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속수(육포 한 묶음) 이상의 예물을 행하는 사람은 내가 일찍이 깨우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라고 하셨다.
脩脯也 十脡爲束 古者相見 必執贄以爲禮 束脩 其至薄者 蓋人之有生 同具此理 故聖人之於人 無不欲其入於善 但不知來學 則無往敎之禮 故苟以禮來 則無不有以敎之也 脩는 말린 고기다. 脡 10개가 束이다. 옛날에 서로 만나볼 때, 반드시 폐백(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을 禮로 삼았다. 말린 고기 한 묶음은 그 중에 지극히 가벼운 것이다. 대개 사람이 나면서부터 이러한 이치는 다 함께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사람에 대하여 그가 선에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었으나, 다만 와서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찾아가서 가르쳐주는 禮는 없었다. 그러므로 진실로 禮로써 찾아오기만 하면 그를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禮曲禮下 凡摯(與贄同) 天子鬯 諸侯圭 卿羔 大夫鴈 士雉 庶人之摯匹(鄭氏音木 匹卽鶩也) 童子委摯而退(摯之言至也 童子委摯而退 不與成人爲禮也) 野外軍中 無摯 以纓拾矢可也(纓馬繁纓也 拾射韝也) 夫人之摯 椇榛脯脩棗栗 예기 곡례하에서, 무릇 摯(贄와 같다)의 경우, 천자는 울창주, 제후는 圭(홀), 경은 새끼양(羔), 대부는 기러기(雁:鴈), 선비는 꿩이라 하고, 서인의 摯는 집오리(匹, 정씨는 음이 목이라고 하니, 匹은 곧 오리[鶩: 오리목]다)라고 한다. 어린아이는 예물을 땅에 놓고 물러간다(摯는 지라고 말한다. 어린아이가 예물을 땅에 놓고 물러가는 것은 성인과 더불어 禮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외나 軍中에서는 예물이 없으니, 纓(말에 매는 가죽끈)과 拾(활깍지, 활팔찌), 그리고 화살로 해도 된다(纓은 말에 매는 가죽끈이고, 拾은 활깍지다). 부인의 예물로는 椇榛(호깨나무와 개암나무), 육포, 그리고 대추와 밤이다.
胡氏曰 在禮無以束脩爲贄 惟記檀弓曰 束脩之問 不出境 少儀曰 其以乘壺酒束脩一犬 穀梁傳曰 束脩之問 不行境中 則是亦有以此爲禮 不但夫人用脯脩爲贄也 然比羔鴈爲薄 故云至薄 호씨가 말하길, “周禮에는 束脩로 예물을 삼는 것이 없고, 오직 예기 단궁에서 이르길, 束脩의 문안은 경내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고, 예기 소의에서 이르길, 그것은 乘壺酒와 束脩와 개 한 마리로 한다고 하였으며, 곡량전에서 이르길, 束脩로 하는 문안은 경내에서는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것 역시 이것으로 예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부인이 포를 써서 예물로 삼았을 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새끼양과 기러기에 비하면 박한 것이므로, 그래서 지극히 박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邢氏曰 此禮之薄者 厚則有玉帛之類 故云以上以包之 형씨가 말하길, “이것은 禮 중에서 박한 것이다. 두터운 것이라면 곧 옥과 비단 같은 종류가 있다. 그래서 以上이라고 말하여 그것을 포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齊氏曰 漢諸王致禮於其傅 猶曰束脩 蓋古禮也 제씨가 말하길, “漢나라의 여러 왕들은 그 스승에게 예를 바칠 적에 여전히 束脩를 말하였으니, 아마도 옛날의 禮節인 것 같다.”라고 하였다.
記曰 禮聞來學 不聞往敎 예기에 말하길, 禮에 있어서 와서 배운다는 말은 들었지만, 가서 가르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問束脩始相見之禮也 人苟以禮來聖人未嘗不誨之 蓋辭氣容色之間 何莫非誨也 固不保其往耳 朱子曰 誨之一字 恐未說到辭氣容色之間 亦未有不保其往之意 恐不應於此遽及之也 當詳玩之 누군가 묻기를, “속수는 처음에 서로 만나뵐 때의 예물입니다. 사람이 만약 禮로써 온다면, 성인께서는 일찍이 깨우쳐주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대체로 말하는 기세와 용모와 안색 사이가 전부 어찌 깨우쳐줌이 아니겠습니까? 가서 가르치는 것은 본래부터 보장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깨우쳐준다는 한 글자로는 아마도 말하는 기세와 용모와 안색의 사이에까지 말한 것은 아닐 것이고, 또한 가서 가르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갑자기 그것에 미쳐서는 응당 안 될 것이니, 마땅히 자세하게 음미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人之有生 同具此理 雖以氣稟物欲之累而趨於惡 然皆可反而之善 聖人仁天下之心 曷嘗不欲啓其爲善之塗哉 惟自暴自棄 在聖人亦無如之何 故有不往敎之禮 執贄而來 禮雖至薄 意則可取 故未嘗不敎之也 호씨가 말하길, “사람은 나면서부터 모두 다함께 이러한 이치를 갖추고 있다. 비록 품부받은 기운과 物欲에 얽매여서 惡으로 달려가기는 하지만, 그러나 모두 돌이켜서 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인께서 천하를 인애하는 마음은 어찌 일찍이 그 선을 행하는 길을 열어주기를 바라지 않으신 적이 있겠는가? 오직 자포자기한 사람만은 성인에게 있어서도 역시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禮가 있는 것이다. 예물을 잡고서 찾아온다면, 예물이 비록 지극히 박할지라도, 그 뜻은 취할 만한 것이니, 이 때문에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聖人之敎雖不輕棄人 亦不苟授人 仁義並行而不相悖也 但聖人之心 其愛人也 終無窮已 而其責人也 終不至於大甚爾 경원보씨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비록 가볍게 사람을 버리지 않지만, 또한 사람에게 구차하게 가르침을 주지도 않았다. 인의가 나란히 행해져서 서로 어긋남이 없게 되는 것이다. 다만 성인의 마음은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종래 끝이 없었지만, 사람을 나무람에 있어서는 종래 너무 심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