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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사위주의 품질시대
18세기나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품질관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제품은 숙련공에 의해 소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손으로 만든 부품들을 끼워 맞추는 형태의 작업에서는 품질이 주로 숙련공의 손기술에 달려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져 공식적인 검사업무가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부품의 호환성이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해진 작업순서에 따라 호환성있는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전용기계가 등장하였으며, 지그(jig)나 치공구들도 부품의 호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로 맞지 않는 부품들이 여전히 만들어질 수 있었으므로, 최종조립에서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제조공정 상에서 엄격한 검사가 불가피하였다. 이 시기에서는 품질관리란 주로 검사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검사부문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간주되었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하였던 과학적 관리의 창시자 테일러 역시 효율적인 작업관리를 위해 기능별 조직을 제창함과 아울러 작업의 품질을 검사자가 책임지도록 하였다.
(2) 통계적 품질관리의 시대
1931년에 발간된 슈하트의 저서「생산제품의 경제적 품질관리 (Economic Control of Quality of Manufactured Products)」는 통계적 품질관리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슈하트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벨 전화연구소에서 근무한 통계학자 중 한사람이었는데, 당시 그가 속한 연구그룹에는 닷지(H. Dodge), 로믹(H. Romig)과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쥬란도 나중에 합류하였다.
관리도
제품의 특성치는 사용된 재료, 작업자의 기능, 설비의 상태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변동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똑같은 품목을 한사람의 작업자가 동일한 기계에서 만들었다하더라도 변동은 있게 마련이다. 슈하트는 생산의 모든 단계에서 존재하는 이러한 변동을 확률 및 통계의 관점에서 이해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슈하트는 어떠한 과업을 수행할 때 일어나는 우연변동의 한계를 정의할 수 있으며, 이 한계를 벗어날 때에만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시간에 따른 상태를 추적함으로써 우연변동의 한계를 벗어나게 한 이상요인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관리도를 개발하였다.
샘플링 검사
양품과 불량품을 구분하기 위해 전수검사를 하는 것은 많은 경우 검사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이 문제가 된다. 이 경우 생산로트 중 일부만 검사하고, 이를 근거로 전체로트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검사에 사용된 시료의 품질이 로트 전체의 품질을 완전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므로, 품질이 좋은 로트가 기각되거나 반대로 품질이 나쁜 로트가 합격되는 일이 가끔 발생하게 된다. 닷지와 로믹은 이러한 문제를 생산자위험과 소비자위험이라고 지칭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고려한 샘플링검사방식을 설계하였다. 또한 개별생산로트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제조공정이나 거래시의 장기적 품질에 관심을 갖고, 불합격된 로트에 대해서는 전수선별을 적용하는 경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평균출검품질한계(AOQL)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샘플링검사방법의 도입으로 전화기기 및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았으나, 샘플링검사와 관리도가 벨시스템 외부로는 별로 보급되지 못하였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군수품의 대량생산이 문제로 등장하자, 관리도와 샘플링검사는 군수물자의 생산과 조달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되었고, 종전 후 이러한 통계적 품질관리방법들이 민간기업에 널리 보급되었다.
1941년 카네기공과대학과 그 다음해 스탠포드에서 통계적 품질관리에 관한 강좌가 개설된 이래 25개주에서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이 실시되었다. 초기에 이러한 강좌를 수강한 사람들이 지역별로 품질관리협회를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1945년 10월 13개의 그룹들이 연합하여 품질기사회를 결성하였으며; 이듬해 다른 연맹과 통합하여 미국품질관리학회(ASQC)를 발족시켰다. 품질관리분야 최초의 잡지인 Industrial Quality Control이 1944년 7월 버팔로 품질관리기사회에 의해 발간되었는데, 이것이 미국 품질관리학회의 공식잡지인 Quality Progress로 바뀌게 된다. 1940년대 후반에 널리 보급된 통계 중심의 품질관리는 1960년대 초반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졌다.
(3) 품질보증시대
품질보증시대는 제조부문에 초점을 맞춘 통계적 품질관리가 경영전반으로 확대된 시기였다. 문제의 사전예방이 여전히 일차적인 관심사였지만, 품질관리의 도구가 통계학의 영역을 넘어서게 되었다. 품질보증 시대의 탄생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요소(품질비용, TQC, 신뢰성공학, ZD)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품질비용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불량으로 인한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따라서 품질향상에 수반되는 비용은 얼마까지 허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품질수준이면 만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오늘날 품질관리 분야의 고전이 된 쥬란의 품질관리핸드북(Quality Control Handbook)의 초판이 1951년에 발간되었는데, 쥬란은 이 책 첫장에서 품질의 경제학을 논하면서 '광산에 묻혀있는 황금'이라는 유명한 비유를 사용하였다. 쥬란은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성취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가피비용(avoidable cost)과 불가피비용(unavoidable cost)으로 구분하였다. 가피비용이란 불량에 관계된 폐기원자재, 재작업이나 수리에 들어가는 공수, 고객불만처리 비용 및 불만족한 고객으로부터 초래되는 재무적 손실을 말하며; 불가피비용이란 예방에 관계된 비용, 즉 검사, 샘플링, 분류 및 기타 품질관리 활동에 관계된 비용을 말한다. 품질향상에 투자하면 실패비용을 대폭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쥬란은 실패비용을 '광산에 묻혀있는 황금'이라고 표현하였다. 그 당시 쥬란은 회피가능한 품질비용을 생산자 1인당 연간 500불 내지 1,000불 정도로 추정하였는데, 이는 당시로서 상당히 큰 액수였다. 쥬란의 이러한 주장은 예방에 소요되는 품질향상비용과 실패비용을 비교해 봄으로써, 품질향상에 얼마나 많은 액수를 투자해야 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전사적 품질관리(TQC)
GE사의 생산관리 및 품질관리 책임자였던 파이겐바움은 1956년에 품질에 대한 책임을 제조부문에 국한시키지 않는 전사적 품질관리(TQC)를 제창하게 되었다. 그는 TQC를 '마케팅, 기술, 생산 및 서비스가 가장 경제적으로 소비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도록 품질개발, 품질유지 및 품질향상에 관한 조직 내 여러 그룹의 노력을 통합하는 효과적 시스템이다'라고 정의하였다. 파이겐바움은 고객만족을 위한 조직 내 여러 그룹의 노력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기 위하여 품질활동과 책임부문을 행렬형태로 대응시킨 품질관련표(quality relationship chart)의 활용을 권장하였는데, 품질관련표는 부문별로 각기 일하면서 동시에 함께 일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TQC에서의 품질시스템은 제조부문 뿐만 아니라, 신제품개발, 납품업자 선정, 고객서비스 등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통계학이 품질전문가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뢰성공학
파이겐바움과 쥬란의 활약이 돋보이던 시절, 확률론과 통계학에 더욱 깊숙이 뿌리를 내린 품질관리의 또 다른 분야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른바 신뢰성공학이라는 것으로서, 항공우주 및 전자산업의 성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1950년 당시 미국 해군에서 사용하던 전자장비는 단지 3분의 1만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었으며, 랜드(Rand)사의 연구에 의하면 1개의 진공관을 꽂아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9개의 여분이 창고 또는 주문상태에 있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심각한 문제가 미사일 및 기타 항공우주장비에 발생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용기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제품성능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우선 신뢰성을 '규정된 조건하에서 의도하는 기간동안 규정된 기능을 수행할 확률'이라고 엄밀히 정의하고, 확률론을 활용하여 시간경과에 따른 장비 신뢰도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론과 설계단계에서 고장률을 낮추기 위한 기법들이 연구되었다. 여기에는 주로 지수분포와 와이블분포 같은 확률분포함수와 욕조곡선(bathtub curve)의 개념이 활용되었다. 또한 신뢰성을 예측하고 고장률을 낮추기 위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기법들이 동원되었다: 발생 가능한 제품의 고장유형과 그것이 초래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FMEA분석: 부품을 정격 스트레스수준 이하에서 사용함으로써 수명을 연장하자는 디레이팅(derating); 중요한 부품이나 하부시스템을 병렬시스템으로 중복시킴으로써 높은 신뢰도를 확보하자는 리던던시(redundancy)등이 모두 이때에 연구된 것이다. 고장난 부품을 회수하여 실험실에서 시험분석하는 것과 더불어 실사용시 발생하는 고장에 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입수하기 위한 고장데이터 수집방법도 함께 연구되었다. 1950년 미국 국방성에서는 전자장비의 신뢰성연구그룹(Ad Hoc Group on Reliability of Electronic Equipment)을 조직하였는데, 1957년 이 그룹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AGREE (Advisory Group on Reliability of Electronic Equipment)보고서'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무결점(ZD)
무결점(Zero Defect)운동이라 불리는 ZD프로그램은 1962년 사이에 마틴(Martin)사에서 시행되었다. 당시 마틴사는 미군에서 의뢰한 퍼싱미사일을 제조하고 있었는데, 방대한 검사를 통하여 비교적 좋은 품질을 실현할 수 있었다. 불량률을 더욱 낮추기 위하여 장려급을 적용함과 아울러 보다 엄격한 검사와 시험을 통하여 1961년 12월 퍼싱미사일을 플로리다주 대서양연안에 있는 카내베랄 기지에 차질없이 인도할 수 있었다. 한달 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던 마틴사의 총책임자는 군으로부터 최초의 야전용 퍼싱미사일을 예정보다 한달 앞당겨 납품해 달라는 주문을 받아 들였다. 더욱이 이 미사일이 하드웨어 상의 문제나 문서상의 오류가 없이 완전무결해야 할 뿐 아니라, 인도 후 10일 이내에 설치완료되어 정상가동 될 수 있을 것을 약속하였다. (당시에는 인도시점으로 부터 정상가동까지는 통상 90일 이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2달간의 열정적인 활동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통상적인 검사와 오류에 대한 사후수정을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므로 전종업원들에게 최초에 한치의 오류도 없이 맡은 업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과는 그야말로 놀랄만한 것이었다. 미사일의 적시인도와 아울러 24시간 만에 정상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었다. 이를 면밀히 검토한 마틴사의 경영진은 이러한 성공이 일차적으로 그들 자신의 태도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완전무결이 실현되지 못하는 배후원인은 단지 완전무결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진에서 단 한번 완전무결을 요구하였는데 이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작업자에 대한 동기부여와 그들의 의식이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되었다. 작업자가 범하는 실수의 3가지 보편적 원인-지식부족, 지원설비 부족, 주의부족-중 마지막 것에 대해서는 경영진에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었다. ZD프로그램의 요지는 작업자들에게 최초에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주지시키는 것이었다. 경영진은 교육과 특별행사 및 결과의 피드백 등을 통하여 작업자들이 이러한 원칙에 점차 익숙해지도록 하였다. ZD프로그램은 구체적인 문제해결기법보다는 사고방식, 동기부여, 작업자의 인식 등에 비중을 두었다. 한편 마틴사의 프로그램을 재빨리 수용한 GE사의 소형엔진사업부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려는 ECR(error cause removal)운동을 추진하였다.
당시로서 널리 통용되던 합격품질수준(AQL)이란 품질기준을 부정하고 완전무결을 유일한 기준으로 받아들였던 마틴사는 30년의 근대적 품질관리 역사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었다. 품질관리 분야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크로스비의 「품질은 무료(Quality Is Free)」에서는 ZD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크로스비는 ZD란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보다 경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품질의 4대 절대원칙 중 하나로 들고 있다.
(4) 품질경영시대
품질관리가 검사중심에서 품질에 관련된 여러부문의 효과적인 기능적 연결을 중시하는 품질보증으로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까지는 품질이란 주로 결함으로 인한 손실이나 기업이미지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품질에 대한 이러한 소극적이고도 방어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품질의 전략적 측면이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일이다. 품질의 전략적 측면이 고려된 것은 하루밤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의 결과로서, 언제 시작되었는지 문헌상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시장보다 훨씬 경쟁이 심했던 반도체 시장은 이러한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 3월 HP(Hewlett-Packerd)사의 데이터시스템부문의 총책임자였던 앤더슨은 미국의 3개 업체와 일본의 3개 업체로부터 칩을 수집해 시험한 결과 미국과 일본제품의 품질수준의 차이가 상당히 큰 것을 발견하였다. 수입검사시 일본제품은 고장률이 0이었으나 미국제품의 고장률은 1∼2% 였으며; 1,000시간 사용 후 일본제품의 고장률은 1000개중 1개 내지 2개였으나 미국제품의 불량률은 이보다 27배나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충격을 받은 미국의 반도체 회사들은 일본이 그들의 생산품 중에서 최상급품 만을 골라서 미국에 수출한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발표된 자료자체를 부정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시장분석가들은 이러한 품질 상의 차이가 일본 반도체 회사들의 급속한 성장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일본은 불과 수년만에 16K와 64K반도체 시장을 상당부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것이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품질이 잠재적인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통계적 품질관리와 품질보증시대에서와 같이 품질을 결함이 없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시야에 문제가 있다. 전략적이고 경쟁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최고경영자의 절대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품질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제품을 받아들일만한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내부의 어떤 부서가 정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 고객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규격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부차적인 관심사이며, 고객의 요구를 소홀히 하여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제조 공정이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별 다른 이점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고객들은 과거 어느 때 보다 품질의 문제를 훨씬 더 비중 있게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들이 물품이나 서비스의 구매시 가격보다 품질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비율이 1978년에는 30%에 불과하였으나 1990년에는 70%로 대폭 늘어났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높은 품질이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지 그들이 제품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방어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품질시스템의 발전단계를 요약한 것이다.
품질시스템의 발전단계
구분특성 |
검사 |
통계적 품질관리 |
품질보증 |
전략적 품질경영 |
일차적 관심 |
검출 |
통제 |
조정 |
전략적 영향 |
품질견해 |
해결되어야 할 과제 |
해결되어야 할 과제 |
해결 되어야 할 |
경쟁기회 |
강조점 |
제품의 |
적은 검사와 |
품질불량을 |
시장과 |
방법 |
측정과 계측 |
통계적 도구와 기법 |
프로그램과 시스템 |
전략적 계획, 목표설정 및 조직기동 |
품질전문가의 역할 |
검사,분류, |
고장탐색 및 통계적 방법의 |
품질측정, 품질계획 및 프로그램설계 |
목표설정, 교육훈련, 타부문 지원 및 프로그램 설계 |
접근방향 |
품질검사 |
품질통제 |
품질구축 |
품질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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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을 보니 전체적인 품질의 흐름을 알 수 있네요^^ 교과서에도 있지만 좀 더 상세한 배경과 H.P사례가 나와 있어 품질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이 벤치마킹한 일본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품질에 대해 경영자들이 전략적으로 보고 행야였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