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논나
구독자 87만 명의 파워 유튜버 ‘밀라논나’(밀라노 할머니) 장명숙 씨(69)는 요즘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는 게 설렌다”고 한다.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고 오늘에 집중하기 때문이란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나를 내맡기지 말고 내 마음부터 따뜻하게 달래고 품어 주세요. 넘어지면 넘어진 채로 잠시 쉬어 가고, 주변도 구경하며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화여대를 나와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명 패션학교 마랑고니에서 유학한 그는 패션 전문가로 인생 1막을 살았다.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도 일찍 해서 두 아들을 키웠다. 67세이던 2019년 후배들의 권유로 패션 경험과 정보를 나눈 유튜브 활동이 그의 인생 2막을 활짝 열었다. 어쩌다 시작했는데 덤으로 돈이 들어온다며 수익은 기부한다.
▷그가 말하는 ‘나이 잘 드는 법’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내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다. 그러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 심사숙고해 고른 뒤 후회하지 말 것. “나만의 색깔로 자유롭고 재밌으면 되지!” 살아보니 성실과 실력을 이기는 건 없더란다. 인생의 걸림돌이 나오면 디딤돌이라고 여긴다. 산이라면 넘고 강이라면 건너면 된다.
▷“할머니가…”로 시작하는 그의 화법은 과도한 위로나 칭찬과는 거리가 멀다. 설교도 조언도 아닌 그저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담백한 응원을 건넨다. 한 유튜버 구독자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어른이 된다는 건 포기할 줄도, 담담할 줄도, 용기를 낼 줄도 아는 것’이란 말씀에서 위로를 받았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때 기억하며 힘을 내겠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해야 꼰대가 되지 않는다는 밀라논나는 우리 사회의 ‘할머니’란 말에 따뜻한 성숙함을 불어넣었다.
▷골프 대신 봉사로 삶을 충만하게 채우겠다는 그는 꼭 필요한 가구만 집 안에 둔다. 영상을 통해 그의 집을 본 이들은 오래된 에어컨에서 검소함의 품격을 느낀다. 그는 매일 한 시간 이상 걷고 ‘햇살 멍 때리기’를 한다. 야채와 견과류로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반드시 스트레칭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 잔잔하고 꾸준한 모습이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 “살아갈 의욕이 없었는데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롤 모델이 절실해진 고령화시대다. 그래서 다들 말하나 보다. “논나(할머니), 당신은 정말 멋진 어른이에요.”
김선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