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금요일엔 돌아오렴' 발췌
다소 길더라도 꼭, 제발, 끝까지. 다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전날도 좀 희한했어요. 아빠가 TV를 보고 있으니까 호성이가 난데없이 가서 끌어안아요.
“아빠 갈게. 아빠 사랑해” 하면서. 제 아빠가 건성건성 “그래, 그래”하니까
“아들이 가는데 아빠가 뭐 그래?” 애가 그러는 거야.
아빠가 퉁명스럽게 “야, 좋은 데 놀러가면서 왜 그래? 너 안 올 거야?” 그랬어요.
호성이가 다시 “사랑한다고요. 엄마랑 아빠랑 둘이 제발 싸우지 말고 잘 지내요.”
하니까 아빠도 “알았어, 알았어.” 농담 식으로 이야기했죠.
노선자 씨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4반 건우의 어머니
7시가 다 돼서 밥을 먹어야 애가 나와도 데려갈 힘이 있지 하는 마음에 건우 아빠랑 건우 외삼촌이랑 셋이서 터벅터벅 밥을 먹으러 가는데 전화가 오는 거예요. 김건우 엄마냐고. 근데 그때 덜컹하고 가슴이 확 내려앉더라구요.
'아 큰일 났네.' 확인하러 갔어요. 2학년 4반 김건우냐고. 어제 수습했는데 부모가 안 나타나니까 유전자 검사를 했더라구요. 다른 실종자 가족들한테 우리 아들 나와서 간다고 하는데… 미안한 거예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나와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미쳤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들이 이렇게 나온 것이 감사할 일인가요. 실은 거기(팽목항)서 우리가 마지막이 될까봐 너무 힘들었어요. 나만 남으면 어떡하지. 우리 아들만 못 찾으면 어떡하지…
죽었어도 좋으니 못 찾는 거보다는 찾아서 몸뚱이라도 찾아 만났으면 좋겠다 이 생각밖에 없었어요. 포기하고 나니까, 나온 것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더라구요. 그래서 짐 챙기면서 그랬어요. "하느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돌아와줘서, 아들, 고마워." 옆에서 다들 부러워하더라구요. 이게 부러워할 일인지.
그런데 그게 부러워요, 거기에선. 그리고 서로 축하를 해요. 이게 말이 돼요? 그런데 그래요. 그러니 내가 미치겠는 거예요. 내가 왜 이게 감사해요? 도대체 왜? 그런데 감사하다고 하고, 아주 미쳤구나. 뭐가 감사해. 애가 죽어서 나오는데 뭐가 감사할 일이야. 이게 미친 세상이지.
* * *
건우가 가고 제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어느 날은 건우 아빠가 이렇게 물어요.
"내가 자기를 안 만나고 그랬으면 건우가 안 태어났을 텐데,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나 안 만나고 싶지 않아?
그러면 이 고통의 시간을 안 당해도 되잖아."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나는 또 이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건우를 만나고 싶어. 다시 택한대도 나는 건우 엄마를 택할 거야"라고.
그 17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시 또 기회가 생기면 건우를 또 만나 그 시간을 다시 건너고 싶다고.
내 인생에서 건우와 보낸 17년은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유해종 씨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1반 미지의 아버지
우린 미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몰랐어요. 근데 친구 한명이 유난히 많이 울더라고. 그리고 미지 책상에 '미지야 너무 보고 싶다. 너한테 너무 많이 미안해' 이렇게 적어놨어. 우리는 그 아이가 왜 그렇게 통곡했을까 궁금해서 좀 만나고 싶었어요. 근데 2학년 1반 생존학생이 안산법정에서 증언을 했대요. '반장 때문에 살았다. 반장이 선장 역할 다 했다. 반장이 지금 우왕좌왕하지 말고 조금 있다가 나가자. 지금 문을 못 여니까 물이 좀 찬 다음에 나가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나가자' 이랬다는 거야. 미지는 아마 위에 있다가 다시 배 밑으로 들어간 것 같아. 밑에서 한사람씩 올리고.
근데 그 아이가 올라가려고 하는데 물에 쓸렸대요. 그래서 걔도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마침 봉을 잡고 있어 간신히 살았대. 자기까지만 살고 밑에 있는 애들은 쓸려 들어가버리고. 걔가 올라와서 해경한테 울면서 저 밑에 우리 친구들 많으니까 구해달라고 했는데 안 들어가더래요. 미지는 맨 밑에서 걔까지 올려주고 물에 쓸려서 소식이 없었던 거지.
생존자 말이 없으면 우리 딸이 그랬는지 몰랐을 거야. 그게 언론에 엄청 떴어. 2학년 1반 반장은 반장 역할 다하느라 살아나오지 못했다고. 아마 포털사이트 들어가면 지금도 있을 거야. 거기서 뭐 반장이라는 책임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리 딸이 평소에 남을 많이 끌어안는 성격이야. 자기보다 못한 사람 이렇게 지켜주고 끌어가는 성격이거든. 대안학교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 진학해 2학년 되더니 '반장 나가면 어떻겠니'라고 물어서 미지 엄마가 그냥 원하면 하라고 했대.
미지 엄마는 애들 증언 듣고 너무 괴로워했어. 분명히 사고 당일도 아이들 챙기느라 자기를 돌보지 못했을 거라고. '저는 못 나왔으면서, 저는 좀 살아나와야지, 반장만 아니었으면 살아나왔을 텐데' 하면서 많이 자책했어.
책임감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건 아는데 미지가 그렇게 가고 나니 잘 모르겠어. 훌륭한 게 뭔지.
전민주 씨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승희의 어머니
나중에 승희 핸드폰을 한 방송국에서 복원해서 가져왔는데 마지막 문자가 10시 14분에 찍혔더라고요. 친한 친구 엄마한테 "아줌마, 밖의 상황을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그렇게 보냈더라고요. 그러곤 다음 문자에 마침표만 하나 찍혀 있는데, 방송국 기자가 그걸 보여주면서 그때 배가 침몰한 것 같다고.
우리 걱정할까봐 아빠한테는 못 보내고 마지막까지… 내가 그 문자를 잊을 수가 없어요. 왜 나는 승희랑 연락될 때 '어떻게든 아무 일 없이 나와서 엄마한테 와' 그런 문자 하나 못 보냈는지, '승희야, 무섭지?' 이런 말이라도 하면서 다독여주기라도 할걸. 사랑한다는 말을 진짜 자주 했는데 왜 그땐 그 말을 해주지 못했는지 그게 너무 미안하고 후회돼요. 정말 많이 무서웠을 텐데 엄마가 달래주지도 못하고 작별인사도 없이 보냈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너만 혼자 보내 미안하다고 매번 승희가 있는 효원 추모공원 다녀올 때면 그러고 와요. ‘승희야 너 만나러 빨리 갈게, 약속해’ 그러고. 어제도 승희 사진 바꾸러 효원에 갔다오면서 승희 한번 안아주고 왔는데 승희 아빠가 여기(가슴)가 너무 아파서 누가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울더라고요.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여기가 짓눌려서 죽을 것 같다고…
* * *
왜 사람들은 돈 얘기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어요. 다 쉬쉬해요. 교감 선생님은 자살하셨고, 살아온 선생이라도 진실을 말해줘야 하는데 말하는 게 신뢰가 안 가요.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한 선장이나 선원도 그렇고, 한 시간 넘게 구조요청을 했는데도 왜 해경이 안 구했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진도 관제센터가, 정부가, 청와대가 그 시간에 뭘 하고 있었는지 유족들은 알아야죠. 작은 회사에서도 사고가 나면 증언만 듣는 게 아니라 시간대별로 부서별로 자료, 문서 다 취합해갖고 사고과정을 파악하고 책임을 묻는데, 이건 국가잖아요.
우리 애들은 갑자기 죽은 것도 아니고 사고 나고서도 한참을 연락하다 죽었잖아요. 엄마가 걱정하니까 우리 살아서 갈 건데 왜 걱정하냐고 화내고 간 아이도 있는데. 그런데도 교통사고라느니, 놀러가다 죽은 건데 왜 그러냐느니 하니까 상처가 돼요. 세월호는 달라요, 뭔가 있다고요. 의문이 너무 많다고요.
이건 예견된 참사라고 다들 그랬잖아요.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면 대대손손 좋잖아요. 근데 왜 사고 나서 반년이 넘었는데도 달라진 게 없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온통 거짓말만 한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사람들은 한창 유병언 얘기만 하더니 이제는 돈 얘기만 해요.
우리 진짜 돈 받은 것 없어요. 해수부에서 긴급자금으로 준 거 말고는 없어요. 사람들이 자식 팔아서 돈 벌려고 그런다는 말들 많이 하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어떻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 아니라고 돈이랑 자식이랑 어떻게 바꿀까 싶고…
승아의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승희의 언니
요즘엔 거실에서 엄마랑 자요. 늘 동생이랑 같이 잤는데 한밤에도 너무 생각나고 외로워서. 동생 꿈을 자주 꾸는데 그냥 동생이 평소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제가 잠수부가 되어 애들을 찾으러 가는 꿈도 꾸고, 제가 거인이 돼서 배를 끌어올리는 상상도 많이 하고. 꿈에서는 정말 현실같이 동생이랑 같이 있는데 깨어나면 동생이 없으니 그때가 엄청 힘들어요. 한번은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서 눈 감고 동생을 만지는 느낌을 생각했어요. 눈 감고, 얼굴, 코, 입… 그대로 매일 동생의 촉감을 상상해요. 잠잘 때마다 동생의 하나하나 그 촉감. 매일 그런 상상밖에 안 해요. 아직 내 인생은 반도 안 넘었는데…
앞길이 뻔해요. 대학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그저 그렇게 살다가 보면
어느 순간 동생 곁에 갈 수 있겠지… 아, 그냥 그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김진철 씨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소연이의 아버지
세상에 딸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듸 그 아이를 잃었어유.
딸이 네 살 때부터 저 혼자 키웠시유. IMF 때 월급이 많이 깎여버렸어유. 100만원 밖에 못 받았죠. 그걸로 살림허기 힘들었나, 애엄마가 아이 키우는 걸 포기하고 어딘가로 가버렸시유. 그때가 부천 오정동에 살 땐데. 그 당시는 많이 괴로웠어유. 신호 받고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나도 모르게 가서 받은 적도 있어유. 세상에 소연이허고 나 둘만 남은 거잖아유. 고민 많이 했시유. 내가 소연이를 무슨 일이 있어도 훌륭하게 키워야겠다 생각했시유.
* * *
4월 16일 오전 9시 50분에 일하다가 소연이와 통화했어유. “아빠, 뭐해요?” “일하지 뭐하냐.” “아빠, 나 데려가주면 안 돼요?” “어딘데 아빠가 가냐.” “여기 어딘지 모르겠는데 배에 물이 들어와요.” “소연아, 니 옆에 누구 있는데?” “담임선생님 있어요.” “선생님이 뭐라구 하셔?” “구명조끼 입으라 했어요.” “그럼, 선생님 말씀에 잘 따라.”
담임선생님이 어른이어서 저는 판단을 잘 허실거라고 믿었어유. 왜 하필 그때 담임선생님 말씀을 들어라고 혔던가. 그것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어유. 선생님 말씀 듣지 말고 그냥 밖으로 뛰쳐오라고 혔으면 살았을 텐데. 우리나라 후진국이 아니니까 구명조끼 입고 바다에 떠있으면 구해줄거라 생각했시유. 왜 선생님은 배가 뒤집어질 판인데 뛰쳐나가란 말을 안 혔을까요.
내가 내 자식을 죽었어유.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괴롭고 눈물이 나유. 아빠가 판단을 잘못해갖고 애를 죽인 것 같아…(울음)
최순화 씨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5반 창현이의 어머니
5학년 때인가 창현이가 나한테 시를 하나 줬어요. 제목이 방석. 내용은 “아주 방석이 비싸더라도 우리 엄마 무릎 밑에 얹으고 싶어요” 였어요. 아, 얘가 국어실력이 좀 나쁘구나 하고 간직하고 있었는데 창현이 유품 정리하다가 그걸 또 발견했어요. 창현이 장례 치르고 나서 두주 지나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데 그 시가 딱 떠오르는 거야. 깨달아지는 게 있었어요.
창현이 5학년 때 40일 새벽기도를 가족이 다 같이 했거든. 애들은 그냥 가서 자는 거야. 그래도 어쨌든 40일 동안 새벽에 한시간씩 참석했어요. 나는 제일 오랫동안 기도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 내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으면 창현이가 와서 “엄마, 가자. 사람들 다 갔어요. 엄마, 가자.” 이랬거든.
기도하는 엄마 무릎이 아파 보였는지 방석을 깔아주고 싶었구나 라는 게 떠올라서 엄청 울었어요. 애가 그런 애였는데 내가 몰랐고, 잊어버렸던 거예요.
장순복 씨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준우의 어머니
매일미사에 나온 묵상글 중에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지금 여기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을 보여줄 것” 이라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그래,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겠구나. 힘들어도 기운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또 멈춰서는 거예요.
그럼 세상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살아서 ‘수장’을 당해야 했던 내 아이는,
아니 아이들은 소중한 삶을 이유 없이 빼앗겼는데 그건 뭔가.
팽목항이라는 지옥의 공간에서 울부짖었던 부모들에게 제발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까.
정부자 씨 이야기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호성이의 어머니
4월 16일 그날 아침에도 애가 떠나는 날이라 그랬는지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일어났을 때부터 몸이 가라앉고 ‘호성이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이 자꾸 났어요. 이상했어요. 반월공단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출근하느라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계속 눈물이 나. 아침에 TV도 안 틀어봤고 아직 사고 소식도 못 들었을 때인데.
호성이한테 전화를 해도 안 받더라고요. 내가 작년에 애 아빠하고 그 배를 타봤거든요. 세월호의 쌍둥이 배라는 오하마나호요. 그때도 전화가 잘 안 터지더라고요. 원래 그런가보다 했죠.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애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출근해서 요리를 하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그런 생각은 평소에도 무서워서 하지도 못하죠. 그런데 다른 생각을 해도 그 상상이 잊히질 않았어요.
전날도 좀 희한했어요. 아빠가 TV를 보고 있으니까 호성이가 난데없이 가서 끌어안아요. “아빠 갈게. 아빠 사랑해” 하면서. 제 아빠가 건성건성 “그래, 그래”하니까 “아들이 가는데 아빠가 뭐 그래?” 애가 그러는 거야. 아빠가 퉁명스럽게 “야, 좋은 데 놀러가면서 왜 그래?너 안 올 거야?” 그랬어요. 호성이가 다시 “사랑한다고요. 엄마랑 아빠랑 둘이 제발 싸우지 말고 잘 지내요,” 하니까 아빠도 “알았어, 알았어.” 농담 식으로 이야기했죠.
* * *
얘는 몇 시간만 어딜 갔다 오더라도 “엄마, 아들 보고 싶으면 어떡할라고?” 그래요. 그날도 “3박 4일인데 아들 보고 싶어서 어떡할라고?” 그래서 나는 “응, 통화 자주 하면 되지. 우리 아들 초등학교 때도 못 가고 중학교 때도 못 갔는데 이때라도 꼭 가야지. 엄마가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아들, 좋겠다.” 엉덩이 두드리면서 그랬어요. “엄마, 근데 선물은 못 사오겠어. 사올 만한 게 없겠더라고.” 그러기에, 내가 “괜찮아. 사오지 마. 너 사고 싶은 거 사. 근데 3만원으로 되겠어?” 했더니 된다는 거예요. 자기는 과자도 안 좋아하니까. 그런데 또 “다른 애들은 몇십만원씩 가져가더라” 그러더라고요. “그래? 엄마가 지금은 돈이 없는데 내일 찾아서 더 줄게. 내일 중간에서 만나자” 그랬어요.
아침에 아들한테 “이따 보자”했더니 “아니야, 그냥 둬요. 혹시 더 필요하면 친구들한테 빌려서 쓰면 되니까” 그래서 상황 봐서 전화하자 그러고 보냈어요. 3시 반쯤에 내가 계속 문자를 보냈어요. “아들, 어디서 볼까?” “엄마, 오지 마세요.” 그러다가 저도 안 되겠는지 “그럼 음료수 갖고 오실래요? 죄송해요” 그래요. 음료수를 빼먹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돈 3만원하고, 음료수하고 들고 갔어요.
그런데 그 놈의 새끼가 오히려 나한테 2만원을 주는 거예요. “엄마, 돈 갖고 가봤자 잃어버려. 잃어버리면 잃어버린 사람 잘못이래. 엄마. 빨리 가야 돼. 4시에 차 떠난대.” 손잡고 잠깐 걸었는데 거기서도 볼에다 뽀뽀해주고 끌어안아주면서 “엄마, 아픈데 오라고 해서 미안해” 그랬어요. “나 수학여행 간다고 돈 많이 썼지?” 자기는 이것만 있으면 된다고, 이거 갖고 엄마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그러고 보냈는데…
* * *
대통령이 다녀간 후에 체육관에 TV가 설치됐어요. 그때부터 뉴스를 봤어요. 그런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여기 일이 전혀 안 나가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는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서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우리의 세계에 우리만 빠져 있고 우리만 동동거리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에서는 대한민국의 유능한 인력은 이곳에 다 투입된 것처럼 말했어요.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바다에 나가보면 그 넓은 바다가 텅 비어 있는데.
그러니까 부모들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죠. 그런데 그런 건 또 방송에 나가더라고요. 부모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래서 우리가 방송사들 다 나가라고 했잖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상을 알았나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내 가정만 챙기면 될 줄 알았지. 나라에 해경 있고 경찰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살았지. 이런 세상인지 몰랐죠.
* * *
그날 저녁에 시신이 올라왔어요. 어떤 사람이 “배 안에서 데려온 거예요?” 물으니까 처음에는 밖에서 데려왔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다시 안에서 데려왔대요. 그때 내가 물을 먹다 말고, 죽인다고 쫓아가서 “뭐? 안에서 데려왔어? 안에 들어가니까 살아 있는 애들은 없어서 죽은 애들만 데려왔어?” 그랬더니 아무 소리도 안 해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욕을 하기 시작했어요. 미친 새끼, 개새끼, 온갖 상스러운 욕은 다 했어요.
“이 개떡 같은 나라, 다 망해버려라! 너희들, 애들 다 죽여서 건지려고 그랬지? 내가 가만 보니 그러네! 어정쩡하게 살려놨다가는 애들이 이 나라 다 헤집고 돌아다닐 거 같으니까 다 죽여서 건지려고 물에 풍덩 빠뜨렸지!” 하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나는 열심히 일해서 세금 낸 죄밖에 없어. 그런데 내 자식을 왜 저렇게 만들었어! 구해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 안에서 건져왔다고? 그 안에 살아 있는 애 없어? 공기 넣겠다더니 풍덩 가라앉혀버렸네! 이젠 다 죽이네!”
나는 이런 나라인 줄 정말 몰랐거든요. 대통령이 애도 없이 혼자 사니까 욕심 없이 똑바로 해줄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왔다가고 나서는 뭐가 더 이상했어요.
배를 가라앉혀놓고는 애들을 건져왔대요.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런 나라에서 그렇게 아등바등하고 살았나…
* * *
10월 29일에는 대통령이 국회로 온다기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찾아갔어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약속했잖아요. 약속 지켜주세요. 진짜 잘못한 사람 잘못한 만큼 벌주세요.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 우리끼리 싸우게 하지 마세요.” 못 들어가게 할 것 같으니까 이틀 전에 들어가서 아예 바깥으로 안 나왔어요. 핫팩 차고 겨울잠바 입고서 이틀 동안 국회에서 노숙을 했어요.
대통령이 왔대요. 검은 옷 입은 사람들하고 경찰들이 좌악 서더라고요. 우리는 그뒤에 의자 놓고 아이스박스 딛고 섰어요. 우리가 쓴 글자 잘 보이게 하려고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대통령이 우릴 슬쩍 보더니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부모들이 찬바람 맞아가면서 이틀 동안 자기를 기다렸는데…
‘아, 대한민국엔 대통령이 없구나.’
그 허탈함이란… 나는 그때 더 강해졌어요.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갈 거야.’ 여기저기 다니면서 대통령이 어떻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도 나는 믿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눈앞에서 그렇게 사라져버리니까 깨달은 거죠. ‘저렇게 감정이 메마른 사람한테 외쳐봤자 소용이 없겠구나.’ 우리 시민들보다 못해요. 지방에서 쪼끄만한 애기 데리고 올라와서 같이 손잡고 울어주고 가는 그런 사람들보다 못해요.
우리 힘만으로는 안 돼요. 언론에서 다 막아버려요. 부모들이 외치는 거, 허허벌판에 메아리예요. 그래도 이것마저 안 하면 다 끝났다고 인정해버릴까봐, 그러면 내 자식한테 더 죄를 짓는 거 같아서 이렇게 소리치는 거예요. 그건 진짜 죄에요. 처음엔 내 자식 일이라서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포기가 안 돼요.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나라가 버린 내 자식을 부모가 또다시 버리는 셈이니까. 죽어서 내가 우리 애를 어떻게 봐요. 그래서 이 말주변 없는 엄마가 전국을 다니면서 간담회를 하게 됐어요. 뭐라도 알려야 될 것 같아서.
잊혀지는 게 무서워서.
나무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신호성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
항해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신승희
어느 고요한 밤
잔잔한 바다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이
우리의 가슴에 남아
계속
콕, 콕 찌른다.
그 아픔에
우리의 눈물이 비가 되어
잔잔한 바다와
뒤섞인다.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리.
출처- Bestiz 배주현님
첫댓글 🎗
너무 슬프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슬퍼서 건우 이야기까지밖에 못 보겠다 어쩌면 나랑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꽃을 구경했을 수도 있을 아이들인데 부디 편안하길..
못 읽겠다 너무 눈물나와
너무 슬프다 ㅠㅠ 끝까지 못보겠다 ㅠㅠㅠㅠ
미치겠다 너무 슬퍼서.. 너무착한아이들인데 .. 절대잊지않을게 미안해얘들아
아 진짜 계속 울면서 봤어...
아 슬퍼서 못보겠다 진짜 아...
아..
아 너무 슬프다ㅠㅠ
눈물나서못보겟음ㅠㅠ
학겨가는길인데
아 눈물 진짜 많이난다 ... 너무슬퍼
아 진짜 울면서 봤어 ... 너무 슬프다...
하 너무 맘아파서 읽다가 일단 내려왔어 아 진짜 나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듯아픈데 가족분들은 오죽하겠어...
오열하면서 봤다.. 저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대체..
진짜 너무 슬프다
진짜 왜 왜 그랬을까 진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냥 너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모자라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서 어지러울 만큼 미안해 절대 절대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