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재탐구-백제시대의 계단식 우물 '공산성 연지'
백제시대의 공산성 계단식식수댐 재조명하자
국내 계단식형태는 공주 공산성 우물이 유일
공산성 연지(연못)보다 식수댐(우물)으로 표기해야
충남 공주시에는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 웅진성으로 명명되는 공산성에 계단식 우물이 있다.
공산성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백제시대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돌성벽과 금서루,공복루,작은 사찰 영은사,임류각,광복루,영동루,진남루,쌍수정과 함께 금강을 바라보는 만하루에는 옛 백제시대의 계단식 우물이 있으나 문화재청과 공주시가 안내한 안내판에는 연지(蓮池)로 소개되어 있다.
연지라는 표기는 건축학적으로 관상을 위해 인공으로 조성한 못을 말한다.
그러나 만하루 앞의 연지는 백제시대 계단식 우물로 국내에서는 이같은 계단식 우물은 찾기가 매우 어렵다.
공산성 계단식우물(식수댐)과 같은 형태는 유럽이나 인도등 역사가 있는 지역에서는 우물이나 공중목욕탕과 같은 기능의 우물들이 있다.
따라서,공산성 관광안내 표지판이 문화사적 표기로 단순한 연지(연못)로 표기되어 있어 토목학적 병행연구가 필요하다.
계단식 우물로는 기하학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모든 돌에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에 위치한 아바네리에 있는 거대한 찬드 바오리 우물이 대표적이다.
‘찬드바오리’의 바오는 우물이란 뜻으로 이곳은 30m,13층 높이의 3,500계단으로 축조되었다,
이스라엘의 실로암식수댐(우물),쿰란의 식수댐(우물)등도 주로 4각형태의 계단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공산성 계단식우물(연지)은 삼국사기 기록에 있는 백제무왕 35년(634년)에 조성한 연못 궁남지와도 다른 형태이다.
공산성은 웅진성,쌍수산성,공산산성,공주산성등으로 불려 왔으며 475년부터 538년까지 64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을 수비하기 위해 동성왕대(479-501년) 축조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구조는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조하여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병형구조이다, 성곽의 총 길이는 2,660m이며 토성이 735m,석성이 1,925m로 성벽의 높이는 2.5m이다,
공산성에는 고려시대 망이/망소의 난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충남 기념물 제 42호인 공산성 연지(계단식우물)에 대해 안내판이나 해설서에는 –공산성 안에서 사용하는 물을 저장하던 연못이다. 발굴조사시 조선시대 기와와 자기조각등이 확인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영은사 앞쪽에 연못(우물)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이 자리로 연못(우물)을 옮겼다. 1757년과 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으로 만든 ‘여지도서’에는 공산성에 물이 부족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못(못)을 만들어 강물을 끌어다 썼으며 만하루라는 건물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연지(우물)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윗부분은 길이 22m,너비 11.5m이고 아랫부분은 길이 9m, 너비 4m, 깊이는 10.2m로 만수인 경우 1,474톤 규모의 용량이며 식수용으로 사용할 경우 1인당 100리터로 산정할 경우 1만4천명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동쪽과 서쪽 벽에는 40cm크기의 배수로가 설계되어 있는데 우천시나 산에서 흘러 오는 물을 저장하거나 배수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배수로와 우물형태를 보면 식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하는 과거 시대의 식수댐(우물)이라는 표기가 합당하다는 의견이 높다.
배수로의 크기나 형태에서 오늘날의 하수구보다 대규모로 축조하여 홍수등으로 인한 피해도 저감하도록 하였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 환경경영학박사는 “수도100년사나,하수도사에서 공산성 계단식우물(연지)에 대해 심도있는 조사를 통해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상,하수도분야는 공학적 측면만 강조되고 문화,역사적 고찰이나 연구는 매우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계단식으로 축조된 형태는 단순한 관상용이나 방어적 진지형태라 볼 수 없다.따라서 연지라는 표기는 문화사적 연구와 토목공학적 연구를 통해 명칭부터 개정할 필요가 있다. 공산성 계단식우물의 용량으로는 당시 성안마을 주민이나 왕궁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용량으로 백제문화에 대한 토목공학분야의 연구를 통해 명칭표기부터 수정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수기 산업만으로 1조원의 매출을 올렸던 웅진코웨이의 창업주였던 윤석금씨는 고향인 공주의 옛 지명인 웅진을 상호로 명명하였지만 정수기산업을 매각하고 지금은 정수기산업의 경우 웅진이 삭제되고 코웨이로 상호가 변경되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