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혼불문학공원 연두로 출렁이는 단풍 숲 ‘아늑’
“아아, 어여쁘고 둥근 사람아, 네가 없으면 네가 없으면 내 가슴이 연두로 물들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소설 ‘혼불’ 속에서 주인공인 강모가 강실을 그리며 뱉었던 절규이다.
전주시 덕진동에 있는 혼불문학공원에 들어서자, 책 모양의 돌에 새긴 소설비가 눈에 띈다. 통나무를 그대로 박아 놓은 산책길은 만든 이의 정성이 엿보인다. 우거진 단풍나무는 저마다 다른 크기의 손을 내밀어 환영을 한다. 연두이더라도 단풍나무의 연두색은 금세 흘러내릴 것 같다. 손을 내밀어 단풍나무 잎사귀를 만진다. 잎 싹에서 흘러내린 연두색이 내게로 스미어 내 가슴속이 연두로 물든다. 가을이라면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잎에 얼굴까지 달아오를 것 같은 길이다. 겨울이라면 가지만 남은 단풍나무 사이의 숲길에 눈 내린 풍경이 가슴을 시리게 할 것 같다. 봄이라면 꼬물거리는 아기 손 같은 새순이 간지럼을 먹일 것 같다. 여름이라면…지금은 여름. 연두로 출렁이는 단풍 숲이 마음을 흔들어 나도 어느새 물이 되어 피아의 구별이 없다.
떨어진 나뭇잎이 흙에 닿을 때와 같은 걸음걸이로 무덤 앞에 이른다. 어여쁘고 둥근 한 사람의 얼굴이 무덤 옆에 새겨져 있다. 무덤 앞에서 묵념을 한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바라던 바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덤 속의 그이처럼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이루지 못할 바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덤 옆에는 자그맣게 새겨진 작가의 얼굴이 있다. 그이의 얼굴을 가만히 만져본다. 따스하다. 익은 햇볕 탓일 것이다. 오직 작고 딱딱한 형상으로만 남아있는 얼굴이지만, 이미 한국문학의 큰 바위 얼굴이다. ‘달구어진 햇볕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더위가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의 문장처럼 햇볕이 익어가고 있는 유월이다. 들숨을 쉬니 문득 단내가 난다. 땅은 꽃심을 풀어 녹색 종이 위에 점점이 꽃 점을 찍어 놓았다.
땅이 만든 문장을 읽어본다. 보는 각도에 따라 해석은 다르겠지만, 한 치도 빈틈이 없다. 꼭 꽃이 피어야 할 자리에 꽃이 피어있고, 나무가 서야 할 자리엔 분명히 나무가 있다. 바위 하나 잔 돌멩이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다. 소설 ‘혼불’의 문장도 그러하다. 아무도 거기에 손댈 수 없으므로 이미 자연이다.
이대흠 (시인·리장닷컴 편집장 www.rijang.com)
■ [찾아가는길]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으로 나가서 전주 쪽으로 간다. 호남제일문을 지나서 팔달로를 따라 시청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덕진공원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을 한다. 얼마 가지 않아 덕진공원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을 하면 덕진공원이고, 직진을 하여 덕진공원 후문 쪽으로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우회전을 하면 덕진공원 후문이 나오고, 좌회전을 하여 50여 미터쯤 가면 혼불문학공원이 있다.
첫댓글 전주에 살면서도...."혼불문학공원" 에 가보지못했는데..연두빛이 다 사라지기전에 찾아가 보고 사진도 촬영해 보아야지...고마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