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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인 안중근의사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안중근을 그리다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
和國未成猶慷慨政略不改眞可憐(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련)
동양의 대새를 생각해 보면 아득하고 어두우니 뜻을 품은 남아가 어찌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있으랴
평화로운 시국을 아직 이루지 못해 더욱 강개한데 정략을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불쌍하도다
敬天 (경천)
하늘을 공경함
경천애인에서 인용한 것이다.
百世淸風(백세청풍)
백세에 걸쳐 부르는 맑은 바람으로
풀이되며 충절과 곧은 절개의 상징으로서
안중근의사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獨立(독립)
무신 2월 더 여순감옥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서
澹洦明志寧靜致遠(담백명지녕정치원)
담백한 밝은뜻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오래 전수 된다.
貧而無諂富而無驕(빈이무첨부이무교)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불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간다.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글을 읽지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나라을 위하여 봄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의사를 경호했던 일본군 헌병 지바 도이치에게 써준 유묵이다.
제대 후 지바는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복하여 이유묵을 일본에 가지고 가서 사진관 함께 정성으로 모셨다. 그의 사후 미 망인과 양녀 미우라(삼포)가 봉안하다가 구리 고마의 다이린지를 거쳐 1980년 도쿄국제연구원을 통해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기증되었다.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유묵 오른쪽에 증(증) 안감(안감) 감찰관이라 씌어져 있다.
이는 친절하게 대해준 당시 쉬순 법원 감찰관 야스오카에게 아에노(上野)가 소장하다가 1976년 도쿄 국제 한국 연구원을거쳐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기증하였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이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孤莫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
스스로 잘난척 하는 것 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는 뜻으로
평소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 안중근의사의 겸손한 성품이
표현된 글귀다.
歲寒然後知松伯之不彫(세한연후지송백지불조)
눈보라 친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안중근의사의 며느리 정옥녀 여사가 소장하던 것으로 안중근의사 승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나오는 글귀로 안중근의사의 옥중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에 그린 세한도에도 이글귀가 인용되었다.
博學於文約之以禮(박학어문약지이례)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서 몸을 단속한다.
極樂(극락)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
안중근의사의 신앙과 종교관이 깃들 글귀이다.
天堂之福永遠之樂(천당지복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志士仁人殺身成仁(지사인인살신성인)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옮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 지사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대한독립 안중근의사 초상화
안중근의사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