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화 속 영웅] 동료 위한 희생도 우리의 의무다

[H. K.]

[전쟁 영화 속 영웅]
K-19 위도우메이커(K-19: The Widowmaker), 2001 동료 위한 희생도 우리의 의무다
K-19 위도우메이커(K-19: The Widowmaker), 2001
감독: 캐스린 비글로 / 출연: 해리슨 포드, 리엄 니슨



핵(nuclear)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인류를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인류 문명에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핵잠수함, 핵미사일, 핵폭탄 등은 치명적인 반면 핵을 사용한 원자력발전소, 원자력병원 등은 매우 경제적이다.

현재 세계가 갖고 있는 핵은 지구 종말을 가져올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핵무기는 힘의 균형을 유지시키며 국제 질서를 바로잡아가고 있다.



핵잠수함 K-19 장병들의 이야기

‘K-19 위도우메이커’는 소련 최초의 핵잠수함 K-19 승무원들의 이야기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61년 미국에 맞서 엄청난 핵무기를 비축하던 소련은 최초의 핵탄두 장착 잠수함인 K-19을 완성한다. 이 잠수함은 ‘위도우메이커(widowmaker, 과부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인명 피해와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20여 명의 잠수함 승무원이 방사능에 피폭돼 사망했다.

영화는 항해 도중 핵잠수함에서 벌어지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함장과 부함장의 대립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과 조국애가 무엇인가를 잘 그려내고 있다.

함장의 독단이 불러온 엄청난 재앙, 그리고 25년 만에 밝혀지는 K-19의 충격적 비밀을 담은 스토리가 감동적이다. 특히 핵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원자로 냉각기 고장으로 발생한 긴박한 상황과 그를 막기 위한 병사들의 필사적인 노력과 희생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새로 부임해온 함장 알렉세이(해리슨 포드)는 해이해진 승무원의 기강을 잡기 위해 화재 발생 시 대비 훈련, 최대 300m까지 하강하는 비상 잠수훈련 등을 실시한다. 하지만 새 함장이 오기 전 부함장 미하일(리엄 니슨)의 지휘 스타일, 즉 자율적이며 소통 가능한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병사들의 불만이 점차 노골화되는 가운데 함장 알렉세이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다.



강압적 리더십 vs 소통하는 리더십

영화에서 함장은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강압적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반면 부함장은 소통하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시킨 후 함장과 부함장 간에 설전이 오가는데, “당신은 잠수함과 승무원을 위험에 빠지게 했다”는 부함장의 말에 함장은 “난 우리 승무원과 잠수함의 한계를 알아야 했다. 우리 병사들은 이제 하나가 됐다. 이제껏 생각 못 했던 일을 힘을 합쳐 이뤘으니까”라고 대응한다.

이후 원자로 냉각기 고장으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함장과 부함장은 또 대립한다. 부함장은 “더 이상 병사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미군 헬기에 도움을 요청하자”고 하고 함장은 “우리 잠수함을 적에게 넘길 수 없다”고 맞선다.

하지만 무사히 귀국 후, 사고의 책임을 묻는 재판에서 부함장은 “소련의 어떤 함장도 그러한 결정에 직면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잠수함, 승무원, 세계의 운명, 이 모두를 균형 있게 이끌 결정 말이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함장을 심판할 수 없다. 당신들은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다”라며 “그는 우리들의 함장이요, 나의 함장이다”라고 변론한다.

‘폭풍 속으로’의 감독 캐스린 비글로

이 작품은 ‘폭풍 속으로’ ‘허트 로커’ 등 첩보물이나 전쟁영화를 주로 연출한 할리우드의 여성 감독 캐스린 비글로가 연출했다. 전쟁영화 ‘허트 로커’로 제8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을 받은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함장 역을 맡은 해리슨 포드의 깊이 있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들의 희생은 훈장 때문이 아니었다”

영화의 백미는 엔딩 장면이다. 28년이란 세월이 흘러 노병이 된 승무원들이 죽은 동료들이 안치된 묘지에 모여 함장과 해후하는 장면은 퍽 감동적이다. 젊은 시절 핵잠수함에 갇혀 갈등하고 반목하고 대립했던 오랜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미웠던 함장에게 거수경례하며 경의를 표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비록 전시가 아니어서 국가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진 못했지만, 그들 스스로 진정한 영웅이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 아닌가?

늙은 함장은 노병들에게 말한다. “(죽은 동료들에게) 영광스러운 게 무엇일까? 그들이 희생한 건 훈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때 거기에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해군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아니다. 우릴 위해서지. 그들의 동료를 위해서”라며 부하 노병들과 함께 술잔을 든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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