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선도 못 살리네”…의왕·안양 집값, 날개없는 추락
[수도권 주택시장 긴급진단] ④ ‘인동선 사업 재개’ 소식에도…살아날 줄 모르는 의왕·안양 집값
[땅집고] 인덕원~동탄선 노선도./국토교통부
[땅집고] “인동선이 죽다 살아났지만 집값은 살리지 못했다.”
수도권 남부 핵심 전철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인덕원~동탄선(이하 인동선) 사업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되살아났지만 경기 의왕과 안양 일대 주택 시장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인동선은 지난 6월 감사원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수요예측 재조사를 통보하며 사업이 중단될 위기를 맞았다. 이 여파로 의왕과 안양 일대 집값이 직격탄을 맞고 수억원씩 급락했다. 7월 들어 기재부가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로 결론 내면서 인동선 사업은 재개됐지만, 아파트 값은 이전의 가격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전망을 두고 시장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현지에선 인동선 사업이 재개된 만큼 향후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 교통 호재가 집값에 재반영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편다. 반면 전문가들은 “인동선 사업 악재 소식에 뒤이어 맞물린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확산 등으로 수도권 주택 시장이 강하게 조정을 받고 있는 만큼, 의왕과 안양 집값 회복은 쉽사리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관련기사] 사업 전면 재검토 위기…월판선·인동선 개통 안갯속으로
[땅집고] 서울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 향후 인덕원역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C 노선과 인덕원~동탄선(인동선) 등 총 3개 노선이 지나가는 주요역이 될 전망이다./온라인 커뮤니티
■인동선 사업 재개에도 급락한 집값 ‘꿈쩍’도 안해
인동선은 경기 안양시 인덕원에서 화성 동탄신도시를 잇는 복선전철이다. 수도권 남부 대규모 주거지역인 광교, 영통, 동탄2신도시 등을 잇는다. 총 길이 38.3km로 10개 공구로 나눠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1공구(공정률 3.7%)만 공사 중이다. 나머지 9개 공구는 공사 방식 등을 두고 지역사회와 협의 중이거나 설계 단계에 있다. 당초 계획은 2026년 개통이 목표였다.
감사원은 지난 5월 31일 기재부와 국토부에 인동선 수요예측 재조사를 통보했다. 사업 타당성 조사 당시에는 동탄 1·2호선 사업이 추진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수요 예측이 진행됐는데, 갑자기 동탄 1·2호선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수요 예측에 변동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인동선 수요 예측은 동탄 1·2호선 사업이 추진되지 않는 경우 하루 이용객 21만8798명(2031년 기준)으로 예상됐다. 동탄1·2호선을 진행하는 경우 이 숫자는 17만4701명(약20%)으로 확 줄어든다. 이로 인해 ▲경제성 ▲정책성 ▲지역낙후도 평가를 합산한 종합점수(AHP)도 기존 0.513점에서 기준점(0.5)을 밑도는 0.458점으로 낮아진다.
사업성이 문제로 지적되는 가운데 인동선 총 사업비 증액 문제도 기름을 부었다. 당초 2조8329억원이었던 총 사업비가 인건비와 자재값 인상 등 여파로 3조6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감사원은 국토부에 “재조사에 비용과 수익성을 감안하라”며 사실상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집값 최대 4억원 급락…곡소리 나는 의왕·안양
인동선 무산 위기 소식이 퍼지면서 지난 6월부터 의왕과 안양 아파트 값은 수억원씩 뚝뚝 떨어졌다. 인동선 사업이 무산되면 최대 교통 호재로 꼽히는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C노선 추가 정차 계획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면서 집값 급락세가 가팔랐다. 심형석 IAU 교수는 “업계에서는 서울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 인동선과 월곶~판교선(월판선)이 들어서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GTX-C 인덕원역 추가 정차를 결정했는데, 인동선이 무산 위기를 겪으며 GTX-C노선 추가 정차도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문제 인식이 커졌다”고 했다.
다행히 한달 만에 기재부가 인동선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는 행정절차인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로 결론내면서 분위기 반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인동선 무산 소식이 들려왔던 6월 이후 하락했던 의왕과 안양 아파트 값은 여전히 이전의 가격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인동선,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결정…공사 중단 위기 모면
안양과 의왕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지난해에는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매수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문의마저 완전히 끊겼다”며 “작년 교통 호재로 누렸던 집값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왕시의 아파트값 상승률이 전국 1위(38.56%)였다. 안양 동안구(33.7%) 역시 전국 순위권에 들었다.
실제로 최근 의왕시 포일동 ‘인덕원푸르지오엘센트로’ 84㎡(이하 전용면적)는 12억8300만원에 팔려 1년 새 3억원 넘게 곤두박질쳤다. 이 아파트는 GTX-C노선 추가 정차 기대감이 높아지던 지난해 6월 최고가인 16억3000만원을 기록하며 포일동 최고가 단지에 올랐다. GTX-C 인덕원역 추가 정차 발표가 났을 때 호가는 20억원까지 뛰기도 했다.
안양 동안구에서는 집값이 최고 40%까지 하락한 단지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안양 동안구 평촌동 ‘푸른마을인덕원대우’ 84㎡는 지난해 8월 12억4000만원(16층)으로 최고가를 찍었다가 최근 2개월간 7억4500만원(2층), 8억6000만원(18층)으로 급락했다. 1년여 만에 집값이 거의 30~40%가 빠졌다. 동안구 관양동 ‘인덕원마을삼성’은 지난해 9월 10억5000만원에 거래됐다가 올 3월 8억5600만원에 손바뀜한 뒤 거래가 끊겼다.
[땅집고] 경기 안양시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주완중 기자
■ “의왕·안양 조정 불가피…공급도 많아 투자 주의해야”
현지 공인중개사들은 의왕시 신축 아파트 매매가 하락세가 주변 단지까지 확산하는 연쇄 하락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포일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신축 역세권 대장주 아파트 매매가가 떨어지면 인근 구축 아파트까지 연쇄 하락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의왕·안양 주택 시장의 조정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땅집고 자문단은 “의왕과 안양은 지난해 40% 가까운 상승률을 보이며 집값이 워낙 가파르게 올라 단기 조정 가능성이 높았다”면서 “교통 악재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과천 등지에 입주 물량이 늘고, 주변에 입지와 접근성이 뛰어난 신도시가 계속 들어서고 있어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꽁꽁언 청약시장...아파트 단지 통째 미분양에 ‘줍줍’까지 미달
인기 지역 서울·경기도 청약 시장까지 얼어붙어
금리 추가인상·경기 위축 영향… 청약 당첨되고도 계약 포기 늘어
일부 단지에선 미분양 우려에 외제차·명품백 경품 마케팅까지
지난달 27일 진행된 경기도 성남시 ‘이안 모란 센트럴파크’의 무(無)순위 청약은 74가구 모집에 27명만 신청했다. 이 단지는 지난 5월 처음 청약을 접수했는데, 당시 당첨자 전원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단 1채도 팔리지 않았다. 수도권 인기 주거지로 꼽히는 성남에서 아파트 단지가 통째로 미계약되고,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무순위 청약까지 절반 넘게 미달하자 분양업계에선 “경기가 생각보다 훨씬 안 좋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별 할인 분양” 현수막 걸린 아파트 - 29일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건물 외벽에 미분양 물량을 할인 분양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6월 말 기준 수도권 미분양 주택이 총 4456가구로 한 달 전보다 25.1% 늘었다고 발표했다. /뉴스1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인식이 여전한 가운데 금리 인상 여파로 주택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청약시장까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작년까지 ‘분양만 하면 완판(完販)’으로 통하던 서울과 수도권 인기 지역에서 미분양 단지가 속속 생기고, ‘줍줍’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던 무순위 청약에서도 미분양을 해소 못 하는 단지가 여럿이다. 이에 과거 주택시장 침체기 때 유행했던 청약 신청자에게 외제차나 명품 가방을 선물하는 파격적인 마케팅까지 등장했다.
◇'로또’는 옛말…무순위 청약도 미달 속출
3일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전국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은 11.7대1로 집계됐다. 작년 평균 경쟁률(19.8대1)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작년 12월 1만7710가구에서 올해 6월 2만7910가구로 58% 늘었다. 특히 수도권 미분양은 1509가구에서 4456가구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청약 불패’로 통하던 서울에서도 올해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도봉구 창동 ‘창동 다우아트리체’는 지난달 무순위 청약에서 63가구 중 60가구가 계약을 포기했다. 5월 최초 청약 때는 12대1의 경쟁률로 1순위 마감됐지만, 전체 89가구 중 63가구가 계약을 포기했는데 무순위 청약도 수요자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지난 6월 말 입주를 시작한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분양가를 15% 할인하는 파격 혜택을 내걸었지만, 전체 216가구 중 26가구가 미분양 상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무주택 실수요자까지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부담감에 몸을 사리면서 미분양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수도권 아파트 시장에서 비정상적인 ‘거래 절벽’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청약시장까지 침체에 빠지면서 당분간 집값 하락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외제차 드려요” 미분양 해소 ‘몸부림’
청약시장까지 인기가 시들해지자 일부 분양 현장에서는 미분양을 방지하기 위해 파격적인 경품을 내거는 마케팅이 등장했다. 이달 2~3일 청약을 접수한 경기도 하남시 오피스텔 ‘미사 아넬로 스위첸’은 청약 신청자 중 50명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증정하고, 계약자 중 추첨을 통해 제공하는 경품으로 BMW 미니 차량을 내걸었다. 경북 칠곡군에서 분양한 ‘왜관 월드메르디앙’ 역시 추첨을 통해 명품 핸드백과 의류 건조기, 무선청소기 등을 경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최근 미분양이 심각한 대구에서는 중도금 무이자, 계약금 정액제 등 금융 혜택을 내거는 현장이 많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작년 5월부터 미계약 물량을 해당 지역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분하는 규정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과거 집값 상승기에는 무순위 청약에 과도하게 수요가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신청 대상을 제약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주택시장이 가라앉은 시기엔 오히려 사업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역 주민만 무순위 청약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다른 수요자의 기회를 제한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요즘처럼 주택 경기가 꺾인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규제로 여겨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