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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Shema)에 대하여
1. 유대인 역사와 신앙 교육의 중요성
유대인들의 역사는 지구상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고난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한 사실은 4천년이 넘는 민족의 역사 속에서 제대로 나라를 유지하였던 시기는 다윗과 솔로몬의 100여년 정도의 통치기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확인이 되고 있다. 지난 2천여 년의 역사는 나라를 상실한 채 100여개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랑민족의 역사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민족을 상실하지 않고 끊임없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어느 민족도 이루어내지 못한 위대한 문화적 유산을 인류에게 남겨놓은 민족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고난의 역사를 견디어내며 인류에게 위대한 문화적 업적을 남겨놓을 수 있었을까?
물론 그들에게는 다른 민족이 소유하지 못한 독특한 유산이 있었다.
그것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책 곧 성경과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민족적 신앙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무리 위대한 신앙과 문화적 유산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지 않고
또한 그것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수하지 않았더라면 그 효용성과 영향력은 분명히 한 시대에 제한되고 말았을 것이다. 무려 수 천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엄연히 현실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적 유산 역시 더욱 돋보이는 것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신앙과 경건한 삶을 후손들에게 성실히 전수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서이면서 자녀들을 위한 신앙교육의 대강령인 ‘쉐마’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2.‘쉐마’란 무엇인가?
‘쉐마’는‘듣다’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동사‘사마아’의 명령형으로서‘들어라’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신명기 6:4-9의 시작인‘쉐마 이스라엘’곧‘이스라엘아, 들어라’라는 귀절의 첫 단어에서 나왔다.
유대인들은 책이나 어느 귀절의 제목으로 처음 나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관습이었는데, 그런 점에서‘쉐마’는 단순히‘들어라’라는 뜻이 아니라, 신명기 6:4-9 전체를 지칭하는 제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신명기 6:4-9 이외에도 신 11:13-21과 민수기 15:37-41을 ‘쉐마’에 해당하는 내용을 취급하고
있다. 이 두 귀절은 신명기 6장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아니면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자는 계명의 순종과 그에 다른 보상과 불순종에 대한 징벌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반면에, 후자는 술을 만들어 옷단 귀에 달아야함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옷단 귀에 술을 달아야 한다는
것은 곧 옷을 입고 다닐 때마다 옷에 단 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기억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후대에 이르러 이러한 관습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남에게 자신의 경건성을 보이기 위한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다니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적 경건을 크게 책망하사기도 하였다 (마 23:5).
3. 유대교에서 ‘쉐마’의 위치와 중요성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서인‘쉐마’는 성전시대에는 제사장이 암송하는 성전 예배의식 중의 하나이었으며, 성전이 파괴된 이후 시대에는 회당에서 거행되는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신약시대를 전후하여서는 쉐마를 암송하는 관습이 정착되었는데, 이러한 쉐마의 암송은 곧 천국의 멍에를 메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미쉬나가 편집된 이후 시대(200년 이후)에 쉐마의 암송은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생활 관습으로 자리잡았다.
유대인들 특히 유대인 남자들은 신명기 6:7에 근거하여 매일 2차례씩 쉐마 내용을 암송하였는데, 이것은 유대인 남자들에게 부여된 최소한도의 종교적 요구이기도 하였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남자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쉐마의 첫 귀절을 가르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쉐마는 또한 순교자들의 마지막 고백이었다는 점과 관련하여 사람이 죽을 때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 이
땅에서 최후로 남길 신앙고백으로 쉐마를 암송케 하였다. 이것은 유대교에서 쉐마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다시 말하여, 유대교는 말을 시작하는 싯점에서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쉐마를 암송함으로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4. ‘쉐마’의 내용과 구조
쉐마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진다.
첫 번째 내용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신 6: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하신 창조자이시며 그래서 절대자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다른 신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전혀 허용치 않으시는 분이시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만을 사랑과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시다.
두 번째 내용은 그런 유일하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신 6:5).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 자세로서 율법의 준수 이전에 갖추어야 할 마음 자세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이란 곧 신앙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쉐마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마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레브’는 사람의 중심으로서 의지적 차원을 보여준다.
성품에 해당되는‘네페쉬’는 인간의 존재 자체로서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힘에 해당되는‘메오드’는 육체적인 임을 포함한 최선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내용은 하나님 뜻에 합한 삶을 모범적으로 살되 그런 신앙과 삶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를 다루는 신앙교육의 구체적 강령이다 (신 6:6-9).
여기에서 우리들은 기독교인으로서 늘 암송하는 사도신경과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인 쉐마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들의 사도신경은 신앙의 고백에 초점과 강조가 있다고 한다면, 유대인들의 쉐마에는 신앙고백과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그런 삶과 신앙을 자손들에게 전수해야 할 구체적인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구체적인 신앙교육 방법론은 수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변함 없이 지켜져 오고 있다.
쉐마에 나오는 신앙교육의 방법론을 자세히 살펴보기에 앞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주체가 각 가정의 부모들이라는 점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 같지만, 오늘 우리들의 교회 현실에서 볼 때 이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에서 과연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진 주체로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어쩌면 자녀들의 일반 교육에는 남다른 열성을 보이지만, 실상 신앙교육에 관하여는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맡겨 놓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사도 바울도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해야한다고 당부와 더불어 부모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엡 6:4). 이것은 자녀들의 부모공경과 부모들의 자녀 양육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관적 관계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5. ‘쉐마’에 나타난 신앙교육의 방법론
1) 교사로서의 부모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 자세:“마음에 새겨라” (알 레브)
가정에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진 주체자는 부모들이다. 그런데 이 부모들이 먼저 솔선 수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이지적 자세가 아니라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하는 자세 곧 경험적 이해에 근거하여 인격적으로 말씀에 응답의 자세를 의미한다.
2) 반복교육이 중요성:“가르쳐라” (쉬난탐)
여기에서 ‘가르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동사의 기본적 의미는 두 가지, 즉 ‘날카롭게 하다’와 ‘반복하다’이다. 전자의 의미는 내면적 차원에서 가르침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외형적 차원에서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되 그 의미라 늘 날카롭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침의 이 두 가지 의미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중요한 내용을 반복하여 숙달하는 것이 좋은 교육의 방법이다. 유대인 교육의 특징은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반복에만 머물게 되면 내용의 중요성을 상실하기 싶다. 반복하되 그 내용을 적절하게 적용하는 예리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최고의 기도 내용이다. 그 기도문 속에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간구 할 내용이 압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도문을 의미 없이 반복만 한다면 중요한 기도의 내용을 잃어버리게 된다. 모일 때마다 반복하되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이 적절하게 해석되고 적용되고 날카로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3) 일상적 삶으로서의 무의도적 교육: “강론하라” (디베르)
‘강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의 어원적 의미는 ‘광야에서 양떼를 인도하다’에서 파생된 것이다. 광야에서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의 지시하심을 거부하는 것은 곧 사막 속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이 강론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진리의 말씀으로서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만큼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동사는 규격을 갖춘 분위기에서의 강론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누는 대화를 의미한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종의 무의도적 신앙교육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의 장소는“집안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이며, 교육하는 시간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이다. 다시 말하여, 신앙교육은 시공을 초월하여 삶의 전 영역에 침투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신앙을 가르치는 교육이 삶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4) 신앙교육을 위한 외적 표시들
쉐마는 자녀들을 잘 가르치는 방법으로서 신체의 중요한 부분과 삶의 공간 중 가장 중요한 지점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다. 민수기 15장에서는 기록된 옷단 귀에 술을 달으라는 명령을 추기하고 있다.
ㄱ. 손목에 매는 기호와 미간에 붙이는 표 (신 6:8):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체의 일부분 곧 손목에 적어 두고 미간에 붙여둘 만큼 철저히 지켜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 명령이 처음부터 문자적으로 해석되고 준수될 내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대교는 구약시대부터 이 내용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에배의식으로 정착시켰다. 유대인들은 기도하면서 성경의 네 구절(출 13:1; 13:11; 신 6:4-9; 11:13-21)이 기록된 양피지를 담아 넣은 작은 가죽 상자를 긴 가죽끈으로 연결하여 팔과 이마에 잡아맨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가리켜‘테필린’이라고 부른다. 테필린은 원래‘기도’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단어이지만, 유대교 의식에서는 성경 귀절이 적힌 양피지가 담긴 작은 가죽 상자를 일컸는 명칭이 되었다. 테필린은 두개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왼쪽 손에 매고 다른 하나는 머리에 매게 된다. 유대인들의 해석에 의하면, 왼쪽 손은 심장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고하는 정신적 기능을 의미한다. 테필린은 성인식을 거친 13세 이상의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아침과 저녁 기도할 때마다 착용해야만 한다.
ㄴ. 문설주와 바깥문의 부착하는‘메주자’
‘메주자’라는 히브리어의 본래 의미는 ‘문’(door)과 ‘문설주’(door-post)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의식으로 정착하면서 집의 문설주에 부착하는 조그만 양피지를 의미하였다. 이 양피지에는 ‘쉐마’의 내용을 손으로 직접 기록하였으며, 그것을 동그랗게 말아서 부착시켰다. 구약성서의 후대에 이르러서는 이 양피지를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통에 넣어 부착시키면서 그런 통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다. 메주자를 부착하는 위치는 들어가는 쪽에서 볼 때 문의 오른쪽 편이다. 그리고 집을 드나들 때 쉽게 발견되도록 사람의 평균 눈높이 정도에 부착하였다.
유대인들이 사는 집이면 예외 없이 붙어 있는 이 ‘메주자’ 풍습은 성서시대 이래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유대인의 가장 오래된 풍습 중의 하나이다. 메주자 풍습은 구약시대에도 지켜졌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고증이 된 가장 오래된 메주자는 쿰란 공동체에서 발견된 것이다. 여기에서 발견된 메주자 양피지는 약 6.5cm x 16cm 의 크기로서 신명기 11장의 쉐마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유대인의 풍습과는 달리 사마리아인들의 메주자는 큰 돌을 다듬어 그 위에 십계명을 새겨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둘메주자를 문 윗쪽에 가로로 댄 상인방(上引枋)에 달아 놓거나, 아니면 문에서 가까운 집밖에 놓았다.
오늘날 이스라엘서의 메주자는 모든 집의 입구에 마땅히 부착이 되어 있어야 하고, 집안에서는 화장실이나 창고, 그리고 헛간 등을 제외한 모든 방문에 부착해야 한다. 이렇게 부착된 메주자를 유대인들은 집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문 옆에 달려 있는 메주자를 손을 만지고 그 손을 다시 입에 대는 입맞춤의 관습을 지켜오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순종하겠다는 표시이다. 유대교의 규정에 따르면, 7년에 적어도 두 번씩은 정기적으로 메주자를 점검하여 상자 안의 양피지에 적힌 글자를 읽을 수 있는가 확인해야 한다. 만일 집을 팔거나 세를 놓게 되면, 다른 것은 다 주인이 가져 갈 수가 있지만 메주자 만큼은 반드시 집에 들어 올 사람을 위하여 남겨 놓아야 한다. 개인 집 이외에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는 회당이나 정부의 공공건물 출입구에도 메주자를 달아야 한다.
메주자 풍습은 무엇보다도 신앙교육의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매일 드나들면서 문설주에 달려 있는 메주자는 하나님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신앙고백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신앙을 강화시키는 역활을 하게된다. 그래서 탈무드의 한 랍비는, 문설주의 메주자는 온 가정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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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