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159. 엄니의 기일입니다 (240914)
요세비
오늘이 저의 어머니 김기분 안나의 기일입니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아주 작은 한 뼘의 공간에도 꽃을 심으셨습니다. 담 밑에는 국화를, 장독대 주변에는 애기붓꽃을 샘 가에는 매화를 작은 언덕에는 백합이 늘어났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이 꽃들이 피어납니다
꽃이 피는 것을 잘 들여다 보면 다투지 않고 시기 하지도 않고 때가 되면 핍니다. 아주 작은 공간이나 볕만 있어도 엎드리거나 굽어 있는 상태에서도 기어이 피고 같은 향기를 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꽃을 찾아오는 벌과 나비들은 숨어 피거나 누워 피거나 낮게 피거나 굽어서 피어도 상관없이 찾아가 친절하게 인사하고 꿀을 얻고 꽃가루를 전하며 어느 하나도 외면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의 생김이 아닌 꽃의 향기를 보고 찾아간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을이면 집안 온 곳에 국화 꽃이 핍니다.
봄이 되어 비료포대를 꿰매어 화분을 만들고 거름을 나우(넉넉히) 넣어서 국화를 심으면 가을에는 노랗고 하얗고 빨간 국화가 마당, 봉당, 울타리 등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늘 벌에게 쏘이곤 했습니다.
레지오마리에 주회 때에 쓰려고 이런 저런 꽃을 많이 심으셨습니다. 시골에서는 겨울에 꽃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꼬미시움에서 지시하기를 꽃을 구하지 못하면 생가지에 조화를 꽂으면 된다고 해서 사철나무를 심으셨고 그 가지와 조화를 함께 꽂아놓고 주회를 했습니다
1953년 광주교구에서부터 시작한 레지오 마리에 활동은 1960년도쯤 어머니도 단원이 되셨을 것입니다. 아마 저도 그때쯤 업혀 다니면서 협조단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는 단장을 오래 하셨는데 가장 애로사항이 서기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글을 모르는 분들이라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한글을 겨우 깨우치셨는데 철자법이나 문법이 하나도 맞지를 않아 활동보고를 적으면 묵주 기도가 한주에 거의 수만 단도 더 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도 많이 하시지요. 담배 밭고랑 매는 일을 하면 한 포기를 지날 때마다 묵주기도 하나씩 하고 한 단을 할 적마다 작은 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렇게 용사대 밭 하나 다 매면 250단, 뒷산 넘어 밭은 430단 이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활동 보고를 적을 때 250단 이라고 하면 20050단으로 적는 것이었습니다. 250단이 2만 50단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잘 못 적은 기도문이 보고되어 주교님 상도 타고 했으니 참 우스운 일이었지만 참 열심 하셨고 훈화도 참 잘하셨습니다..
일년 삼 백 육 십 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앙이 있거나 없거나 믿거나 안 믿거나 저녁이면 집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묵주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콩을 까거나 도라지를 벗기거나 콩나물을 다듬고 남자들은 새끼를 꼬거나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머니의 구약성서이야기가 변사의 억양으로 펼쳐지면 사람들은 감탄사도 넣고 박수도 치고 하면서 듣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안 가진 사람이나 다 구약성서를 줄줄 외울 정도가 되지요. 엄니는 가끔은 틀리게 이야기 할 경우도 있는데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먼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모세가 홍해를 건너 탈출할 때 만나보다 메뚜기 떼가 먼저 왔다고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야곱이 에사후를 피해 광야로 도망갈 때 천사와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는 밧다리로 넘겼니 안다리로 넘겼니 하면서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거나 싸우기도 합니다.
저도 어머니로부터 재주를 물려 받았는지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만 선생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로부터 구약성서 활동사진을 듣던 분들도 다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어머니 김기분 안나를 위해 화살기도를 해 주시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