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7일
본문 : 요15:1-8
제목 :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사랑하시고 아끼셨던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의 비유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시간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과 행동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깊은 교감이 이루어지는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항상 그분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성장했던 제자들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혹은 제자라고 하기엔 신앙이나 인성이 너무나 미흡했습니다. 겉은 어른인데 속은 철없는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메시아이신 스승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늘 피곤을 이기지 못했던 그들은 스승을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번번이 수면욕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각자 편한 자세로 잠들어버리는 모습만 주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이토록 실망을 드리기 일쑤였던 제자들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날 밤 그들에게 포도나무 비유라는 참된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속에 등장하는 농부, 포도나무, 가지, 열매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 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그 귀하고 소중한 마지막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한 데 부르시고 친히 당신의 허리와 무릎을 구부려 저들의 더러운 발을 깨끗이 씻겨주셨습니다. 자기들의 발을 정성과 사랑을 다해 닦아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무거운 일이 곧 닥칠 것을 예감했습니다. 발을 씻겨주신 후 주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을 베푸시며 십자가의 길을 여셨습니다.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신 스승은 세족식과 마지막 만찬을 베푸시며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포도나무 비유의 말씀입니다.
처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요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너무나 평이하고 익숙하여 그림을 그리듯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말씀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 장엄하고 위대합니다. 마치 죄 없이 아름답던, 의롭고 정결했던 에덴동산을 떠오르게 합니다. 죄도, 미움도, 타락도 없이 오직 은혜와 공의로 충만했던 그 동산 안에 계신 착한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하신 생명, 즉 오직 한 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포도나무로 심으시고 그 나무를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거룩하고 순전하신 아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라고 정의를 내리시는 모습은 구약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그분 자신을 소개하시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사명과 능력을 주시는 모습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신 신약의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또한 '내 아버지는 농부라'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첫 문장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동일하신 아버지를 지속적으로 열심으로 다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도원에서의 농부의 주권은 절대적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를 심고, 나무의 모양을 마음대로 내기도 하고, 병든 곳은 없는지 세심히 관찰하고, 필요에 따라 상태가 좋지 않은 가지들을 속아내기도 하고, 열매를 잘 맺는지 틈틈이 확인합니다. 이렇게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일하는 농부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시며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죄로 인해 죽은 우리들이 접붙어 새 생명을 얻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오직 농부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신앙생활의 주권이 나에게 있는 것 같아도 마지막 결론에 도달해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바울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고백을 통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라는 말씀은 그분께서 곧 진실한 '의'이심을 뜻합니다. 이는 곧 참된 생명 즉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생을 주는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열매는 구원이며 영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영생입니다. 죽음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의 근원이신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사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옮겨졌고, 마침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일은 우리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나무와 분리된 가지는 살 수 없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서 나무가 주는 영양분으로 건강하게 성장해야 좋은 포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가지가 풍성한 포도송이를 맺는 것은 너무나 큰 행복이자 축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자기의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하여 그분의 축복을 받기를 바라듯 참 포도나무의 가지인 우리 역시 우리가 주님의 교회임을 깨닫고 영명교회 안을 새 생명들로 가득 채워 농부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우리의 소원으로 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농부가 기르시는 포도나무가 햇빛을 받고, 수분을 흡수하며, 병충해를 이기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드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즉 농부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포도원과 참 포도나무를 계획하셨고, 생명의 말씀이시며 참 포도나무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계획을 다 이루셨다면, 이로 인해 나타난 풍성한 영광으로 우리 삶의 실제 현장에서 역사하시며 운행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 즉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깨끗해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정결한 영 안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 9절까지 '나의 안에 거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면서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밖에 버려져서 불에 던져진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만으로 인해 독립성이 커져서 율법의 완성이신 복음과 말씀의 통제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나무의 재질을 갖고 있어도 더 이상 나무가 아닙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땅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밟히다가 결국 땔감이 되어 사라질 뿐입니다.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은 바로 본체인 나무와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는 가지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하나님의 나무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그 열매는 과연 무엇일까요? 성령의 9가지 열매라고 확신합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런데 이 중 첫 번째는 열매는 바로 사랑입니다.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예수님의 사랑이 없다면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숨고 싶어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새 생명이 싱그럽고 아름답게 뭉쳐 상큼하고 달콤한 구원의 포도송이를 맺는 주님의 교회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