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무덥고 비가 많았지. 온갖 매미들이 밤낮으로 악을 쓰며 울어대는 바람에 잠마저 설쳤다. 황토흙 드문드문 남도 길은 멀고도 힘들었다. 불볕 뙤약볕 속에서도, 장대 같은 소나기를 맞으면서 때론 별 바라기를 친구삼아 기약 없는 나그네처럼 걷고 또 걸었지. 환청으로 남은 매미소리가 몇 년 간은 귓바퀴와 뇌리를 맴돌아 가슴 저리게 하는 아련한 추억으로 되돌아오곤 했었다. 여행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아련하고 애틋한 것. 더군다나 그 여행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사연으로 남아있는 지난날의 여행기 한 토막을 적어본다.
70년 초부터 시작된 혼미한 시국은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안개 속 터널처럼 세상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장기집권의 음모인 10월 유신헌법이 발표되기 직전의 일이라 언제 폭발할지 모두가 조마조마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세상살이가 어지러워지니 젊은이들 치고 무전여행 한 번 안 가본 이들과 데모에 가담 안 해 본 사람은 청춘이 아니라는 말까지 돌았다. 그 와중에서도 청바지와 통기타, 그리고 생맥주가 처음 나왔다. 뒤이어 히피족과 무전여행이라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젊음의 열정을 다소 식혀 주기도 했다.
7월 말 어느 날, 세상물정에 여린 악당 다섯은 몰래 동해남부선 기차를 탔다. 무전여행이라는 설렘과 기대, 생전 처음으로 미지의 세계로 가 본다는 오기와 투지로 눈을 반짝거렸다. 까까머리에 허름한 보릿짚 모자 쓴 친구, 카우보이모자를 멋있게 걸친 놈, 교련복 바지 입은 놈과 나팔바지 입은 친구들, 모두가 각양각색의 패션이었다. 덜컹대는 완행열차 뒤로 확확 달아나는 산야들과 빙빙 돌다 사라지는 산모퉁이 초가집, 돌담길 옆의 키 큰 해바라기들은 여행을 축하하는 듯 화사한 웃음을 보냈다. 수평선 저 멀리 한가한 고깃배가 노니는 절경의 남동해안 바닷가 기찻길을 따라 우리는 남으로 남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나마 입시지옥, 부모들의 잔소리, 사춘기 끝물에서 오는 일상의 고뇌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기분에 들떠 모두가 얼굴이 상기되었다. 완행열차 안에 오붓하게 모여 앉아 차창 밖을 구경하랴, 차장의 차표 검사가 언제 시작되는지 앞뒤 열차 칸을 예의주시 하면서 여행을 떠나는 중이었다. 물론 차표를 끊지 않고 무임승차를 햇다. 무임승차가 들키면 눈물을 머금고 목적지를 괘도수정 해야 할 판이라 가슴 한켠은 조마조마 했지만 주동자인 내가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왜냐하면 우린 무전여행 중이니까 수중엔 동그라미가 없을 수밖에. 무섬증보다도 대신에 간이 야간 부었을 뿐, 앞뒤 걱정 않고 우선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이었다. 여행안내도 대신 지리부도 책을 펼쳐가며 지나치는 역마다 동그라미로 체크를 했다. 경주역을 시발로 해서 동방-불국사-입실-호계-병영-울산-선암-덕하-망양-남창-서생-월내-좌천-일광-기장-송정-해운대-수영-거제-부전을 지나 세 시간여 여행 끝에 드디어 일차 목적지인 부산역 광장에 도착했다.
차표가 없으니 정식 개찰구 통과가 아닌, 수화물 전용통로로 빠져나와 짊어진 니꾸(배낭)을 먼저 밖으로 던져놓고 한 놈씩 월담을 감행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부산역 분수대 옆에는 앳띈 한 소녀가 울 듯 말 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아까 도착한 그 열차로 내려온다고 약속을 했는데 눈이 빠지도록 승객들을 쳐다봐도 애들이 보이지 않으니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악당들은 먼 길을 빙 돌아 왔으니 당연히 출입구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바람맞을 수밖에 없지. 뒤에서 다가가서 ‘혹시 경아’라는 애가 아니냐고 물으니 산적들을 쳐다보는 듯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해서 부산 가시내와 경주 촌놈과의 첫 조우는 악수 한번 없이 씩 웃으면서 시작되었다. 눈을 흘기면서 기다리는 사람을 그렇게 놀라게 하기 있냐면서 토라지는 모습을 보니 덧니가 인상적이었다. 어떤 모습일까? 펜팔으로만 사연을 주고받으면서 상상만 해 왔는데..., 자세히 쳐다보니 새하얀 얼굴에는 깨소금이 조금 묻어 있고 이마에는 보석 몇 개가 반짝이는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이었다.
부산시내구경은 처음이었다. 고층빌딩, 수많은 차량들과 인파로 인해 눈길을 어디 둘지 몰라 어리버리한 촌놈들을 인솔하여 들어간 곳은 부산역 앞의 냉면집이었다. 생전 처음 먹어 본 냉면이었다. 왜 그리 질긴지 고무줄 같았다. 거기에다 겨자소스를 한 숟가락 넣었으니 입안은 불타고 목구멍에 넘어간 면과 그릇에 남은 면이 연결되어 숨이 콱콱 막혀 죽을 뻔했다. 그렇다고 말은 못하고 어떻게 먹었는지 정신이 없었다. 그 애의 인솔 아래 우린 서대신동 송도해수욕장 모래사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워밍업 삼아 1박을 하면서 텐트 치는 법과 가스버너 작동법, 코펠사용 법을 익혔다. 야영훈련 때 대충 배웠지만 낑낑 거리면서 실전으로 해보니 쉽지 않았다.
어둠이 스며들자 모래사장엔 별이 쏟아졌다. 그 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애는 중3 때 학원 잡지에 실린 글을 보고 펜팔로 시작하여 알게 된 친구였다. 나보다 조숙한 듯 제법 어른스럽게 문학과 인생에 대해 조잘조잘 얘기를 잘했다. 생텍즈페리의 어린왕자와 하디의 테스, 황순원의 소나기 등을 이야기 했고, 나는 그때 헬만 헤세에 심취해 있어 제법 대화 상대가 되었다. 꿈결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와중에 하고 싶은 말이 입에 맴돌았으나 끝내 말은 하지 못했다. 둘이 ‘같이 이슬을 맞으면서 문학을 이야기 하고 인생을 논하니 ’넌, 알퐁스 도데 『별』의 주인공 『스테파논 아가씨』같다’고 말이다. 제법 죽이 맞아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들어가야겠다면서 다음 목적지를 묻기에 부산에서 걸어서 통영의 한산섬까지 갈 예정이라니까 깜작 놀라면서 진짜인지 물었다. 그 길이 얼마나 험하고 먼지 아느냐고 했다. 새벽 동이 트면 그냥 무작정 걸어서 갈 예정이라고 우겼다.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만 가는 방법을 한번 알아볼 테니 아침 일찍 출발하지 말고 기다려 보라면서 사라졌다.
아침 10시 쯤 됐을까? 그 애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슬며시 손을 내밀면서 웃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손에는 그녀가 건네준 통영 가는 배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다섯 명의 배삯인 천여 원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버스 입석 요금이 15원, 커피 한잔에 50원 했으니 몇 달 간 그 애의 용돈이 날아갈 거금이었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생각지도 못한 호사였다. 중앙동 제3부두에서 통영행 3등 여객선에 올랐다. 끼룩끼룩 갈매기소리와 함께 부웅! 뱃고둥 울리며 드디어 배가 출항했다. 안녕, 용두공원이여! 오륙도 섬아! 경아야! 우리는 이제 떠나간다. 배가 앞으로 진격하듯 우리의 인생은 거침이 없이 나아가리라. 갑판에 서서 그 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목적지로 향해 떠나갔다.
(다음에 계속)
첫댓글 재미난 무전여행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특히 나팔바지라는 말이 나오던데 저도 그 나팔바지 입던 시절에 나팔바지를 해 입었다가 아버지가 바지를 찢어버리고 혼난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그 시절에는 나팔바지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 무전여행이야기 참 재미있네요. 하회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휴가 못 가는 대신에 젊은 시절의 옛추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이곳은 며칠 째 주륵주륵 비가 내립니다. 이른 가을 장마이라네요
님의 좋은 글, 늘 공짜로 잘 읽고 있습니다. 후의에 용기를 얻어 상,중, 하 3편을 올리겠습니다
더듬어보는 옛추억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