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의 별칭을 갖고 있는 조선의 책벌레 이덕무의 글집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리한 글들이지만 비범함을 느껴진다. 그의 깊이 있는 문장력과 뛰어난 관찰력을 발견할 수 있다. 추운 한 겨울에도 독서로 추위를 이겨내고 위안 삼는 지독한 독서광의 모습을 책 속에서 볼 수 있다. 바둑과 같은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적으로 삼고 젊은이들에게 충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책벌레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덕무는 평생 이만권의 독서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한 권씩 50년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만오천권밖에 안 되는데 과연 얼마나 책을 끼고 살았는지 범접할 수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심지어 아파서 누워 있을 때조차도 책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덕무가 살았던 시기는 일본이 개화의 꽃을 피우던 때였다. 일본에서 들여온 책들은 서양의 영향을 받은 책이었다. 소품체에 대한 비난으로 정조의 문체반정이 일어나긴 했지만 시대적 흐름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덕무와 함께 한 사우들 대부분이 북학자였던 것도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했다. 네 살 많았던 박지원과는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박지원이 남긴 글 속에서 이덕무의 독서 생활을 더욱 더 깊이 발견할 수 있다.
<문장의 온도>에 나타난 이덕무의 남다른 문장력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해바라기를 분에 심고 매일 그 모습을 관찰했다. 아침에는 동쪽으로 한낮에는 정중앙으로 저녁에는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단 한 번도 착오가 없었다." (74)
"코에서 토해 낸 회충으로 자기의 깨진 틈을 붙일 수 있다. 그 끈끈한 성질을 취하고 그 더러움은 잊어버린다."(78)
"야명사는 박쥐의 똥이다. 몸에 난 종기나 부스럼 또는 눈병을 고치는 약재로 쓰였다."(90)
"나는 평생 바둑을 즐기지 않아서 전혀 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180)
"매월당 김시습은 매화와 달을 자시을 알아 준 벗으로 삼았다. 청송당 성수침은 소나무를, 허난설헌은 난초와 눈을, 호생관 최북은 붓을, 다산 정약용은 차를, 석치 정철조는 돌을, 연려실 이긍익은 명아주 지팡이를, 기하 유금은 기하학을, 풍석 서유구는 단풍나무를, 고산자 김정희는 산을, 삼혹호 이규보는 거문고와 시와 술을, 교산 허균은 이무기를, 초정 박제가는 굴원의 초사를, 그렇다면 이덕무는 매미와 귤과 해오라기와 매화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