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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날리는 사회
이정재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퇴직금 날리는 사회[1]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그건 엄청난 오해요 자만이었던 셈이다. 내 이름은 ‘난달라’. 4년 전 빵집을 차렸다. 막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신생 브랜드를 택했다. 업계 1위인 P사보다 조건이 엄청 좋았다. 목은 최고라던 종로통. 임대료 높고 권리금도 비쌌지만 상관 안 했다. “돈값을 할 겁니다.” 창업 컨설팅 직원의 혀는 그때 얼마나 달콤하고 부드러웠던가. 퇴직금을 몽땅 털어 넣었다. 주변에선 백이면 백 말렸지만 들은 체도 안 했다. 내가 누군가. 나는 다르다. <난달라>가 아닌가.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 남은 건 후회뿐이다.
결정부터 성급했다. 열심히 뛰면 내 월급은 가져가겠지 생각했다. 본사에서 제빵사 보내줘, 아르바이트생 구해줘, 관리직원 보내줘, 교육시켜 줘, 뭐가 어려울까 싶었다. 아내와 둘이 새벽부터 밤까지 뛰면 저축도 가능하리라. 완전 오산이었다. 가게 문을 연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경기는 왜 이리 급속히 나빠지는지. 고객은 씀씀이를 줄였다. 천원짜리 빵 하나 사면서 포인트, 에누리까지 다 챙기는 손 작은 손님만 늘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서너 시간 죽치는 아저씨들은 왜 이리 밉상인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P사가 개업 두 달 만에 바로 옆에 빵집을 냈다.
말로만 듣던 경쟁사 잡아먹기다. 매출은 뚝뚝 눈에 보이게 떨어졌다. 월 6천만원 매출이 돼야 소위 ‘똔똔’을 맞출 수 있었지만, 잘해야 4천만원이 고작이었다. 빚으로 꾸려가는 나날이 이어졌다. 결정타는 권리금이었다. 장사가 안 돼 주변 임대료는 떨어졌지만 건물주는 2년 계약이 끝나자 20% 넘게 월세를 올렸다. 내가 못 견디고 나가면 권리금만큼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는 건물주의 얄팍한 계산을 알았지만 대항할 방법이 없다. 1억원이 넘는 권리금이 허공에 뜰 판이었다. 사정 좀 봐달라며 애걸했지만 건물주는 퇴직금 들고 장사하려는 이가 줄을 섰다며 법대로 하자는 말만 했다.
결국 내 퇴직금은 고스란히 권리금이란 괴물의 먹잇감이 돼버렸다. 대책은 없나. 묻고 수소문하고 검색했다. 없었다. 권리금은 현실엔 있지만 법에는 없다. 법의 보호 밖이다. ‘권리금 안내’란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했다. 회원이 수백 명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하기야 1955~1963년생 베이비부머는 712만 명이나 된다. 인구의 14.6%다. ‘2년치 수익을 권리금으로 인정하라’ ‘임차기간을 10년으로 늘려라’ 나름 대안과 주장은 많지만 해답은 없었다. 그런데도 창업 컨설팅 업체는 권리금 높은 점포만 소개한다. 권리금의 10%를 수수료로 떼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속칭 ‘날파리’도 끼어들었다. “사장님 많이 어려우시죠. 권리금이 1억5천만원 맞지요? 물주가 나왔는데 계약하려면 권리금 시세 확인서가 필요해요. 수수료가 50만원입니다.” 권리금 시세 확인을 대행해 줄테니 50만원을 내라고 했다. 자영업자 전용 스미싱이라고 할까. 망한 은퇴 자영업자 등치는 전문 직종까지 생겨난 셈이다. 억장이 두 번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위안은 있다. 주변엔 나 같은 사람 천지다. 올해 망한 자영업자 중 절반이 50대다. 전체 자영업자 중 50대가 약 30%(200만 명)로 가장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크게 늘어나던 자영업자 창업은 올 들어 계속 줄었지만, 50대 창업만은 되레 매달 3만 명씩 늘었다고 한다. 은퇴 후 남는 8만 시간, 직장을 떠난 뒤에도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고령화의 공포가 주범이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시각각 죄어오는 압박감, 이걸 누가 견디랴. 한국은행은 자영업 위기를 ‘폭탄’으로 정의했다. 자영업자의 빚 450조원 중 60조원은 부실 위험이 있다고 봤다. 빌린 돈 못 갚는 50대 때문에 나라가 큰일 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나라에도, 내게도 대책은 없어 보인다. 그나저나 내 이름 <난달라>, 이름부터 바꿔야겠다. <나도야>로…
퇴직금 날리는 사회[2]
50대가 퇴직금을 날리는 세 가지 방법. 설마 그중 하나에 내 이름을 올릴 줄이야. 내 이름은 <재택구>다. <난달라>와는 절친이다. <난달라>가 누구냐고? 지난주 이 난에 등장한 주인공이다. 퇴직금을 빵집에 털어 넣었다 홀랑 날린 친구다. 내심 그를 비웃었지만 나도 별수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한민국은 재테크 불모지대였다. 우리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더욱 가혹했다. ‘또 주식 하면 개새끼’란 맹세를 깨고 내가 20여년 만에 다시 주식에 손댄 건 2년 전. 나름 철저한 투자 원칙을 세웠다. ‘우량주로만 승부한다.
과욕은 금물, 종합주가지수보다 3%만 더 수익을 낸다. 손절매와 기대 수익을 확실히 챙긴다. 묻지마 투자, 테마주 투자는 절대 안 한다. 30대의 팔팔한 나이, 대박을 꿈꾸다 쪽박 찼던 실패를 교훈 삼았다. 퇴직금을 들고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이대로만 하면 필승, 대박도 가능하리라. 시작은 정석대로, 조심조심 공부부터 다시 했다. 증권사 추천 종목도 따라잡았다. 믿는 구석도 있었다. 또 다른 절친, 전직 증권사 임원이다. 그는 사설투자회사를 운영 중이다. 그의 조언대로 퇴직금의 반은 펀드에, 반은 우량주를 샀다.
조금 이득을 봤지만 감질만 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좀 안다 싶으니 욕심이 났다. 한 방이 눈앞에 어른거렸다.그는 “바이오가 답”이라고 했다. 유망기업을 직접 찾아가봤다. 오너들도 만났다. 치매 관련주, 항암 관련주, 여성호르몬 주…. 한 방의 꿈이 무럭무럭 부풀었다. 하지만 역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고르고 고른 주식들은 모조리 내 기대를 외면했다. A주는 주가가 이미 너무 많이 올랐고, B주는 확신했던 임상시험이 실패했으며, C주는 곧 된다던 당국의 허가가 끝내 안 떨어졌다. 퇴직금은 확 줄었다. 다급해졌다.
다짐했던 투자 원칙이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더 한 방에 매달렸다. 테마주에 묻지마 투자까지 서슴지 않게 됐다. 급기야 빚을 내 주식을 샀다. 긴장과 초조, 한시도 증권단말기 앞을 떠나지 못했다. 어느새 손엔 빚만 남았다. 한 친구는 “여의도 프로들도 올핸 대부분 쪽박 찼다”며 “무모했다”고 혀를 찼다. 나쁜 녀석. “대박 날 거야” 꼬드길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이라니 날더러 바보라 하지 말라. 문제는 그 놈의 초저금리였다. 15년 전만 해도 1억원을 은행에 맡기면 다달이 이자로 1백만원을 챙길 수 있었다.
투신사에선 150만원도 가능했다. 지금은 한 달 30만원이 고작이다. 이런 초저금리가 ‘은퇴 후 40년 더 산다’는 고령화의 공포와 맞물렸으니 그걸 누가 견디랴. 한국의 은퇴자들 평균 연령은 53세, 그나마 최후의 방패라는 국민연금 수령까지는 10년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 가만있다간 연금 타기 전에 말라 죽을 판이다. 그야말로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이다. 이왕이면 한번 저질러나 보자. 고민 끝 선택이 주식이었다. 다른 선택지? 없었다. 대한민국은 은퇴용 재테크가 없는 나라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0%에 가깝다.
펀드도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는 판이다. 부동산 임대 같은 대안 투자는 몰라서, 돈이 없어 못한다. 선물·옵션이며 파생결합증권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하기는 겁이 난다. 머리는 굵었고 용어는 낯설고 복잡하다. 겨우 암호문 풀듯 더듬거리며 해독한들 막상 베팅하기엔 손이 떨린다. 스캘퍼며 데이트레이더며 젊은 전문 투자자들이 설치는 판이다. 어디 함부로 50대 아마추어가 명함을 들이밀랴. 내년엔 좀 달라질까. 아닐 것이다.
세제 혜택을 주는 금융 상품은 전부 연봉 5천만 원 이하 직장인에게 맞춰져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 같은 고수익 고위험 상품은 5억 원 이상만 투자가 가능하다. 나 같은 소시민 은퇴자에겐 이쪽도 저쪽도 길이 없다. 얼마 전 파산한 동양그룹의 연 8%짜리 기업어음에 왜 4만 명이나 몰렸겠나. 거기 돈을 넣었다가 쪽박 찬 사람들 심정, 나는 십분 이해한다. 그러니 내 이름 <재택구>, 이름값 못했다고 비웃지 말라.
퇴직금 날리는 사회[3]
내 이름은 <안전빵>. 앞에 등장했던 <난달라>나 <재택구>는 망할 만했다. 언감생심 퇴직금을 불려보겠다며 빵집이며 주식투자를 하다니, 겁도 없지. 아니나 달라. 제가 잘못해 홀랑 털어먹고는 시스템이 문제네, 은퇴 상품이 없네. 나라 탓, 사회 탓 하소연을 해대는 꼴이라니. 나 <안전빵>은 안분지족형, 분수를 지키고 만족할 줄 안다. 닭집·빵집·찻집·밥집엔 애초 관심 없다. 초저금리에 대비한 주식·채권 투자? 패가망신할 일 있나, 그런 걸 왜 해. 그럼 퇴직 후 남는 40년을 어떻게 버틸 거냐고?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못 벌면 안 쓴다. 가능한 가늘고 길게 쓴다.’ 그거면 충분하다. 퇴직금 2억 원을 한 달 2백만원씩 잘라 쓰면 10년을 버틸 수 있다. 그 뒤 한 채 있는 집을 주택연금에 맡기면 다달이 120만원은 되리라. 거기에 국민연금 70만원을 더해 이럭저럭 한세상 살다 가면 족한 것 아닌가. 퇴직금이 뭔가. 몇 십 년 청춘 바쳐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훈장이요, 내 인생의 계급장 아닌가. 그런 소중한 돈을 왜 허투루 난리냔 말이다. 오래된 명언도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기자·선생·공무원 퇴직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요, 누가 퇴직금 받았다고 알려만 줘도 수수료를 준다는 말은 또 왜 나왔겠나.
안 해본 일 하다가 쪽박 찬 사람이 세상에 널렸다는 얘기 아닌가. 여기에 하나 더 재취업은 필수다. 20대 고용비율은 줄지만 50대 고용비율은 늘고 있다. 다 나 같은 베이비부머가 은퇴 후 식당·공사판 가리지 않고 뛰는 바람에 그런 것 아닌가.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한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직업에 귀천 없다’는 말은 50대에 꼭 되새겨야 할 명언이다. 이렇게 준비했지만, 2013년 대한민국은 녹록치 않았다. 웬 놈의 ‘푸어’는 그렇게 많은지. 당장 ‘교육비에 허리 휜다’는 에듀푸어가 발목을 잡았다. 대학 졸업 후 취업난에 시달리던 둘째가 더 공부해야겠다며 지난해 유학을 갔다. 한 해 5천만원의 목돈이 들어갔다.
어떻게 1년은 넘겼지만 올핸 결국 퇴직금에 손을 대야 했다. 강남 학부모 한 해 유학비 평균이 4천8백만원이라더니 남의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뿐이랴. 내년엔 첫째의 결혼, 웨딩푸어가 기다리고 있다. 2011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결혼 비용으로 남자는 8078만원, 여자는 2936만원을 썼다. 못해도 5000만원의 목돈이 또 들어갈 판이다. 게다가 전세는 왜 이리 미쳐 날뛰는지. 큰아이 전세에 보태려면 마지막 남은 퇴직금마저 헐어야 할 판이다. 나는 하우스푸어, 아들은 렌트푸어 신세가 불을 보듯 뻔하다.
재취업은 또 어찌 그리 어려운지. 업종 불문, 보수 불문 달려들어 봤지만 취업문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환경미화원 뽑는데 경쟁률이 6대1이다. 모래주머니 25㎏짜리를 들고 뛰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용을 써 봤지만 팔팔한 30대에게 밀릴 수밖에. 그렇다고 아파트 경비직은 쉬운가. 이건 연령 미달이다. 격일제 24시간 근무를 한 달 100만원에 싹쓸이하는 ‘70대 형님’들과는 애초 가격 경쟁이 안 된다. 결국 간신히 주유소 시간제 일자리가 고작. 은퇴 후에도 워킹푸어 신세를 면치 못할 줄 꿈엔들 알았으랴. 급기야 계획을 수정해봤다. 환갑이 지나면 바로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꾸려보자.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주택연금을 신청했다 포기한 3명 중 2명은 아들·며느리 등 가족 반대 때문이란다. 집을 상속받고 싶은 욕심에 자식들이 말리는 것이다. 그런 꼴을 어찌 보랴. 아예 은행 빚이라도 내볼까. 하지만 소득이 없으면 총부채 상환비율 규제에 걸려 집 담보 대출도 어렵단다. 50대 베이비부머에게 2013년 대한민국은 푸어공화국. 일생을 에듀·웨딩·하우스·베이비 등 온갖 푸어에 시달리다 은퇴 후엔 결국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리타이어 푸어’까지. 10명 중 6명이 그런 운명을 못 벗어난다더니 <안전빵>, 나마저 그 6명에 끼고 말 줄이야.
퇴직금 날리는 사회[4]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내 이름은 <공무원>. 곧 퇴직을 앞두고 있다. 처음엔 무척 망설였다. 내가 여기 나와도 될까. 주변에선 말렸다. 퇴직금도 없는 주제에 무슨 ‘퇴직금 날리는 사회’ 출연이냐고. 정년 철석같이 보장되지, 後職 남보다 쉽게 얻지, 퇴직 후 연금 빵빵하게 받지…. 고령화의 최대 수혜자인 주제에 누구 빈정 상하게 할 일 있느냐고. 초저금리 시대, 연금 월 백만원은 목돈 5억 원 가치가 있는데, 월급쟁이보다 두 배 넘게 연금을 타먹으면서 무슨 수작이냐고. 그 점, 앞서 몇 억 원씩 퇴직금을 날리고 앞서 등장했던 <난달라>, <재택구>, <안전빵> 세 분께는 대단히 미안하다.
나도 안다. 요즘 나를 질시하는 눈이 부쩍 늘었고 이유가 바로 연금 때문이란 것. 하기야 그럴 만하다. 보통 직장인이 20여 년 회사 다니다 퇴직해 월 84만원 국민연금 받을 때, 나는 219만원 공무원연금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내는 돈에 비해 가장 많이 받는 편이다. 덜 내고 많이 받으면 어떻게 되나. 결과는 불문가지, 구멍이다. 연금 재정은 10년 전에 바닥났다. 내게 줄 연금 마련을 위해 정부는 국민 세금을 갹출한다. MB정부 때 7조7천억원, 이 정부에선 15조원, 10년 뒤엔 해마다 10조원 넘게 걷어야 한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퇴직 전 월급의 40%밖에 안 주지만, 공무원 연금은 62.7%나 준다. 국민연금은 생긴 지 20여 년 만에 두 차례 크게 손을 봐 받는 돈의 43%를 깎았지만, 공무원 연금은 50여 년 동안 손질 시늉만 냈다. 그 바람에 귀족연금으로 불리며, 이런 귀족연금 대주다 나라 망할 것이란 비난도 거세다. 그래, 나 같아도 눈꼴 시릴 만하다. 하지만 어디 세상사 어떤 일이 보이는 게 다이겠느냐. 나도 할 말은 있다. 내 연금은 국민연금보다 28년 먼저 생겼다. 그땐 ‘아들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이었다.
평균 수명은 50세. 연금 받기 10년 전에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연금 받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돈이 남아돌아 경제발전기금이라며 정부가 항만 짓고 도로 닦는데 몇 조원씩 가져다 쓸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빼간 돈, 넣어야 할 것 안 넣은 돈이 17조원쯤 된다. 그 돈만 다 넣어놨어도 지금처럼 세금을 쏟아 붓는 일은 없었을 거다. 게다가 10여 년 전부터 고령화 속도가 빨라졌다. 50년 전보다 평균 수명은 20년 넘게 늘었다. 공무원연금 받는 사람도 덩달아 늘었다. 최근엔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2011년 수급자는 31만 명이었는데, 지난해는 36만 명이 됐다.
2년여 만에 5만 명이 늘었다. 나도 당신들처럼 급속한 고령화의 희생자인 셈이다. 자꾸 국민연금과 똑같이 놓고 비교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내 연금은 성격이 다르다. 후불 임금에 가깝다. 공무원 연봉은 후하게 잡아도 100인 이상 사업체 평균의 80~90% 정도다. 싼 인건비로 세게 일한 대가를 퇴직 후 받는 거다. 그뿐인가. 내 연금엔 퇴직금도 들어 있다. 정부가 퇴직금 대신 연금을 받도록 설계해서다. 남들 퇴직금 2~4억 원을 쪼개 받는 셈이라 좀 많아 보이는 건데 그게 그리 배 아픈가. 또 있다. 연금은 나보고 부정부패 말라고 주는 보상이기도 하다.
그것마저 없으면 돈이 말하는 세상, 공직자는 절대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구두선이 어찌 통하겠나. 그런데도 세상은 내 연금 깎으라고 아우성이다. 공무원 100만 명 시대의 원년인 올해,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곧 또 공무원연금 개혁위원회를 만든단다. 개혁한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이번엔 위원회 멤버에 공무원을 빼서 ‘셀프 개혁’을 못하게 한단 말도 나온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국민연금과 통합할 수도 있다. 절반 넘게 깎이는 걸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죽을 때까지 내 연금 온전히 받을 기대는 애초 버렸다. 그야말로 공무원까지 퇴직금 날리는 사회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그런데도 해마다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 公試族은 늘고 있으니 무슨 요지경 속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