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장미숙
매장 앞 도로에 한 노인이 앉아 있다. 노인의 등이 낯설지 않다. 근처 마트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노인이다. 낡은 파란색 조끼와 구부정한 등에 쌓인 세월의 그림자가 짙다. 노인은 인도와 차도 경계에 앉아 있다. 오늘은 햇볕이 달라붙은 시멘트 바닥이 그의 휴식천가 보다.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옆에 두고 노인은 미동이 없다. 노인의 존재에 아랑곳없이 차들은 매연을 뿜으며 지나간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길가는 사람들도 무심하다. 노인 또한, 매연이나 소음에 반응하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해 보이지만, 폐지를 줍는 그에겐 정해진 자리도, 정해진 시간도 있을 턱이 없다. 앉는 곳이 그의 삶이고, 다리를 뻗는 곳이 그의 쉼터다.
도로 건너편에도 두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다. 그곳은 건설자재 회사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회사 인부들이다. 두세 명이 매일 그렇게 앉아 담배를 물고 있거나,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있다. 쉴 곳이 따로 없는 그들에게는 작업장이 쉼터로 보인다. 간이의자 하나 없이 천막과 트럭이 있는 그곳에서 인부들은 피로를 푼다. 그런데 왜 그들은 꼭 쪼그려 앉아야만 하는 걸까. 늘 같은 자세를 고수하는 걸 보면 환경은 불편함마저 무디게 만드는가 보다. 바로 옆에 사무실이 있지만, 그들이 출입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한여름에도 그들은 천막 밑에 옹색하게 앉아 있다. 시원한 사무실에서 의자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과의 괴리만큼이나 그들에게 의자는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일까.
고개를 들어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면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거리에 나는 서 있다. 내가 가끔 그들을 바라보듯, 간간이 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쪽을 향해 빤한 시선을 두고 있을 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빵집 직원과 건설자재 회사 인부가 가진 공통점이라면 누군가에게 고용(雇傭)된 사람이고, 몸으로 하는 일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공통점이 있다. 서 있는 자도, 쪼그려 앉은 자도 의자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부들도,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도,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일하는 나도 모두 의자가 없다.
사회라는 큰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의자를 갖지 못한다는 건, 열악한 환경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의자가 없다는 건 부리는 자가 아닌 부림을 받는 자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의자는 노동의 강도를 개별화시키고, 심리적 열등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의자가 가진 힘을 몰랐을 때, 의자란 언제든지 앉고 싶을 때 앉을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자는 그런 게 아니었다.
맨 처음 의자는 내게 열등감으로 다가왔다. 스물 몇 살 때, 간절히 의자가 갖고 싶은 적이 있었다. 가난과 가정환경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나는 열일곱 살에 공장에 들어갔다. 의류 포장지를 제조하는 공장은 대기업 하청이었다. 공장 환경은 열악했다. 온종일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고 손은 기름때로 새카매졌다. 벤젠(benzene)을 다루다 보니 손끝이 갈라지기도 했다. 가장 힘든 건 추위와 더위를 견디는 일이었다.
순수와 두려움만이 나를 지배했을 때, 도시는 내게 거대한 세상이었다. 촌아이에게 일을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런데 사회 구조의 속성을 알아가면서 욕망과 노력이 때로 힘을 발휘한다는 걸 깨우치게 되었다. 큰 작업장 안에는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현장 사무를 보는 곳이었고 내게는 별천지 같았다.
나는 사무실 직원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다. 사무실에는 여직원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폭신한 의자에 앉아 벤젠 대신 펜을 들었다. 작업장의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먼지를 마시지 않아도, 손이 거칠어지지 않아도 되었다. 추위와 더위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았다. 그녀는 현장 직원들 위에 군림했고, 커피라는 귀한 음료를 마시기도 했다.
나는 그 자리를 동경했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기계에서 나오는 냉정하리만치 차가운 비닐을 간추리며 사무실을 힐끔거렸다. 몇 년이 지난 뒤, 기회가 왔다. 누군가의 입에서 사무실 여직원이 그만둘 것이며 현장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말이 나왔다. 틈틈이 책을 읽고 작업 집계를 하던 내가 적임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폭신한 사무실 의자에 앉은 나를 상상하며 더 열심히 회사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나는 배제(排除)되었다. 다른 사람이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녀는 현장 여직원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침이 마르도록 날 칭찬하던 관리자들도, 글씨를 잘 쓴다고 추켜세우던 사람들도 등을 돌렸다. 중졸 학력은 의자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가르쳐주었다. 그 후, 나는 스스로를 하향(下向)시켰다. 구인광고를 볼 때도 의자는 애써 피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지레 겁먹었다. 차단당하기 싫어 미리 포기해 버리는 거로 얇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결혼 후, 오 년 정도 의자에 앉아 본 적은 있다. 마을문고에 도서대여 봉사활동을 지원했을 때, 아무도 내게 학력을 묻지 않았다. 지원자들의 수준을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봉사 내내 고졸 행세를 했다. 돈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어서 양심의 가책은 덜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의자의 무게에 짓눌렸고 나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먼 길을 돌아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다. 딱딱한 나무 의자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자세로 앉을 수 있었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의자에 대한 설움을 털어냈다. 그것도 잠시, 다시 나는 의자에서 밀려났다. 학생의 신분이 아닌 직업인이 되었을 때, 나이는 걸림돌이었다. 중년의 아줌마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흔치 않았다. 내가 빵집에서 일하게 된 이유였다.
온종일 서서 두 다리로 삶을 지탱한 지, 칠 년이 되어간다. 해가 바뀔 때마다 몸이 조금씩 기우는 걸 느낀다. 한 평 남짓한 나의 작업공간에 의자는 없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데다, 앉을 시간도 없어서다. 내 의자가 없을 뿐, 매장에는 의자가 많다. 손님들이 편히 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도록 은은한 조명 아래서 의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의자가 비어 있어도 내가 앉을 수 없는 곳, 직원인 나는 의자의 주인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열 발자국 거리에 있는 의자가 심리적으로는 한없이 멀다. 건설자재 회사 인부들이 굳이 쪼그려 앉는 것도 심리적인 거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 본분을 잊고 의자의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다. 몸이 아프거나 밥벌이가 유난히 힘든 날이다. 그럴 때면 어딘가에 있을 내 의자를 생각한다. 주인을 만나지 못해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을 의자, 학력도 나이도 다 떨치고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그 의자를 생각하며 무너진 다리를 곧추세운다.
창밖을 보니 노인이 없다. 건너편 인부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휴식처가 되었던 자리에 나무 그림자만이 꾸벅꾸벅, 피곤한 오후를 갈무리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 / 여세주
어느 여론조사 기관에서 오륙십 대 기혼여성들에게 어떤 사람이 최고의 남편이냐는 설문조사를 했다. 잘생긴 남편도, 상냥한 남편도, 힘센 남편도 최고가 아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남편이나 집안일 잘 도와주는 남편은 더욱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인기 남편은 은퇴하고 나서 집 지키지 않는 남편이란다. 남자들은 젊어서도, 늙어서도 환대받지 못하는가 보다. 젊어서는 가정적이지 못하고 나돌아 다니기만 한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듣고, 늙어서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집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다며 괄대를 받는다.
남자들은 대체로 성인이 되면서 부모의 품을 떠난다. 직장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지만, 사회에서의 성공을 좇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은 적다. 그들에게 직장이나 친구가 우선이고 가족은 늘 뒷전이다. 나도 그랬다. 한때는 가정의 울타리가 심지어 장애물인 것 같을 때도 있었다. 나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불편하게 하는 철책처럼 여겨졌다. 그 울타리만 없다면 내키는 대로 더 넓은 초원으로 달려 나가 종횡무진 할 것만 같았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내 꿈을 펼치기가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과정인 산업체 특별학급으로 직장을 옮겨, 오후 세 시경에 출근하여 밤 열 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논문을 쓰는 일은 집으로 돌아온 그 시간부터 새벽녘까지, 또는 새벽녘부터 오전에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온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도 한 단락을 못 쓰는 경우도 있고, 생각이 떠오를 때는 물 흐르듯이 하룻저녁에 원고지 수십 장의 분량을 써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논문을 쓰노라면, 집에 있는 시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네댓 살인 큰아이였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이는 보모에게 맡겨 키웠다. 아이를 돌봐 주던 아주머니가 자주 바뀌어서 그런지, 큰애는 낯가림이 아주 심했을 뿐 아니라 여러 달 낯을 익힌 아주머니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제 엄마가 출근하고 나면 나에게만 매달려 있으려고 하니, 저에게 무한정 시간을 빼앗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은 한창 생각이 떠올라 논문 쓰는 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여는데, 그날도 아이는 내 다리를 부여잡고 무릎 위로 오르겠다고 트집을 부렸다. 아주머니가 아이를 떼어놓으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써놓아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폭발했다. 다리에 매달린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그 이후로 아이는 내가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만은 절대로 매달리지 않았지만, 그 당시 아이는 나의 자유를 옭아매는 장애물 같았다. 주말에는 오로지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져달라는 아내도 진군을 가로막는 적이었다.
직장을 대학으로 옮긴 후에도 나만의 생활에 충실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휴일이나 방학 때도 나 자신의 삶에만 매달렸다. 학문하는 일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친구나 지인들도 만나고 심지어 학교 업무까지 집으로 끌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의 잔소리는 심해졌다. 남들은 주식이라는 것도 해서 잡비라도 벌어 쓰는데 당신은 도대체 뭘 하느냐, 남들은 설거지도 곧잘 해 준다는데 일찍 퇴근하는 날조차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니 하녀 하나 들이려 결혼했느냐는 등. 그럴 때마다, 나의 이기적인 생활을 반성하기는커녕 결혼이라는 것을 아예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가정보다는 직장이, 가족보다는 내가 우선이었다. 내 일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얻는 것도 아니면서,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으면 피해 가려고 했다.
지천명을 훌쩍 넘어 이순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하더라도, 내팽개쳤던 아이들을 이제 뒷바라지해 주어야겠다고. 주전 선수로 뛰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나는 후보 선수가 되어 공이나 주워주고 물 주전자나 나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때는 늦었다. 물리적인 도움이 필요 없을 만큼 아이들은 육체적으로 성장했고, 각자의 꿈과 삶을 위해 멀리 떠나서 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나마 원격 지원해 주고 싶으나 그만한 여력을 축적해 놓지도 못했다.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남편들은 자신의 야망을 좇아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여념이 없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중심 무대에서 물러나 소외감을 맛보게 된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가정과 가족이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뜻밖에 빠르다. 은퇴하여 물러날 나이가 되는 것이다. 삶의 전쟁터에서는 승승장구하였더라도 마지막에는 패잔병처럼 물러나 돌아올 곳은 가정밖에 없다.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들로부터 환대받지 못한다.
돌아오는 남편을 아내가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때쯤에 아내는 집을 나선다. 아내들은 그동안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가 이제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내들은 그동안 집안 살림에다 아이들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가족을 위해 바깥세상을 모르고 살았으며 자신에게는 무관심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장성하게 되면 비로소 여유를 가진다. 그때에서야 자기 자신의 삶에도 관심을 보인다. 바깥으로 나가 이것저것 기웃거린다. 커피숍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것도 그동안의 고단한 삶에 대한 보상이다. 자신을 재충전하기 위한 교양 강좌들을 듣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기도 한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며 아내를 가정의 울타리에 가두려고 하면, 아내는 그동안 가족만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겠노라고 반기를 들고 저항한다. 남편들은 사회라는 생활 전선에서 집으로 돌아왔건만,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 그 순간, 황야에 오직 홀로 서 있는 듯한 쓸쓸함과 외로움이 몰려온다. 남편들이 결국 돌아갈 곳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나는 내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