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믿음의 말씀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 운동으로 병에 걸렸을 때,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기보단 "그가 채찍을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다"고 고백할 것을 권했습니다. 이 ‘믿음의 말씀 운동’을 통해 매우 훌륭한 사역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지금 활동하시는 세계적인 목사님들은 대부분 믿음의 말씀 운동에 영향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믿음의 말씀 운동에도 부작용이 있었는데 부정적인 말은 아예 하지 못하게 하고 무조건 말씀을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일부 존재했고, 그래서 아파도 아프단 말을 못하고, 병에 걸렸는데도 병에 걸렸다는 말을 못하는 해프닝도 많았습니다. 믿음의 말씀 운동 이후 등장한, 은혜에 대한 강조는 그러한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고백'을 강조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시지 않은 것을 내가 고백을 하므로 해서(= 나의 행위로) 얻어 낸다"는 오해를 갖게 할 수도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제대로 된 고백을 많이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얻어낸다는 잘못된 생각이지요. 이것은 은혜가 아니고 행위입니다. 믿지 않는 것을 앵무새 같이 말만 하는 것이니까요.
성경적인 고백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의 구속(속량)사역으로 이미 완성해 놓으셨다는 것을 먼저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큰 능력이지만 믿기만 하는 것보다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에는 더 큰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 4: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말씀을 먼저 마음에 믿고 그 믿은 것을 말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 믿어지는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느냐, 그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나 믿기를 원할 때,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것보다는 내가 믿기 원하는 말씀을 계속 선포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봅니다. 이런 경우, 그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데 다만 내 마음이 온전히 그것을 믿지 못할 때 내 생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고백하는 것은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것 보다 몇 억만 배 더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음파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도 여러 근거가 있습니다(막 9:24).
성령세례를 받은 거듭난 성도가 부정적인 뒷담화를 마구 쏟아 낸 뒤, 시원한 느낌을 느낀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성화가 일어나려다가 다시 익숙한 제자리로 돌아간 상황을 속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인데 차라리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 훨씬 더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정적인 말에 대해서 지금보다 몇 배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저의 사역 경험으로 볼 때,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망을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생각해서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하면, 그런 경고를 들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충격을 받고 기분 나빠합니다. 교회 상담 문화가 '들어주는 것'을 미덕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부정적인 사망의 말을 쏟아내더라도 들어줘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그런 말은 하지 마라'는 반응은 매우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로 쏟아내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를 지적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조심을 한다 하더라도 어디에선가는 또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을 통해 여러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말에는 정말로 사망과 생명을 풀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적받을 때 상처를 받네, 마네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고치거나, 당장은 안 고쳐져도 앞으로 반드시 고쳐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모든 걸 완벽하게 다 잘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상처받았네, 어쨌네 하면서 고칠 생각을 미루면 자기 손해요, 지옥문이 열린 상태로 사는 인생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려는데 오히려 그 축복을 미꾸라지같이 피해 다니는 꼴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에게 지적을 받아 고치는 경우는 아주 성숙한 사람이거나 또는 벼랑 끝에 처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우리 각자가 알아서 고치는 것밖에는 없는데 위에 말씀드렸듯이 사람은 자기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로 쏟아내기 마련이기 때문에, 만나면 남편 얘기만 하는 사람은 계속 남편 생각만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말을 바꿀 수 없다면 그 말의 뿌리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즉, 우리의 말은 생각을 바꿀 때 고쳐진다는 뜻입니다. 생각(마음)을 바꾸지 않고 말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눅 6:45).
'고백'에 대해 나눌 때,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아니, 이젠 말도 못하게 하네'라는 반응과 자연적인 현상은 무조건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심각하다고 했는데 그런 얘기를 일절 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순서만 바로 한다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가 채찍을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다"고 하지만 의사는 나에게 가망이 없다고 했어 = X
의사는 나에게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채찍을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다"고 하셨어 = O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자연적인 사실을 아예 말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사실을 묘사하더라도 내가 정말 믿는 것, 마음에 가득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팩트를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진리를 선포하면 됩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내 삶은 그동안 내가 뿌려왔던 '말'이라는 씨들이 맺어 놓은 열매입니다. 지금의 열매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과거와는 다른 씨를 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제가 맺고 싶은 열매의 씨를 성경에서 찾고 있습니다. 무조건 말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성경적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성경적 근거가 있는 씨들은 뿌려졌을 때 반드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보장받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고백집을 활용하는 것도 매우 좋지만 고백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계신 분들은 스스로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일단 원하는 것을 적고 그에 따른 약속을 성경에서 발견하여 그 밑에 적는 것입니다.
말은 파워풀합니다. 말은 삶이라는 열매의 씨입니다. 그 씨를 잘 사용합시다.
*말씀 암송 프로젝트에서 나눴던 성경구절과 선포문을 사용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SmbcQ7mt6s
성경구절과 선포문 https://cafe.daum.net/gracerace/VZxZ/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