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부론테와 샤론 부론테 자매의 책을 읽었다.
일종의 평전[評傳]이다.
그 쓸쓸한 고원지대와 폭풍의 언덕이라 지칭되는 풍경이 떠오른다.
한 사내, 파트릭 부론테[1777-1861]라는 한 인간의 비극이 더 선명하다.
그것은 유럽이라던가, 종교라던가 하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
좀 더 근원적인 슬픔으로 깊이 각인이 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주경야독의 자세로 끊임없이 공부를 하여
그 당시만 하여도 독학으로는 꿈꾸기도 어려웠던
캠브리지 대학의 급비생으로 들어가, 졸업을 하였다.
하층계급의 신분으로 수직할 수 있는 통로였던 목사직까지 가지게 되었다.
아일랜드 변방 출신이었지만, 그래도 성실한 노력으로
사회적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고 3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야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한지 8년만에 자식을 여섯남매를 두었다.
이 사내의 즐거운 운명은 여기에서 어둠 속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어린 6남매를 남겨놓고 아내는 숨을 거둔 것이다.
이 고원지대 적막한 마을의 목사님은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잃어 버리고, 홀로 자폐증 비슷한 분위기로 서재에서 책만 읽었다.
그 어린 여섯아이들은 어머님의 자상한 사랑도 없고, 아버지의
근엄한 보살핌도 없이 방치되어 버렸다.
가정부 한 사람과 독신의 고모님이 이 아이들의 보모노릇을 하였다.
부론테 자매들이 이 고모님에 관한 감상이 아예 없었던 것으로 보아서
아주 건조한 형식적인 보모역활만 하였는 모양이었다.
어른들의 관심도 없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폭풍의 언덕에서
이 여섯아이들은 상상력으로 인생을 견디어야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라났고, 큰 딸[11살]은 폐결핵 같은 병으로
아버지의 눈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 해 2월이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둘째 딸 엘리자베스[10살]가 숨을 거두었다.
여덟식구의 단란한 가족에서 벌써 세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이 목사님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파트릭 부론테[31살]은
예술적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파탄의 알콜중독자로 악명만
떨치다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눈을 감고 말았다.
이제 남겨진 가족은 세 딸과 늙은 아버지뿐이었다.
살아남은 딸 중에서는 둘째 딸인 에밀리 부론테는
불후의 명작이라 일컫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책을 런던에서
출판을 하였지만...이 고독한 여인의 건강은 이미 힘들어지고 있었다.
1848년 겨울....겨우 삼십대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날마다 폭풍의 언덕을 함께 거닐던 개는, 주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날마다 문 곁에 기다리고 있었다.
1849년 봄....막내 딸 안도 너무나 어이없이 바닷가 휴양지에서
스카아포로 공동묘지에서 잠들어 버렸다.
유일하게 남겨진 샤론 부론테는 영국문단에서 천재라는 호평을 들었고,
"제인 에어"는 벌써 몇 판이 찍힐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이 늙어진 목사님은 얼마나 쓸쓸한 감회와 비극에 시달렸을까?
마누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고, 여섯남매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결혼도 하여보지 못한 채...이제 딸 하나가 남았을 뿐이다.
교구 목사일은 주로 목사보가 맡아서 하였다.
예술적 천재라는 칭송을 듣는 딸이 있기는 하였지만,
이 목사님의 인생은 슬픔과 고독만이 물결처럼 일렁이었다.
이제는 이 딸보다는 먼저 천국으로 가야된다고 생각하였다.
샤론은 이후에도 몇 편의 책을 내어, 멀리 미국에까지 출판이 되었다.
사회적 신분도 그만큼 상승이 되었다.
허나, 샤론은 어릴때 워낙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여
아주 자그마한 여자인데다, 유행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촌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평판과는 상관없이, 여자로는 매력이 없었다.
여기에 교구 목사보였던 사내가 처음으로 프로포즈를 하였다.
교구의 사람들이며, 늙은 목사님도 무조건 반대를 하였다.
사회적 신분도 미천한 주제에, "넘볼걸 넘봐야지."하는 분위기였다.
호와스의 목사관은 이제 텅 빈 폐가처럼 쓸쓸한 적료감만 있었다.
그 목사보도 떠나고, 샤론에게 몇몇의 프로포즈 비슷한 염문이 있기는
하였으나...어찌된 일인지 성사는 되지 않았다.
사내들이 "천재적인 여성작가"에만 관심이 있었지,
한 여자인 샤론 부론테에는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멀리 떠났던 목사보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 니콜즈 목사보는 "천재적인 작가"는 잘 모르고,
그저 한 여성으로 한 남자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많은 반대가 있기는 하였으나, 이 두 사람은 끝내 결혼을 하였다.
여섯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결혼을 하였던 셈이다.
이 평범한 사내였던 콜린즈는 참으로 행복하게 샤론을 사랑하여 주었다.
샤론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였던 짧은 시절이었다.
샤론 부론테[1816-1855]는 그렇게 한 평범한 목사보의 손을 잡고
사연많았던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자식을 낳아 보지도 못하였다.
이제 이 어둡고 쓸쓸한 목사관에는 늙고 병든 목사님만 남았다.
여덟 사람이 가족을 이루어 단란하였던 때가, 꿈인양 느껴졌으리라.
성경책을 펼쳐 놓고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불러도.....
마음 속에는 슬픈 메아리만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어찌 이다지도, 몽땅 다 떠나버린단 말인가?
평생의 소원이었던 할아버지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하였다.
이런 인생은 마치 무거운 형벌을 받는 비극처럼 느껴졌다.
그런다고 일부러 아이들을 미워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마누라를 잃은 이후로 세상사에 집요한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
이 늙은 목사님은 그 후로도
1861년, 마지막 남은 딸 샤론이 숨을 거둔 다음에도
무려 육년을 더 이승에 남아 있어야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의 작가보다도
이 늙은 부론테 목사님의 허무한 슬픔이 자꾸 마음에 아로남았다.
이 시절이라 하여도 마찬가지이리라.
마누라와 여섯남매를 모두 떠난 이후로
혼자 남겨져 늙고 병들어 있는 인생이라면...얼마나 슬플 것인가?
첫댓글 "막내 딸 안도 너무나 어이없이 바닷가 휴양지에서 스카아포로 공동묘지에서 잠들어 버렸다."스카아포가 뭡니까
아버지는 수명이 길었는데 자식들이 모두 단명 일까
자식 하나씩 보낼 때마다,얼마나 힘
었을까
지옥 같은 삶을 보고 갑니다.
스카아포로는 영국 해안가에 있는 공동묘지의 지명입니다.
아...너무나 슬픈 가족사네요,,제인에어 폭풍의 언덕,,,불후의 명작을 남긴 브론테 자매의 삶도 슬프지만 그 아버지의 삶 정말 허망다는 생각을 놓고 갑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폭풍의 언덕이 가슴 절절한 이유가 있었군요. 제인에어가 최초로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라 던가요. 슬프고 고독하군요. 삶이란 무거운 짐을 가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다라고 이에야스가 말했지만 홀로 남겨진 목사님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