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03월23일(토요일) 해파랑길 37코스 탐방일정 회비 44,000원 3월12일 송금 완료, 25번 좌석 예약
탐방지 : 해파랑길 37코스 [해파랑길37코스 : (안인항 -> 강동 초등학교 -> 정감이 마을 산행입구 -> 시둔지봉 -> 한국 농어촌공사 뚝방 -> 테라로사 커피공장 건너편 -> 오독떼기 전수관) [길이 15.8km, 소요시간 5시간 30분, 난이도 보통] 시점 : 강원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13-35 (안인해변 괘방산 입구) 종점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627-3 (오독떼기전수관 쉼터 옆) 코스 개요 - 해파랑길의 37번째 코스 강릉구간이며 바우길 07구간과 겹치는 코스 - 안인해변에서 출발해 오독떼기 전수관으로 이어지는 15.6km의 길 - 정감이솔숲 산책로, 굴산사지 당간지주 등 힐링과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코스 관광 포인트 - 군선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해수욕과 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안인해변 - 신라시대 유물로 한국에서 가장 큰 화강암으로 만든 굴산사지 당간지주 - 강릉지역 전통 무형문화재를 보전하고 기리는 오독떼기 전수관 여행자 정보 -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6, 207번 버스 이용, 용강동서부시장 하차 후 113번 버스 환승, 안인 하차 - 강릉 바우길 7코스와 겹쳐지는 구간이어서 바우길 이정표를 따라가도 좋음 - 안인해변 화장실과 매점이 있음 ] 탐방코스: [ 오독떼기 전수관~(275m)~강릉 굴산사지 승탑~(836m)~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236m)~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1.4km)~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본점~(1.2km)~부부바위~(1.3km)~동막아래2교~(5.9km, 정감이마을 등산로 포함 구간)~정감이농촌체험휴양마을~(1.2km)~강동초교~(1.1km)~안장교~(2.3km)~안인항~(0.6km)~괘방산 등산로 입구 ] (16.3km)
탐방일 : 2024년03월23일(토요일)
날씨 : 구름이 낀 날씨 [강릉시 강동면 최저기온 6도C, 최고기온 14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5시간10분 소요) 07:10~10:00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근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627-3 번지에 있는 오독떼기전수관 쉼터 옆으로 이동 (212km) [2시간50분 소요]
10:00~10:02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627-3 번지에 있는 오독떼기전수관 쉼터 옆에서 탐방출발하여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금평로 117 번지에 있는 강릉학산 오독떼기전수회관으로 이동 [135m] [강릉 학산오독떼기는 농사를 지을 때 부르는 노동요(勞動謠)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강릉지방에서는 신라시대(新羅時代)부터 농요(農謠)를 즐겨불렀다고 하며, 이 지역을 대표하는 토속민요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조(재위 1455∼1468)가 오독떼기를 잘 부르는 사람을 뽑아 노래하게 하고 상을 주었다고 한다. 오독떼기에 대한 의미로는 다섯 번을 꺾어 부르기 때문에 오독떼기라고 했다는 설과 '오'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뜻에서, '독떼기'는 들판을 개간한다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 등이 있다. 오독떼기는 농사를 지으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농요(農謠)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토속민요의 하나인 오독떼기는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 있다. 내용은 모내기소리, 김매기소리, 벼베기소리, 타작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모내기소리는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래로 한 사람이 먼저 부르면 받아 주는 사람들이 이어서 부르는 선후창 형식이다. 김매기소리는 김을 맬 때 부르는 노래이고, 벼베기소리는 벼를 베어 거두면서 부르는 노래로 '불림'이라고도 한다. 타작소리는 '도리깨질소리'라고도 한다. 강릉 학산오독떼기는 이 지방의 토속민요로서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지무제 5호)로 지정되었다.] 10:02~10:05 강릉학산 오독떼기전수회관과 그 맞은편에 있는 학산서낭당을 사진촬영 10:05~10:10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731 번지에 있는 강릉 굴산사지 승탑으로 이동 [275m 이동] [강릉 굴산사지 승탑 (江陵 崛山寺址 僧塔) - 오독떼기전수회관 맞은편 언덕의 굴산사지에 있는 범일국사 승탑 이칭 : 굴산사지 부도(崛山寺址浮屠)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 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731번지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8각원당형 석조 불탑. 승탑. 보물.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일대에 분포한 2003년 사적으로 지정된 강릉 굴산사지 동북쪽 낮은 구릉에 있다. 승탑은 신라 말, 고려 초의 양식으로 기단 하대석 면석의 경사 처리, 기단부 상, 하대석 사이에 둔 커단란 수반형 받침석, 8각을 지키면서도 둥근 형태를 보이는 기단 상대석과 받침석 등에서 새로운 수법이 보인다. 굴산사는 통요(通堯)대사 범일이 창건, 혹은 주석하여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문(闍崛山門)의 본산이 된 곳으로, 이 절터 뒤쪽 경사지에 남아 있는 이 승탑은 양식상 범일대사가 입적한 889년경에 굴산사에 조성되었다고 전하는 그의 사리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사적 변천 굴산사는 9세기 중반부터 통요대사범일이 40여 년간 주석한 사굴산문의 본산이다. 구산선문 중 조선 초기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사굴산문과 굴산사의 역사나 가람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 학산리 일대에 절터와 사찰 관련 유물들인 굴산사지 승탑,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범일의 탄생과 관련한 석천(石泉), 8각형 승탑 탑신 부재, 고려시대 석불 등이 산재하고 있다. 1983년, 2010년, 2011년 발굴에 의하면 굴산사의 중심 절터는 이 승탑을 포함한 학산천 서쪽 평지로, 화재로 인해 일시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들이 12세기 중반에서 13세기 중반기의 유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으로 위축되었다가 13세기 몽고 난으로 급격히 사세가 기울어 조선 전기 기록에도 보이지 않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굴곡을 반영하듯 승탑이 조성된 후 세워진 탑비는 흔적도 없고 1912년경에 촬영된 사진에 의하면 승탑도 어느 시기인가 도괴되어 일부 부재가 파괴되었음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8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1935년 6월 7일에 지하 석실의 유물이 도굴되며 무너졌던 것을 1943년 2월에 복원하였다.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 농업용수로 공사 중 유구와 유물의 추가 발견과 이로 인한 발굴 결과를 기초로 1999년에 복원 문제가 논의되어 6월에 해체, 복원되었다. 이때 파괴된 기단부 받침을 발견된 파편을 참조하여 원형대로 복원하고 떨어져 있는 상륜부재들을 1912년 사진을 참조하여 순서대로 올려놓았다. 내용 굴산사지 승탑은 기단 하대부가 둥근 형태이나, 전체적으로 기단, 탑신, 옥개석, 상륜부가 8각으로 일반적인 8각원당형 승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기단부는 독특한 형태로 구성된 3단의 하대, 8각 평면의 중대, 하부에 연화가 장식된 상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하대 하단석은 8각형으로 커다란 돌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밑에는 넓은 지대석을 표현하고 위로 좁아지는 경사진 면 각 면에 사자를 가득 채워 조각하였다. 사자는 발이나 머리가 입체적이어서 지대석의 공간으로 돌출되었으며 면석 위로는 다시 갑석 형태의 굽형을 모각하고 상부 중앙에 각, 호 2단의 8각 괴임단을 두어 중단석을 받치고 있다. 기단 하대 중단석은 주위에서 수습된 파편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으로, 모서리 8개가 돌출된 굴곡진 둥근 수반 형태로 아래 2단의 괴임을 두고 외부에서 상단에 이르기까지 구름이 새겨져 있으며 내부에는 8엽의 연화문을 돌리고 각 연잎 중앙으로 상단의 구름이 상서롭게 흐르게 하였다. 연잎 사이에도 다시 연잎을 새겼으며 중앙에는 8각의 괴임단을 두어 8각 2단으로 표현된 별도의 받침석과 상단석을 받치고 있다. 기단 하대 상단석은 아래 별석 받침과 맞물리는 낮은 8각 괴임을 두고 반구형의 둥근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표면에는 3단의 각기 다른 형태의 운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 중앙에는 8각의 괴임단이 있어 기단 중대석을 받고 있으며 둘러진 좁은 물도랑은 주위 구름문 사이 낮은 곳에 홈을 두어 물이 빠지게 연결하였다. 기단 중대석은 8각으로 모서리마다 굽이치는 구름으로 기둥을 세우고 각 면에는 연화좌에서 장구, 훈, 동발, 비파, 소, 생황, 공후, 적 등을 연주하는 주악천인상을 운동감 있게 새겼다. 기단 상대석은 아래 낮은 괴임단을 두고 위로 다소 투박한 8엽의 연화와 겹쳐진 사이 연잎을 둘러 장식하였는데 연잎 내부에 과장된 화문이 새겨져 있다. 그 위로 갑석형태의 굽형 1단이 새겨지고 중앙에 각, 호, 각의 괴임단을 두어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석은 아래가 넓고 위가 약간 좁아지는 8각 형태로 각 면에 우주가 얕게 모각되었으며 앞뒤 2면에 문비와 자물쇠가 표현되었다. 옥개석은 하부에 다소 넓은 각, 호, 각의 괴임단을 두어 탑신석 상부와 연결되고 있으며 각 모서리에는 추녀, 사래, 공포구조를 간략화한 부재를 모각하고 1층 처마 안 지붕 내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 낙수면과 처마가 직선형이며 우동마루도 소략하게 조각되었다. 위로 갑석형태의 굽형 1단이 새겨져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 앙화, 보주로 추정되고 있는 부재들이 순서대로 올려 져 있는데 노반은 8각으로 면석에 이중의 연화문이 조각되었고 위로 갑석형태의 굽형을 마련하고 윗면에 얕은 원형의 괴임단을 마련하여 앙화석을 받치고 있다. 앙화석은 밑면에 낮은 원형의 받침을 두어 노반 부재와 만나고 있으며 주위에는 내부가 장식된 8엽의 연판을 돌렸다. 위로는 각 모서리에 귀꽃이 솟고 전체적으로 문양이 조식되었으며 상부에 이르면서 보상화문 8판을 두루고 다시 8각의 굽형을 두었다. 보주석은 둥근 원형석 하단에 2중의 연화문을 장식하였는데, 상단의 연잎은 바람에 휘날리는 듯이 표현되었으며 윗면은 평면으로 다듬어져 있다. 특징 이 승탑의 특징은 첫째, 동적인 표현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점이다. 기단 하대 중단석, 기단 중대석과 상대석에서 비정형적인 구름을 역동적으로 사용하는 등 전체적으로 동적인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바람에 휘날리듯 조각된 보주석 상단의 연화에서도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둘째, 기단부가 원형화되고 있으며 커다란 굴곡형 수반 형태의 부재가 삽입되었다는 점이다. 의의와 평가 여러 곳에서 시도된 동적인 표현은 전체적으로 이 유물의 특징으로 수렴되지 못하였으나, 기법과 형태에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유물이다. 가장 특징적인 점은 기단 하대 중단석의 수반형 형태로, 이는 868년경에 세워진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징소탑에서 처음 소극적으로 시도되었다. 철감선사탑 기단부에는 표면에 구름이 새겨진 층단 윗면에 도랑이 표현되어 있어 양식상 유사하며 이외에도 기단부 면석의 기둥을 구름으로 표현하고 사자를 표현한 점, 윗면에 도랑이 표현된 층단 표면에 구름을 새기는 점 등도 본 유물과 유사하다. 이 양식은 이후 880년에 조성된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에서 연못과 같은 수반 형태로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930년경에 조성된 양평 보리사대경대사현기탑과 고려 전반기에 조성된 공주 갑사 부도에서도 지대석 위 하단부에 연못 형태로 조성되며 이어진다. 따라서 이들 중에서 가장 유려한 형태와 구성을 보여주는 강릉 굴산사지 승탑의 수반형 기단 하대 중단석은 이러한 형태와 상징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예로 평가된다. 다음으로는 보주석에서 보이는 휘날리는 연잎의 표현이다. 이러한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하대석 연화 표현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이 시기의 양식적 경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 된다.] [강릉 굴산사지 승탑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범일국사 탄생설화가 깃든 석천이 있다. 이 설화를 보면 범일국사는 보통 우리네 같은 인간이 아니라 천신인 듯 하다. 이 마을 처녀가 이 곳에서 물을 긷는 중 바가지에 해가 담겨서 다시 물을 떠도 또 다시 해가 바가지에 담겨, 처녀는 그 물을 마시고 14개월 후에 아이가 태어나 범일이라 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사람들과 달리 비범했던 그는 국사에서 물러나 조용한 강릉으로 와서 굴산사에서 지낼 때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대관령에 올라가 그의 도술로 산천초목을 병사로 변하게 해 강릉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범일국사(梵日國師) 신라 말의 선승(禪僧). 범일국사(810~889)는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대관령국사성황’으로 신앙되고 있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 지역의 수호신으로, 해마다 강릉단오제를 통해 제의를 받는다. 범일은 신라 헌덕왕 2년(810), 강릉 학산에서 태어나 진성여왕 3년(889) 강릉 굴산사에서 입적하였다. 속성(俗姓)은 계림(鷄林) 김씨이고, 조부는 명주도독 겸 평찰을 지낸 술원(述元)이다. 어머니의 성은 문(文)씨로 강릉에 세거한 호문(豪門) 출신이다. 범일은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경주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흥덕왕 6년(831)에 입당(入唐)하여 선종(禪宗)을 계승하고 문성왕 9년(847)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문성왕 13년(851)에 당시 명주도독 김공이 청하여 굴산사 주지로 오게 되고 그 후 40여 년간 영동 지역에 선불교를 퍼뜨리는 활동을 하였다. 범일은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창시자로, 동해 삼화사(三和寺)를 세우고 양양의 낙산사(洛山寺)를 중건했으며 강릉 신복사(神福寺)도 건립했다. 당시 영동 지역의 사찰은 신라 왕실을 비롯하여 전통적으로 신앙되었던 교학불교에서 선학불교로 전환되었다. 그 중심이 바로 범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71년에는 경문왕, 880년에는 헌강왕이 각각 범일에게 국사(國師)로 의봉(擬封)하여 청했으나 범일은 나가지 않았다. 신라 왕실이 신앙한 교종과 대립되는 위치에서 범일은 지방 호족세력과 결합하여 영동 지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범일국사는 강릉단오제를 하는 동안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제의의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무당굿으로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시고 소원을 빈다. 대관령 국사성황은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 주는 신으로 인식된다. 실존했던 승려가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좌정하게 된 시기나 경위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강릉단오제의 연원으로 935년 왕순식(王順式)이 왕건(王建, 877~943)을 도와 전쟁에 나가면서 대관령에서 제사 지낸 기록을 들고 있다. 이는 범일이 신라 왕실과 대립하면서 영동 지역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려 건국에 도움을 준 시기와 가깝다. 강릉 지역에는 범일의 신성화된 탄생담이 전승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산의 양갓집 규수가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다. 바가지에 물을 뜨니 해가 담겼다. 처녀는 그 물을 마시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하여 몰래 뒷산 학바위에 버렸다. 며칠 뒤에 가보니 학이 붉은 구슬을 입에서 내어 먹이면서 돌보고 있었다. 하늘이 아는 자손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집에 데려와 길렀다. 후에 당(唐)나라에 수학하여 범일국사라는 고승이 되었고, 죽은 뒤에는 대관령 국사성황이 되었다. 범일의 탄생담은 태양을 숭배하는 천부수모(天父水母)형 신화구조의 주몽신화와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다. 범일은 조선조 강릉시내 대성황사에서 모신 12성황 중 한 분이기도 했다. 강릉단오제는 지역 출신의 인물을 성황으로 모심으로써 역사를 반영하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기능을 지녔다.] 10:10~10:15 범일국사 사리탑으로 추정되는 강릉 굴산사지 승탑(江陵 崛山寺址 僧塔)과 범일국사 탄생설화가 깃든 우물인 석천을 사진촬영 10:15~10:28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1181 번지에 있는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로 이동 [836m 이동]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江陵 崛山寺址 幢竿支柱)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화강석으로 만든 통일신라시대의 지주.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1181번지 높이 5.4m 거대한 한 덩이의 돌을 사용한 한국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이다. 현재 하부가 묻혀서 당간을 세워 놓았던 기대석(基臺石) 등 하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 4면에는 아무 장식이 없는 평면이며, 하부는 돌을 다듬을 때 생겨나는 잡다한 선조(線彫)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는 내면과 외측면이 수직을 이루며, 앞뒤 양면은 상부까지 수직이나, 위 끝에 이르면 머리 부분을 양측에서 점차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며, 정상은 뾰족하지만 남쪽의 지주 첨단(尖端)이 약간 파손되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상·하 두 곳에 있으며, 상부는 상단 가까이에 둥근 구멍[圓孔]을 만들어 간을 시설하였고, 하부는 3분의 1쯤 되는 곳에 구멍을 뚫어 간을 끼우게 하였다. 규모가 거대하며 그에 알맞게 소박하고 강경한 수법을 보여, 통일신라시대의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나타낸다.] 10:28~10:30 한국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인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江陵 崛山寺址 幢竿支柱)를 사진촬영 10:30~10:33 강릉굴산사지 석불좌상으로 이동 [236m 이동] [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江陵 崛山寺地 石佛坐像)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지에 있는 석불이다. 1984년 6월 2일 강원특별자치도의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이 곳에 전해지는 3구의 석불 가운데 완전한 2구는 작은 암자에서 모시고 있고, 머리 부분이 없어진 1구는 우물에 있다. 석불 3구는 모두 한손이 다른 손의 검지를 감싸고 있는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모습으로 아마도 함께 모시기 위해 만든 비로자나삼존불로 생각된다. 얼굴은 둥글고 긴 타원형이며, 어깨는 움츠린 듯하다. 옷의 표현이 두꺼워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으며, 가슴 부근에 있는 손의 모습은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이 불상은 둥글고 긴 얼굴과 평판적인 신체에 곡선적인 조각 등 고려 전기에 유행한 자연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또한 지방 조각의 성격도 드러내고 있다.] 10:33~10:35 강릉굴산사지 석불좌상을 사진촬영 10:35~11:00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현천길 7 번지에 있는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본점으로 이동 [테라로사 커피 공장은 2002년 구정면 어단리에 문을 열었다.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커피공장으로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핸드 드립으로 만들어 주는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커피 볶는 향이 어디까지 날아간 것인지, 소문을 듣고 커피를 맛보러 오는 분들이 늘면서 커피를 내리기 위한 바(Bar)가 생겼고 카페의 역할도 겸하게 되었다. 시골 마을에 폭 싸여있는 덕에 밤나무 숲이 펼쳐지는 곳에는 테라스가 놓였고, 커피나무가 자라는 온실도 생겼다. 멀리서 커피를 음미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브런치, 천연 발효하여 매일 굽는 빵, 그리고 철철이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차려드릴 수 있음은 변치 않는 테라로사 커피 공장의 행복이다. 테라로사 커피 공장은 하루하루 분주하게 돌아간다. 이곳에서 로스팅된 커피는 전국의 유명 호텔과 커피전문점으로 납품하는데, 구매처에서 요구하는 까다로운 품질과 맛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길가 작은 팻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그윽한 커피향이 자동차 창 너머 들어오고, 그 향기에 취할 무렵 앞으로 예스럽게 생긴 멋진 건물의 테라로사가 나타난다.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나라에서 수입된 다양한 종류의 커피 포대가 차곡 차곡 쌓여 있고 한쪽에 커피를 로스팅하는 대형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또한 커피를 만들고 마시는 데 필요한 다양한 도구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특별한 메뉴인 ‘테스트 코스’를 주문하면 도시에서 커피 한 잔 마실 가격에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세 잔의 커피를 원하는 잔에다 마실 수 있다.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만드는 방법, 맛있는 커피를 고르는 법 등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커피 중에서 자기가 직접 고르거나 바리스타의 추천을 받아 결정하면 된다. 이렇게 맛을 보고 마음에 든 커피가 있다면 나가는 길에 사가면 되겠다. 원두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커피와 어울리는 먹거리로 빵과 케이크를 매일 만들며, 공장과 함께 있는 식당에서는 파스타류의 단품요리나 양식 코스요리를 차려내는데, 식사시간이 되면 찾는 사람으로 붐빈다. 테라로사(terra rossa)는 석회암의 풍화 작용으로 생긴 적갈색 흙을 뜻한다.] ['커피 에르메스' 결코 꿈만은 아니다…파리 가는 강릉 '테라로사' 중앙일보 기사 입력일 : 2022.10.04. 백종현 기자 강릉 커피 기행②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 강릉은 커피다. ‘다방 커피’ ‘자판기 커피’ 식의 인스턴트커피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네 입맛을 쓰고 진한 아메리카노로 바꿔 놓은 주인공은 스타벅스지만, 핸드드립(브루잉 커피) 문화를 전국으로 퍼트린 건 강원도 강릉이다. 강릉에는 2000년대 들어 직접 원두를 볶고 내리는 로스터리 카페가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고, 대략 20년 만에 450곳 이상의 카페를 거느린 한국 커피의 중심지가 됐다. 작은 항구에 불과했던 안목항(강릉항)은 이제 전국구 커피 거리로 통하고, 2009년 시작한 강릉커피축제는 해마다 20만 명 이상이 즐기는 대형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제14회 강릉커피축제(10월 7~10일) 개막에 앞서, 모두 4회에 걸쳐 강릉의 커피 문화를 이끈 명인과 개성 있는 카페를 차례로 소개한다. 두 번째는 강릉에서 시작해 전국구 커피 브랜드로 성장한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다. 세상은 그를 ‘커피 사업가’라 부른다. 남들이 도심 한복판에, 경치 좋은 해변에 경쟁적으로 커피숍을 차리던 2000년대 초, 그는 홀로 강릉 내륙으로 들어가 커피 공장을 세웠다. 매장용 커피 머신이나 소품보다 30㎏짜리 대형 로스터부터 들였다. 그가 해외에서 가져와 볶은 커피는 금세 입소문이 났다. 전국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물건을 받아 갔고, 직접 차린 카페로 손님이 몰려왔다. 강릉에서 출발해 전국구 커피 브랜드를 일군 ‘테라로사’ 김용덕(64) 대표 이야기다. 소위 ‘스페셜티 커피’로 통하는 고품질 커피를 전국에 퍼트린 주인공이 강릉 ‘테라로사’다. 스타벅스식의 씁쓸한 아메리카노와 비교했을 때 테라로사의 커피는 어딘가 달랐다.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쉽게 말하면 신맛이 강해 호불호가 갈렸다. “커피 맛이 왜 이래?”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커피 애호가 사이에선 그 명성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김 대표는 애초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산업”으로 보고 커피에 뛰어들었단다.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니라, 그 원료가 되는 생두와 로스팅에 승부를 걸었고, 그 전략이 통했다. 브라질‧에티오피아 등 15개국에서 공수하고 로스팅해 유통하는 커피 규모만 연간 600톤에 이른다. 현재 직영하는 매장이 전국 19개에 이르고 정직원만 300여 명에 달한다(그중 70%가 바리스타다). 21년 경력의 은행원 출신. 늘 돈을 만졌지만, 처음 5년간 커피 사업은 내리 적자였다. 대출도 받고 사채도 썼다. 그저 그런 가게로 남기 싫어, 어려워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단다. “감동한 손님은 1년 후든, 10년 후든 반드시 돌아온다는 신념”이 있어서였다. 해서 손해가 심할 때도 직원들을 계속 해외 연수를 보냈고, 직접 중남미나 아프리카를 돌며 최고급 생두를 수입했다. '테라로사' 본점 한편에 자리한 김용덕 대표의 집무실. 커피는 물론 예술·건축·디자인 등 온갖 책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김 대표의 독서량과 예술적 안목은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집무실은 웬만한 서점보다 책이 많다.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어림잡아도 5000권 이상이다. 커피 관련 서적보다는 외려 사진·건축·디자인·예술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룬다. “밑바탕이 단단하고 깊어야 영감이 나오고 지속성이 생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맛에든 공간에든 임팩트가 있어야 하고, 결국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 돈만 들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지역과 공간적 특성, 건축과 인테리어 등 예술적인 면까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테라로사는 지역마다 매장 분위기와 컨셉트가 다르다. 이를테면 서울 선릉 포스코점과 경기도 양평 서종점은 북카페 느낌이 강하다. 옛 고려제강 폐건물에 들어선 부산 수영점은 공장 가동 때 사용한 철판을 활용해 바닥과 테이블‧조리대 등을 꾸몄다. 커피 공장과 카페, 뮤지엄과 레스토랑 등을 갖춘 강릉 본점은 요즘 유행하는 창고‧공장형 카페의 원형이 됐다. “네슬레처럼 사업해 에르메스처럼 키우는 게 꿈”이라는 말을 김 대표는 달고 산다. 커피로 시작해 2000여 개 브랜드를 보유하게 된 네슬레처럼 식품 산업 전체로 사업을 확장하고, 또 하이엔드 마켓에서 제 영역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테라로사’의 눈은 지금 세계로 향해 있다. 첫 목표는 프랑스 파리다. 올해 안에 점포를 확정하고, 리모델링과 인테리어 작업을 거쳐 내년 상반기 ‘테라로사 파리점’과 ‘테라로사 한식당’을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10여 년 전부터 기획한 숙원 사업으로, 이미 현지에 기반을 다져 놨단다. 강릉에서 로스팅한 커피가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격전지인 파리에 입성하는 셈이다. “하이엔드 마켓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아닌가. 맛은 이미 세계 정상에 있다고 자부한다. 파리 외곽에 커피 공장도 지을 생각이다. 카페가 자리 잡으면 그곳이 허브가 되어 유럽 곳곳으로 매장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11:00~11:05 사진촬영 11:05~11:22 강릉시 구정면 금평로 373 번지에 있는 부부바위로 이동 [구정면 어단리 예비군 훈련장 마을회관 마당에 행운 주며 부부금실도 좋게 한다는 바위가 당간지주를 연상케 하며 다정스럽게 서 있다. 2002년 8월 루사 태풍 때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낸 바위라고 한다. 태고 때부터 땅속에 묻혀지내다 수해로 인하여 형체를 드러냈을 즈음, 어단1리 이승용 이장의 꿈에도 현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이 바위를 바라보며 만지고 가신 분들의 상당수에게 많은 행운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11:22~11:25 어단리 부부바위를 사진촬영 11:25~11:46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 있는 동막아래2교(금광천에 놓인 다리)로 이동 [금광천(金光川)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서 발원하여 동막저수지를 지나 유산동에서 섬석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강릉남대천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강릉남대천의 제 2지류, 섬석천의 제 1지류이다. 하천연장은 4.6km, 유로연장 7.19km, 유역면적 10.1㎢이다.] 11:46~13:26 정감이마을 등산로에 있는 시둔지봉(139m)을 거쳐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둔지길 81 번지에 있는 정감이농촌체험휴양마을로 이동 [정감이마을은 강릉시 강동면에 위치한 모전1리, 상시동2리, 언별1,2리 등 네 개의 마을에 513 가구가 사는 마을로 감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정감이마을에서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한데, 농촌체험, 공예체험, 먹거리 체험으로 크게 나뉜다. 농촌체험으로는 봄에는 밭에 파종하기, 채소 심기가 있고 여름에는 옥수수 수확, 감자 수확이 있으며, 가을에는 땅콩 수확하기, 고구마 수확, 감따기, 감말랭이 만들기, 곶감 만들기가 있다. 공예체험에는 싱싱한 감을 씨가 여물기 전에 따서 갈아서 면포에 거른 후 최소 세 번 이상 빨고 널기를 반복하는 감물 들이기 체험과 초충도 LED등 만들기, 소나무 수납함 만들기, 소나무 연필꽃이 만들기, 나만의 머그컵 만들기 등이 있다. 먹거리체험으로는 곶감 설기 만들기, 곶감 송편 만들기, 곶감 만들기, 곶감찹쌀고추장 만들기, 곶감타르트 만들기 등이 있다.] 13:26~13:46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단경로 20 번지에 있는 강동 초등학교로 이동 13:46~14:04 군선강에 놓인 다리인 안장교로 이동 [군선강(群仙江)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으로 흐르는 강. 군선강은 강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신라시대에 서라벌에서 온 화랑들(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무리를 지어 뱃놀이를 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군선강은 만덕봉 장구목이에서 발원하여 단경골을 지나 모전리에서 장적골로부터 흘러온 물과 만나 안인리 관마을로 흐른다. 이 물은 관마을 앞에서 임곡리에서 흘러온 임곡천과 만나 안인들을 이루며 해령산 옆 명선문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군선강 상류에는 동해고속도로, 하류쪽에는 7번 국도, 영동선이 지나간다. 군선강 하구에는 해령산이 있고, 그 앞 바닷가에 강릉의 3문 가운데 하나인 명선문이 있다. 명선문 바위에는 조선 정조 때 강릉부사를 한 이집두가 쓴 ‘명선문(溟仙門)’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해령산에는 봉수대가 있었는데, 남쪽으로는 오근산 봉수대(강동면 심곡리 소재), 북쪽으로는 월대산 봉수대(두산동 소재)와 이어졌다. 예전에 군선강 하구에는 염전이 있었다.] 14:04~14:44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316 번지에 있는 안인항으로 이동 [안인의 ''안(安)''은 편안함을, ''인(仁)''은 방위상 동쪽을 의미하여 안인은 강릉 동쪽의 편안한 곳이란 뜻이다. 안인에는 85가구 정도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고 약 42척의 어선이 있다. 주로 어업 시기는 10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 기간이며 주로 가자미와 넙치가 많이 잡히고 있다. 군선강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이라 숭어가 많이 올라와 지역 낚시 애호가들이 많이 찾으며 매년 3월3일과 9월9일에는 풍어제를 지낸다. 그 외에 전복과 해조류가 많으며 넙치와 전복의 경우 양식업도 활발하다. 주요 어장인 연안어장의 해상거리는 1~5km 정도이다.] 14:44~15:00 사진촬영 후 휴식 15:00~15:10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13-35 번지에 있는 괘방산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5:10~15:30 휴식 15:30~18:40 "좋은사람들" 버스로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13-35 번지에 있는 괘방산 등산로 입구를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귀경 (214km) [3시간10분 소요]
해파랑길 37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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