 태백의 겨울모습을 느껴 보자이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네 가족들이 함께 가니 가슴이 벅차고 빨리 가고 싶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성저마을을 출발한 버스는 다음날인 토요일 새벽 4시쯤 정동진역 앞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했던 우리들은 시간도 때우고 아침도 먹기 위해 정동진역 앞에 있는 초당순두부를 먹었는데 맛도 별로 없었고 아줌마가 친절하지도 않았다. 버스에서 잠깐 자기 위해 이동하는 중 민박집 할머니를 따라가서 약 2시간 정도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잤다.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나 보니 아침 6시 50분 이었다. 해뜨는 모습을 보기 위해 7시에 정동진해수욕장 바닷가로 갔다. 마음이 급해진 우리들은 서둘러 바닷가로 갔지만 해는 뜨지 않았다.
강원도 동해에 위치한 정동진은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해가 뜨지 않자 난 싫증이 났다. 파도와 놀거나 친구들과 암석을 살펴보았다.
파도와 암석
신 재 윤
파도가 암석을 세게 친다!
암석도 피하고 싶으나
마음대로 피하지 못한다.
파도가 암석을 세게 친다!
아무리 파도가 쳐도
암석은 산처럼 꿋꿋이 서있다.
암석이 파도에 대항한다!
암석도 파도를 잘게 부순다!
파도와 암석은 그렇게 논다.
파도와 한참 놀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우와와와와 해가 떠요!”
하며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정말 뻘건 해가 뜨고 있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나는 소원을 빌었다. 내가 착해졌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었다. 소원을 비니 소원이 해와 함께 힘차게 떴다. 꼭 이루어질 것 같았다.
정동진해수욕장에는 모래시계공원이 있었는데 그곳도 가봤다. 공원에는 아주 크고 동그란 원 속에 모래시계가 있었다. 모래시계 모형 옆에는 커다란 안내판이 있었는데 그곳을 잘 읽어보니 동그란 원 테두리는 황금색 이었는데 둥근 해를 의미하고 푸른 유리는 동해바다를 의미하고 모래시계 안에 있는 모래는 일년 내내 떨어지며 일년에 한번 뒤집는 모래시계였다. 그 뜻은 새로운 새천년을 기약한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정동진역에 기차를 타고 와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고, 이 모래시계 앞에서 새로운 일년을 약속한다고 하는데 난 2006년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했다. 난 그동안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을 보았었는데 이번 기말고사 때 시험점수가 별로 좋지 않았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과목은 만족했지만 수학은 자신이 있어 공부하지 않았더니 점수가 잘 안나왔다. 5학년 기말고사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6학년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모래시계 앞에서 다짐을 한 것이다. 우리들은 버스를 타고 묵호항으로 갔다.
묵호항에 들어가니 배들이 많이 정착해 있었는데 전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순간 직렬 병렬 전기 회로가 생각났다. 묵호항은 어시장이었는데 해삼, 오징어, 복, 광어 등등 맛있는 해산물이 많았다. 우리는 그 많은 해산물 중 오징어를 샀다. 통통한 오징어가 맛있게 보였다. 조금 있으면 우리 입에 들어올 놈들이었다. 크크크 손질하는 아줌마에게 살아있는 오징어를 갖다 주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오징어를 칼로 눈알을 뜯고 내장을 뽑았다. 눈알이 빠져도 오징어는 끝까지 버둥버둥 거렸다. 으~ 잔인했다. 그리고 오징어에게도 뼈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참 이상하게 생겼다. 아주 얇은 프라스틱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묵호항을 떠나 영재 외할머니 댁에 갔다.
영재 외할머니 댁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현네리 이었는데 마을이 넓었는데 집은 듬성듬성 있고 평화로워 보였다. 밭에는 파가 싱그럽게 자라고 감나무에는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 영광 법성포에 있었던 우리 외할머니 댁이 생각났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우리는 영재에 도움을 받아 마을 구경을 했는데 영재네 할머니 댁 길 건너에는 성황당 과 커다란 성황나무가 있었는데 성황나무에는 빨간색 줄이 몇 개 매달려 있었는데 책속에서 많이 보았던 성황당 나무 느낌이 들었다. 마을 집들은 도시와는 달리 마당이 넓었다. 마을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었는데 도루묵매운탕과 오징어였다. 살아있었던 오징어라고 그런지 싱싱하고 특히 처음 먹어보는 도루묵탕이 가장 맛있었다. 동태와 비슷한 맛이었는데 알은 끈끈했지만 단백 했고 고기 살도 단백하고 맛있었다.
우리들은 넓은 들판과 동네를 돌아다니며 전쟁놀이를 하고 감도 땄다. 영재네 할머니댁 집 앞에는 아주 큰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나무가 너무 높아 할머니가 감을 딸 수 없어 남겨놓았다고 했다. 때마침 초겨울이라 홍시가 아주 잘 익어있었다. 아빠들은 장대로 감을 따기 시작했다. 세화 아저씨께서 감나무 높은 곳에 올라가 안전하게 자리를 잡고 긴 장대로 감이 달려있는 나뭇가지 끝을 꺾어 감을 땄다. 장대에서 떨어져 버린 것도 있었지만 나중에 딴 감들을 보니 족히 30개는 됐다. 나도 올라가서 따고 싶었지만 위험해서 참았다. 터진 감을 먹어보니 전혀 떫지 않고 달았다. 심지어 껍질 까지도 달았다. 도시에서 감을 사먹었을 때는 껍질을 먹지 않았는데 나무에서 바로 따서 먹으며 감 껍질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마지막 여행지인 환선동굴로 갔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환선굴은 옛날 대이리 마을 촛대 바위 근처에 있는 폭포와 소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멱을 감곤 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찾자 환선굴 부근서 천둥, 번개와 함께 바위더미가 쏟아지면서 촛대바위 근처의 폭포와 소가 마르고 환선굴에서 물이 넘쳐 현재의 선녀폭포를 이루었다. 그 후, 사라진 여인을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 믿고 주민들은 제를 올리고 마을 평안을 기원하였다는 유래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환선굴 주변에 삼엽층, 극피류의 화석이 나타나며, 이런 것으로 보아 이곳은 열대지역의 수심이 낮은 바다 속에 있었고, 지각변동으로 인해 현 위치로 이동되어 해발 500m 위치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
환선굴은 1662년 허목선생이 저술한 척주지에 최초기록 되었고 1966년 대이동굴지대 일원을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되었고 1996년 자연공원법에 의한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4부터 1997년까지 공원조성 및 환선굴 내부시설을 설치하고 1997년 10월 15일부터 대이리 군립공원 및 환선굴로 개방하고 있다.
동굴개방은 1997년 10월 15일부터 했으며 규모는 입구 폭 14m, 높이 20~30m, 총연장 6.2km 중 개방구간은 1.6km이다. 생성연대는 5억3천만년전 고생대 생성으로 추정하며 서식생물이 39종이라 한다. 동굴의 형태는 경사 복합형 석회암 동굴로 노화와 생성이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동굴 안에 온도는 10.2도~14도 이고 습도는 86~96%여서 인지 12월 2일의 기온은 밖에 보다 따뜻했다. 입장료는 어린이가 2,000원이고 어른이 4,000원이었다.
우리들은 환선굴을 가기 위해서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는 동안 힘들었지만 거대한 환선굴 입구를 보자 마음이 끓고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우아~ 저렇게 큰 동굴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본 동굴은 충북 단양에 있는 노동동굴과 제주도에 있는 동굴을 가보았는데 환선굴과는 생김새도 다르고 크기도 도르고 종류석의 종류도 달랐다.
동굴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특히 환선굴에서 본 2차 생성물인 옥좌대, 석화, 유석등이 아름다웠다. 아~ 환선굴은 정말 아름다웠고 커서 내가 결혼을 해 자식을 낳으면 꼭 자식들과 다시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동굴관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생각해보니 동굴을 관광화 산업으로 만든 사람들은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발견하고 연구한 사람들도 탐험하며 무서웠을 것 같다. 동굴에 길이 여러 갈래였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옥소와 같은 위험한 장소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겁났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게 공사했던 사람들도 그냥 올라가도 힘들었는데 무거운 것을 산 아래서 동굴까지 옮기데 많이 힘들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동굴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구나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그동안 여행과는 다른 여행이었다. 친구 외가댁을 방문했고 아빠, 엄마, 동생들이 모두 함께하는 내 친구 다섯 가족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난 역시 여행 후 엄마께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예전 보다는 내가 빨리 받아들였고 착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정동진에서 해를 보며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마음은 편안했다. 그리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모두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어서 즐거웠다. 친구들은 역시 내 마음을 즐겁게 한다. 아빠께서는 힘들게 출장 다녀오셨는데도 함께해주셨고, 엄마께서는 외가댁에 행사가 있었는데도 내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 다른 친구들 부모님들께도 우리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음 가족여행도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첫댓글꽤 긴 글이구나. 쓰느라 정말 고생했겠다^^ 좋은 여행 이야기 들려줘서 고맙다. 시도 재밌어^^ 소원도 빌었으니 재윤이가 실천하는 일만 남았네^^ 지금처럼 그 마음 잃지 않으면 6학년 한 해도 편안히 잘 보낼 수있겠다.^^ 그래. 우리 함께 노력해보자. 고맙다 글 올려줘서. 자세하게 잘 썼어^^
첫댓글 꽤 긴 글이구나. 쓰느라 정말 고생했겠다^^ 좋은 여행 이야기 들려줘서 고맙다. 시도 재밌어^^ 소원도 빌었으니 재윤이가 실천하는 일만 남았네^^ 지금처럼 그 마음 잃지 않으면 6학년 한 해도 편안히 잘 보낼 수있겠다.^^ 그래. 우리 함께 노력해보자. 고맙다 글 올려줘서. 자세하게 잘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