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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태국 사찰 방문기 (1)
수코타이 유적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수코타이
1. 수코타이 왕국과 수코타이 유적
태국의 불교순례는 크게 방콕과 아유타이, 수코타이, 치잉마이 이렇게 3 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본다. 1차 순레때 나는 방콕과 아유타이를 방문하였다. 이번 2차 순례에는 수코타이를 중심으로 몇 군데를 관광하였다.
태국에 두 번째 순례에 오르게 되었다. 2018년 1월 26일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을 탔다. 출발하는 날은 최근 한국에서 날씨가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한다. 섭씨 -17도 그 즈음 본국 대한민국은 혼란스러웠다. 밀양 소재 병원에서 화재로 30여명이 사망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하여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선수들이 오고 간다는 보도가 매일 나왔다. 며칠 전 까지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듯한 뉴스가 계속 나오다가 조선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가 나온 후에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평화와 화해 무드다. 우리 민족끼리 대화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인데 주변의 외세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오후 6시 20분 조금 지나서 비행기가 떴다. 태국 방콕 공항까지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한국이 추워서인지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다.
10시 30분 태국 공항에 도착하였다. 섭씨 28도, 한 여름이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탑승을 했지만 동안거 기간이어서인지 스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교인들의 단체 관광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의 태국 관광은 가기 쉽고 물가가 싸기 때문에 배낭유행지의 천국이라 불리는 방콕과 그 외에 골프를 가거나, 푸켓과 파타야 등 휴양지로 가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불교인들이 태국사찰을 찾아 태국으로 사찰순례를 간다면 가 보아야 할 장소는 방콕, 야유타이, 수코타이, 치앙마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참여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붓다다사가 활동했던 남부로 가서 붓다다사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순례라고 생각한다.
태국에 세계불교도의회(WFB) 본부도 있고, 스님들이 50만명 정도 있다고 하는데 한국 불교계는 태국 불교계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태국 야유타야 지도
1월 28 아침 일찍 일어났다. 6시 조금 넘으니 차 소리도 들리고, 닭 우는 소리도 들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여름날씨처럼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 때문에 몸이 끈적끈적해졌다. 아침 8시 조금 넘에 차로 수코타이를 향해 승용차로 갔다. 수코타이는 방콕 북쪽에 있다. 태국 차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기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길은 포장이 잘 되었고 6차선 도로가 길게 이어졌다. 도록 주변에는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케이블 선을 까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승용차와 큰 트럭들이 많이 다녔다. 도시에는 포장마차처럼 길거리에서 허름한 테이블에 놓고 파는 노점 상인들도 많았다. 시내를 벗어나니 열대성 야자수만 없다면 한국의 농촌 풍경과 비슷하다.
방콕에서 한참을 가도 한국의 호남평양처럼 산이 별로 없다.
하지만 3시간 정도 가니까 한국인들이 골프치러 많이 가는 나칸사완(Nakhon sawan)이라는 도시가 나왔다 . 이 부근에 나지막한 산이 몇 개 나타났다. 이 부근을 지나면서 출가하는 사람을 축하하는 큰 행렬을 보았다. 내 어린 시절 동네에 초상이 나면 상여가 나가는데 이때 유가족과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가기도 하고 구경도 하였는데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출가자 부모가 큰 돈을 들여서 해야 한다고 한다.
이 모습을 자세하게 못 보아서 매우 아쉬웠다. 태국에서 수코타이 까지는 자동차로 대략 7시간 걸린다. 방콕에서 버스도 있고, 비행기도 있다. 나의 경우는 태국 안내인과 함께 자동차로 갔다. 수코타이에는 저녁 5시 무렵에 도착하였다.
수코타이는 불교유적을 보러 와야 하기 때문에 한국인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 뿐마 아니라 일반 관광객도 많지는 않았다.
태국 고속도로
2. 수코타이는 어떤 곳일까?
방콕 북쪽 약 400키로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몽골이 커지면서 남쪽으로 내려온 타이족이 세운 최초의 수코타이 왕조(1238-1438)의 수도이었다가 남쪽에 있는 아유타야의 지배에 들어가면서 멸망하게 된다.
강성할 때는 라오스 루앙프라방지역. 치앙마이지역. 버마 동북부 고원지대 까지 세력을 확장 했었으며 람캄행(Ramkhamhaeng) 대왕 시대(1279-1298)에 국가의 기틀을 완성 하고 최초의 태국어를 만들기도 했다.
도성 안팎으로 약 40여개의 사원과 해자. 제방 등의 유적이 있으며 1935년 유적지로 지정하여 연구하다 1991년 인근 시사차날나리. 깜팽펫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수코타이는 방콕에서 북쪽으로 427km 떨어진 곳이다. 면적은 6,596km2. 수코타이 지역의 대부분은 평평한 지형이며 남쪽과 북쪽으로 고지대가 있다. 차오프라야 강의 한 지류인 욤(Yom)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행복의 새벽’이라는 뜻을 지닌 수코타이는 수코타이 왕국(1238~1438)의 수도였던 곳으로 타이족 최초의 독립국이기도 하다. 9세기경, 중국 윈난성에서 남하한 타이족은 12세기경에 현재 태국의 중북부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당시 동남아에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던 앙코르 세력이 약화되자 1238년 타이족 수장이 이곳에 태국 최초의 왕국 수코타이를 세우게 되었다. 수코타이 왕국은 아유타야(Ayutthaya) 왕국이 들어서기까지 대략 200년 동안 이어졌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있다.
강성할 때는 유명 관광지인 라오스 루앙프라방지역. 치앙마이지역. 버마 동북부 고원지대 까지 세력을 확장 했으며 람캄행(Ramkhamhaeng) 대왕 시대(1279-1298)에 국가의 기틀을 완성 하고 최초의 태국어를 만들기도 했다. 태국역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가 이 수코타이 시기이다. 수코타이 양식으로 불리는 긴 손가락,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눈썹 등 여성적인 모습의 불상이 그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 도시는 현재 수코타이 왕조가 있던 곳은 수코타이 구시가지로 수코타이 역사 공원이 만들어져 유적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도성 안팎으로 약 40여개의 사원과 해자. 제방 등의 유적이 있으며 1935년 유적지로 지정되었고, 또 주 북부에는 옛날은 수코타이 왕조의 부왕 수도로서 기능을 하고 있던 시삿차나라이 역사 공원과 깜팽펫 역사 공원이 있어, 양쪽 모두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이 지방은 처음에는 사완카록으로 알려졌으며, 1933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길거리 잡화상 모습
태국은 이전에는 캄보디아 왕국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행복의 새벽을 의미하는 수코타이는 원래 13세기 크메르 제국의 변방에 세워진 도읍이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1238년에서 1257년 사이일 것이라고 미술국은 밝히고 있다. 포쿤 시 인타라팃에 의해 건립되어 처음에는 크메르에게 패배를 한 이후 태국의 시암 왕국에서 완전히 독립되었다.
수코타이는 람캄행 왕에 이르러서야 찬란한 전성기를 꽃피웠다. 이 왕 시기에 오늘의 태국 대부분을 영토로 한 대국으로 성장했다. 람캄행 대왕(1239년 ~ 1317년)은 태국의 왕조인 수코타이 왕조의 제 3대의 왕이다. 부왕 씨 인트라팃의 아들로 형인 반 므엉이 사거하자 즉위하였다. 그는 메남 강 중·하류지대를 합치고 말레이 반도의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원나라(元朝)와는 밀접한 관계를 가져 대왕은 스스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의 도공을 데리고 와서 이후 스완칼로크 자기로서 알려져 있는 태국의 도자기가 발달했다. 또한 미얀마에서 발달한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가 들어왔고, 캄보디아로부터는 예술 ·행정 조직에 영향을 받는 등 주위의 문화가 풍부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태국 자체의 민족 문화가 싹틀 무렵이기도 하여 타이 문자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타이 문자로 사용하는 크메르에서 파생된 문자를 만들었다고 믿어지는 왕이다. 그는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와 많은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람캄행 대왕의 사후 왕국의 세력은 쇠퇴하였고, 남쪽의 메남강 하류지역인 아유타야를 수도로 하는 아유타야 왕조가 번성해갔다. 이 아유타야 왕조는 수코타이 왕국을 정복하고 태국 전토의 통일을 꾀하였다.
수코타이 유적지 지도
3. 내가 본 수코타이 유적
수코타이 유적은 ‘수코타이 역사공원( Sukhothai Historical Park)’공원의 안과 밖으로 나누어지는데 성벽안을 중앙 유적군이라고 통칭한다.
나의 경우는 중앙유적군을 안내인의 차량에 동승하여 3군데를 둘러보고 또 성벽 밖에도 한 군데 방문하였다.
지난 해 11월에 아유타이 유적지를 보았기 때문에 수코타이의 모습은 나에게는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아유타이에 비해 규모가 매우 컸다. 수코타이 유적지는 이름에 비해서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관광객은 많지 않았는데 서양인들이 많았다. 단체로 온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2-3 그룹만 보았을 뿐이다. 주변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많이 있었는데 손님들은 별로 없었다.
성벽으로 둘로 싸 있는 수코타이 유적이 있는 역사공원과 공원 외부의 유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역사 공원은 동.서로 2KM, 남북으로 1.6KM 의 크기이다. 그러나 수코타이의 유적은 너무 많아서 사전에 준비없이 이 곳에 도착하여 이 유적들을 다 보려면 그저 잘 모르는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이 될수도 있다. 만약에 많은 곳을 잘 보려면 사전에 이 유적지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가야 하는데 이것을 불교적 관점에서 소개한 자료는 별로 없다.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불교적 관점이 아닌 관광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진작가들의 사진이 간략한 소개와 함께 올라와 있을 뿐이다.
이곳을 관광하는 방법은 대략 3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혼자서 자전거로 가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일행 2명 혹은 3-4명이 조그만 오픈카로 가는 가이더와 함께 가는 방법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10여명이 함께 오픈 카를 타고 이곳을 안내하는 가이더의 안내로 구경하는 방법이다. 가이더들은 대략 3개의 유적지를 안내해준다.
왓 시 사와
4. 3개 유적 사원 방문
(a) 왓 시 사와, Wat Si Sawai
우리는 가이더가 안내해 주는 대로 ‘왓 시사와(Wat Si Sawai)’, ‘왓 사시(Wat Sa Si)’, 그리고 ‘왓 마하타(Wat Mahathat)’순으로 가 보았다. 가이더는 별 설명이 없었고, 입구에 태국어와 영어로 간략하게 쓰여진 안내문이 있었다.
맨 처음으로 간 곳은 ‘왓 시 사와Wat Si Sawai’이었다.
주변에는 보리수 나무가 있었다. 이 곳은 불상과 탑이 있는 곳에 가기 까지 몇 개의 기둥이 좌우로 서 있었다. ‘왓 시 사와이 (Wat Si Sawai)’의 유적지의 주요 하이라이트는 힌두교 신앙의 영향을받은 롭 부리 (Lopburi) 건축 양식과, 라테이트로 만든 안수당 (ordination hall)에 인접한 탑이라고 설명을 한다. 역사가들은이 지역에서 중국 도자기와 힌두교 신들의 동상과 같은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를 발견했으며, 이 유적의 건물은 힌두교의 종교적 구조로 지어졌는데 후에 불교사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왓 시 사와
Three Khmer style corncob shaped prangs
세 개의 크머 양식 옥수숫대 모양의 탑
왓 시 사와이의 가장 놀라운 특색은 잘 보존된 세 개의 크머양식 옥수숫대 모양의 탑이다. 가운데의 탑은 15 미터나 되며 그 측면에 서 있는 나머지 두 탑들은 가운데 것 보다는 조금 더 작다. 이 탑들은 치장용 벽토로 발라져 있고 회랑으로 둘러쌓인 저변위에 세워져 있다. 12세기 말 13세기 초 크머인들이 이 탑들의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미완으로 두었다가 훗날 수 세기가 지나서 15세기 아유타야 시대에 롭부리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이 탑들의 치장용 벽토에 조각된 머리가 여럿인 나가 뱀, 마카라스 (바다의 생물), 그리고 칼라와 같은 신화의 존재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칼라는 아래턱이 없는 괴물과 같은 신화에 나오는 생명체인데 앙코르 사원에서 그 모습을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그 탑들에는 브라만의 형상들도 새겨져 있다. 입구의 위에 댄 가로대 (상인방)에는 나가뱀들의 왕인 아나타 쉐샤에게 기대고 있는 비슈누가 조각되어 있다. 탑의 윗부분의 틈새마다에서는 부처의 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세 개의 탑 모두의 내부에는 한 때 힌두교의 신인 시바의 상을 받치고 있던 받침대가 남아 있다.
(b) 왓 사시(Wat Sa Si)
이 사원에 있는 작은 섬에 위치한 Tra Phang Tra Kuan 연못은 수코타이 역사 공원에서 가장 매력적인 기념물 중 하나라고 평가를 받는다.
수코타이 (Sukhothai)에서 발견 된 돌 비문 중 하나에 관한 본문에 따르면 Wat Sa Si는 14 세기 말경에 설립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큰 탑 , 다른 작은 탑, 본당(ViHarn), 작은법당(ubosot) 및 수코타이 스타일의 걷는 불상으로 구성 되어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유행불
수코타이 예술의 보배라 할 수 있는 유행불(遊行佛-걸어 다니는 불상)의 조각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석가모니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오른쪽 다리를 약간 들어 올려 발끝을 땅에 살짝 대고 왼쪽 다리는 곧게 뻗어 몸을 지탱하고 있다. 여성스러운 다리 위치와는 다르게 오른손을 가슴 위치까지 올려 역동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길게 뻗은 왼손을 통해서 균형미를 맞추고 있다.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를 받고 있다.
잘 보존 된 종 모양의 큰 탑은 스리랑카 형식으로 광장에 자리 잡고 있다. 돌 비문에 따르면 탑은 수코타이 왕 ‘리 타이’의 유골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 큰 탑 뒤에는 몇 개의 작은 탑이 있다.
다른 유적들을 보면 큰탑 앞에는 기둥과 기둥이 남아있는 본당 또는 회관이 있다.
그리고 불상이 있다.
왓 사시
유행불
To the left of the main chedi is a smaller chedi set on a square base. The circular chedi has four large niches where images of the Buddha were enshrined. In front of it stands a graceful image of a walking Buddha on a circular pedestal. The image in Sukhothai style is in the Vitarka mudra, the gesture of teaching and discussion.
큰 탑 왼쪽에는 사각형 바닥에 세워진 작은 탑이 있다. 원형탑에는 붓다의 이미지가 모셔져있는 네 개의 큰 틈새가 있다.
그것 앞에는 원형 받침대에 걷는 부처님의 우아한 이미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