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아래 쌓인 시간
우리 집엔 달력이 참 많다. 크고 작은 것들이 벽마다, 책상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내 서재다. 책상 위에는 광동제약에서 나온 탁상달력이 하나 놓여 있다.
날짜 숫자 아래에 메모할 수 있는 칸이 있어, 앞으로 다가올 중요한 일정들을 미리 적어두기
딱 좋다. 우측 서가 벽에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나온 A4용지 크기의 벽걸이달력이 걸려 있다.
한 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와 일정을 조망할 때 무척 유용하다.
현관 입구에도 달력이 하나 더 있다. 이것도 광동제약에서 나온 것인데, 한 장에 석 달이 나와 있어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기 좋다. 서재 입구에도 작년 12월로 멈춰 있는 광동제약 달력이 하나 더 걸려 있다.
우리 집에 광동제약 달력이 유난히 많은 것은, 아들놈이 그 회사에 다니면서 해마다 여러 개를 챙겨다
주기 때문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오른편 장식장 귀퉁이에 천주교 우동성당에서 나온 소박한 달력이 걸려 있고, 거실 한 켠
피아노 위에는 삼성생명에서 나온 예쁜 꽃그림 달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달력은 친구 박사장이 준 것인데,
삼성생명의 VIP 고객으로 받은 선물이라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림은 홍라희 관장이 추천한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고 했다. 집사람이 꽃을 좋아하니 자기 집보다는 우리 집에 어울릴 것 같아 주었다며 건넨 것이었다.
식탁 옆 벽에도 커다란 숫자의 수협 달력이 하나 걸려 있다. 이건 음력이 함께 나와 있어 제사 준비에 요긴하다.
우리 집은 음력으로 제사를 지내기에 음력 없는 달력은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많고 다양한 달력들 중에서 실제로 날짜가 맞게 ‘가고 있는’ 달력은 두 개뿐이다. 내 서재 책상 위의 탁상달력,
그리고 식탁 옆의 큰 달력. 나머지는 어느새 시간이 멈춰버리곤 한다. 꽃그림 달력은 아직도 4월이고, 석 달이 함께
표시된 광동제약 달력은 때로 두어 달 늦어 있다. 바쁠 때는 그마저도 며칠씩 밀리기 일쑤다.
그런데 그 모든 달력들 중, 시간이 아예 멈춘 달력이 하나 있다. 아니, 멈췄다기보단, 멈춘 채로 영원히 가슴속에
박혀 있는 달력이다. 1968년, 제일은행에서 나온 벽걸이 달력. 벌써 반세기가 넘게 지난 그 해의 시간이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에게 깊은 상처가 남았다. 중학교 1학년이던 바로 아랫동생이 입 하나 덜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약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보내준다는 약속에 보냈지만, 겨울 어느 날 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혼자 잠든 채 세상을 떠났다.
그해 연말, 약사 아저씨가 제일은행에 다닌다며 달력 한 장을 얻어다 우리 집에 보내줬다. 그 시절엔 달력 한 장도 귀했다.
온 식구가 그 달력을 받아들고 기뻐했던 기억이 선하다. 그 아이가 손때를 묻히며 넘겼을 달력, 어느 날 날짜를 넘기다 멈춘
채로 시간까지 멈춰버린 그 달력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차마 버릴 수 없었다. 그 애의 체온이 묻어 있을 것만 같고,
웃고 울던 우리 형제들의 추억이 그 안에 켜켜이 쌓여 있을 것 같아서다.
어쩌면 우리 집에 이토록 많은 달력이 걸려 있는 건, 시간의 흐름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자, 멈춰선 한 시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달력 하나하나엔 날짜만이 아닌, 삶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잊지 못할 얼굴들,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들, 그리고 매일을 살아가는 이유들이 조용히 걸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