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覲親)갈 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방물치마 장속(裝束)하고 다시 보니 여름지어 지친 얼굴 소복(蘇復)이 되었구나. 중추절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떡고리: 버들가지로 엮어 만든 떡 담는 상자. 소복: 앓고 난 이후 원기가 회복됨)
조선시대 농민의 생활상을엿볼 수 있는 <농가월령가> 8월령의 한 토막이다. 찌는 듯한 더위속에 농사짓느라 고생한 며느리를 친정 나들이 보내는 시어머니의 애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 노래에는 개고기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 개장국(보신탕)
예부터 민가에서 더운 여름을 나는 음식으로 개고기를 즐겼다는 말이다. 쇠고기는 귀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수 있는 육류인 개고기가 인기 있었다. 여름, 특히 복날이 되면 개장국(보신탕)을 찾는 사람이 많다.
궁중음식 연구원에 따르면 개장국은 임금님도 즐겼던 전통요리다. 북한에서는 개장국을 단고기라 불렀는데 국·수육·무침 등 열 가지가 넘는 개고기 요리를 즐겼다.
개장국은 육개장처럼 뼈를 완전히 발라낸 고기를 가닥가닥 찢어 넣고국물이 진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끓인다. 개장국의 특징은 다른 요리에비해 깨나 깻잎 등 향료를 많이 쓴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부녀자 생활지침서인 <규합총서>에도 ´개를 잡을 때는 상처를 내지 말고 잡아야 한다´ 는 조리법을 전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개고기에 대해 오장을 편히 하고혈액을 조절하고장과 위를 튼튼하게 한다. 골수를 충족시키고 허리와 무릎을 따스하게 하며 양기를 증진시킨다고 그 효능을 기록하고 있다. 개장국외에도 예부터 선조가 즐겼던 탕종류의 여름 보신 음식은 여러가지다.
▣ 영계백숙, 삼계탕
육류를 오래 끓여 그대로 먹는 영계백숙 삼계탕·오골계탕·육개장 등이 그것이다. 더운철에는 실상 세균의 번식이 왕성해 식중독도 잘 걸리고 배탈도 많이 난다. 그럴수록 끓여서 먹어야 함은 상식이다.
더구나 단백질 식품인 고기류는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푹 삶아서 고기도 연하게 하고 우러난 엑기스를 국물로 섭취하는 것이 우리네 지혜였다.
영계백숙은 약병아리를 재료로 쓴다. 고기가 부드러운어린 닭을 식구 수대로 큰솥에 넣고 뽀얗게 삶아 한 마리씩 먹었다.
양반가에선 인삼·대추·찹쌀·마늘을 닭의 뱃속에 넣어 먹기도 했다. 삼계탕이다.
닭을 삶은 국물에는 찹쌀을 넣어 죽을 쑤거나 칼국수나 수제비를 빚어 먹었다. 농촌에서는 동네 아낙네들이 물가에 발을 담그고 닭죽을 먹는 풍습도 있었다.
남해안 지방에서는 미역국을 닭국으로 끓이거나 닭국물에 홍합을 넣거나 찹쌀 새알심을 해서 먹기도 했다.
▣ 메기매운탕
민물고기를 재료로 하는 보신음식으론 매운탕을 빼놓을 수 없다. 천렵을 한 물고기에 고추장을 풀고 호박·부추·파 등 푸성귀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낸 매운탕은 입맛을 되찾게 만든다. 추어탕·메기매운탕이 대표적이다.
메기매운탕의 재료는 아가미와 내장을 떼어낸 메기와 풋고추 부추마늘 홍고추 등 매운 양념이다. 간장보다는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전통 조리법이다. 간을 하지 않고 민물고기를 푹 고아 먹는 것도예부터 내려온 보신법.
메기 곰국은 양반가, 서민가 구별없이 공통으로 즐겼던 여름철 보양식이다. 메기는 다른 생선보다 질 좋은 단백질과 철분이 많다.
더운 지방인 대구 등지에서는 더위에 입이 마르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며 어질어질 피곤할 때 메기곰국을 즐겼다.
<명의별록>에도 ´메기는 백병을 다스리며 곰국을 만들어먹으면 몸을 보한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도 당뇨병이나 신장염이있는 이에게 한의사가 주로 권하는 것이 바로 메기다.
▣ 은어백숙
경남 하동지방 특유의 민물고기 보양식은 은어백숙이다. 은어를 깨끗이 씻어뼈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1시간 가량 곤 후 채에 받쳐 고기를 건져내 국물과 고기를 따로 먹었다.
해성한의원 신재용 원장은 은어는 맛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성기능과 소화기 기능을 보충하는 성분이 많고 체내의 수분대사를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기능이 있어 소화기가 약해지고 호흡기의 부담이 큰 여름철에 권할 만한 보양식이라고 추천했다.
▣ 장어구이
구이 음식으론 장어구이가 있다. 임진강 등 강 하구 지방서 많이잡히는 민물장어 구이는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맛있는 반찬이기도하다. 장어는 내장·뼈·지느러미를 제거한 후 껍질도 깨끗이 다듬어 간장으로 졸인다.
설탕이나 물엿 등을 넣어 단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며 계피나 생강채로 향을 내기도 했다. 흔히들 여름에 탕을 먹으면서 이열치열이라고 말한다. 빙수 등 차가운 음식만 먹으면 몸이 약해지므로 체력을 생각한다면 더운 음식을 즐기라는 뜻이다.
▣ 냉국 냉면 콩국
그렇다고 그 긴 여름날 뜨거운 것만 먹을 수는 없다. 더운음식으로 체력을 보강시킨 뒤 차가운 음식을 먹어 몸을 식혀주는 것이 올바른 식이요법이다. 예부터 즐겼던 차가운 여름음식은 냉국 냉면 냉채 콩국 미수 등이다.
모두 육수나 냉수에 간을 하고 식초·설탕을 넣어 입맛이 나도록 새콤하고 시원하게 해서 마신다. 냉국류는 자칫하면 시원한 맛만있을 수도 있지만 육수로 국물을 내거나 콩물을 사용하면 단백질등 영양소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냉콩국의 경우는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콩을 삶아 만들고 밥맛없을 때 국수로 밥을 대신할 수 있어 어느 지방에서나 모두즐기는 여름음식 중 하나였다. 궁중에서는 닭국물을 차게 식혀 깻국하고 섞어서 만들어 먹는 깻국탕이라는 찬 보신 냉국을 만들어먹었다.
메밀 냉면국에는 시원한 무동치미나 열무 물김치·육수·닭육수등 지방에 따라 다양하게 국물을 썼다. 시원한 음료로는 임금님의 건강을 관장하는 내의원서 단오날 임금님께 올렸던 제호탕이 있다.
궁중음식연구원에 따르면 매실 말린 것·축사·백단향·사향 등 다섯 가지 한약재를 가루로 내 꿀을 넣고 중탕을 한 뒤 찬물로희석시킨 음료였다. 민가에서는 산천에 많이 있는 익모초 달인물을 마셔 입맛을 돋우었다.
궁중이나 양반가에서는 더위를 먹거나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맥을 못출 때는 양(月羊)즙을 약처럼 마셨는데 소의 위를 손질해 약탕관에 넣고 달여 즙을 짜, 그것을 잣즙과 섞어 마셨다.
더위를 타는 어린이를 위한 전래의 한방처방도 있었다. ´육미지황탕´ 이다. 재료는 숙지황·산수유 등으로 가루 내어 꿀에 버무려 먹였다.
경희대 한의과대학 이형구 교수는 "신장의 음기가 부족해 식은땀을 많이 흘리는 아이에게 먹이면 좋다" 고 권한다.
오늘날 일부 사람이 아무런 과학적검증을 거치지 않고 뱀이나 해구신 등 생태적으로 특이한 짐승을 보신음식으로 찾았던 것에 비해 전래의 보신음식은 제철에 구할 수 있는 싱싱한 재료를 근본으로 하는 합리성이 바탕이었다.
당나라 명의 손사막은 ´식료치병´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의 병은 음식으로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날씨가 더워 땀을 많이 흘리고기력이 떨어진다고 무턱대고 병원을 찾기보다는 먼저 조상대대로 내려온 보신 음식을 찾아내 즐겨 보는 것도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현명한 생활의 지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