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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克己復禮)
자기를 극복해 예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른다는 말이다.
克 : 이길 극(儿/5)
己 : 자기 기(己/0)
復 : 돌아갈 복(彳/9)
禮 : 예도 예(礻/13)
(유의어)
극복(克復)
출전 :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욕망(慾望)이나 사(詐)된 마음 등을 자기자신(自己自身)의 의지력(意志力)으로 억제(抑制)하고 예의(禮儀)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이다.
극기(克己)란 ‘나를 이긴다’는 뜻이고, 복례(復禮)는 ‘예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예의범절을 따른다는 뜻이다.
논어(論語)에는 인(仁)에 관한 언급이 매우 많다. 이유는 공자(孔子)의 대표적 사상이 인(仁)이었기 때문이며, 극기복례(克己復禮)도 그 인의 정의의 하나이다.
논어(論語)에는 ‘인(仁)은 무엇인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누가 인한가? 모든 사람이 인(仁) 때문에 살면서 인(仁)을 모르고 인을 외면한다’고 하였으며 인(仁) 좋아하기를 색 좋아하듯 한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도 하였다.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 안연이 인(仁)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 하루라도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함은 자기를 말미암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말미암겠는가.'
顔淵問仁, 子曰 :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안연(顔淵)이 그 조목(條目)을 여쭈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예(禮)가 아닌 것은 듣지 말고, 예(禮)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子曰 :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여기서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유래 되었으며, 공자(孔子)의 많은 제자들이 이 인(仁)에 대해 질문을 하여 왔지만 그때마다 공자(孔子)는 각각 그들의 정도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하였다.
수제자 안연(顔淵)에게 대답한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의 정의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으며, 이 장은 논어(論語)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유명한 장으로 예(禮)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극기는 마음의 욕망과의 싸움보다는 극기주의(금욕주의), 극기운동 등 육체적 훈련과정을 지칭하는 경우에 많이 쓰고 있다.
극기(克己)란 나를 이기는 것이다. 나란 이기적인 나다. 이기적인 나를 이기고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버리라는 것이다.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無所有處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가르침이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결국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라는 것인 데, 죽어야 살리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나, 무한인욕을 가르친 불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복례(復禮)란 예(禮)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유가의 화두인 예(禮)란 무엇인가. 예(禮)란 예의다. 예의란 사람이 사회적으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다.
나아가야할 때 나아가고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는 것이다. 나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의 사람 사는 세상엔 반드시 서로가 지켜야할 도리가 있다. 그것이 예의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남에게 해로움을 끼치지 않아야하고 사회적 공동체의 질서와 평안을 유지하기위해서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에 효도(孝道)하고 밖에 나가서는 어른을 공경(恭敬)하는 것이 바로 유가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 극기복례(克己復禮)
나를 이기고 예의를 되살려라
공자는 널리 배운 것을 예의로써 잡도리하라는 뜻으로 '약지이례(約之以禮)'를 말했다. 이 표현의 고갱이는 '약(約)'에 있다. 약(約)은 '묶다', '동이다'는 뜻으로, 단단히 죄어서 부피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행위에 있어서는 꾸밈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 깔밋하게 잡도리하는 것, 즉 '소박함', '간결함', '간소함' 등을 뜻한다. 이렇게 하는 수단이나 방법이 '예(禮)'인 셈인데, 그러면 예의란 무엇인가?
논어 안연(顔淵)편에 극기복례(克己復禮)에 대한 문답이 나온다.
안연이 어짊에 대해서 여쭈자, 공자는 '나를 이기고 예의를 되살리는 것이 어짊이다(克己復禮爲仁)'고 대답했다.
분명하게 와 닿지 않았는지, 안연은 자세하게 대답해 달라고 청했다.
이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의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의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의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의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자, 극기복례의 뜻이 분명해졌는가? 여전히 애매하고 모호하게 느끼실 분들도 계시리라. 그렇더라도 괴이하지 않다. 공자의 대답은 대개 간결한데, 그 간결함이 마치 압축 파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면서부터 아는 자 곧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라는 찬사를 받은 안연조차 갸우뚱해서 더 자세하게 말해 달라고 청했을 정도이니.
사실 안연이 갸우뚱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일반적인 예의나 예법은 기원전 1150년 쯤 주(周) 왕조가 천하 종주국이 되면서부터 내세운 뒤로 수백 년 동안 전승되면서 권위를 가졌던 것, 즉 이미 관습이나 제도로서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만약 그런 예의를 회복하거나 되살려야 했다면, 공자가 '복례(復禮)'만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복례' 앞에 '극기(克己)'를 앞세웠다.
소박하게 해석해도 '극기'는 나의 사사로움, 어리석고 헛된 마음을 누른다는 뜻이다. 이는 예의를 단순히 형식으로 이해한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예의라 한 것인가? 매사문례야(每事問禮也), 일마다 묻는 것이 예의다.
공자는 무엇을 예의라 여겼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역시 '논어'에서 찾을 수 있다. '팔일(八佾)' 편에 나온다.
공자가 벼슬을 한 뒤, 노나라 군주가 태묘(大廟)에서 제사 지내는 일에 참석했을 때다. 공자가 일마다 물으니, 어떤 이가 말했다. '누가 저 추 땅의 촌놈이 예를 안다고 말했는가? 태묘에 들어와서는 일마다 묻고 있으니 말이야(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추 땅의 촌놈'은 공자의 부친 숙량흘(叔梁紇)이 추 땅 출신이어서 나온 표현이다. 아무튼 이렇게 말할 만도 하다. 공자는 20대부터 이미 예악에 달통한 인물로 알려졌는데, 나이 쉰에 태묘에 들어와서는 귀찮게 자꾸 묻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공자는 몰라서 물었던 게 아니다. 태묘의 제사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다만 직접 참석한 것은 처음이어서 절차마다 하나하나 물으며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이론과 실제는 다를 수도 있으므로. 공자의 겸손과 삼가는 마음도 아울러 깔려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그런 비난에 대해 공자가 내뱉은 짤막한 한 마디다. '이게 예다(是禮也).'
묻는 것이 예의라는 말이다. 그러나 몰라서 묻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알든 모르든, 익숙하든 낯설든 간에 스스로 묻거나 누군가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절차와 방법이 정해진 제사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크든 작든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일에서는 더욱더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이미 다 안다는 듯이,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듯이 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은가?
요컨대, 예의란 상황에 따라 알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처럼 똑같은 상황에 두 번 맞닥뜨리는 일은 없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이 어떤 상황인지, 적절하고 적실한 답이 무엇인지를. 배운 게 많아도 소용없다, 묻지 않는다면. 일마다 묻는 것이 예의다(每事問, 禮也)!
어제보다 더 나아지지 않은 날은 삶이 아니다
고등학교 입시에 합격한 날. 합격증을 받으러 본관에 함께 들어서던 아버지가 “아!”하는 비명 같은 탄성을 질렀다. 나도 놀랐지만 주위에 있던 이들도 모두 놀랐다. 이어서 아버지는 큰소리로 “참 좋은 학교에 합격했다.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게 저거다. 저렇게 현관에 떠억 하니 내건 창학정신을 봐라. 일류학교답다”라고 했다. 아버지가 지팡이를 들어 가리킨 편액에 모두 눈길을 줬다. 그날 본 고사성어가 ‘극기복례(克己復禮)’다.
나중에 알았다. 그 액자는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제자(題字)한 작품이었다. ‘극기복례’는 ‘욕망이나 삿(詐)된 마음 등을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씀에서 유래했다. 제자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인(仁)에 관해 묻자 가르친 말이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 만일 사람이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온다면, 그 영향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인은 제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남의 힘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안연이 다시 인을 실천하는 조목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름’을 뜻하는 ‘극복(克復)’은 ‘극기복례’의 줄임말이자 동의어다. 국어 시험에 저렇게 썼다가 틀렸다. 표준 국어 대사전은 ‘극복(克服)’으로 쓴다.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내거나 적을 이겨 굴복시킴’을 의미하는 말이란다. ‘극복(克復)’은 ‘이기어 도로 회복하다’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지금 봐도 차이를 모르겠다.
아버지는 예(禮)를 형식으로 보았다. 아버지는 “형식 속에 내용을 담는 것이지 내용에 형식을 붙이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래서 형식을 중요시했다. 아버지는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그 안에 내용을 꽉 채워라. 그러자면 맨 먼저 너의 제원을 파악해라. 100m를 몇 초에 달릴 수 있는지, 밥을 며칠 동안 굶어도 살 수 있는지, 잠을 며칠이나 안 자도 버틸 수 있는지부터 너를 모두 시험해라”라고 했다. 이어서 아버지는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할 수 없는지를 살펴라. 그러면 뭘 배워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거다. 너도 모를 앞날의 너를 찾고 그려라”라고 주문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육은 전인교육이다. 여기서 앞으로 살아갈 모든 걸 배우고 익혀라. 그 이후에는 간섭 안 한다. 대학은 네가 가야겠다면 알아서 가라”라고 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 후 점검은 했지만 간섭하지 않았다.
현관을 나와 작은 정원을 보고 아버지는 또다시 탄성을 질렀다. ‘성심껏 배우자 책임을 다하자 나라를 빛내자’라는 교훈석을 보고서다. 교훈을 또박또박 힘주어 읽은 아버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저기 다 새겨놨다. 하나도 버릴 말이 없다. 반드시 지켜라. 그중 첫째가 성심이다. 성심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네가 봐서 오직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지는 삶이면 된다. 그렇지 않은 날은 삶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내 삶의 목표가 정해졌다. 나는 따랐고 지켰다. 내 힘으로 얻은 결과여서 소중하다.
정성을 다하는 성질이 성실성(誠實性)이다. 사전은 ‘사회규범이나 법을 존중하고 충동을 통제하며 목표 지향적 행동을 조직하고 유지하며 목표를 추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성실성을 정의한다. 이 특질을 나타내는 말은 체계적, 믿음직함, 근면, 규칙적, 정돈, 시간을 잘 지킴, 야망이 큼 등이다. 인간이면 반드시 지키고 가꾸어야할 덕목이다. 손주들에게도 물려줘야 할 첫 번째 품성이다.
▶️ 克(이길 극)은 ❶상형문자로 剋(극)의 간자(簡字)이다. 克(극)은 사람이 갑옷을 입은 모양을 본떠 갑옷의 무게에 견딘다는 뜻에서 전(轉)하여 잘하다, 이기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克자는 '이기다'나 '참고 견디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克자는 十(열 십)자와 兄(맏 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克자의 갑골문을 보면 맹수가 입을 벌려 돌도끼를 으스러트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승리를 거두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상대의 돌도끼를 이빨로 으스러트리는 모습을 통해 '제압했다'나 '이기다'는 뜻을 표현했다. 이것이 후에 문자화되는 과정에서 十자와 兄자가 결합한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克(극)은 ①이기다 ②해내다 ③참고 견디다 ④능(能)하다 ⑤능력(能力)이 있다 ⑥이루어내다 ⑦메다 ⑧다스리다 ⑨정돈(整頓)하다 ⑩승벽(勝癖: 지기 싫어하는 성질) ⑪그램,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길 승(勝), 견딜 감(堪), 참을 인(忍), 견딜 내(耐)이다. 용례로는 싸움에 이겨서 적을 복종시킴 또는 곤란을 이겨내어 마음대로 함을 극복(克服), 원래의 태도로 되돌아 감을 극복(克復), 제 사욕을 의지로 눌러 이김을 극기(克己), 속속들이 잘 밝힘이나 똑똑히 밝힘을 극명(克明), 집안을 잘 다스림을 극가(克家), 어버이를 잘 섬김을 극효(克孝), 적을 무찔러 나라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함을 극정(克定), 사사로운 욕심을 이겨 내고 정려함을 극려(克勵), 어려움을 참고 이겨냄이나 곤란 또는 난관을 극복함을 극난(克難), 욕심을 눌러 이김을 극욕(克慾), 매우 풍요로움을 극풍(克豐), 잘 이행함을 극천(克踐), 능히 해냄을 극과(克果), 부지런하고 검소함을 극근(克勤), 자기를 누르고 사양함을 극양(克讓), 이겨서 복종시킴을 극종(克從),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눌러 다스림을 극치(克治), 싸움에 이김을 극첩(克捷), 충분히 감당함을 극감(克堪), 난관을 극복함을 초극(超克), 온화하고 공손함을 온극(溫克), 시새워 이기려고 함을 기극(忌克), 충분히 조사함을 심극(審克), 권세를 믿고 함부로 돈이나 물건을 거두어 들임을 부극(掊克), 욕망이나 사된 마음 등을 자기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극기복례(克己復禮), 네 가지 악덕으로 남을 이기기를 즐기는 일과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는 일과 원한을 품는 일과 욕심을 내고 탐내는 일을 이르는 말을 극벌원욕(克伐怨慾), 성인의 언행을 잘 생각하여 수양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다는 말을 극념작성(克念作聖),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길을 개척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극세척도(克世拓道),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을 이유극강(以柔克剛) 등에 쓰인다.
▶️ 己(몸 기)는 ❶상형문자이나 지사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래 구불거리는 긴 끈의 모양을 본떴고, 굽은 것을 바로잡는 모양에서 일으키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일으키다의 뜻은 나중에 起(기)로 쓰고, 己(기)는 천간(天干)의 여섯번째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己자는 '몸'이나 '자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몸'이란 '나 자신'을 뜻한다. 己자의 유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사람이 몸을 구부린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굽의 있는 새끼줄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己자와 결합한 글자를 보면 새끼줄이 구부러져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다만 己자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여전히 '나 자신'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己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상용한자에서는 뜻과 관련된 글자가 없다. 다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새끼줄이나 구부러진 모양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니 상황에 따른 적절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己(기)는 ①몸 ②자기(自己), 자아(自我) ③여섯째 천간(天干) ④사욕(私慾) ⑤어조사(語助辭) ⑥다스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여섯 번째를 기사(己巳), 열여섯째를 기묘(己卯), 스물여섯째를 기축(己丑), 서른여섯째를 기해(己亥), 마흔여섯째 기유(己酉), 쉰여섯째를 기미(己未)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물건을 기물(己物), 자기 마음을 기심(己心), 자기가 낳은 자녀를 기출(己出), 자신의 의견이나 소견을 기견(己見), 자신의 초상을 기상(己喪), 자기의 소유를 기유(己有), 자기의 물건은 기물(己物), 제 몸이나 제 자신 또는 막연하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을 자기(自己), 자기 이익만 꾀함을 이기(利己), 자신의 몸을 닦음을 수기(修己), 안색을 바로잡아 엄정히 함 또는 자기자신을 다스림을 율기(律己), 자기 몸을 깨끗이 함을 결기(潔己), 몸을 가지거나 행동하는 일을 행기(行己), 신분이나 지위가 자기와 같음을 유기(類己), 자기를 사랑함을 애기(愛己), 자기 한 몸을 일기(一己), 자기에게 필요함 또는 그 일을 절기(切己), 자기가 굶주리고 자기가 물에 빠진 듯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일컫는 말을 기기기익(己飢己溺), 중종때 남곤 일파 조광조 등을 쫓아내어 죽인 사건을 일컫는 말을 기묘사화(己卯士禍), 기미년 3월1일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한국의 독립운동을 일컫는 말을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봄을 일컫는 말을 자기관찰(自己觀察), 모든 사고와 판단과 행동을 자기 중심으로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기본위(自己本位), 자기의 이해와 쾌락과 주장을 중심으로 삼고 남의 처지를 돌보지 않는 주의를 일컫는 말을 애기주의(愛己主義), 자기 존재를 인정 받으려고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는 심리적 경향을 일컫는 말을 자기과시(自己誇示), 스스로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기도취(自己陶醉), 자신의 생활은 검약하게 하고 남을 대접함에는 풍족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약기유물(約己裕物) 등에 쓰인다.
▶️ 復(돌아올 복, 다시 부)은 ❶형성문자로 复(복, 부)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复(복)이 합(合)하여 '돌아오다', '다시'를 뜻한다. 复(복)은 아래 위가 같은 모양이고 중배가 부른 그릇과 발의 모양과를 합(合)한 글자이며 본디 온 길을 다시 돌아 가는 일을,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가는 일을, 그래서 復(부)는 '오가는 일', '나중에 돌아가다', '돌려보내다', '거듭하다', '다시', '또'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復자는 '돌아오다'나 '회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復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复(갈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复자는 성(城)을 되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复자 이미 '돌아오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 彳자를 더한 復자는 '(길을)되돌아오다'라는 뜻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復자는 후에 '회복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는데, 몸이 아팠다가 낫는 것도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復(복, 부)은 (1)초혼(招魂)할 때에 부르는 소리 (2)복괘(復卦) 등의 뜻으로 ①회복(回復)하다 ②돌아가다, 돌아오다 ③돌려 보내다, 되돌리다 ④고(告)하다, 초혼(招魂)하다 ⑤은혜나 원한을 갚다 ⑥겹치다, 중복(重複)되다 ⑦되풀이하다 ⑧채우다, 보충(補充)하다 ⑨머무르다 ⑩가라앉다, 여유(餘裕)를 가지게 되다 ⑪뒤집다 ⑫대답(對答)하다 ⑬실천하다, 이행하다 ⑭덜다, 제거(除去)하다 ⑮면제(免除)하다 ⑯성(盛)하다(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⑰사뢰다(웃어른에게 말씀을 올리다), 말씀드리다 ⑱복(復), 복괘(復卦: 육십사괘(六十四卦)의 하나) ⑲복명(復命), 주청(奏請) ⑳흙을 쌓아 지은 집, 그리고 ⓐ다시(부) ⓑ거듭, 거듭하여(부) ⓒ거듭하다, 다시 또 하다(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떨어질 추(墜), 떨어질 타(墮), 떨어질 운(隕), 떨어질 락(落), 떨어질 령(零), 떨어질 운(霣)이다. 용례로는 본디 상태나 자리로 다시 돌아감을 복귀(復歸), 부서지거나 없어진 사물을 원래의 모습이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을 복원(復元), 그전 모양으로 되게 함을 복구(復舊), 원수를 갚음을 복수(復讐), 잃거나 정지되었던 권리나 자격을 다시 찾음을 복권(復權), 한 번 배운 것을 다시 익히러 공부함을 복습(復習), 그만두었던 것을 다시 간행함 또는 그 간행을 복간(復刊), 명령이나 지시하는 말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되풀이 함을 복창(復唱), 어떤 까닭으로, 그만두었던 직을 다시 회복함을 복직(復職), 정학이나 휴학하고 있던 학생이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됨을 복학(復學), 한 번 행하여지지 않게 된 것을 다시 한 번 행하여 지도록 하는 것을 부활(復活), 한 번 쇠퇴한 것이 다시 성하여 일어남 또는 일어나게 함을 부흥(復興), 사라져 없어졌던 것이 다시 생기어 남을 부생(復生), 다시 회복함을 부회(復回), 한 가지 일을 되풀이 함을 반복(反復), 옛일을 되찾음 또는 잃었던 나라를 되찾음을 광복(光復), 갔다가 돌아옴 또는 가는 일과 돌아오는 일을 왕복(往復), 원수를 갚음을 보복(報復), 일이나 건강 등을 나빠진 상태에서 다시 좋은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회복(恢復), 원래의 태도로 되돌아 감을 극복(克復), 옛날 그대로도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이르는 말을 복고사상(復古思想), 욕망이나 사詐된 마음 등을 자기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극기복례(克己復禮), 동지를 고비로 음기가 사라지고 양기가 다시 온다는 뜻으로 나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 계속되다가 간신히 행운이 옴을 이르는 말을 일양내복(一陽來復), 상관으로부터 명령과 임무를 받으면서 그 내용을 되풀이 말하며 틀림없이 그 일을 해내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일을 일컫는 말을 복명복창(復命復唱), 어떤 일을 한번 끝내어 마쳤다가 다시 시작함을 일컫는 말을 종이부시(終而復始),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뜻으로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을 잡음 혹은 곤경에 처해 있던 사람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을 사회부연(死灰復燃) 등에 쓰인다.
▶️ 禮(예도 례/예)는 ❶형성문자로 豊(례)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礻; 보이다, 신)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신에게 바치기 위해 그릇 위에 제사 음식을 가득 담은 모양의 뜻을 가진 豊(풍, 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제사를 풍성하게 차려 놓고 예의를 다하였다 하여 예도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禮자는 ‘예절’이나 ‘예물’, ‘의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禮자는 示(보일 시)자와 豊(예도 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豊자는 그릇에 곡식이 가득 담겨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예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도’라는 뜻은 豊자가 먼저 쓰였었다. 고대에는 추수가 끝나면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때 수확한 곡식을 그릇에 가득 담아 올렸는데, 豊자는 바로 그러한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후에 豊자가 ‘풍성하다’나 ‘풍부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示자를 더한 禮자가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禮(례)는 ①예도(禮度) ②예절(禮節) ③절(남에게 공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혀 하는 인사) ④인사 ⑤예물(禮物) ⑥의식(儀式) ⑦책의 이름(=예기禮記) ⑧경전(經典)의 이름 ⑨단술(=감주), 감주(甘酒: 엿기름을 우린 물에 밥알을 넣어 식혜처럼 삭혀서 끓인 음식) ⑩예우(禮遇)하다 ⑪신을 공경(恭敬)하다 ⑫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예의에 관한 모든 질서나 절차를 예절(禮節), 사회 생활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손하며 삼가는 말과 몸가짐을 예의(禮儀),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우(禮遇), 예법에 관한 글을 예문(禮文), 예로써 인사차 방문함을 예방(禮訪), 존경하여 찬탄함을 예찬(禮讚), 예법과 음악을 예악(禮樂), 예법을 자세히 알고 그대로 지키는 사람 또는 그러한 집안을 예가(禮家), 사례의 뜻으로 주는 물건을 예물(禮物), 예법을 따라 베푸는 식으로 결혼의 예를 올리는 의식을 예식(禮式),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대(禮待), 예법으로써 그릇된 행동을 막음을 예방(禮防), 예절과 의리를 예의(禮義), 혼인의 의례를 혼례(婚禮), 스무살이 되어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고 어른이 되던 예식을 관례(冠禮), 예의에 벗어나는 짓을 함을 결례(缺禮), 볼품없는 예물이란 뜻으로 사례로 주는 약간의 돈이나 물품을 박례(薄禮), 장사지내는 예절을 장례(葬禮), 예법에 따라 조심성 있게 몸가짐을 바로함을 약례(約禮), 예의가 없음을 무례(無禮), 아내를 맞는 예를 취례(娶禮), 언행이나 금품으로써 상대방에게 고마운 뜻을 나타내는 인사를 사례(謝禮),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인사를 경례(敬禮), 말이나 동작 또는 물건으로 남에게서 받은 예를 다시 되갚는 일을 답례(答禮),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 하는 태도를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의와 음악이 깨지고 무너졌다는 뜻으로 세상이 어지러움을 이르는 말을 예괴악붕(禮壞樂崩),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예의를 숭상하며 잘 지키는 나라를 예의지국(禮儀之國), 예의가 너무 까다로우면 오히려 혼란하게 됨을 예번즉란(禮煩則亂), 예의는 서로 왕래하며 교제하는 것을 중히 여김을 예상왕래(禮尙往來),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말을 예불가폐(禮不可廢)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