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8
새해 첫 달이 거의 다 지나가는 즈음이다. 나는 생활근거지에서 좀 멀리 나설 일이 생겼다. 아침 일찍 경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봄이 오는 길목에 친구 텃밭으로 가서 내가 도와줄 일이 있어서다. 그 일은 유실수 가지치기다. 사실은 울산 사는 친구도 방학이기에 시간 여유가 있다면서 나를 태우러 창원까지 오겠다는 것을 만류했다. 친구의 주말 농장이 경주 산내 골짝에 있다.
수년 전 친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울산과 꽤 떨어진 산내 골짝에 전원주택이 딸린 텃밭을 마련했다. 텃밭에는 복분자와 오가피 등 여러 유실수들이 자란다. 그 가운데 매실나무와 대봉감나무에서도 과실이 열린다. 그런데 친구는 농사에 문외한이라 유실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거름은 주었으나 가지치기가 서툴러 지난해 삼각사다리에 올라 작업을 하다 떨어져 다치기도 했다.
친구는 수확한 매실로 발효액을 뽑아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데 나한테도 상당량을 보냈다. 나는 전문 농사꾼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자랐고 나무를 가꾸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봐 왔기에 가지치기가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봄방학 때도 시간이 있긴 하였다만 하루라도 빨리 잘라주어야 나무에 도움 된다. 봄방학이면 친구는 다친 발목 복사뼈에 박힌 철심을 뽑아내는 수술도 받아야 한다.
꽃이나 잎만 보는 조경수들도 전정을 해 주어야 하는데 유실수는 말할 나위가 없다. 유실수는 전정을 해주지 않으면 꽃망울이 많이 달려 수분이 되고 나면 한꺼번에 다 떨어져 해거리를 하거나 열매가 작아 쓸모가 적다. 과육이 튼실한 열매를 보려면 생가지를 잘라내는 아픔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농사다. 친구는 전정 방법을 모르니 해마다 거름만 자꾸 주어 유실수를 힘들게 했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닿으니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건천을 지나 당고개를 넘어 산내 골짝 텃밭으로 갔다. 우리는 쉴 새도 없이 작업 창고로 가 전정가위와 작은 톱을 찾아 나와 매실나무 밑으로 갔다. 매실나무 수령은 이십년 가량 되어 둥치가 제법 컸다. 아래쪽 부분부터 촘촘한 가지를 톱으로 잘라 속아냈다. 위를 쳐다보고 하는 작업이라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한 달여 있으면 꽃으로 화사하게 피어날 매화망울은 도톰해져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많고 많은 꽃망울을 다 달고서야 제대로 된 열매를 거둘 수 없기에 과감하게 가지를 속아주어야 했다. 낮은 곳은 지상에 서서 잘랐다만 높은 데는 삼각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잘라야했다. 약간의 고소공포가 있는 나는 삼각사다리를 조심스럽게 오르내렸다. 친구는 작년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쳤다.
매실나무는 생각보다 단단해 톱으로 자르는데 힘이 들었다. 나뭇가지에는 삐쭉한 가시가 붙어 있어 긁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친구는 내가 잘라 놓은 나뭇가지를 잘게 도막내어 노끈으로 다발로 묶었다. 동여 멘 나뭇단은 언덕 아래 가지런히 쌓아 두었다. 여러 개 나뭇단이 차곡차곡 쌓여지자 설치미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우리는 새참 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일했다.
친구는 잠시 살림공간으로 가 점심밥을 짓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반주로 건천막걸리를 몇 순배 비웠다. 점심 식후 더 속도를 내어 가지를 잘랐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전정한 나무 모양이 부챗살로 퍼져 조경 전문가 시늉을 내는 듯했다. 날이 저물도록 나는 매실나무 가지를 속아내고 친구는 그 가지를 잘라 나뭇단으로 묶었다. 어두워서야 하루 일과를 끝내고 살림집 안으로 들었다.
지친 밤이었다만 친구가 장만해온 문어를 삶아 밤늦은 시각까지 잔을 비우며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나는 아침 식전 마당귀 대봉감나무 가지를 잘랐다. 대봉감나무는 매실나무보다는 쉽게 잘렸다. 아침 식후 뒤란의 대봉감나무와 남은 매실나무 전정을 마저 끝냈다. 나뭇가지를 모두 정리하고 친구 집이 있는 울산 호계로 갔다. 호계역에서 창원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