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다른 일을 하다 우연히 포럼에 들어와 보니 예고하셨던 글이 남겨져 있네요.^^ 그런데, 아예 기본 전제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영구임대주택이라고 할 때의 '영구'는 임대자가 원한다면 종신토록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는 최장 20~30년 정도까지 살 수 있는 장기임대주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영구임대라는 말은 역대 정부가 공급해온 공공임대주택들이 대부분 5년 정도 지나면 분양전환할 수 있도록 해 임대주택으로서 안정성이 없어 대비되는 말로 자주 쓰는 단어입니다. '영구'라는 말이 붙는다고 해서 사업자가 팔 수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제가 쓴 글에서 공익사업자가 주택경기 사이클에 따라 임대주택을 팔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집값이 내리면 일정한 수준에서 주택을 팔 수 있게 하고, 집값이 오르면 추가로 사업을 벌여 임대주택을 더 공급하는 게 기본 구조입니다. 주택시장에서 가격안정화 장치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쓰는 <시사경제>자료는 정책에 관해 논할 때는 기본 정책 방향이나 큰 틀의 사업 구조를 말하는 선에서 대부분 그칩니다. 님께서 생각하는 정책컨설팅 보고서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좀 길어지기는 했으나, 매회 10쪽 이내의 자료에 얼마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번에 쓴 글도 공익사업자가 5%의 투자수익을 확보하면서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가를 검토한 것일 뿐입니다. (2)편에 쓴 내용이라 님께서는 못 봤겠지만, 정부나 정치권에서 재원이 많이 들어 임대주택사업을 많이 못한다고 하도 핑계를 대니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지요.
님이 지적하신 부분은 제가 보기에는 매우 부수적인 내용입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실행하거나 법제화할 때 기술적으로 검토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공익사업자로 하여금 언제 어떤 조건으로 투자수익을 현실화하게 하느냐에 관한 법령상의 규정을 두는 문제 정도입니다. 그때 필요하다면 그런 구체적인 조건에 관한 정책 시뮬레이션은 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참고로, 저는 서울시 장기전세주택의 기본 컨셉을 제공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장기전세는 재원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어서 개선의 여지가 매우 큽니다만) 서울시 재직 때는 서울시 주택정책의 상당 부분에 관여하기도 했고요. 물론 기존 틀에 막혀 제 뜻을 충분히 펼치지는 못했지만요. 굳이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글을 쓸 때는 모두 다 글로 밝히지는 못하지만,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각론적인 부분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님께서 앞의 글에서 주공을 언급하셨는데, 저는 주공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공이 왜 필요합니까? 지금 감리 주는 비용이면 CM을 부릴 수 있고, 훨씬 효율적인데 왜 방만한 토공, 주공을 시행사로 두고 감리까지 추가로 둬가면서 사업을 합니까? 지금 선진 각국에 있는 막대한 공공주택 재고들을 모두 우리 같은 방만한 공기업들이 지었겠습니까? 제 컨셉에서는 토공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주공은 그냥 임대주택 관리사업자 기업으로 축소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한 사업을 정책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어떤 제도적 개혁이 필요한지도 이미 다 검토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 없으나 토지보상제도, 감리제도, 감정평가제도에서부터 하도급 직불제와 의무시공제 등을 통한 다단계 하도급 축소와 건설업역 구분 철폐 등등 관련된 많은 정책적 문제에 대해 다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정부 및 공기업 구조 개혁도 어떻게 할 것인지 모두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워낙 부동산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제가 부동산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원래 제 주전공과 관심사는 정부 시스템 개혁입니다.)
사실 이 같은 시스템 전반의 개혁을 수반하지 않으면 앞서 제시한 영구임대주택 사업모델도 온전히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그렇기에 tralala님처럼 현재 업계에 몸담고 계신 분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제 주장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게 아닙니다. 기존의 틀 안에서 새로운 것을 하려면 어렵지만, 시스템을 확 뜯어고쳐 새로운 틀을 만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공부한 곳에서는 항상 ‘상자밖에서 생각하라’는 말을 모토처럼 사용하는데, 사실 상자 밖에서 생각해야 문제를 (훨씬 쉽게) 풀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기존의 틀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을 확인해본 사람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장기전세도 부분적으로는 성공했고, 조금 다르지만 지하철 9호선 2단계 공사에서만 1000억원의 공사비를 줄여봤습니다. 저한테 충분한 권한만 주어진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제가 글에서 쓴 내용도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선 글에서, tralala님께서 좋은 문제제기를 해주셨다고 쓴 것은 그런 현실의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극복할지에 대해 여러사람들이 다시 한 번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님의 앞선 글에 다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런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좋은 의견을 주셨기에 다른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 것입니다. 주제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교환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른 분들도 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니까요.
짧게 쓰려 했는데 글이 길어졌네요. 어쨌든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늘 시간이 허락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번처럼 긴 답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요. 지금도 사실은 잠을 줄이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 양해를 바랍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첫댓글 늦은밤까지 일일이 답변까지 해주셔서 덕분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고가 많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