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
우리가 살아 왔던 질곡의 세월속에서 ..
우리들에게 용감하게 진리를 설파하여 깨우쳐 주셨던 ...
' 전환시대의 논리 ' 와 ' 8억인과 대화 '의 작가 리영희 선생님 께서 펜을 놓으신다는 발표를 하셨다..
그것은 거짓과 허위의 시대에 맞서 거칠게 진리를 진리 라고 부르 짖었던 용기있는 지성인의 퇴장 인것이다..
진실이 남산의 정보부 통제에 있을 때도 ...
선생님은 월남전이 무찌르자 공산당 식의 지고 지순한 십자군 전쟁이 아닌 ..
베트남 민중의 수백년에 걸친 해방 성전 이었음을 무지몽매한 우리들에게 일갈 하셨고 ...
또한 '죽의 장막'이나 ' 중공 오랑캐' 정도로 인식하였던 중국 공산당 혁명의 실체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주신 어르신 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생님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가지게 된 동기는 ..
오래전 모 월간지에 인터뷰한 내용이 종내 잊혀지지 않음도 사실 한몫 하리라 ...
선생님은 6.25 전쟁 시절에 통역장교로 복무 하셨다고 한다 ..
직책상 당연히 미군과 함께 근무 하는 시간이 대부분 이었을거고 ...
그런 관계로 한국인 전우도 없는 까닭에 선생님은 시간이 남으시면 항상 권총 사격 연습에 몰두 하셨다고 말하셨다 ...
원래 사격에 재능이 있으셨는지 ..
아니면 피눈물 나는 연습의 결과 인지는 몰라도 ..
조만간 부대 내에서 선생님의 별명은 ' Mr 45 ' 로 불리워 지시게 되었다고 한다 ..
45란 ? 45구경 권총 콜트45에서 유래되었음이 틀림 없을것이다 ...
아무튼 Mr 45 선생님의 사격 실력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
당시 대부분의 미군 장교가 다 그러 하듯이 타 부대에서 갓 전근 온 장교 한 넘이 ..
씨불여 제끼는 한민족을 비하 하고 업신 여기는 발언에 대해 선생님이 주의를 주자 ..
싸가지 없는 그 건방진 넘은 더 길길히 날뛰면서 더 모욕적인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 ..
참다 못한 선생님께서 조용히 밖으로 나가서 결투를 하자고 제의를 하니 ..
그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나가던 중 ..
조위금 내기 싫은 동료 장교 하나가 그친구에게 다가가 귀에다 몇마디 속삭이자 마자 ...
돌연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잘못 했다고 두손이 발이 되도록 선생님 한테 싹싹 빌었다고 한다 ...
또라이 같은 미군넘 ! 총은 지네만 쏠 줄 알았나 ?
이와 같이 불의를 보면 절대 못참는 선생님의 성격이 무척 좋았다 ....
만약 당시 미군 장교와 한국 통역장교 간에 총질이라도 일어 났다면 ?
모르긴 몰라도 당시 정서로 유추 하여 보면 즉결처분 , 군법회의 가 지극히 타당하나 ...
만약 운이 억세게 좋더라도 한국군으로 배속 사병으로 강등 최전방 배치 이었을 것이다 ...
선생은 그래도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그일 하셨던 것 이였다 ...
참으로 존경 스럽지 않을수 없는 분 이시다 ...
근데 이상한건 ?
왜 리영희 선생님 글을 쓰다가 ' 카오스 ' 가 생각 나는 건 뭔 연유 일까 ?
그가 전주 울트라 땜시 별명이 Mr 51 이라서 그런가 ?
아님 선생님은 글 로서 진리를 설파 하지만 ..
그넘은 사진과 글을 꼴리는 데로 써서 그런가 ?
OK ! 오늘 리영희 선생님 얘기는 여기 까지 !
추신 : 사실 51Km 란게 엿 같다면 엿 같은 거리지 ....
결승선도 대략 50Km 출발선도 대략 50Km 속된 표현으로 빼도 박도 못하는 거리 라고나 할까 ?
첫댓글 M兄이 사모하는 카兄이 우리방에의 복귀를 우리 회원이 얼마나 원하는지를 알아 보는 투표 해? 말어? 빨랑 대답 혀 봐.
하자 !
혀봐~
해라
카오스야! 58방으로 빨리 돌아와라 좀더 있으면 서리내리고 추워지니, 서리 맞으면 머리 더 쉰다. 여러 친구들이 애타게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돌아와 주세요.
멍라오스 댓글에 나~~~두 동감 드린다. 도곡동 삼마넌아! 보구쟙다.어~~~여 온~~나
카오스 글 읽고 싶다. 멍후야!! 너의 우정에 탐복한다.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결론은 카오스 빨리 들어오라는 소리..
나두 그렇게 받아 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