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날개 달린 언어의 시인 김륭과 지금 가장 주목받는 화가 노인경의 협업으로 탄생한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는, 우리가 지금껏 읽어 온 동시집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의 책이다. 큼직한 판형에 하드커버를 입은 외형이 언뜻 그림책 같기도 한 이 책은 스물네 편의 동시와 마흔일곱 장의 그림을 담고 있다. 동시는 장유초등학교 3학년 8반 엄동수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그려 간다. 그림은 동시를 붙잡으며 앞서가며 활자가 하지 못한 이야기를 선과 색, 형태와 구도를 통해 들려준다.
5월의 좋은 어린이 책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l 2016-05-035월의 좋은 어린이 책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송선미(동시인, 격월간지 「동시마중」 발행인)『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가 제게 왔습니다. 달빛처럼 아득하고, 노랑처럼 슬프고, 병아리처럼 사랑스러운 상자 하나가요. 상자 안에는 동네가 있고 학교가 있고 개구리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지구보다 더 큰 달...
● 동시를 경험하는 아주 새로운 방법,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 동시+그림+이야기가 함께 그린 노오란 마을
가파른 골목 맨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김해시 장유초등학교 3학년 8반 엄동수의 집
사과 팔러 갔던 아빠가 동수보다 먼저 와
불을 환하게 켜 두면
달
살금살금 달에 불 켜러 간
엄마가 내려온 듯
학원 마친 동수가 문을 열 때까지
깜깜하면 툭, 골목길을 굴러떨어질 듯
조마조마 숨도 쉬지 않는
집, 노랗게 익어 가는
길고양이
오늘은 내가 먼저 불을 켜야지
호주머니 가득 달빛 움켜쥔 손으로
동수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붕이 먼저 웃는
집
큰길 사거리에서 보면
까치밥 같은 집이 가끔씩 별을 주워
이마에 붙여 준다.
엄동수 너, 달에서 왔구나!
_「달에서 온 아이」 전문
동수의 노오란 고향을 그린 시 「달에서 온 아이」와 남산만 한 엄마 배가 둥실 떠올라 동수가 태어나던 밤을 그린 「만월」을 시작으로 책장을 넘기며 독자는 동수를 둘러싼 이야기의 조각들을 하나씩 받아 들게 된다. 두봉이 연필이 뛰고 미연이 연필이 뛰고 짝꿍 석이 연필은 떼구르르 구르며 시작되는 3학년 8반 교실의 쉬는 시간(「쉬는 시간 10분 동안」), 고양이도 심심할 때가 있다고 외로울 때가 있다고 우는 줄도 모르고 야옹야옹 울 때마다 밥이나 주는 돌팔이 김진우(「고양이 면허증」), 아빠 오른손과 엄마 왼손에 매달린 그네가 되어 가까스로 흔들리는 서진이(「?월 ?일 토요일 맑음」)를 만나는 동안 동수가 사는 지방 소도시 아이들의 삶과 저마다의 고민이 모습을 드러낸다. 트럭에서 사과를 파는 아빠와 동수의 끼니를 챙기는 할머니, 골목에 숨어서 가끔 동수를 놀리는 길고양이가 퍼즐 조각처럼 나타난다. 동화가 아닌 동시이기에, 발견한 조각을 살피고 적당한 자리에 두는 일은 읽는 이의 몫이 되고, 그렇게 완성된 둥그런 서사를 기반으로 우리는 동수의 내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울퉁불퉁 돌멩이 같은 엄동수가 첫사랑에 빠지는 아찔한 순간, 그 마음을 장난꾸러기 진우에게 들킨 더 아찔한 순간, 책을 읽다 잠든 밤 꿈속에서 그리운 엄마를 만나는 애틋한 순간, 냇가에 앉아 끝도 없는 사색에 빠지던 순간의 소중한 반짝임과 울림을 그것 그대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동수는 시간이 많아요. 느릿느릿 구불구불 가는 달팽이도 시간이 많아요. 길동무가 된 둘은 동수의 머릿속을 함께 걸어요. 생각 위를 걷다 보면 마음이 나타나요. 그 마음에 발이 생겨요. 달에서 온 엄동수, 고구마 닮은 내 친구 엄똥수. 저 높은 동네에 놀러 가면 만날 수 있어요.” _노인경
화가 노인경은 이 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며 화가가 되었다가, 독자가 되었다가,... ● 동시를 경험하는 아주 새로운 방법,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 동시+그림+이야기가 함께 그린 노오란 마을
가파른 골목 맨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김해시 장유초등학교 3학년 8반 엄동수의 집
사과 팔러 갔던 아빠가 동수보다 먼저 와
불을 환하게 켜 두면
달
살금살금 달에 불 켜러 간
엄마가 내려온 듯
학원 마친 동수가 문을 열 때까지
깜깜하면 툭, 골목길을 굴러떨어질 듯
조마조마 숨도 쉬지 않는
집, 노랗게 익어 가는
길고양이
오늘은 내가 먼저 불을 켜야지
호주머니 가득 달빛 움켜쥔 손으로
동수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붕이 먼저 웃는
집
큰길 사거리에서 보면
까치밥 같은 집이 가끔씩 별을 주워
이마에 붙여 준다.
엄동수 너, 달에서 왔구나!
_「달에서 온 아이」 전문
동수의 노오란 고향을 그린 시 「달에서 온 아이」와 남산만 한 엄마 배가 둥실 떠올라 동수가 태어나던 밤을 그린 「만월」을 시작으로 책장을 넘기며 독자는 동수를 둘러싼 이야기의 조각들을 하나씩 받아 들게 된다. 두봉이 연필이 뛰고 미연이 연필이 뛰고 짝꿍 석이 연필은 떼구르르 구르며 시작되는 3학년 8반 교실의 쉬는 시간(「쉬는 시간 10분 동안」), 고양이도 심심할 때가 있다고 외로울 때가 있다고 우는 줄도 모르고 야옹야옹 울 때마다 밥이나 주는 돌팔이 김진우(「고양이 면허증」), 아빠 오른손과 엄마 왼손에 매달린 그네가 되어 가까스로 흔들리는 서진이(「?월 ?일 토요일 맑음」)를 만나는 동안 동수가 사는 지방 소도시 아이들의 삶과 저마다의 고민이 모습을 드러낸다. 트럭에서 사과를 파는 아빠와 동수의 끼니를 챙기는 할머니, 골목에 숨어서 가끔 동수를 놀리는 길고양이가 퍼즐 조각처럼 나타난다. 동화가 아닌 동시이기에, 발견한 조각을 살피고 적당한 자리에 두는 일은 읽는 이의 몫이 되고, 그렇게 완성된 둥그런 서사를 기반으로 우리는 동수의 내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울퉁불퉁 돌멩이 같은 엄동수가 첫사랑에 빠지는 아찔한 순간, 그 마음을 장난꾸러기 진우에게 들킨 더 아찔한 순간, 책을 읽다 잠든 밤 꿈속에서 그리운 엄마를 만나는 애틋한 순간, 냇가에 앉아 끝도 없는 사색에 빠지던 순간의 소중한 반짝임과 울림을 그것 그대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동수는 시간이 많아요. 느릿느릿 구불구불 가는 달팽이도 시간이 많아요. 길동무가 된 둘은 동수의 머릿속을 함께 걸어요. 생각 위를 걷다 보면 마음이 나타나요. 그 마음에 발이 생겨요. 달에서 온 엄동수, 고구마 닮은 내 친구 엄똥수. 저 높은 동네에 놀러 가면 만날 수 있어요.” _노인경
화가 노인경은 이 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며 화가가 되었다가, 독자가 되었다가, 동수가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구체적인 세계와 동수의 내면을 자유롭게 오가며 펼쳐지는 그림 언어가 서사에 풍부한 색채를 더한다.
● 신발보다 발을 사고 싶은 아이들에게
“지구보다 큰 이 상자를 나쁜 꿈에 쫓겨 다니는 아이들에게 드립니다. 신발보다 발을 사고 싶은 아이들에게, 지빠귀 같은 발과 물고기 같은 발을 사서 세상 멀리까지 나가 볼 수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합니다. 내일모레쯤이면 상자 속에서 머리를 쏘옥, 내밀고 ‘오늘은 달이 몇 개야?’라며 폴짝폴짝 개구리처럼 뛰어오를 개구쟁이들의 마법을 기다립니다.” _김륭
『달에서 온 아이』의 중심축은 두 편의 이야기시 「갖바치 엄동수와 달팽이 왕국」1, 2이다. 30페이지에 걸쳐 진행되는 이 길고 장대한 이야기시는, 꼬부랑 달팽이를 따라 궁금하고 궁금하던 머릿속으로 들어간 엄동수가 말의 신발을 짓는 갖바치가 되었다가 신발이 아닌 발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장맛비 그친 저녁 무렵 꼬부랑 달팽이를 만나 달팽이 왕국으로 들어간 동수는 여기저기서 돌멩이처럼 쏟아지는 말들 사이에서 “-너, 나 좋아하지?” 햇살 같은 임서진의 말을 발견한다. “-귓속으로 들어온 말이 신발을 얻지 못하면 생각이 될 수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신발을 얻은 말만이 생각이 되는 거야./ 머릿속에서 살 수 있는 거야. 기억이 되는 거지.” 꼬부랑 달팽이의 말에 부지런히 신발을 짓던 엄동수에게 “길고양이처럼 꼬리가 잘린 늙은 원숭이”가 다가와 말한다. “-나는 발을 만들어 주시오.”
“달팽이 왕국 최고의 갖바치가 된 엄동수에게/ 마침내” 다가온 “운명의 시간”, 곰곰 생각하던 엄동수는 비로소 노래한다.
-신발은 싫어. 신발은 사기 싫어. 나는 발을 살 거야.
달까지 걸을 수 있는 발을 살 거야. 별과 별 사이를 건너뛸
발을 살 거야. 어떤 날은 새가 되고 어떤 날은 물고기로 변신할 수 있는
발을 만들 거야.
_「갖바치 엄동수와 달팽이 왕국2」 부분
이 책을 먼저 읽은 송선미(동시인, 격월간지 『동시마중』 발행인)는 이렇게 말한다.
“엄동수의 시간은 수평으로, 원으로, 수직으로 갑니다. 달과 가장 가까운 동네 맨 꼭대기에 엄동수의 집이 있고, 임서진의 아파트가 있고, 학교 운동장이 있고, 교실이 있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면 어두운 방 불을 혼자 켜야 하는 엄동수의 삶이 있고, 부모님이 이혼한 아이들의 삶이 있고, 부자 나라가 되었다고 떠드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언제나 없어져 버리고, 미래엔 결코 닿을 수 없는, 가로선으로 꽉 잠긴 시간. 점처럼 꽉 잠긴 일상의 시간성을 지구보다 커다랗게 열어 보이는 이야기 동시 「갖바치 엄동수와 달팽이 왕국」1, 2는 떠나고-만나고-탐색하고-극복하고-얻고-성장하고-돌아온다는 점에서 영웅 서사시를 닮았습니다. 달팽이 왕국에서 엄동수가 갖바치가 된 사연이나, 돌아온 엄동수가 신발 대신 발을 살 순 없을까 고민하는 까닭은 너무나도 재미있고 감동적이기 때문에,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꾹 참고 남겨 두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