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이전까지 빅 리그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무대였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물론 스포츠 매체가 조성한 분위기 탓이겠지만, 빅리그를 만지작거리는 느낌이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직접 관여하는 에이전트로서, 선수 한 명을 빅리그, 혹은 해외 리그로 진출시키는 과정에 얽힌 소회를 들려달라.
소위 빅리그라 불리는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리그에 선수가 진출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마케팅과 실력. 일본의 나카타처럼 스폰서가 해외 진출을 도와주는 경우가 있는 반면, 빅리그를 누비는 선수들보다 실력이 앞서서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에서 뛰고 있는 우리 해외파 선수들은 실력도 부족하고, 마케팅 차원에서도 부족하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다곤 하지만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한국 선수들의 빅리그 진출은 사실상 어렵다. 최근 이천수가
레알 소시에다드에 영입된 것도 마케팅 차원에서의 영입이라고 본다.
꼼꼼한 리포트들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천수의 빅리그 진출 뉴스는
단연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력보다 마케팅 관점이 앞선 영입이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냉정하게
말하면 레알 소시에다드 팀은 아시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구단이다. 일본 혹은 중국에서 그 팀을 다녀간 일도 없었고, 최근까지 한국에서도 그 팀의
존재를 잘 모르지 않았나.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경우는 워낙 아시아 존에서 노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을 정확히 알고
있는 편이다. 선수를 영입할 때 돈이 된다, 안된다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팀이라는 거다.
반면 레알 소시에다드는 줄곧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지난해 갑자기 준우승하면서 일약 회자된 팀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구단이 3백50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이천수를 영입하는 큰
베팅을 한 거다. 하지만 영입 이후 드러난 이천수의 실력은 기존에 보유한 젊은 선수들보다 월등한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레알 소시에다드의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리지도 않았다. 구단이 노렸던 중계권 역시 거액에 팔리지 않았다.
한국의 기업들이 스폰서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레알 소시에다드가 후회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 선수가 스폰서를 업고 해외에 진출하는 것 역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다시 4강을 이루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된다.
선수가 스폰서를 업고 해외 리그에 진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특정기업에서 선수의 이적료를 대신 물어주거나, 연봉을 지급하거나, 방송사에서 TV 중계권을 거액에
산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페예노르트의 오노 신지와 스즈키 같은 일본 선수들이 그런 케이스다. 김남일의 경우엔 페예노르트 구단에서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소속 에이전시에서 모든 걸 지불했기 때문에 선수를 무상으로 데리고 있었던 거다. 문제는 이런 형태로 나갈 경우 후배 선수들이
나가는 것에도 걸림돌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월드컵 4강팀에서 뛴 선수가 이런 식으로 자존심 구겨가면서 나간다면 문제가 있다는 거다. 게다가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이유? 구단 입장에서는 돈을 투자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아쉬울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구단이든 투자한 선수를
활용하려 하지 그렇지 않은 선수를 쓰진 않는다. 페예노르트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한국 선수가 올 경우, 실력 플러스 돈을 가져와야 한다고까지
얘기한다.
그런 얘길 들을 때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프로팀 입장에서는 마케팅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밖에 없다. 오노 신지의 경우엔 4백만 달러의 이적료를 지불했지만, 중계료로 8백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게다가 오노 신지의
최근의 활약은 일본 대표팀 시절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반면 송종국은 2백만 달러의 이적료를 줬지만, 중계료로 30~40만 달러를 거둬들였을
뿐이고 최근에는 리그 경기에서도 벤치를 지키고 있다. 페예노르트 구단에서는 오노 신지를 두고 “우린 선수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선수를 바라보는 구단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게다가 송종국은 선발 주자로 나간 경우 아닌가? 김남일의 경우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유럽 진출의 모양새가 돼 버렸고.
이영표와 박지성은 조금 뒤에 다루기로 하고, 그렇다면
가장 모범적인 해외 진출 케이스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설기현이다. J리그에서 간절히 원했고, K리그에서도 드래프트 1순위였지만 거액의 유혹을 물리치고
벨기에 중하위팀을 선택한 그는 전적으로 돈보다 꿈을 택한 모범적인 케이스다. 실제로 현 소속팀인 안더레흐트에 가보면 ‘돈 가져와라, 스폰서
업어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실력과 잠재력으로 설기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송종국이 속한 페예노르트와 안더레흐트는 기차로 2시간
거리다. 하지만 현지에서 접하는 팀 분위기는 너무 다르다. 안더레흐트는 너무 정이 많아서 부담스러울 정도이고, 페예노르트는 너무 차가워서
부담스러운 팀이다.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하면, 한 공중파 방송에서 네덜란드 현지 취재를 가서 송종국을 촬영하려고 했더니 사진 한 장에
195유로를 내라고 했다. 돈으로 데려갔기 때문에 돈을 밝힐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설기현 이외에 또 한 명을 꼽자면, 17세에 포르투갈
3부 리그로 진출해 온전히 현지 선수들과 어깨를 겨뤄서 2부 리그에 오르고, 최근 1부 리그 4위팀인 리스본의 벨레넨세스에 스카우트된
정병민이다. 정조국과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함께 뛴 이 열정적인 선수의 나이, 올해 스무살이다. 이 구단에서도 물론 스폰서에 대한 언급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현재 해외파 선수로 분류되는 선수들은 현지
구단에서 콜한 경우가 아닌 셈인데….
하위 리그 혹은 하위팀에서의 활약을 목격하고 구단 스카우터들이 영입한 설기현과 정병민의 사례를
제외하면 모두 아니다. 두 선수는 마케팅 차원에서의 영입도 아니다. 온전히 실력과 가능성 때문에 스카우트된 거다.
반면
아인트호벤의 이영표, 페예노르트의 송종국 등은 모두 마케팅 때문에 영입된 사례다. 지난해 8월, 송종국의 영입설이 있었을 때 페예노르트에
있었다. 그때 한국의 들뜬 분위기를 보면서 우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구단의 두 얼굴을 보게 될 거라고. 요즘은 아무도 송종국을 언급하지
않는다. 실력도 문제지만, 구단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전의 송종국과 지금의 송종국을 비교해 봐라.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선수에게 맞는 정확한 팀을 골라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해외 진출 과정에서 보여지는 선수들의 현실감
없는 태도를 지적한다. 자신의 실력은 생각도 하지 않고 ‘빅리그로!’를 외치는 선수들이 그 대상이다. 냉정한 실사를 거쳐 고른 팀과 눈 높은
선수들이 원하는 팀과의 갭은 어떻게 메우나?
현실감 없는 요구를 하는 선수들이 분명히 있다.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선수 관리 면에서 믿고 따르는
경우가 가장 편하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라도 마인드가 맞지 않으면 일하기 어렵다. 선수가 에이전트를 끌고 갈 순 없다.
월드컵 직후 유상철이 J리그를 떠날 때만 해도 빅리그 진출설이 많았다. 하지만 냉정한 팬들에게선
만만치 않은 나이 때문에라도 이적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 구단들이 나이 많은 선수를 영입할 가능성은 적은 것
아닌가?
유상철은 가장 아쉬운 사례다. 월드컵 직후 유럽에 갔을 때, 가는 곳마다 언급되는 선수가 바로
유상철이었다. 영입과 관련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만약 유상철이 무적 선수였고, 프리 에이전트 자격으로 나갈 수 있었다면 충분히 유럽으로
진출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당시 유상철은 나이와 무관하게 전성기에 올라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대표팀 A매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플레이를 펼치는 건 안정환이 아니라 유상철이다. 여전히 기량이 통하니까 J리그에서 다시 부른 거고.
반면 빅리그 진출과 관련해 가장 언급이 무성하면서도 희미한 결론조차 나지 않는 안정환의 사례는
어떤가? 일부에서는 그와 관련된 해외 진출 기사들의 신뢰도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상황이다.
안정환 영입설이 있던 애틀라티코 마드리드에 2개월 전쯤 우리 팀원들이 찾아갔었다. 현지 구단
관계자들과의 미팅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들었던 것과 달리 현지 구단의 관심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사가 과장된 감이
있다. 물론 안정환의 유럽 진출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문제는 몸값이다. 현재 일본에서 받는 액수를 받으려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절대 그 금액을
주지 않을 거다.
다시 이천수를 언급하자면, 팬들의 입장에서 이천수의 기량이 빅리그 진출에 얼마나 반영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것 같다. 직접 이천수 진출에 관여한 에이전트로서 솔직하게 품평한다면?
실력보다는 미래 가능성을 본 거라고 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이천수의 경우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교체
출장해 눈에 띄는 경기를 펼친 것이 스페인의 축구 전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건 이천수가 영리한 거다. 빅매치야말로 선수가 자신을
알리는 최고의 장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케팅 가능성이 덧붙었고, 마침 아시아 시장을 노리던 레알 소시에다드와 연결되는 운도 따랐던 거다.
결과론이지만, 영입에 가장 주효한 역할을 했던 건 한국에서 보낸 이천수의 경기 자료였다고 생각한다. 19세 대표팀 시절부터 울산 현대에서
뛸 때까지의 골 넣는 장면을 1개월에 걸쳐 모두 편집해서 보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선수가 뛰는 1게임만 보고 350만 달러를 베팅하는
경우는 없지 않겠나.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에서 뛰는 해외파 선수들의 목표는 단연 빅리그 진출이다. 그 선수들의
가능성을 엄정하게 코멘트한다면?
우선 설기현의 경우, 가장 알차게 준비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플레이가 선천적이라기보다
노력해서 조금씩 나아지는 스타일인데다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진출을 장담하긴 어렵다. 월드컵 때 거의 신들린 플레이를 펼쳤던 박지성의
최근 플레이는 거의 월드컵 이전을 연상시킨다. 안타까운 건 네덜란드 리그와 박지성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리그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키의 신체조건과 체력으로 유명한 리그다. 그런 리그에서 키 작은 선수가 뛰다보니까 자꾸 넘어진다. 중계 화면을 봐라.
물론 단숨에 일어서긴 하지만 선수가 자꾸 넘어지면 플레이 리듬이 죽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리그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리그가 맞지 않는 느낌은 이영표 역시 마찬가지다. 이영표는 플레이 의욕과 개인기는 뛰어나지만 너무 왜소한 게 흠이다.
송종국도 그렇지만 상대 선수의 옷을 알게 모르게 잡는 장면이 자주 포착된다. 송종국은 네덜란드 리그에서는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선수다. 신체
조건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하지만 반 호이동크를 파는 등 최근 소속팀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네덜란드 리그에서도 벤치
신세라는 건 더욱 심각한 문제다.
빅리그에 비해 리그 수준이 낮다는 걸 감안하면 더 그렇지 않나. 앞서 언급했던 정병민의 경우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매체에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유럽 축구 연맹에서 네덜란드 리그와 동급으로 매기는 포르투갈 리그에서 순전히
실력으로 겨뤄서 1부 리그에 진출했다. 184cm의 신장에 체격도 좋다. 게다가 20세의 나이는 그 가능성을 더욱 크게 만든다.
차두리는 현재 상황이라면 빅리그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신체조건은 해외파 선수들 중 최고지만, 공격수로선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공격수는 타고 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울이나 호나우두처럼. 그런 이유로 포지션을 바꾸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있다. 스피드와 체력이
있기 때문에 오버 래핑에 강점을 둘 수 있는 사이드 백이라면 어떨까 싶다. 또 한 가지, 차두리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공격수가 골을 못 넣으면 당연히 비난받는 거다. 그런 비난을 쉽게 흘려듣지 못하면 다음 경기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면
사이드 백은 골 못 넣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자기 플레이만 성실히 하면 되는 포지션이다.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현지 게임들을 보고
있다는 건 가장 긍정적인 대목이다. 게다가 다른 선수들과 달리 언어도 된다. 빅리그에 진출하는 잠재력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결론 짓자면, 해외파 선수들의 요즘 상황만 놓고 보면 빅리그 진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물론 앞으로는
미지수다. 주문하자면, 현재와는 다른, 한꺼풀 벗은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잉글랜드 축구를 봐라. 두세 번 패스하면 곧장 상대편
골 마우스 앞이다. 게다가 엄청나게 정확하고 파워풀한 슈팅을 구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 리그에서의 박지성이나 이영표처럼 자꾸 넘어지거나
파워에서 밀리면 정상적인 플레이가 가능할 리 없다.
기량 면에서의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면 여전히 진출 방법은 마케팅에 의존해야 하는 셈이다.
앞서 살짝 비춘 얘기지만, 선발대 형태로 나가 있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유럽 리그의 구단들은 영 마뜩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
한국 선수들의 마케팅 가능성에 대해선 이젠 거의 알고 있는 분위기다. 스페인의 경우, 첫 사례인
레알 소시에다드의 이천수를 보면서 느끼고 있는 중일 테고. 단적인 예로 한국에서 레알 소시에다드와 관련해 별다른 마케팅 사례가 포착된 게 없다.
하물며 레알 소시에다드 유니폼을 입은 축구팬을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들은 한국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리그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축구 에이전트들이 가장 많이 다녀가는 리그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선수도 콜한 일이 없다.
소문은 가장 무성했다. 하지만 그 소문의 신뢰도에는 의문이 있다.
이탈리아 리그는 굉장히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나카다, 나카무라 같은 선수들이 너무 큰 스폰서를 물고 갔기 때문에 동양은 무조건 스폰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월드컵 때 한국과의
악연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분위기여서 한동안은 이탈리아 리그와 관련된 얘기는 없을 것 같다.
빅리그 진출의 어려움을 언급하는 사례로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아인트호벤의 케즈만이 지난 시즌
네덜란드 리그에서 넣은 골은 38골이었다. 말 그대로 대활약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로 올 시즌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뛴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가지 못한 이유는 뭔가?
아인트호벤이 지난 챔피언스 리그에서 성적을 못냈기 때문에 잔류시켰다. 물론 케즈만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리그에서 엄청난 골을 넣었던 선수가 정작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2년 연속 침묵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를 비롯한 소속 리그에서
득점이 없어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골을 넣으면 빅리그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케즈만이 그렇다.
네덜란드 리그 하위팀과의 경기에서 4골, 6골씩 넣으면 뭐 하나. 인터밀란이나 AC밀란 같은 빅리그 팀과의 경기에서 침묵하면 네덜란드
리그용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거다. 당연히 스카우트를 고려했던 팀에서는 영입 계획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건대 빅매치에서의 골은 단순한 득점이 아니라 빅 골이다. 박지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박지성에게 플레이를 못한다는 사람들이 없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넣었던 그 멋있는 골의 잔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타 플레이어라면 이런 형태의 가장 확실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언젠가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국내 프로팀 감독이 “네덜란드
리그와 국내 리그에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한 바 있다. 그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리그는 K리그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 있다. 체력과 스피드는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 움직이는 공간의 폭, 전술 이해도는 분명히 수준
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스포츠 신문 1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이천수 8경기 연속 출장’. 국내 팬들로서는
반가운 기사임에 틀림없지만, 현지에서도 그렇게 평가되는 건 아니지 않나?
레알 소시에다드에는 코바체비치나 니하트 등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벤치를
지키는 것보다는 낫지만,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천수에게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너무 불필요한 코멘트가 많다는
점이다. 스페인 진출 초기부터 ‘레알 마드리드 나와라, 베컴 나와라’하면서 호기를 부렸는데, 후반 교체 멤버로 뛰는 상황과 골도 못 넣는 상황은
그런 호기와 걸맞지 않다. 당연히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 현지 전문가들에게서 그런 얘길 듣기도 한다. “이천수의 플레이를 보면 한국 선수
추가 영입은 힘들 것 같다”고. 베스트 플레이어로 언급되면서 스페인에 왔는데, 그 선수의 경기 내용이 그 정도라면 누가 영입하려고 하겠나. 어떤
점에서 이천수는 한국 선수들에 대한 테스트 선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이천수의 사례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후배 선수들의 진출은 더욱 어려워질
거다.
예를 들어 차두리의 활약이 별로 없으니까 분데스리가에서도 별 얘기가 없지 않나. 이을용의 경우는 터키 현지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았다. 기대했던 만큼 축구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터키 리그를 무시하는 발언을 매체에 흘린 게 터키 축구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탓이다. 일한 만시즈 같은 뛰어난 선수의 해외 진출을 막는 광적인 축구 문화를 가진 나라가 터키다. 그들에게 그런 코멘트를 안겨 준 거다.
당분간 터키 쪽으로 진출하는 선수도 없을 거라고 본다. 실제로 피스컵 때 성남과 개막전을 펼친 터키의 베시크타스 팀 관계자는 한국에게
패했는데도, “한국 선수는 더 이상 영입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외국 리그 진출을 노리는 한국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빅리그는 어디인가?
단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다. 스페인 리그가 30%라면 잉글랜드 리그에 대한 선호는 60%
수준이다. 잉글랜드는 영어권이고 깔끔하니까 아무래도 선호하는 것 같다. 반면 스페인의 경우는 문화가 워낙 다르니까 처음 유럽 진출하는 선수에겐
적응이 쉽지 않다. 이천수의 경우도 내심 잉글랜드로 보냈으면 했다. 스페인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아니면 적응이 어렵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는 교민도 있고 도시 분위기도 서울과 비슷하고 스케일이 크니까. 하지만 현재 이천수가 머물고 있는 산 세바스찬이나 말라가, 마요르카
같은 곳은 전혀 다른 분위기다. 산 세바스찬을 우리와 비유하면 지방 소도시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축구에 대한 열기는 높아도 지방이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다. 물론 그런 걸 다 따져서 나갈 상황이 아닌 건 사실이다.
K리그와 J리그에 대한 유럽 리그 관계자들의 생각은 어떤가? 그리고 현재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는
네덜란드, 벨기에 리그는 어떤 수준인가?
유럽에서는 K리그와 J리그에 대해 별 차이를 두지 않는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리그 순위를 보면
한 30위권 정도 될 거다. 네덜란드는 7~8위, 벨기에는 10위 정도. 단, 설기현이 속한 안더레흐트 팀은 좋은 팀이다. 다른 벨기에 팀들과
차별해서 봐야 한다.
설기현의 경우, 지난 시즌 막판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빅리그 진출을 꾀하겠다고 인터뷰 했다가
구단에게 괘씸죄가 적용돼 출전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론에 보도된 일이 있었는데….
언론에 알려진 이유 때문에 벤치를 지켰는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인터뷰는
자제해야 한다. 세계 톱 클래스인 호나우두, 비에리 같은 선수도 그런 얘기는 안한다. “난 모른다. 내 에이전트가 알아서 할 거다. 난 게임에
충실할 뿐이다”라고 말해야 맞는 거다. 선수 자신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스타가 되기 위해선 언론 플레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그런 부분에 서툴기 때문에 누군가 주변에서 코멘트를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 인터뷰 한 마디에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현재 해외 리그에서 활약 중인 우리 선수들에게 에이전트로서 빅리그 진출에 대해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해달라.
축구 선수는 축구를 하지 않을 때의 생활도 굉장히 중요하다. 빅리그 선수들과 비교할 때 우리
선수들은 그 점에서 조금 약하다. 환경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하겠지만 심리적인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 외로움도 많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게임 없을 때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지 말고 해변도 거닐고 비키니 입은 여자도 구경하라고. 주변환경을
활용하라고, 친구가 없으면 자연환경을 활용하라고.
정리하자. 그렇다면 선수가 외국 리그로 진출할 때 고려해야 하는 건 무엇 무엇인가?
우선 자신에게 맞는 리그 스타일, 팀, 그리고 덧붙여 소속팀 선수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야구의
박찬호는 마이너 시절 한때 메이저리그 24승 투수였던 오렐 허샤이저를 만나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 프로에서 선수가 선수를 가르치는 건 말도
안되는 거다. 이건 굉장한 행운인 셈이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소속팀에서 괜찮은 동료를 만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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