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829]金鎭奇선생아호- 野石(야석),角山(각산),林川(임천)
野石(야석)
영덕(盈德)의 옛지명이 야성군(野城郡)이다.
角山(각산)
팔각산과 옥계계곡으로 유명한 달산면은 태어나신 주응리가
있는 山水가 빼어난 고장이다.
林川(임천)
흥해 용전(龍田)의 다른 이름
영덕(盈德), 영해(寧海) 양군이었던 것을
서기 1914년에 합병(合倂)하여 오늘에 이름
원(元) 영덕(盈德)
현(現) 영덕, 강구, 남정, 달산, 지품의 5개 읍면으로
삼국시대(三國時代)에는 야시홀(也尸忽)이라 하였다가
신라통일후 야성군(野城郡)이라 하였고
고려 초엽에 영덕(盈德)으로 개칭하여 현종조(顯宗朝)에
예주(禮州)에 속한 후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고려말 충선왕(忠宣王)때에 현(縣)으로 되고
조선조 태종(太宗)15년(서기1415년)에 지현사(知縣事)를 두었다가
1914년에 영해(寧海)를 합병하여 영덕군이라 칭하였음
龍田
1914년 신성동(新成洞)과 용전(龍田),
임천(林泉)의 일부를 합하여 용전리(龍田里)라 하고
각각 1,2리로 나누었다.
○ 신성동(新成洞) 원래 이 마을 북서쪽에 있던 안삼바리(三海)라는
어촌이 없어지고 이곳에 새로이 마을이 형성되자 신성동(新成洞)
혹은 삼바리라 부르게 되었다 전한다.
○ 용전(龍田) 마을 뒤에 용두(龍頭)들이 있는데,
이 지역에 누워 있던 큰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곡강의 하구를 치니
그 때까지 호수였던 이 지역의 물이 빠져서 육지가 되었다는 전설에
의해 용전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용두들 끝에 있는 동제당에서 정월보름에 동제사를 지내오다가
13년 전부터 폐지하였다.
도로변에 곡강최씨 재실인 용전재(龍田齋)가 있다.
○ 임천(林川) 용전과 합하여 2리에 속한다.
노씨와 금씨가 마을을 일구었다고도 전하며,
옛 길을 기준으로 용전과 용천으로 분리된 상태다.
곡강지서와 곡강면 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